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록키 호러 쇼(The Rocky Horror Show)]를 보고....

골드문트201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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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 - 2010년 9월 2일

캐스트 - 후완 잭슨, 루카스 글로버, 알렉스 렉스거버, 루시 몬더, 홍석천(나레이터)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영화광’들이 탄생하게 된 시기는 아마도 1990년대 초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그 전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상영 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들을 프랑스 문화원에서 보는 경우도 있었고, 혹은 불법 복제한 VHS비디오를 간신히 구해 골방에 모여 자체 상영회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1990년대 이전에도 분명히 영화광들이 존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고,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영화의 유통 경로가 거의 심하게 막혀있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영화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서서히 심의제도가 완화되기 시작했고, 덕분에 그동안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던 영화들이 서서히 상영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한국에도 본격적인 시네마테크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유행했던 영화는 소위 ‘컬트영화’라고 불리는 영화였습니다.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의 [광란의 사랑(Wild At Heart)], [블루 벨벳(Blue Velvet)], [트윈 픽스(Twin Peaks)]같은 영화들은 아예 컬트영화로 분류되었고, 감독 또한 컬트영화 감독이라 불렸던 것 같습니다.


데이빗 린치 감독뿐 아니라, 이 시기에는 라스 폰 트리에, 에밀 쿠스트리차,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들이 컬트영화라 불리며 시네마테크에서 연일 상영되었는데, 컬트영화는 예술영화라는 - 지금은 그렇게 보는 사람이 없지만, 이때는 컬트영화가 예술영화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 이상한 공식 또한 이때 뿌리 내렸던 것입니다.


급기야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성스러운 피(싼타 쌍그레 : Santa Sangre)]는 이 영화가 컬트영화임을 강조하며 홍보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앞서 언급했던, 컬트영화는 예술영화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던 시기라 제법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약간은 괴기스러우면서 잔인하기도 하고, 상식을 벗어난 줄거리와 묘한 분위기로 가득한 영화들을 컬트영화라 불렀었는데, 사실 이런 분류법은 상당히 잘못된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컬트영화는, 사전에서 인용하자면, 컬트(cult)는 추종과 숭배, 종교적인 제례의식, 광신적 사이비 종교집단 등을 뜻하는 단어인데, 여기에서 기원한 컬트영화는 제도권 영화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였으나 소수의 영화광들에 의해 다시 탄생한 영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당히 일반적이지 못한, 개인적인 분류방법이며 각자의 시선과 성향의 차이에 따라 그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시절에 [씨네 21]과 같은 영화잡지에 컬트영화를 소개하며 늘 빼놓지 않았던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컬트영화의 원조라 불리는 [록키 호러 픽쳐 쇼]입니다.



 



1975년,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록키 호러 쇼(The Rocky Horror Show)]를 20세기 폭스사가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로 제목을 살짝 바꿔 영화로 야심차게 제작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2주만에 개봉관에서 상영을 중단, 변두리 심야 상영관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한 관객들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대사와 노래를 따라하고, 배우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스크린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며, 영화 관람을 일종의 종교적 의식처럼 즐기며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로 이런 영화들을 컬트영화라 부르게 된 것이지요.

 


 

 



작품의 줄거리는 참으로 기상천외 합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친 친구의 부케를 받은 자넷과 그녀의 남자친구 브래드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고등학교 때의 은사인 스캇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길을 떠납니다.


갑자기 몰아친 폭우 속에서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나는 바람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 외딴 성.


이 고딕풍의 대저택에 들어간 이후 두 사람은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도움을 요청한 브래드와 자넷의 말은 그냥 무시당하고, 이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파티에 반강제로 어울리게 된 이들은, 점점 이곳의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잠시 후 이곳의 주인인 트랜실바니아 은하계 소속 트랜섹슈얼 행성(Planet Transsexual)에서 온 양성의 과학자 프랭크 N 퍼터 박사를 만나게 됩니다.


 

 



프랭크 박사는 자신의 이상형으로 만든 인조인간 록키를 보여주는데, 양성애자인 프랭크는 이날 밤 브래드와 자넷 모두와 잠자리를 같이하며 이들의 성적 욕망을 분출시켜 버리고, 혼란에 빠진 자넷은 성을 헤매다가, 록키와도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프랭크 박사는 뜻하지 않은 배신을 당하게 되고, 이야기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런데 전혀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은 파국입니다. ^^)


게다가 이렇게 좌충우돌,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개연성 없는 줄거리를 보여주며 유치 찬란의 끝을 보여주더니, 뜬금없이 장중하고 엄숙하고 무게 있는 작품인척, 나레이터는 마지막 대사를 들려줍니다.


“지구위를 기어다니는 인간이라는 벌레들,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의미까지도 잃은채 덧없이 방황하면서.....”


이렇게 끝까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아마도 경건함과 엄숙함, 숭고함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삐딱한 사람들이 딱 좋아할 만한 내용인 것이지요. ^^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일반적인 통상의 뮤지컬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 사실 2010년 현재의 관점으로도 이 영화는 아직까지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 동성애자들과 복장도착자들의 등장과 전혀 개연성 없는 이야기의 진행, 그리고 유치찬란한 대사들과 장면들은 너무나도 B급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지며, 기존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제목에는 ‘호러 쇼’라고 적혀있고, 등장인물들의 복장이나 분위기는 사뭇 음산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들은 어딘지 모르게 유치하기만 하고, 노래는 너무나도 신나고 경쾌해서 시종일관 관객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게다가 기존의 뮤지컬에서 보던 화려한 안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딘지 모르게 뻣뻣해 보이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춤을 추며 노래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춤을 따라 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제목과 내용이 사뭇 다르며, 음산해 보이는 조명과 복장 때문에 분위기는 어두워 보이지만, 노래와 춤은 그 어느 뮤지컬보다도 유쾌하고 도발적이어서 뭔가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인 것입니다.


비록 작품 속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들이 프리섹스를 외치고, 동성애를 도발적으로 묘사하며, 잔인한 살인 장면도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이 시종일관 속살을 보여주기를 서슴지 않아 다소 낯 뜨겁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고리타분한 기성세대와 진부한 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항과 저항심리가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에 - 원작자가 그런 의도로 만들었던, 그렇지 않던 간에 기성세대의 숨 막히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젊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숨통이 트이는 해방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 작품의 내용을 떠나서, 이 작품 자체로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꼰대 출입 불가’ 뮤지컬인 것이지요. ^^



 



뮤지컬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영화에서 프랭크 박사 역을 맡았던 팀 커리(Tim Curry)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이번 공연에서의 프랭크 박사 역이었던 후완 잭슨(Juan Jackson)의 캐릭터가 다소 약해보였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팀 커리의 외모는 근육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게다가 그 엄청난 걸음걸이 -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무릎을 과도하게 뒤로 굽히고 고개까지 뒤로 젖혀주는, 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웃긴 걸음걸이 - 때문에 양성애자라는 설정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는데, 후완 잭슨은 큰 키에 짐승남의 체형을 갖고 있어, 오히려 더욱 근육질이어야 할 록키보다 더욱 남성적으로 보여 프랭크의 캐릭터에는 다소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뛰어난 배우답게 후완 잭슨은 훌륭한 연기력과 엄청난 가창력을 선보이며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저의 작은 불만은 그다지 큰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군요. ^^



미국에서는 이 작품을 보는 것이 성인이 되기 직전의 소년 소녀가 꼭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통과의례를 아직 거치지 않은 사람을 ‘버진’이라 부른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미국과 다르지만, 어쨌든 버진으로 남느냐, 남지 않느냐는 여러분 개인의 선택입니다.


파격적이며 상상을 초월한 음란함과 방탕함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싶은 사람은 버진으로 남지 않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평생 버진으로 남게 되겠지요.... ^^



사족(蛇足).....


일본의 유명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이반코프 캐릭터는, 바로 이 작품 [록키 호러 쇼]에 등장하는 프랭크 박사에서 빌려온 캐릭터라고 합니다.


그럴듯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