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충류를 싫어하는 것을 두고, 공룡 등 거대 파충류에 오랫동안 핍박받아 왔던 포유류의 본능이 인간의 DNA속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널 잘 모르기 때문에-' 즉 독이 있을지, 날 물어버릴지, 뭔가 내게 해를 주지 않을지... 등의 생각때문일거라 나는 생각한다.
흔한 예를 들어, '사마귀에게 물리면 사마귀가 난다.' 라는 돋보이는 rhyme의 속설이나, '나비 날개를 만지고 눈을 비비면 장님이 된다.'라는 허위과장 광고는 모두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최근 경기도 한 아파트단지에서 떼로 나타나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곱등이'(학명 Diestrammena apicalis Brunner ) 종을 살펴보자면~ '절지동물문>곤충강>메뚜기목>꼽등이과'에 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며 곤충학자의 꿈을 키웠던 나도 어린시절 자주 보았던 곤충이다. 장수 풍뎅이 애벌레를 찾겠다며 나무 근처 습한 곳들, 혹은 아파트 외벽 습하고 어두운 곳을 헤메노라면 자주 마주쳤던 곱등이. 사실 왠만한 곤충들은 다 귀엽게 보는 능력(?)을 가진 나에게도 요녀석은 거부반응이 살짝 오던 녀석이라... 외견이 참 독특하게 생긴건 나도 100프로 공감한다.
하, 지, 만!!
조상 대대로 우리 민족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던 벼메뚜기를
살펴보자!!
벼메뚜기(학명:Oxya japonica japonica ) 절지동물문>곤충강>메뚜기목>메뚜기과. 즉 공포의 대상 곱등이와 사촌지간이다. 우리가 즐겨먹었던 메뚜기와 곱등이는... 마치 '소와 염소'같은 사이인 것이다.
물론, 메뚜기와 꼽등이는 매우 다르다. 서식하는 환경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며, 생활 습성 또한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메뚜기도 먹는데 곱등이도 먹어라!'라는게 절대 아니다.
다만, '징그럽고' '싫고' '죽여야만 하는' 그런 존재로서 곱등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된 시각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가장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생물을 꼽으라면, 당연히
인간이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이토록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생물이 역사상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인간은, (적어도 지구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해로운 존재이다.
다만, 해로운 존재라고해서 존재의 의미, 생명의 존엄성이 무가치 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이나 존재의 존엄성은 다 똑같다.
우리 인간이, 모든 생물중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기 백년 동안 이루어진 급속한 개발로 인한 자연 파괴가 이제는 그 부작용을 몸소 체감 할 수 있을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지금 '곱등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바 없는것이 문제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우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왜 곱등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을까? 그들의 삶의 터전에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미하지만, 존엄한 한 생명이고, 엄연한 지구의 세입자이다.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머 곱등이다! 꺄악! 얼른 죽여~"라고 호들갑을 떨며, 갖은 잔혹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일 방법을 가르쳐 줄건지,
"저건 곱등이라고 메뚜기의 사촌뻘되는 곤충이란다. 메뚜기와는 다르게 잡식성이고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지! 참 독특하게 생겼지?"라고 가르쳐 줄 것인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곱등이들에게는 우리의 이웃으로서 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지를,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온갖 '다른'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주는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동안 인간 사회의 눈부신 발전은, 과학, 기술, 예술등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 '변화'를 가져왔지만 과연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 나를 제외한 타인의 '존재'마저도 곱등이 바라보듯 하고 있지 않은지, 그래서 더 외롭고, 삶이 힘들어 지는 것은 아닌지... ...
곱등이 신드롬.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것,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충류를 싫어하는 것을 두고, 공룡 등 거대 파충류에 오랫동안 핍박받아 왔던 포유류의 본능이 인간의 DNA속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널 잘 모르기 때문에-' 즉 독이 있을지, 날 물어버릴지, 뭔가 내게 해를 주지 않을지... 등의 생각때문일거라 나는 생각한다.
흔한 예를 들어, '사마귀에게 물리면 사마귀가 난다.' 라는 돋보이는 rhyme의 속설이나, '나비 날개를 만지고 눈을 비비면 장님이 된다.'라는 허위과장 광고는 모두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최근 경기도 한 아파트단지에서 떼로 나타나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곱등이'(학명 Diestrammena apicalis Brunner ) 종을 살펴보자면~ '절지동물문>곤충강>메뚜기목>꼽등이과'에 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며 곤충학자의 꿈을 키웠던 나도 어린시절 자주 보았던 곤충이다. 장수 풍뎅이 애벌레를 찾겠다며 나무 근처 습한 곳들, 혹은 아파트 외벽 습하고 어두운 곳을 헤메노라면 자주 마주쳤던 곱등이. 사실 왠만한 곤충들은 다 귀엽게 보는 능력(?)을 가진 나에게도 요녀석은 거부반응이 살짝 오던 녀석이라... 외견이 참 독특하게 생긴건 나도 100프로 공감한다.
하, 지, 만!!
조상 대대로 우리 민족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던 벼메뚜기를
살펴보자!!
벼메뚜기(학명:Oxya japonica japonica ) 절지동물문>곤충강>메뚜기목>메뚜기과. 즉 공포의 대상 곱등이와 사촌지간이다. 우리가 즐겨먹었던 메뚜기와 곱등이는... 마치 '소와 염소'같은 사이인 것이다.
물론, 메뚜기와 꼽등이는 매우 다르다. 서식하는 환경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며, 생활 습성 또한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메뚜기도 먹는데 곱등이도 먹어라!'라는게 절대 아니다.
다만, '징그럽고' '싫고' '죽여야만 하는' 그런 존재로서 곱등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된 시각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가장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생물을 꼽으라면, 당연히
인간이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이토록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생물이 역사상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인간은, (적어도 지구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해로운 존재이다.
다만, 해로운 존재라고해서 존재의 의미, 생명의 존엄성이 무가치 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이나 존재의 존엄성은 다 똑같다.
우리 인간이, 모든 생물중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기 백년 동안 이루어진 급속한 개발로 인한 자연 파괴가 이제는 그 부작용을 몸소 체감 할 수 있을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지금 '곱등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바 없는것이 문제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우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왜 곱등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을까? 그들의 삶의 터전에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미하지만, 존엄한 한 생명이고, 엄연한 지구의 세입자이다.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머 곱등이다! 꺄악! 얼른 죽여~"라고 호들갑을 떨며, 갖은 잔혹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일 방법을 가르쳐 줄건지,
"저건 곱등이라고 메뚜기의 사촌뻘되는 곤충이란다. 메뚜기와는 다르게 잡식성이고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하지! 참 독특하게 생겼지?"라고 가르쳐 줄 것인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곱등이들에게는 우리의 이웃으로서 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지를,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온갖 '다른'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주는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동안 인간 사회의 눈부신 발전은, 과학, 기술, 예술등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 '변화'를 가져왔지만 과연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 나를 제외한 타인의 '존재'마저도 곱등이 바라보듯 하고 있지 않은지, 그래서 더 외롭고, 삶이 힘들어 지는 것은 아닌지... ...
이는, 전적으로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요-
결국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