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싸이월드 이전의 사람들과- 그 이후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지.
싸이월드가 그 중심에 있었다기 보다는, 싸이월드가 마침 거기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외로움의 필요조건은 좀 더 방대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의 증폭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발전과 함께 반비례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는 실시간으로 모든 소통의 창이 열렸지만,
막상 소통할 대상을 찾지 못해 외로워 하고들 있다.
돌이켜보면, 인터넷을 알고 나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나서
나는 좀 더 외로워졌단 생각이 든다.
미니홈피의 글들을 찬찬히 읽는다. 한동안 들르지 못했던 옛 친구의 것부터, 어제 만난 놈의 미니홈피까지.
개인적 관점에서 결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거시적인 사회문제 만은 아니다. 나의 바로 옆의 놈의 감정 역시 신경쓰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같이 밥먹을땐, 수업시간에 옆에 있을 땐, 그는 그닥 쓸쓸해 보이지 않겠지만, 공감하건데, 왠지 모르게들 다 외로워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애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될 수 있으랴.
어찌보면 애인이란 유일한 희망의 끈은 더더욱 관계를 깊고 복잡하게 만들고, 그만큼 이별 후에 복구하기 힘들어지는 구조이다. 젊은이들의 패기로 올인한다기보다는, 오직 그것밖에 올인할 것이 없어서, 점점 더 한사람에게 매달린다. 더더욱 피상적 관계는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낙인 찍어 버린다.
안타까운 것은, 외로워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도 정작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컴퓨터는, 스마트폰은,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을 실시간으로 전달하여 서로 소통시켜주는 듯 하지만,
외로운 사람들
모르겠다. 싸이월드 이전의 사람들과- 그 이후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지.
싸이월드가 그 중심에 있었다기 보다는, 싸이월드가 마침 거기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외로움의 필요조건은 좀 더 방대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의 증폭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발전과 함께 반비례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는 실시간으로 모든 소통의 창이 열렸지만,
막상 소통할 대상을 찾지 못해 외로워 하고들 있다.
돌이켜보면, 인터넷을 알고 나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나서
나는 좀 더 외로워졌단 생각이 든다.
미니홈피의 글들을 찬찬히 읽는다. 한동안 들르지 못했던 옛 친구의 것부터, 어제 만난 놈의 미니홈피까지.
개인적 관점에서 결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거시적인 사회문제 만은 아니다. 나의 바로 옆의 놈의 감정 역시 신경쓰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같이 밥먹을땐, 수업시간에 옆에 있을 땐, 그는 그닥 쓸쓸해 보이지 않겠지만, 공감하건데, 왠지 모르게들 다 외로워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애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될 수 있으랴.
어찌보면 애인이란 유일한 희망의 끈은 더더욱 관계를 깊고 복잡하게 만들고, 그만큼 이별 후에 복구하기 힘들어지는 구조이다. 젊은이들의 패기로 올인한다기보다는, 오직 그것밖에 올인할 것이 없어서, 점점 더 한사람에게 매달린다. 더더욱 피상적 관계는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낙인 찍어 버린다.
안타까운 것은, 외로워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도 정작 그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컴퓨터는, 스마트폰은,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을 실시간으로 전달하여 서로 소통시켜주는 듯 하지만,
결코 우리의 영혼들을 교감시켜줄 순 없는것 같다.
어서 빨리 깨달아야 할텐데.
너무들 달려가기만 한다. 나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