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천심이라 했고 모든 것은 하늘의 이치를 역행할 수 없는 법입니다. 6.25전쟁으로 강토가 분열되고 이산가족의 비극이 아직도 우리의 앞에 있는 이때 천은산에 입문하여 수행을 하였고 통도사에서 수행을 하던 중, 104세에 열반하신 탄공스님께서 생존시에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의인이 출현하여 나라를 구하고 가신 뒤 600여년 만에 (제21세기 문명이 발달한 이때 나라를 구할 도사한분이 영취산 통도사에서 나온다) 라는 예언의 간판이 통도사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었을 때는 관광객들 중에 보신분이 많이 계시지만 1971년 6월 21일 도를 깨우치고 통도사를 나온 날 새벽에 그 예언의 간판을 철거한 뒤로는 보신분들이 없었기에 이점을 밝히는 바입니다. 통도사를 나온 정각스님인 본인은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서 기도공부 참선 하던 중에 발전 건설을 일으키신 고 박정희대통령께서 서거 하시기 27일전에 미리알고 다가오는 사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한 끝에 드디어 대통령께 편지한통을 능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각하 전상서" 무궁화 삼천리 금수 강산에 우리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거늘 어찌타 인간으로서 그러할수 있단 말입니까? 존엄하옵신 대통력각하께 다가오는 미래 일에 있어서 조언한마디 하기위하여 면담을 요청하오니, 감히 어명을 기다리옵니다. 이만 필을 줄이오니 만수무강 하옵소서. 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기다리던 답변서가 오지 않기에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앞 도로에서 대통령각하 위험 합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다녔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저 사람 돌아버렸다 라고 쑥덕거렸고 탄식하던 나는 만행을 다녔습니다. 대통령 서거 후 멀마의 시간이 흐른뒤, 5.18 광주항쟁사건을 7일전 예언하였지만 모두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 뒤 세월이 흐른 뒤 1982년 5월 25일 화순경찰서에서 초청하기에 형사들과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읇퍼 주는 경문을 경청하는 자리에서 박준규라는 형사가 붓글씨로 (운명감정의 대가이며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훌륭한 선생님) 이라는 한 장의 문귀를 선물하기에 현재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2007년에 숭례문에서 화재가 난다는 사건을 알았기에 숭례문이 불난다고 지인들에게 예언하니까 모두들 믿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는 육환장 짚고 푸른색 삿갓과 푸른 두루마기와 삿갓 쓰고 푸른신발 신고 대자보 걸고 서울인사동에서 바위처럼 굳은 몸으로 숭례문 걱정을 하며 하염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 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화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어이 없고 기가 막혀서 현수막 공장을 찾아가 숭례문 화재사진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다음 불타는 사진을 지적하여 크게 확대하여 현수막으로 출사해 보니 엄청난 사건들이 촬영되어 있었습니다. 희한하게도 그 내용은, 불타는 십자가와 불타는 두사람의 모습과 좌정하고 있는 부처님과 삼지창, 그리고 푸른옷 두루마기 색깔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선명하게 찍혀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공수래 공수거'이며 일장춘몽인데 자존심과 천근만근같이 무거운 흙탕물 같은 마음을 비우고 누구든지 국가와 조상과 정부와 타인을 존중하면 앞으로는 이와 같이 가슴아픈 사연들이 없을 것이며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만사형통 하리라.
충격실화 이런 역사가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고 모든 것은 하늘의 이치를 역행할 수 없는 법입니다. 6.25전쟁으로 강토가 분열되고 이산가족의 비극이 아직도 우리의 앞에 있는 이때 천은산에 입문하여 수행을 하였고 통도사에서 수행을 하던 중, 104세에 열반하신 탄공스님께서 생존시에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의인이 출현하여 나라를 구하고 가신 뒤 600여년 만에 (제21세기 문명이 발달한 이때 나라를 구할 도사한분이 영취산 통도사에서 나온다) 라는 예언의 간판이 통도사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었을 때는 관광객들 중에 보신분이 많이 계시지만 1971년 6월 21일 도를 깨우치고 통도사를 나온 날 새벽에 그 예언의 간판을 철거한 뒤로는 보신분들이 없었기에 이점을 밝히는 바입니다. 통도사를 나온 정각스님인 본인은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서 기도공부 참선 하던 중에 발전 건설을 일으키신 고 박정희대통령께서 서거 하시기 27일전에 미리알고 다가오는 사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한 끝에 드디어 대통령께 편지한통을 능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각하 전상서" 무궁화 삼천리 금수 강산에 우리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거늘 어찌타 인간으로서 그러할수 있단 말입니까? 존엄하옵신 대통력각하께 다가오는 미래 일에 있어서 조언한마디 하기위하여 면담을 요청하오니, 감히 어명을 기다리옵니다. 이만 필을 줄이오니 만수무강 하옵소서. 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기다리던 답변서가 오지 않기에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앞 도로에서 대통령각하 위험 합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다녔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저 사람 돌아버렸다 라고 쑥덕거렸고 탄식하던 나는 만행을 다녔습니다. 대통령 서거 후 멀마의 시간이 흐른뒤, 5.18 광주항쟁사건을 7일전 예언하였지만 모두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 뒤 세월이 흐른 뒤 1982년 5월 25일 화순경찰서에서 초청하기에 형사들과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읇퍼 주는 경문을 경청하는 자리에서 박준규라는 형사가 붓글씨로 (운명감정의 대가이며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훌륭한 선생님) 이라는 한 장의 문귀를 선물하기에 현재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2007년에 숭례문에서 화재가 난다는 사건을 알았기에 숭례문이 불난다고 지인들에게 예언하니까 모두들 믿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는 육환장 짚고 푸른색 삿갓과 푸른 두루마기와 삿갓 쓰고 푸른신발 신고 대자보 걸고 서울인사동에서 바위처럼 굳은 몸으로 숭례문 걱정을 하며 하염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 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화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어이 없고 기가 막혀서 현수막 공장을 찾아가 숭례문 화재사진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다음 불타는 사진을 지적하여 크게 확대하여 현수막으로 출사해 보니 엄청난 사건들이 촬영되어 있었습니다. 희한하게도 그 내용은, 불타는 십자가와 불타는 두사람의 모습과 좌정하고 있는 부처님과 삼지창, 그리고 푸른옷 두루마기 색깔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선명하게 찍혀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공수래 공수거'이며 일장춘몽인데 자존심과 천근만근같이 무거운 흙탕물 같은 마음을 비우고 누구든지 국가와 조상과 정부와 타인을 존중하면 앞으로는 이와 같이 가슴아픈 사연들이 없을 것이며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만사형통 하리라.
- 푸른옷 입은 (인사동 정도령) 육환장 잡은 청림대사 김영열 글 -
[출처] 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숭례문 화재사건 예언한 청림대사|작성자 kimyy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