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를 성추행한 범인을 잡았습니다.

. 201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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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주일이나 된 일이네요.

지난주 화요일 9월 28일이네요.

전 신촌에 있는 Y대학교 학생입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여자친구 집이 부산이라 추석 연휴 내내 부산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었어요.

밤 10시에 서울역에 도착한대요.

여자친구 집이 홍대 쪽이라 넉넉잡아 한시간쯤 걸리겠지 싶어서

학교에서 10시 좀 넘어서 슬슬 홍대쪽으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탔대요. 전화가 왔네요.

삼각지에서 갈아타고 6호선을 타서 상수역으로 오겠대요.

상수역으로 가서 기다리겠다고 오랜만에 여자친구를 본다고

즐겁게 가고 있었어요.

전화 받은지 10분이나 됐나...

전화가 왔어요.

누가 자기 엉덩이를 만졌대요.

꽉 움켜 쥐고 지나갔다네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그 사람 어딨는지

옆에 서있대요 -_-;

제 여자친구 용감합니다.

지하철을 탔대요. 어디 탔냐니까 그 사람이랑 3m도 안떨어져있대요.

몇살 쯤 되 보이냐, 혹시 술 취했냐.

40대 중반정도 되보이고 술 먹고 자고 있대요.

너무나도 눈에 띄는 연두색 잠바를 입고 있더래요.

그럼 내가 상수역에서 기다릴테니 그 사람이 안내리고 있으면

광흥창(상수 바로 전 역)에서 전화를 해라. 내가 바로 타겠다.

혹시나 그 전에 내리면 똥 밟았다 생각하고 그냥 집에 가자.

(저는 상수역으로 가는 버스 안이었어요~)

상수에서 탔어요.

그 아저씨 뻔뻔하게 자고 계시더라구요 귀에 이어폰 꽂고.

깨웠습니다.

"저기요 아저씨. 일어나보세요."

정중하게 말 했죠. 목소리는 꽤 컸을 거에요.

자기 여자친구 성추행한 범인인데 작게 말할 수는 없더라구요.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아저씨 일어나라구요. 아저씨가 내 여자친구 성추행했다면서요.

지금 당장 무릎꿇고 사과하시죠."

무릎까지 꿇으라고 하는 게 과했으려나요. 전 당장이라도 후려갈기고 싶은데

꾹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 절대 없대요.

같이 경찰서를 가자고 했어요. 싫대요.

그럼 신고하겠다고 했어요.

같이 가겠대요. 술이 많이 취해서 반말하고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아저씨 저 아저씨 본 이후로 한번도 반말 안했거든요? 반말하지 마세요."

집에 멀다고 아무 죄 없으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소리지르네요.

아무 죄 없으면 정식으로 사과 드리고 택시비 드리겠다고 했어요.

이 긴 대화가 상수에서 합정역까지 불과 한 정거장 사이에 일어났어요.ㅎ

합정역에서 바로 내렸고, 여자친구는 지하철 지구대(?) 암튼 경찰분을 모시러 갔고

전 이 아저씨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 아저씨는 끝까지 부인하길래, 결국 근처 파출소에 신고를 해서 같이 경찰차를 타고

갔어요.

진술서 쓰고, 날씨도 추운데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 아저씨가 끝까지 사과를 못하겠대요 자기는 그런일 없다는 군요.

여자친구도 힘들어하고 있어서 그냥 갈까도 생각했지만,

(부산에서 4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올라온 상태라...)

화가 삭혀지지를 않았어요.

술이 하도 많이 취해서 정식으로 사과받기도 힘들겠다 싶어서

30일날 정신차리고 정식으로 사과를 받기로 했어요.

이런 사건이 하도 많이 일어나서 경찰분들도 금방 처리해 주시네요.

대부분 남자들이 잘못했겠죠.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모르는 남자를 성추행범으로 몰겠어요.

그러고 파출소를 나왔습니다.

12시가 다 되어가서 여자친구를 집에 바래다 주고 전 집에 가려고 했어요.

(제 집은 도곡동이라 워낙 멀어서 12시 전에 지하철을 타야했어요)

경찰아저씨가 상수역까지 데려다준대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파출소 안이 시끄러워지네요. 경찰아저씨가 다시 들어가셨어요.

갑자기 여자친구를 부르네요.

담배 한대 피고 파출소로 들어갔더니 여자친구가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었어요.

그 아저씨가 증거를 대라며 사과 못하겠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또 열심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큰 경찰서로 가서 진술서 다시 쓰고 고소에 대한 절차를 밟아야 한대요.

사과 받을 생각도 사라졌고, 몸도 춥고 화가 나니까

당장이라도 처벌을 받게 하고 싶더라구요.

아 알고보니 그 가해자 직업이 군인이더군요. 직업군인. 해군...

계급이 중령이래요....아놔 이럼 ㅅㅂㄻ...

더더구나 용서하기 싫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중, 가해자 친구분들이 오셨어요.

육군 중령, 공군 중령 두분이 오셨네요.

난감했어요. 너무 머리 숙여 사과하시길래.

화가나고 피해자 입장이긴 하지만, 40 넘으신 아저씨들한테

고개 숙인 사과를 받으니까 저도 사람이라 맘이 흔들리대요.

대신 정말 사과드린다고...

고소장은 벌써 접수가 되서 지금 이러셔야 소용없다고,

어차피 큰 경찰서(경찰청이라고 하나요? 모르겠네요)로 가야한다고.

그랬더니 제발 고소취하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랑 여자친구는 고소장 접수시킬 때부터 합의 따윈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렇게 부탁하시니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합의금 따윈 요구하지 않았어요)

점점 가해자가 술이 깨가네요.

처음에는,

"제가 의도했든 안했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한 적 없는데, 만약에 제가 정말 했다면 죄송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과를 하더라구요.

했다는 건 인정하냐고 물었더니, "아 그건 아니죠. 전 그런 적 없습니다." 이러고....

친구들이 와서도 계속 저런 식이었어요.

그랬더니 친구분들이 막 뭐라고 하더니 결국에는 사과를 하셨어요.

그럼 뭐합니까... 벌써 고소장 접수 됐는데...

 

마포경찰서로 가서 여자친구가 형사계 경찰분에게 진술을 하더라구요.

여자친구 참 똑똑하게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전광판에 어느 역 지나고 있는지 나오잖아요?

삼각지 전전역에서 대기중이었다고, 지하철 타기 5분 전이었다고

세세하게 잘 기억해서 그래도 30분 정도만에 금방 끝났어요.

그러고 저랑 여자친구는 집에 갔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그 가해자 친구분이 너무 정중히 사과를 하시면서

제 번호를 알아가셨어요.

여자친구 번호를 주기에는 좀 불안하더라구요.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해코지하면 어떻할까 싶어서요.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친구분께요.

고소취하를 했지만, 부대에는 고소장을 접수한 순간 바로 넘어가서

심의가 열린대요. 그래서 고소취하서를 한장 더 보내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오시겠대요. 밥이라도 한끼 같이 하고

가해자가 정말 사과드리고 싶어한다고.

전 됐다고 했습니다. 여자친구가 가해자분 별로 보고 싶어 하지도 않고,

너무 귀찮기도 했구요...

그랬더니 얘길 하시네요. 자필 고소취하서가 한장 더 필요하다고.

솔직히 써드리기 싫습니다. 물론 제가 쓰는 건 아닙니다.

여자친구가 쓰는 거죠. 제 메일 주소 알려드리며 양식 보내시면 써서

우편으로 보내드리겠다 했습니다.

 

다들 조금은 짐작하셨나요.

저랑 여자친구가 화가 나는 점은,

도대체 그 가해자는 지금 뭐하냐는 거에요.

친구분이 가해잔가요. 친구분이 나서서 사과시키고

저희한테 거듭 죄송합니다 이러시면서 마음 풀려고 노력하신 분인데,

그 분이 계속 저희한테 연락을 하세요.

가해자의 사과? 듣지도 못했습니다. 술 조금씩 깨면서 죄송하다고는 하셨죠.

그 이후로 친구분에게만 연락이 계속 옵니다.

가해자 입장에서 민망하기도 하시겠죠.

그렇다고 그 민망함을 우리가 이해해드릴 필욘 없잖아요?

목요일날 심의를 한다고 그 전에 보내달라고 하십니다.

여자친구는 그 친구분이 뭔데 대신 다 이렇게 하냐고

확 보내주지 말까도 생각한다고 하네요.

저도 너무 귀찮습니다.

사과 한마디만 제대로 하셨으면, 이럴 일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구요.

고소취하 해줬으면 됐지, 뭔 서류가 또 필요하다가 이러는지...

그 정도는 알아서 감수하라고 하고 싶어요.

저도 군대 다녀왔고, 직업 군인이신 분들 많이 봐서 압니다.

자기 자력표에 형사 고소된 내용 있으면, 진급도 안되고,

성추행같은 이런 범죄 내용이면 거의 끝이라고 봐야죠.

술 김에 한 실수(?)라고 생각해서, 실수 한번에 인생 쫑나게 하기 싫어서

결국 고소취하하고 대충 절차를 다 밟아줬는데,

자꾸 귀찮아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슬슬 짜증도 나고 목요일만 지나면 끝이긴 한데,

너무너무너무너무 귀찮네요 일주일 내내.

 

여자분들, 밤 늦게 지하철 타실 때 조심하세요.

지하철 안 뿐만 아니라 승강장도 그닥 안전하지 못해요.

엉덩이를 꽉 쥐고 지나간 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죠,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어떻게 압니까.

전 운이 좋게도 범인이 술 먹고 지하철에 자고 있어서 잡았지

도망가면 잡을 길도 없어요.

그리고 경찰서에 같이 가게 되서도,

고소장 접수 시키면 그 뒤로 엄청 귀찮으세요.

여러 가지를 감안하셔서 고소하세요.

그리고 절대! 가해자나 그 일행들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지 마세요.

귀찮은 일이 자꾸 생기네요.

 

범인 잡고, 기타 절차나 경찰아저씨와의 면담(?) 등등을 알아서 해결해 줘서

여자친구는 감동했다고도 하고 고맙다고도 하고 지금도 그러네요.

여자친구가 많이 충격받거나 하지 않아서 그래도 다행입니다.

용감한 내 여친, 울지도 않고 잘 버틴게 기특합니다.

저 반팔에 츄리닝 바지 차림에 파출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제 생각나서 옷도 하나 사왔다고 꺼내주더라구요.

선물을 파출소에서 받았습니다 -_-;;ㅋ

귀찮은 것만 지나면 나중엔 이것도 추억이 될.... 되겠죠?

 

너무너무 길게 써 버렸더니 끝맺음을 못하겠네요.

암튼! 여자분들 길 조심하시구요!

남자분들도 혹시나 자기는 기억이 없는데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일단 사과하세요. 기분 더럽고, 억울하시겠지만, 그래도 사과하세요.

대부분 이런 사건은 가해자가 사과하고 끝난다고 하네요.

증거대라고 억울하다고 하지 마시고, 술김에 실수한 것 같습니다.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하세요 그냥.

전 여자친구 입장을 대변하느라 무조건 여자편을 들지만,

가해자 입장에서는 네 죽을맛이겠죠. 뭐 착한일하는 것도 아니고

저만 안그러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과하는 게 최고인듯. 물론 진심으로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