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에서 작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18살 여학생입니다. 반가워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한달이 지나가고, 몇년이 지나가다보니까 저의 머릿속에 드는건 절대 결혼따위는 해서는 안되겠다 였습니다. 톡에 보면 정말 잘사시는 분도 보이지만 시월드 때문에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계셔도 그건 남자를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더군요. 좋은기억보다 안좋은 기억이 엄청 오래간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게 맞는말인가 봅니다. 제가 중1때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제 기억으론 중3 졸업쯔음에서 고1입학때까지 계속 법원에서 날라온걸 보면서 지냈습니다. 그건 분명 고소장이겠지요. 엄마가 아빠에게 고소를 해서 온 고소장이었습니다. 요구하는 위자료도 정말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집안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IMF때 아빠가 여러사업을 실패하셔서 지금까지 쌓인 빚이 남아있는 상태이며 4천짜리 빌라에서 살다가 빚내고 적금깨고 해서 온 집이 이집인데, 1억짜리 전세집이라 분명 분수 넘치는 집이죠. 그러고보면 어차피 터질거 왜 중1때 터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도 엄마아빠가 엄청나게 싸우셔서, 물건이 여러개가 깨지고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아빠가 데려오신게 한두번도 아니었고 엄마가 아빠에게 갖다주라고 하신 종이봉투에는 이혼서류가 들어있었던적도있었구요. 행복한 날보다는 눈물만 흘리면서 지낸날이 더욱 많았습니다. 매 명절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었는데 항상 명절 시작하기 며칠전, 끝나고 며칠뒤까지 엄마가 계속 고모세명을 욕하고 할머니를 험담했습니다. 그래도 십몇년만난 사람들인데 왜이렇게 험담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린 저에게 왜 그런말을 하는건지 이해도 안갔으며 도를 지나친 험담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해도 할아버지는 저하고 제동생 싫어하셨습니다. 아들은 저희 아빠가 하나뿐인데 연속으로 딸을 낳았으니 미워하실만 하시겠죠. 근데 중학교 이후로는 달라져서 아, 진짜 내인생 피는구나 . 이생각만 했는데 저 그래도 부모님 이혼하시고 엄마 없어도 엄마없는년이라고 욕먹지 않을만큼 열심히 생활 하고다녔습니다. 중학교 친구들은 몰라요. 말을 안했지만 최대한 티 안나게, 엄마없이 자란년이라고 욕먹기 싫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생각없이 지내다가 학원도 자발적으로 다니고 엄청나게 성적 올리고 열심히 살았어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아빠도 엄마도 모두 원망스럽습니다. 왜 내가 엄마가 없어서 연극을 하고다녔으며 나는 왜 이런 부모가 있는것인가. 근데 결론은 간단하더라구요. 엄마가 느꼈을 지긋지긋한 시월드. 시작은 그 시월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희 아빠가 둘째, 그 위, 아래 둘. 고모가 있습니다. 시누이 하나도 힘든데 세명씩이나 있으면 엄청났겠죠. 문제는 고모세명이서 모든걸 다 결정하고 의사를 물어본다는거였습니다. 저희집보다는 좀더 여유가 있었습니다 고모들은. 고학력이었으니까요. 같은피가 섞여서 더 뭉칠수 있는건 알겠지만 소외감을 느낀 저희 아빠와 저, 그리고 제동생은요? 같은 아파트를 살았어도 소외감을 느낀 저는요? 솔직히 저 엄마한테 사랑 못받아봤고 나중에 제가 애낳아서 그 애한테 사랑을 줄지도 의문이며 아직 제대로된 연애도 한번 못해봐서 사랑이란걸 못해봤으며 제가 뚱뚱해서 저를 누가 사랑해줄지가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시월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도 의문이라서 제 나이가 스물이 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결혼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제 나이 겨우 열여덟, 앞으로 결혼은 절대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에서 작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18살 여학생입니다. 반가워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한달이 지나가고, 몇년이 지나가다보니까
저의 머릿속에 드는건 절대 결혼따위는 해서는 안되겠다 였습니다.
톡에 보면 정말 잘사시는 분도 보이지만 시월드 때문에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계셔도
그건 남자를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더군요.
좋은기억보다 안좋은 기억이 엄청 오래간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게 맞는말인가 봅니다.
제가 중1때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제 기억으론 중3 졸업쯔음에서 고1입학때까지
계속 법원에서 날라온걸 보면서 지냈습니다. 그건 분명 고소장이겠지요.
엄마가 아빠에게 고소를 해서 온 고소장이었습니다.
요구하는 위자료도 정말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집안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IMF때 아빠가 여러사업을 실패하셔서 지금까지 쌓인 빚이 남아있는 상태이며
4천짜리 빌라에서 살다가 빚내고 적금깨고 해서 온 집이 이집인데,
1억짜리 전세집이라 분명 분수 넘치는 집이죠.
그러고보면 어차피 터질거 왜 중1때 터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도 엄마아빠가 엄청나게 싸우셔서, 물건이 여러개가 깨지고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아빠가 데려오신게 한두번도 아니었고
엄마가 아빠에게 갖다주라고 하신 종이봉투에는 이혼서류가 들어있었던적도있었구요.
행복한 날보다는 눈물만 흘리면서 지낸날이 더욱 많았습니다.
매 명절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었는데 항상 명절 시작하기 며칠전, 끝나고 며칠뒤까지
엄마가 계속 고모세명을 욕하고 할머니를 험담했습니다.
그래도 십몇년만난 사람들인데 왜이렇게 험담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어린 저에게 왜 그런말을 하는건지 이해도 안갔으며 도를 지나친 험담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해도 할아버지는 저하고 제동생 싫어하셨습니다.
아들은 저희 아빠가 하나뿐인데 연속으로 딸을 낳았으니 미워하실만 하시겠죠.
근데 중학교 이후로는 달라져서 아, 진짜 내인생 피는구나 . 이생각만 했는데
저 그래도 부모님 이혼하시고 엄마 없어도
엄마없는년이라고 욕먹지 않을만큼 열심히 생활 하고다녔습니다.
중학교 친구들은 몰라요. 말을 안했지만 최대한 티 안나게, 엄마없이 자란년이라고
욕먹기 싫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생각없이 지내다가 학원도 자발적으로 다니고
엄청나게 성적 올리고 열심히 살았어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아빠도 엄마도 모두 원망스럽습니다.
왜 내가 엄마가 없어서 연극을 하고다녔으며 나는 왜 이런 부모가 있는것인가.
근데 결론은 간단하더라구요. 엄마가 느꼈을 지긋지긋한 시월드.
시작은 그 시월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희 아빠가 둘째, 그 위, 아래 둘. 고모가 있습니다. 시누이 하나도 힘든데
세명씩이나 있으면 엄청났겠죠.
문제는 고모세명이서 모든걸 다 결정하고 의사를 물어본다는거였습니다.
저희집보다는 좀더 여유가 있었습니다 고모들은. 고학력이었으니까요.
같은피가 섞여서 더 뭉칠수 있는건 알겠지만
소외감을 느낀 저희 아빠와 저, 그리고 제동생은요?
같은 아파트를 살았어도 소외감을 느낀 저는요?
솔직히 저 엄마한테 사랑 못받아봤고 나중에 제가 애낳아서 그 애한테
사랑을 줄지도 의문이며 아직 제대로된 연애도 한번 못해봐서 사랑이란걸 못해봤으며
제가 뚱뚱해서 저를 누가 사랑해줄지가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시월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도 의문이라서
제 나이가 스물이 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결혼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