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공항버스 안 맛밤남과 칙촉녀

칙촉녀2010.10.08
조회504

 

 

처음으로 판 써보는데 쓰려고 마음 먹은 순간 떨렸어요

음슴체 써볼까?고민도 했지만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요

 

이 사건은 8월 말에 일어난 일이고 친구들한테 말하니까

친구들이 자기들이 판 써준다고 난리쳤는데 벌써 10월이고 판은 제가 쓰고 있어요

 

추천 수는 친구들 5명 예상합니다

 

 

 

 

 

 

8월 말이었어요

 

 

 

여름 방학에 3주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방콕 경유해서 와서 20시간 비행하고 밤 9시쯤 인천 공항에 도착했어요

 

 

 

우리 집은 광주예요

광주행 밤 10시 공항버스를 탔어요

제 좌석은 맨 뒤에서 두 번째, 혼자 앉는 자리였어요

 

 

 

심야버스라서 버스 안 불도 다 꺼지고 사람들은 다 잤어요

20시간 비행 동안 기내식을 4번 먹고 나머지는 다 자서 잠도 안왔어요

 

 

 

잠이 안와서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근데 배는 고팠어요

 

 

 

 

 

 

공항버스가 휴게실에 섰어요

뭐 다른 음식점들은 문 다 닫았고 막 문 닫으려는 편의점에서 칙촉을 샀어요

 

 

 

버스로 돌아와서 녹여먹고 있는데

아, 막 그냥 버스 안이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옆 창문을 여는데 아, 문이 안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아..씨" 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팔이 하나 나오더니 문을 열어주는 거예요

 

 

 

 

 

 

20시간 비행 후라 내 상황 잘 아니까

차마 돌아보지는 못할 것 같았는데

힐끗 보니까 맨 뒷자석은 깜깜해서 아무 것도 안보이는거예요

 

 

 

수줍은 척 하면서 '고맙습니다' 속삭였어요

근데 대꾸를 안했어요

 

 

 

 

 

 

 

그러고나서 버스가 다시 출발하려는데

이 사람이 추웠나봐요

 

 

 

 

"제가 추워서 그러는데 문 좀 닫아도돼요?' 그러길래

"네 죄송합니다"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서로 문 닫으려고 하다가 손이 닿은거예요

 

 

 

 

 

분명 '죄송합니다'를 해야하는데

말하고나서 알았어요. "고맙습니다"를 했어요

 

 

 

 

 

 

 

 

 

그러고나서 다시 버스는 달리고

저는 뒷 좌석 의식 안하려고 노력하는 척하면서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들었어요

 

 

 

 

 

그런데,

 

 

 

 

 

 

뒷 자석에서 불빛 하나가 나오는 거예요

아, 뭐지? 하고 봤는데 핸드폰인 거예요

그리고 여기엔 그렇게 적혀있었어요

 

 

 

 

 

 

 

 

 

'맛밤 먹을래요?ㅋ' 

 

 

 

 

 

 

 

딱 보는데 ㅋ이 하나인거예요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전 ㅋ 하나만 있으면 그냥 기분이 이상해요

아, 그냥 그 말 못할 뭔가...

 

 

 

 

 

근데 그 생각도 잠시,

 

 

 

불빛 하나 없는 버스 안에

다른 것도 아니고 '맛밤 먹을래요?'가 핸드폰 액정에 찍힌채로 불빛을 내고 있으니까

뭔가 귀엽기도 하고 ㅋ따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거예요

사실 맛밤도 안좋아하는데 이름대로 진짜 맛있을 것 같은거예요

 

 

 

 

그래서 뒤를 딱 봤는데?

 

 

 

 

 

 

 

 

아직도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보이는 거예요

 

 

 

제가 뒤를 보니까 맛밤 봉지가 나에게로 왔고

또 수줍은 척하면서 맛밤 하나를 꺼내 물고 봉지를 다시 넘겼어요

 

 

 

 

근데 혹시 그 느낌 알아요?

누가 나한테 먹을 걸 줬는데 그걸 나 먹으라고 준 게 아니라 나한테 버린느낌

 

 

봉지를 넘기려했던 내 손이 봉지가 들린 채로 다시 나에게로 왔어요

 

 

 

 

 

 

속으로 버린 게 아닐거야x3 을 외치고 다시 돌아 앉았는데

아까 내가 먹던 칙촉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칙촉을 꺼내서 시크한척 뒤도 안돌아보고 시험지 넘기듯 넘겼는데,

 

 

 

또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받아 먹는거예요

아, 얜 뭘까? 생각하면서 광주에 거의 도착했어요

 

 

 

 

 

 

 

전 기대를 했고 상상을 했어요

엄마랑 오빠가 마중나오기로했는데 내가 엄마랑 오빠를 만나버리면

아, 다 끝일 것 같은거예요

 

 

 

 

그래서 거의 도착할 즈음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뒷 좌석에 들릴만큼 큰 목소리로,

 

 

 

 

"엄마 나 거의 도착했어"

 

 

 

 

그리고 동시에 마음 속으로도 말했어요

'엄마가 마중나와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만나기 전에 결단력있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그 때,

 

 

 

 

 

 

 

뒷 좌석의 사람이 내 좌석에 팔을 올리고 앞으로 기대더니

 

 

 

"광주 사세요?" 이러는거예요

 

 

 

여전히 어두워서 안보이지만 힐끗 뒤를 보고

또 수줍은척하면서 "네" 했는데

 

 

 

아, 또 그 다음 말을 안하는거예요 아

 

 

 

 

 

 

 

그렇게 광주에 도착했어요

 

 

 

'그래, 버스에서 내려서 터미널 나가서 엄마랑 오빠를 만나기 전에? 그래그래'

이러면서 내렸어요

 

 

 

 

 

 

근데,

 

 

 

 

 

 

 

 

엄마랑 오빠가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그 자리에,

정확히 그자리에 서서 저한테 손을 흔들고 있는거예요

 

 

 

 

 

 

 

 

 

 

 

눈물을 머금고 버스에서 내려서 엄마랑 오빠에게 인사를 하고 제 짐을 찾는데

뒤에서 누가

 

 

 

"짐 찾으셨어요?"

 

 

 

 

 

 

너처럼 결단력없는 사람앞에서 수줍은척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며

고개를 홱 돌렸는데?

 

 

 

 

 

 

 

 

돌렸는데? ....훈남인거예요 아

 

 

얼굴은 약간 슈퍼스타k2 강승윤 비스무리하고

키는 그냥 봐도 180이상에,

깔끔하게 카라티에 면바지에 운동화

 

 

 

 

 

.....아

 

 

 

 

미소를 지으며, "짐 찾으셨어요^^?"

 

 

 

 

이러시길래

번호물어볼 용기도 없는 나한테 화가나서,

훈남의 결단력 따위에 화가나서,

저쪽에서 엄마랑 오빠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인사하고 있어서,

 

 

 

 

진짜 한글자 또박또박 "가.족.이.와.서.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어요

 

 

 

 

 

 

 

엄마랑 오빠와 포옹을 나누고

터미널을 나오면서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제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보다

뒤에서 걷고 있는 훈남의 발자국 소리가 더 크게들렸어요

 

 

 

 

 

 

그렇게 훈남은 택시를 탔고,

난 엄마차를 타자마자 엄마와 오빠에게 말했어요

 

 

 

 

 

"엄마, 힘들게 왜 그 앞까지 나와계셨어요?"

 

 

 

 

 

엄마가 왜?라고 물으시길래

 

 

 

 

오빠가 들고있는 맛밤 봉지를 가리키면서

"그 맛밤, 내 뒷좌석 훈남이 준거야"

 

 

 

 

 

 

라고했더니 엄마랑 오빠가 사과하셨어요

맛밤남 때문에 불효했어요

 

 

 

그리고 그 맛밤은 엄마랑 오빠가 맛있게 먹었어요

 

 

 

 

 

 

 

 

 

남자친구 없는, 내 글에 유일하게 추천해 줄 제 친구들에게 정말 훈훈한 글이예요

맛밤남이 내 글에 추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사실 조금 하긴해요

 

 

안녕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