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그러고있다_

John☆201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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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딧, 지지직_턱턱/ 띠딧_ 지지직_턱턱' 제귀가 아니면 잘 들리지도 않을 소리로 아주 긴 호흡을 하며 한 장, 이제서야 끝났다. 나의 연인의 셔터소리이다. 귀담아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안개소리의 방해때문인지 잘 들리던 그 디지털 셔터음마저 희미해지고, 차진 않지만 내 온도보다 차가운 손이 내 손을 구한다. 앞으로 평생 놓치 않을 것 처럼 꽉 부여잡았던 손은 나흘의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각자의 일을 하는 손으로 변하고, 온도도 알 수 없는 타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닷새가 흐르고, 연인은 한국으로 돌아오고있다. 그래서인지 더 잠못들고 설레기만한다. 입국을 한다해도 바로 볼 수 있는것도 아니건만_ 애틋함은 더해져만가고 맨바닥에 배를깔고 노트북으로 끄적이던 내 몸둥이의 허리는 고통을 호소한다. 울산과 서울, 어차피 자주 못보는 일이 허사지만 타국에 나가있는 연인을 생각하면 왜인지 더 그립고, 더 보고싶다. 이래서 어른들은 함께 사는가보다_  

 

 

la plus beau monde _                        

                                         감성, Sensibility'

 

 

 

 

 

 

 

 

 

 

 

  함께 사진을 찍는다. 부둣가로 나오는 길 모퉁이 모퉁이마다 우리의 눈에 안차는 곳이 없다. 조금만 빛을 머금은 자리가 있으면 우리는 제자리에서 셔터를 눌러댔다. 원하는 사진을 하고싶은 욕심보다는 무언가 함께하고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 더 그렇지 않았나 싶다. 처음 밀양에서 함께 셔터를 누를때는 방향도 다르고, 느낌도 전혀 다른사진들을 서로의 기준대로 뽑아내더니 시간이 얼마 가지않아 현대호텔에서 다시 빛을 담아낼 때는 셔터를 누른방향을 얘기하지 않으면 서로 같은 사진을 뽑아내기 일쑤였다. "보는 감각이 있구나" 라고만 얘기하고 말았지만 "어?"하며 놀라는 연인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또 지나고 우린 한자리에 주저 앉았다. 멀리서 밀려오는 바다안개를 보며 '온다온다온다온다ㅡ' 바다안개는 계속 오고있었다. 아마 그 셔터는 내가 연인을 바라봤을때 손이 떨려 찍은거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던 내 귓가에 안개가 오고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근데, 벌써 안개를 자욱하게 깔려있는데 웬 소리였다. 고개를돌려 대채무얼담고있는가 바라봤다. 부끄러웠는지 바라보는 순간에 한장, 또 딴청을 피무다 내가 바라보면 또 한장. 아마 바다안개를 보는 척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있진 않았는지.. 안개는 푸른바다의 물을 삼분도 체 되지않아서 회색의 물로 만들어버리고 연인은 내게 묻는다. "뭐가 온다는건지 알기나해?" "바다안개" 퉁명스럽지만 보드라운말투로 대답한 나는 연인의 사진과 닮은 사진을 한 장 찍는다. 그리곤 "이거?" 라며 찍힌 사진을 건낸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연인이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같다' 맞다 두 사진은 기계적 차이를 제외하곤 정말 많이 닮아있다. 한자리에서 두명이 찍는다고 사진은 다 같은사진을 내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바위 하나를 사이에두고 앉았음에도 산은 나무, 같은안개, 같은 노을을 찍었다. 하긴 칠년전 우리 처음 만나던 때를 기억하면 내게 사진에 대한 자극을 준 사람은 바로 이 소녀였으니까..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 밀양_ 뉴스에 의하면 폭염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연일 이어지고있다고 보도되고있었다. 약간의 짬이 나는 시간을 기해 바닦을 딛고 지나가는 개미를 발견한다. 아침이면 배우들의 몸짓연기가 펼쳐지고 조금 지나면 연기수업이 이뤄지고, 저녁이되면 우리들의 잠자리가 되어주었던 낡은 초등학교바닥에는 사잇사이에 모래와 먼지가 잔뜩끼어있었다. 그 사이를 헤짚고나오는 개미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끼며, 그러면서도 밤이되고 해가지면 잠을 자는구나_ 라고 생각하며 개미를 연실 찍고있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연인, 내게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없어보이는 사진을 찍어줄게" 그러면서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앉아있는 나를 찍는다. 난생처음 남이 찍어준사진 중 제일 맘에들었다. 몇해가 지나면서까지 내 사진 이라 함은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진이기도 했다. 아니 그러고있다. 그녀가 미니홈피에 올린 사진을 보면 더욱 자극을 받는다. 괜히 악어의 얘기를 건내며 이야길 진행시키고싶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나보다. 입을 잔득벌린 악어인형과 연인의 멀티메일을 보면 흐믓해진다. 이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구나. 우린, 그때 그렇게 만났다. 멀리 전화통을 붇잡고 연실 이야기를 쏟아내던 나의 모습과 한켠, 그늘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반듯한 동작을 가지고있던 소녀, 그로부터 육년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난다. 강산이 반보다 조금 더 변했을 시절속에 변함없이 반듯한 동작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참 마음에 든다. 눈에 꽉 차올라 잠시, 한시도 떨어져있기 싫다. 이래서 어른들은 결혼생활을 하는가보다. 내 친구, 선배, 후배 할 것없이 먼저 결혼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성격차이, 신분차이 등등 별엣것들을 신경쓰면서 계속 미뤄오고 내게있어선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을 해왔다. 하지만 제서야 연인을 만나고 떨어지기 싫다는 느낌을 무척이나 심하게 받는다. 그래서였는지 그날 그 품속에 안겨 그렇게 눈물이 흘렀나보다. 웃옷을 다 적실만큼 짧은시간에 많은눈물이 솓아치게흘렀다. 맞다 그 눈물은 솟아쳤다. 전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혀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흘러내리는 녀석을 나는 주체할 수 없었다. 바다였다. 바다는 참 많은것을 가지고 있다. 그날만큼은 물이었으며, 불이었다. 꽉 잡고있던 두 손에 힘이들어가고 약간의 농담이 오간다. "이제 다 풀렸어?" 한마디, 나를 바라보는 그 눈가 하나에 글썽일 시간도 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곤 솟아버린다. 그렇게 한바탕을 울고나니 배가고파졌다. 그리고는 이제 하루종일 배가고프다. 밥을 먹고 돌아서고나서도 또 누릉지를 먹는다. 과일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리고 설겆이를 마치고나면 또 배가고프다. 똥을 많이 누는것도 아닌데 요상하게 자꾸 배가고프다. 고기를 먹는다. 벌써 오일째 고기만 반찬으로 먹는다. 그것도 그냥 일반 반찬용고기가 아닌 생고기를 구워서 막 먹는다. 이상하다 한번도 이런일이 없었다. 군에서 역시 그러지 않았던 몸이 변하고있다. 붓는다. 손이 금세 부어서 오후에 잠깐 짬을내서 레이싱게임을 할때는 너무 뚱뚱하게 부어버린 손가락 때문에 자꾸 드리프트가 미끄러졌다. 그러더니 지금은 타자를 치는 손가락들이 뚱뚱해져 어려움을 겪는다. 하긴 어차피 독수리타법이라 별 바뀌는건 없지만 말이다.

 

중학교 후반때즈음 일이다. 피아노를 깨나 잘치던 젊은 나는, 음악의 멜로디를 들으면 한번에 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정확히 박자-멜로디를 그대로 연주했다. 건반악기 뿐만아니라. 주력악기였던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수업시간에 교보제였던 리코더까지도 멜로디를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키가크려고 그랬는지 잠깐 음식의 양이 늘었다. 그러더니 건반을 한번에 두개씩 눌렀다. 현을 한번에 두개씩 짚었다. 구멍을 한번에 두개씩 막았다. 왜그러지, 거울을 유심히 살펴봐도 부운것 같지않았지만 이상하게 손가락이 굳어졌다. 연필을 하도 세게 잡고있어서 오른손 중지에는 연필자국이 자꾸 생겨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중대결심을 한다. 그때 모든악기를 관두게된다. 한때는 인생의 목표였던 악기들이 순식간에 뚱뚱해져버린 내 손때문에 더이상 연주를 하지 않는 손으로 변해버리고야만다. 고약한 내손은 그때부터 또 학업을 놓는다. 그때 찾게 된 것이 '연극'이다. 합창단시절 내 몸을 악기로 쓰긴 했지만 연극은 악기와는 또 다르게 내 몸을 통해 남의 말을 빌려할 수 있게 하였다. 소리를 쳤다. 음악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미워 아파트 옥상에까지 올라가 보았다. 순식간에 늘어난 팔길이때문에 바이올린이 더이상 몸에 맞지 않는다. 새것을 구입하기에 집안형편이 너무 안좋아졌다. 용돈모은것으로 현을 갈고, 활을 새로사고, 송진을 사고나니 악보를 살 돈이 모잘랐다. 손을 벌리고싶지 않았으며, 그것보다 나는 뚱뚱해져버린 내 손만 탓하고있었을 뿐이다. 중3이되고 혼자 살기시작하면서 모진일을 다 겪은 손이었다. 아주가끔 붓기가 빠지면 엄마집에 잘 모셔다둔 악기들을 꺼내어(그때까진 가지고있었음) 연주깨나 하곤 했는데 이제는 생각만이다. 취미로 새로 시작해야겠다. 아무튼 연극을 하면서 뚱뚱한 손은 제역할을 잘했다. 무거운것을 들거나 망치질, 톱질을 할때도 상처도 잘 나지않고 연장을 잘 잡을 수 있었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카메라나 기타 장비들을 관리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얇은 손가락으로 편집기의 죠그셔틀을 돌리는것보다 나처럼 짧고 굵은 녀석으로 휙휙 돌리는게 안정감있고 정확하다. 조명을 갈면서도 목장갑 하나면 그 뜨거운 엘립소이달의 전구도 손쉽게 갈 수 있었다. 군시절 이 손은 총을 잘잡고 의장대가 돌리는 총을 돌리는 시범까지 한다. 내가 하고싶었던 한때의 꿈이담긴 현악기를 더이상 할 수 없다는 것때문에 미워졌다. 유년시절 콩클에 나가서 입상하고 많은 받수를 받던 손인데, 전날 피아노부문 이튼날 현악부분에서 연주하던 손이었는데, 더이상 할 수 없는 이 손이 미웠다. 그런데 이 손이 이제는 기계장치에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육년 전 내 연인 때문이다. 비디오촬영말고는 사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런것이, 아버지께서 사진을 하시니까 그게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것 같다. 어쨌든 연인의 소녀적 그 사진술이 마음에 들었었고 그렇게 가끔 연인의 사진을 보면서 내 손에 투박하고 검은 카메라를 들리게 했다. 그리고 이젠 연인이 내 손을 자기 배위에 올리고 따듯하다 얘길해준다. 투박하고 못생긴 내 손을 귀엽다고, 화가났을때 보면 바로 풀릴거라고 아주 상냥하게 얘기를 한다. 밤사이 내 볼일만보고 슬쩍 빠져나가는 못나고 투박한 손인데도 이해해주고 웃으면서 농삼아 얘길 해주는 연인이 고맙다.  그러면 어쩌지, 이 투박한 손이 더 두꺼워지고 굻어져서 타자기위를 날지 못하는 그 때가 오면 어떻하지? 그때가 되어도 악기를놓던 날 처럼 놓아버릴텐가? 글쎄다. 언제까지 블로그를 운영하고 언제까지 타자를 치면서 시덥잖은 글을 할지는 몰라도, 내 사랑하는 연인이 내 손을 좋아해주니 나는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좋다.

 

지킬것이 많아지면 갑옷을 입고 창을 두르고, 칼을차고 이 두꺼운 손으로 지켜낼 것을 지켜낼것이다. 잡아올릴 그믈이 있다면 이 투박한 손으로 그물을 잡아 끌어 올릴 것이다. 남산위에 저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이유가 무얼까. 나는 곱디 고왔던 내 손이 이렇게 철갑을 두르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방송장비를 잘 잡기 위해서? 연인의 손을 잘 잡기 위해서? 차가와진 배를따따하게 만져주기위해서? 글쎄다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손의 진정한 쓰임세를.. 하지만 확실한건 앞으로 이뤄낼 것이 많고, 지켜낼 것이 많은 손이라는 것이다.

 

연인을 태운 거대한배는 바다위를 유영하며 점점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곳 한국_ 대한민주공화국은 땅덩이가 작다. 그래,작아서 다행이다. 서울과 울산까지 차로 다섯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너무멀어 한나라사이에서도 쉽게 가 볼 수 없는 영토 넓은 대륙들보다는 참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만 다섯시간은 커녕 오분도 떨어져 있고싶지 않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먼 거리이다. 그래도 타국에 나가있던 연인이 오고있는 소리가 들린다. 잠을 쉽게 청하지 못하고 뒤척이며 나를 생각하고 있을연인의 생각이 들리는 듯해서 쉽게 잠이 들지 않는 것 같다. 나또한_

 

 

 

 

 

 

 

 

 

 

 

 

 

 

P.S_  '같은장소의 추억', 연인의 미니홈피_

들여다보기ㅡ> [  曉霜。  http://minihp.cyworld.com/26345573/13548686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