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박물관 '아고라'를 다녀와서

. 201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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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가을바람과 화창한 햇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10월 10일 일요일 오후, 소풍을 가는듯한 설레는 마음으로 헤이리 마을을 찾았다. 정치박물관 '아고라'  방문 시간은 3시 반부터 였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헤이리 마을도 한번 둘러보고자  한시간여 정도 일찍 출발하였다. 거침없이 강변을 따라 자유로를 달려가는 버스 뒷자석에 몸을 기댄채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한가로운 풍경을 보며, 요 몇달간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충분히 지쳐있던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낀다. 도착까지는 40여분이 걸렸다. 버스를 내리자 코끝을 찌르는 공기는 서울의 그것과는 무언가 다른, 상쾌함과 끈적짐의 조화랄까.

남아있는 한 시간 여 동안 보물 찾기를 하는 학생인마냥 작은 눈을 힘껏 뜬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꽤 많은 나들이객의 웃음소리와 헤이리 마을의 풍광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아고라 박물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참 신기하게 생긴 강아지 두마리의 귀여운 재롱을 목격하고, 재빨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시간은 강아지들의 바쁜 몸놀림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아차, 하며 아고라로 종종 걸음을 옮겼다. 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고, 교수님의 사모님께서 밝은 미소로 맞이하여 주셨다. 곧 이어 시작된 교수님의 열정적 강의. 사실 그 강의가 2시간 가까이 이어질 것이라곤 그땐 미처알지 못했다.

 

 1층은 세계 정치관이다. 중앙에는  많은 종류의 우표들이 전시되어 있고, 벽면을 빙 둘러서는 선반, 그 위로는 많은 포스터들이 걸려있다. 한 쪽 벽면부터 교수님의 차분한 설명히 이어졌다. 불란서의 선거 포스터, 중국 문화혁명 당시 모택동의 선거 포스터, 사회주의에 대한  풍자 포스터,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의 선거 포스터와 그의 부인 에바 페론의 모습, 등 다양한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각 포스터 마다 교수님의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2000년도 미 대선때 큰 논란을 야기했던 플로리다 주의 컴퓨터 카드 투표기는 참으로 인상깊었다. 당시 나는 얼마나 분개했던가. 그 때의 순진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미소짓는다. 동시에 이런게 정말 진정한 공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거와의 생생한 만남. 현실이 결여된 추상에서 배움을 얻어보겠다고 아둥마둥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으로 까지 이어진다.

선반에는 여러 나라의 정치 관련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대통령을 모델로한 마트로시카 인형은 깜찍하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의 고대 정치사상가들의 두상, 프랑스의 드골 볼펜, 영국 다이애나비 슬리퍼 등도 있었으며, 특히 눈길을 끈건 코가 긴 닉슨미니어처와 성기부위에 코르크 마개를 꽂고 활짝 웃는 클린턴의 미니어처였다. 아 이 기발한 상상력이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해학적 미니어처를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한 쪽 선반에느 각 국의 투표 용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라들마다 투표 용지의 형식과 투표 방법 등이 각양각색이다. 다들 우리와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독일 히틀러 당선시 실제 쓰였던 투표 용지는 찬성하는 경우 이름 옆의 빈 칸에 X표를 쳤다고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후보자 명부의 경우 문맹자를 배려하여 후보자들의 사진을 넣어 컬러 인쇄를 하였는데, 대한민국의 초기 선거들과 비교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너무도 많은 정치사와 자료들이 녹아있었고, 이를 찬찬히 감상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할 것 같다.

 

 2층은 한국정치관이다. 방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있었는데, 첫번째 방에서는 여러 희귀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유당의 선거 포스터라든지 제헌의회와 관련된 자료는 매우 고가였는데, 이를 직접 수집하신 교수님의 열의에 힘껏 박수쳐드리고 싶다. 6,70년대 달력이 귀했다는 것은 참 신선한 사실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얼굴이 박힌 달력을 배포함으로써 자신을 홍보하는 전략도 사용했다고 하니 참 격세지감이랄까. 투표가 끝난 후 투표함을 리어카에 담고 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하핫 미소를 준다. 박정희가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기  전 참모총장에게 보낸 친필 서신의 복사본은 교수님이 무척 아끼시는 자료인듯 했다. 원본을 제외한 복사본마저 국회와 이곳 아고라 단 두 곳에만 있다고 하니 참 귀한 자료인 듯.

 

 두 번째 방의 중앙에는 우표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벽면은 1층과 유사하게 여러 자료들이 들어있는 선반이 있으며, 그 선반위로는 6,70년대부터 최근까지 선거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과거의 선거 포스터를 현재 시각에서 보니 참 재미났는데, '위대한 창업의 성취 위하여 국부 리승만 박사를 대통령으로 다시모시자' 라는 구호 참 굉장하지 않은가.  90년대 선거 포스터에서는 꽤나 낯익은 이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김민석'씨는 지금 무엇을 하나? 라는 쌩뚱맞은 생각. 이회창씨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피말리는 승부. 어릴적 기억들이 슬금슬금 떠오른다.  허경영씨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봐도 재미있다. 과거 선거 유세사진은 묘한 감정을 일으켰는데, 수십만 군중을 앞에두고 대찬 연설을 하는 저들의 피는 정말 끓어오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벌써 두 시간째 열강을 하고 계신 교수님의 체력도 정말 대단하신듯.

 

마지막 3층은 각종 우표들이 전시되어있는 우표 전시관이다. 정치와 관련한 수많은 우표들이 가득 들어차있으며, 정치 관련 우표외에도 다양한 우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릴적 우표수집에 열을 올렸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그 때 그 우표 수집책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교수님 사모님의 압화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미술에 문외한이 나에게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참 멋진 작품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교수님의 강의가 끝나고 10분여 정도 더 둘러보다 박물관을 나섰다. 왔던 길과 다른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괜시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길을 잃어 헤매는 바람에, 서울가는 버스를 탔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진 후였다. 버스에 몸을 싣자 스르르 잠이 몰려온다. 녹음해 둔 교수님의 강의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좌석에 몸을 기댄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옛말 그대로, 추상속에 녹아있던 나의 단편적 지식들이 조금은 생생해 지는 느낌, 역시 보고 느껴야 한다. 오랜만에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겠다.

 

박물관 안내

 

관람요금 : 일반 3000원 / 대학생 2000원 / 미취학아동은 무료

개관시간 : 오전 10:00 ~ 오후 6:00

전화 : 032 - 937 - 5051

홈페이지 : www.agora500.co.kr

위치 : 헤이리예술마을 9번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