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 야마오카 소하치

. 201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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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이거슨 센고쿠 시대 오야붕이 되기 위한 영주들의 개난장 부르스 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교통정리가 될 때까지의 비열하고 치졸하고 때로는 엽기적이고 야만적이기까지한  역사를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포장하고 미화하고 찬양하다가 

장엄하게 마무리 짓는 매우 긴 역사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지난 수 십년간 인구에 회자되고 두루 두루 읽히고 있는 까닭은

이 책의 저자인 야마오카 소하치의 신들린듯한 글 솜씨에 있다. 

오리지널 조선놈이자, 어지간히 삐딱한 나 조차 그의 마력에 홀랑 넘어가

부관참시해도 시원치 않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생각하며 빙그레 웃음짓고 

응원한 순간도 있었으니, 진정 혀를 내두를 만한 글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종간나 새끼가 귀엽게 느껴지다니 -0-; 

 

이 소설이 주는 재미는 가장 뛰어나다는 역사소설 삼국지와 견줘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물론 차이는 있다. 

삼국지가 주로 주종 관계, 국가간의 분쟁 등 세력 싸움과 남자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대망은 주조연 가릴것 없이 그들의 가정사부터 시작해서 연애사 등을 빼놓지 않고 시시콜콜 다뤘다.

(더럽게 긴 소설이 된 주된 이유는 바로 이것-_-;)

즉, 삼국지에서 여성이 의미있게 등장하는 부분이라고는 초선 에피소드 정도지만

이 책은 온전히 큰 틀에서 여성이 한 축을 담당 했다는 이야기다.

밧뜨, 그게 양성평등을 의미하는건 절대 아니다. 

센고쿠의 그녀들은 시종일관 비참하다.-_-;

(그냥 '비참하다' 한 마디로 줄였지만, 어지간한 여성이라면 혐오감에 완독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을 정도다

그러니 선택은 자유~)

 

본인이 소장중인 삼국지는 리동혁의 본삼국지다. 원래 이문열 평역본을 소장중이었지만,

어느 해인가 개인적 원한(?)으로 불살라 버린후-_-; 이 녀석을 선택했다.

삼국지도 엽기적인 장면이 가끔 나오지만(굶주린 유비에게 마누라를 죽여 허벅지 고기를 대접하는 농민)

대망에 비하면야 조족지혈.

 

완독 후, 나는 센고쿠 시대를 대강 감 잡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이 장엄한 소설의 여운은 애써 지워버렸다. 

(그 멋드러진 절명시들의 유혹 마저도 과감히 뿌리치고!)

이유야 어쨌든 나는 불행히도(?) 현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보편적 인권을 지지하는 뭐 그런 인간이다.-_-;

시종일관 섬나라 야만 원숭이들의 개막장 테크를 눈뜨고 지켜보기 힘들다가도 

그걸 죽을 힘을 다해 미화 하는 작가에 말려들어 혹해서 고개를 끄떡이기도 했으니,

이거 나중에 생각하니까 구역질이 나더라.

아무리 똥을 예쁘게 포장 하더라도 똥은 똥일뿐.

 

대망은 군국주의,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권력 지상주의가 기본 베이스로 깔려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야마오카 소하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의 원제)를 연재하기 시작한 시점은 2차 세계대전 패망 직후였다.

작가가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스스로 밝히기를, 패배주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단다.

왜 하필이면 이에야스 였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평생 통일 일본을 위해 기꺼이 어떠한 희생도 불사했고,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 했던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화신이다.

 

 "짐이 곧 국가다!"를 외친 루이 14세, 답 안나오는 자뻑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에야스와 겹친다. 

 

그리고 그 모든 희생(마누라와 자식마저)을 발판삼아 곧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300년 도쿠가와 막부를 열었다.

작가는 그런 강력한 국가주의 시스템에 대한 그리움과 갈증을 소설 대망에서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에야스와 똑같이 하나된 일본을 외치며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카모토 료마. 하지만, 그는 이에야스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그가 주창한 혁명은 계급 사회의 근본적 타파 였다.

현재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언제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  그리하면 대망을 이루리라!

 

작가는 다시 한번 하나된, 강력한 일본이 만들어지기를 바랬던 모양이다.

역사상 권력자들에게 큰 것이란 언제나 자신들의 권력이었고, 작은 것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다.

우습게도, 일본제국과 같이 망한 히틀러의 "제3제국"이 바로 그런 국가가 아니었던가?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승자의 시각에서 기록되고, 또 정당화 되어왔다.

바로 이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찬양 되면서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정말 이 책을 비추한다.

(물론 온갖 엽색적인 행각들로 이미 충분히 19금 소설이긴 하지만.) 

 

사실 "소설은 소설로만" 이런 가장 기본적인 개념만 탑재하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지만, 그건 개소리다.

좋은 예로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초강대국이 그들의 "우방"에 행한 문화 식민화는 

그 "우방"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아무리 깡패짓을 해도 언제나 정의의 수호자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때때로 자신들의 더러운 똘마니짓도 자발적으로 해내게 만들었다. 

 

스티븐 맥커리의 작품 진실의 순간 <아프간 소녀> 

 

소설은 소설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

노래는 노래로 끝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비판적 시각을 잃어버리면 주체성도 잃게 된다.

 

대망은 대단히 재밌는 소설이긴 하지만, 경각심을 갖고 읽어야 하는 분명히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