라면

이경한20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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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으로 범벅된 빤쓰를 대충 엉덩잇살과 떼어낸 후, 선풍기를 엄지발가락으로 켠 채

작달막한 개다리 책상에 앉으니 복사뼈가 찡겨 따끔거린다. 한참을 선풍기 바람으로

땀을 말렸을 때, 핸드폰 생각이 났다. 역시나 핸드폰도 땀에 범벅이 되어 있다. 짐짓

자판에 땀이 흘러가 고장이 나진 않았을까 염려스러웠다. 대충 땀을 닦아내고 평택의

자동차 엔진 연구원인 친구에게 시험삼아 'ㅗ' 라고 문자라고 하기 떨떠름한 모음을

전송했다.

 괜한 염려였다는 듯이, 마치 이건희 회장의 애니콜 신화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문자는

잘 전송이 되었다.

 '역시 삼성이구만' 이라고 들릴듯 말듯 스스로 감탄을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허기가졌다. 아니 긴장을 해서 배가 고팠던 것을 잠깐 잊었던 것이다.

 

 라면이 떠올랐다. 혼자 라면을 먹을 때면 으레 양치질을 하고 우유를 마신 뒤에야 라면

을 먹었다. 물론 라면에 계란도 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본격적으로 화학공부를

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라면 스프, 그 고유의 화학조미료에 담긴 수많은 실패와 실험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라면 회사 엔지니어들의 피와 땀이 서린 노고의 결정체에 계란을

풀어 혼탁하게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정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국물을 맛보고 있노라면 '아~ 이 맵고 짜고 얼큰한 맛을 모방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

꼬'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편으론 어설프게 진국의 맛을 모방하려 드는, 사람의 혀를 온

갖 이상한 화학물로 속이려 드는 그 엔지니어들의 교묘한 술수가 가소롭기도 했다.

 

 어쨌든 변태같은 짜릿한 공상에 빠져 라면을 다 먹고나면 언제나 그랬듯, 얼마후면 소장과

대장이 번갈아 부글부글 끓는다. 필시 화학반응을 일으켜 기체가 생성됐으리라 내 화학적

지식으로 짐작해 본다. 역시 기업의 메인 목적인 이윤추구를 위해 방부제를 첨가하고, 사람

들의 혀만을 잘 속였을 뿐 위와 십이지장을 거쳐 대장에 이르기까지의 세이프티 실험은 안

했을 것이 뻔했다.

 

 그때 문자가 왔다. 아까 보낸 자음의 답장이 30 분이 지나서야 온 것이다.

 

'아이 시버럴롬'

 

 대충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따라 읽으며, 화장실로 배를 움켜쥐고

뛰어갔다.

 

 결국 이윤만을 최고의 목표로 추구하는 기업, 그 생존 경쟁이 치열한 정글의 첫 번째 희생자는

소비자이고 두 번째 희생자는 엔지니어들이 아닐까? 난 그 교집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