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못드는 분들을 위해..

claudel201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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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도록 잠 못드는 분들을 위해 영화 한편 추천하자면,

95년 개봉했던 레이챌 그리피스 주연의 <뮤리엘의 웨딩>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페미들의 피해의식과 외모지상주의적인 발상이 한데 어우러진 드라마라 칭하며 평가 절하 하였으나 나는 페미에 집착하는 인간도 아니거니와 무엇이든 단정적인 평가를 내켜하지 않는다.

때는 94년 겨울, 오랜 글쓰기에 지쳐있던 나는 곧잘 동네 비디오 가게를 들락이곤 했다.

딱히 가리는 장르도 찾는 영화도 없던 나는 그저 내키는 대로 케이스를 뽑아 대강의 리뷰만으로 영화를 선택했고 그렇게 고른 영화의 절반은 쓰레기였으며 그나마도 돌아서면 내용은 커녕 주인공 얼굴도 생각나지 않을만큼 무위의 걸작들이었다.

그날도 습관처럼 검은색 비디오 테입을 옆구리에 끼고 가게에 들어섰다.

주인과 나는 서로 귀찮아 인사조차 않는 관계인지라 연체료를 계산할 때 말고는 크게 말을 섞지도 않는데 그날은 내게 무심한 얼굴로 아바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내가 아는 그 Abba를 말하는 것인가?

뭐, 그렇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 사내에게서 돌아온 말, 그럼 이거나 갖다 보든지.

그것은 마치 내가 아바를 좋아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한 권태 섞인 재스츄어였다.

후에 생각해보니 주인은 내가 귀찮았던게다.

손님도 없는 오후의 단잠을 내가 깨우기라도 한건지, 들어온 손님을 얼른 내보내고 싶은 맘에 500원 하는 대여료도 받지 않고 날 밀어낸게다.

동네 그지같은 구멍가게에서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하다시피 하며 얻어온 그 영화 뮤리얼의 웨딩을 나는 연체료까지 감수하고 꼬박 일주일을 끼고 살았다.

처음엔 그저, 볼 거 없어 마지못해 틀어놓은 티브이 재방 드라마 마냥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지라 브이티얼은 돌아가는데 나는 고개를 괴고 책을 읽었다.

이토록 불성실한 관람객의 귀로 익숙한 노래가 들어왔을 때에서야 화면을 보니 그 못생긴 여자 뮤리엘이 댄싱퀸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거기서부터 쭉, 그리고 며칠을 내리 이 영화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앞서 요약한 리뷰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아바의 익숙한 곡들이 스토리의 흐름을 감질나게 만드는지라 그 자체로 일단은 가벼이 즐길만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생각하기를 자처하는 관객이라면 그 유쾌한 즐거움 속에 깔려있는 은밀한 메시지, 즉 뮤리얼을 통해 비춰지는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 맥없이 무너지는 가족의 해체 등의 어두운 소스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으리라.

가볍게 보자면 즐겁고 생각하며 보자고 들면 가엾다 못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 뮤리얼의 웨딩.

나로 말하자면 천성적으로 우둔, 미련과는 친해질래야 친할 수 없는 성격인지라 차마 그녀 뮤리엘을 자신에 투영하는 것은 분명한 무리일 것이나 그녀는 분명 내 주변의 누군가와 닮아 있다.

그랬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원인 모를 답답함이, 속상함이, 철없음에 대한 안쓰럼이 내 가슴을 지긋이 눌러대는 통에 코믹에 가까운 캐릭터를 보면서도 갈수록 웃음이 거둬진 듯 하다.

각설하고, 이 영화를 나는 참 아낀다.

우리집에 놀러오는 절친들은 의무적이다시피 뮤리엘을 만나야 했고 그때마다 나는 옆에 앉아 다섯이고 열이고 전혀 지루할 것 없이 동참을 했다.

좋은 영화를 같이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즐거웠던 시간..

한때 가까이 지내던 지인 중 이 영화를 보다말고 잠이 들었던 친구..그 몹쓸 하품쟁이를 제외하면 즐겁게 엔딩곡까지 함께 한 내 프리코드들께 새삼스런 우정의 화살을 쏘아 보내고픈 맘이다.

올해로 열다섯해 정도 지났으려나..

그 사이 숱하게 많은 영화를 봤으나 그중 으뜸은 누가 뭐래도 이 영화 뮤리얼의 웨딩을 꼽을 수 있겠다. 그냥, 이유없이 꽂혀버린 영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이 영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찾아보시길 권하는 바임.

 

참고로, 이 영화의 개략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모 계간지에 소개되었던 내용을 일부 인용함)

 

이 영화는 못생긴 여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날씬한 몸매와 예쁜 외모만을 강요하는 작금의 외모 지상주의와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뚱뚱한 여주인공을 내세운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보다 이 영화에서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아쉽도록 간단하게 다루어진 이들 가정의 붕괴다.

말하자면 급기야 어머니가 자살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허물어져버린 가부장적 가정과 그 구성원들의 비극..

학교를 마쳤으나 무능하여 취업을 할 수도 없고 할 의욕도 없는 아이들과 이 아이들에게 밥과 빨래를 해대며 하녀 취급 밖에 못 받는 어머니, 남편으로부터 전적으로 무시당하는 아내. 사회에 대해서나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희망도 능력도 없이 가전제품처럼 죽치고 앉아 꼼짝도 않은 채 TV나 보는 아이들의 문제를 너무 소홀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결국 어머니는 이런 절망적인 가정을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찌 할 수 없게 되어 자살로 항변을 하게하면서도 이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그나마 형제들 중에 뮤리얼만은 주위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스스로 집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젊은이들이 사회로의 진입이 힘 드는 상황에서 외모가 남보다 빼어나지 못하다는 것이 약점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뮤리얼처럼 사회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부딪쳐보지도 않고 힘들다고 미리 포기하고 방구석에 들어앉았거나 허망한 쾌락으로 빠져들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이 영화는 코미디 같은 웃음을 통해 우리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으로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이 영화는 극 중 아바의 팬인 뮤리얼을 통해 영화 전편에 흐르는 아바의 70년대 히트곡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영화 내내 흥을 돋우며 경쾌하게 영화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이 자아와 주체성을 갖춰가며 성숙해져가는 모습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너무 즐겁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