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스 투 줄리엣]이탈리아에 다시 한 번 가고 싶어라

Chiron201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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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영화여만 했던 이유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배경으로 찍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영화의 내용 보다는 이탈리아의 경치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다. 그곳에 다녀온 지도 벌써 햇수로 4년이 다 되어 가는데 돌아보면 아쉬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2007년 당시 이탈리아 북부 주요도시를 혼자 여행했는데, 로마서부터 시작해서 베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북부를 돌 때 피렌체와 베니스에 머무는 일정이 너무 짧아 아쉬웠고, 무엇보다 베니스에서는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휴관이라 가 보지 못한 게 제일 아쉽고, 피렌체는 주어진 일정 내에서 보고 싶은 건 많고 하다 보니 끼니도 대충 때우고 무리하게 돌았던 기억이 있다. 중간에 피사도 들렀어야 했는데 피렌체에 더 머물고 싶어서 그냥 지나친 것도 후회된다. 피사가 도시는 작지만 아름답다고 하고,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도 봤으면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영화제를 통해 이탈리아 출신 감독 타비아니 형제의 작품을 보았을 때 이곳은 이탈리아의 어디겠거니 하며 짐작하고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만 갔다.

 

피렌체와 베니스는 다시 한 번 꼭 들러볼 생각이다. 잘 보존된 도시들은 아름답다. <레터스 투 줄리엣>에 나오는 베로나, 그 도시의 지붕들의 색은 세월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도시 풍광을 조망하여 보여주며 이곳이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임을 드러내는 것은 전형적인 기법인데, 그렇다고 이런 방식이 진부한 것은 아니다. 불특정한 도시에서 이 영화를 찍었다면 관객들이 제목에서 받는 기대 등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어떤 사랑이든 이루어질 것만도 같다.

 

잠시 영화사나 장르의 역사를 살펴보면 헐리우드 고전기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사건은 주로 뉴욕에서 벌어지며 그 결실은 장소를 옮겨 시골 같은 곳에서 거두고 있다. <레터스 투 줄리엣>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뉴욕은 그저 보여주기만 할 뿐 사건을 맺는 곳은 이탈리아 베로나이다. 크게 보아 연적의 등장도 로맨틱 코미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데,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 빅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과연 연적일까 싶기는 하다. 

 

2. 줄거리 

작가 지망생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약혼자 빅터와 함께 미리 베로나로 신혼 여행을 떠난다. 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허니문이라니. 빅터가 레스토랑 개업을 앞두고 너무 바쁘다 보니 결혼하기 전에 미리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택한 도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베로나. 허니문 아닌 허니문이지만, 빅터는 이탈리아에서 레스토랑 개점과 관련된 일들에 빠져 있고 각자 일을 보는 게 가장 좋은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남은 소피는 우연히 50년 된 편지를 발견하고 그 사연에 답장을 보내게 되는데.....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베로나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셰익스피어 작품 속 줄리엣에게 애정 상담(?)을 하면 시의 공무원들이 일일이 사연을 접수하여 답장을 써주고 이를 우편으로 보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라면 그러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소피도 이에 엮여서 50년 된 사연에 답장을 보내는데, 실제로 편지의 주인공이 영국으로부터 이탈리아로 건너 온다.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답장을 받고 손자 찰리와 함께 이탈리아 베로나에 와서 50년 전의 사랑 로렌조를 찾으려 하고 소피는 이에 협조하기로 하면서 영화는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3. 캐릭터와 배우, 그 상관관계

<레터스 투 줄리엣>의 클레어는 65세. 실제 클레어 역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1937년생이다. 영화 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로렌조를 15세 때 만났다는 건데 그 때는 어려서 사랑이 두려웠다고 하고 지금은 그 사랑을 찾으려 그리고 추억을 되새기려 이곳에 왔다. 수많은 로렌조를 찾아다니지만, 연령이나 눈빛이 클레어가 기억하는 그 로렌조와는 다르고 황혼의 낭만을 선서하겠다는 로렌조도 있어서 일견 코믹하기도 하다. 모든 것을 접고 돌아가려는 순간 그 노력에 감복했는지 우연히 그 로렌조를 만난 클레어. 그런데, 로렌조를 맡은 배우가......

바로 누구냐 하면 현재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남편 프랑코 네로라는 것. 실제로 둘은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지만 부부로 맺어진 지는 몇 년 안 되었다. 위 사진은 젊었을 적 프랑코와 바네사의 모습이다.

 

 

[위 사진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프랑코 네로의 현재 모습. 남편이 네 살 연하랍니다. 60년대부터 인연이 있어 둘 사이에 자녀도 있습니다만 결혼은 몇 년 전에 했군요. 이들도 50년을 기다려 사랑을 이룬 것일까요?]

 

 

4.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영화 자체 보다는 이탈리아 풍광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내용이 시시해서 풍광만 봤다는 건 절대 아니다.  50년 된 편지, 로맨스 하니까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절로 떠오르고 그 책이 매개가 되어 크리스마스의 사랑을 돌고 돌아 이루어 줬던 영화 <세렌디피티>도 생각나고 해서 이래저래 관련 영화를 주억거려 보는 재미도 있었다.  <레터스 투 줄리엣>이 마르케스의 소설과는 상관 없겠지만, 50년 동안 기다린 사랑 하니까 딱 이 소설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원작자도 혹시나 이 소설에 영감을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떨쳐기 어렵다.  

 

참, 주제곡도 영화와 그 배경이 되는 도시와 잘 어울린다. 제목이 <러브 스토리>라니.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 이 곡이 <레터스 투 줄리엣>의 주제가로 쓰였는데, 가사에 '로미오와 줄리엣' 이 나온다. 참, 영화를 보니 캐릭터 중 한 명이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농을 치던데 '로미오'라는 이름도 알고 보면 로마 사람이라는 뜻 아니던가.

 

5. 배우와 영화, 그리고 그 상관관계

최근에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한 <클레어>를 보았다. 약간 애매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 <맘마 미아>하고는 영 딴 판인데, 이 역할도 잘 어울렸다. <맘마 미아>하니까 생각 났는데, 여기서 건진 남친 도미닉 쿠퍼와 헤어졌단다. 그러고 보니 <클레어>에는 리암 니슨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리암 니슨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사위이기도 하다. 사위라고 하지만, 부인이 얼마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니.....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얼마 전 스키 사고를 유명을 달리한 나타샤 리처드슨의 어머니다.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 손자 찰리 때문에 상처 받은 소피를 위로하는 클레어. 아마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그런 연기를 하면서 딸을 잃은 자신의 슬픔도 함께 달래고 있었던 건 아닐까.

 

 6. 그 배우, 기억에 남아라.

 

 

 

뮤지컬 고전 <남태평양>으로 잘 알려진 조슈아 로건 감독의 <카멜롯>. 

<레터스 투 줄리엣>의 클레어 역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프랑코 네로의 인연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6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블로우 업(확대)>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카멜롯>을 찍기 전 그녀는 이 작품을 찍었다. <블로우 업>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꽤 흥미로운 감독인데, 우리 시대 거장이라고 칭송될 만한 인물이다. 일반 대중이 느끼기에는 아닐 수도 있다. 대부분 그의 영화는 난해한데다가 영화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사람이어서 그의 영화를 전부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만은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사진사가 사진을 인화하고 보니 사진에 어떤 사건이 담겨 있었고 사진을 통해 그 사건을 추적한다는 게 줄거리인데 그렇다고 무슨 흥미진진한 서스펜스물과는 거리가 멀다. 포스터에 쓰인 장면은 사진사가 모델을 촬영하는 장면인데, 바로 그 모델로 나온 배우가 바네사다. 이게 1967년에 제작되어 1968년에 개봉했다고 하니까 당시 바네사의 나이는 30. 한창 그 매력을 발산할 연령대에 찍은 영화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나온 작품은 몇 편 못 보았는데 근래에 본 것으로 <이브닝>에서 죽음을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는 역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 사진이 <블로우 업>에서 잘 알려진 장면 중 하나인데, 밑에 누운 모델이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다.]

 

 

우리는 스타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배우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슬프다. 배우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연륜을 발해 가다가 어느 순간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조용히 사라진다는 말이다. 

나이와 연륜을 증명하는 세월의 흔적인 주름들만으로 우리가 오롯이 그 배우의 관록을 읽어낼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영화가 튀어나가라려고 할 때 그 중심을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잡아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 배우의 이미지는 언제까지나 <블로우 업>의 그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