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에쿠니 가오리)

Julia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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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에쿠니 가오리

옮긴이 신유희

펴낸곳 소담출판사

펴낸날 2008년 3월 14일 초판 1쇄

      2008년 7월 10일 초판 2쇄


푸르키네현상(어두워질 무렵에 파장이 긴 붉은색은 어둡게, 파장이 짧은 보라색은 비교적 밝고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이 일어나면, 난 어김없이 묘한 기분에 젖는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중간, 뭔가 아주 먼 옛날 일이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느낌.  p. 19 선잠 中에서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령한 인간과 불량한 인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인간,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은 미치도록 선량을 동경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불량에 이끌리고, 그리하여 결국, 선량과 불량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평생 선량을 동경하고 불량에 이끌리면서 살아간다.   p. 56 선잠 中에서


주변이 어느새 파르스름하다. 눅진눅진한 파랑, 애매한 파랑, 묘한 그리움이 서린 파랑, 나는 더 세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p. 86 선잠 中에서


해질녘이라는 애매한 시간이 나는 좋다. 주부가 장보러 가는 시간,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노는 시간, 장밋빛과 회색빛과 연푸른 빛이 한데 섞인 듯한 공기.  p. 91 선잠 中에서


인생은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고,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보고 싶을 때 봐야 하고, 그때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장소,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 마실 수 없는 술,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게 있다.  p. 241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中에서


인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일지라도 인간은 생각대로 살아야 한다.

   p. 251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中에서


영원은커녕 시간이라는 개념도 인위적인 가공의 개념일 거라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순간’뿐이라고  p. 241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中에서


인생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듯 모든 것이 나의 바깥쪽에서 흘렀다. 저항할 수 없었고, 내가 저항하고 싶은지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p. 259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中에서

몬스터 같은 세 여인은 각자 택시를 나눠 타고, 저마다의 장소로 돌아간다. 산더미 같은 식료품을 품에 안고서. 세상이라는 이 기묘한 장소에서 새로운 한 해를 다시 살아내기 위해.

  p. 274 기묘한 장소 中에서


이런 저런 사정으로 오랜만에 책을 집어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였다. 고단한 마음과 몸을 위해서 무심히 책장을 넘기기 위해 펴든 책이 그녀의 책이었다. 평법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 속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무덤덤하게 읽어내려 가지만, 여운만큼은 늘 길게 늘어진다.

머리 속에 컬러감으로 채워주는 책 제목이 좋았고, 에쿠니 가오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강렬한 맨드라미의 붉은빛과 버드나무의 수줍은 듯한 초록이 의외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대표작인 ‘반짝반짝 빛나는’의 10년 후 이야기라고 하여 꼭 가지고 싶었던 책이었고, 생각과 달리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러브미 텐더 -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하여 밤마다 엘비스 프레슬 리가 되어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남편을 사랑이란 이름 말고는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선잠 - 유부남과 함께 살고 있는 히나코가 사랑하지만 이별을 위하여 자신을 추스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간다. 여름이 지나가듯 사랑도 지나간다.

포물선 - 고이치로, 간다, 미치코 세 대학 친구는 일년에 한 두 번 만나 사는 얘기를 나눈다. 추억을 나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던 듯이 헤어진다. 잊혀진 듯 늘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친구란 존재를 생각해 본다.

재난의 전말 - 교코는 고양이 벼룩으로 인해 얻게 된 습진으로 생활이 엉망이 된다. 일도 할 수가 없고, 옷으로 몸을 꽁꽁 싸고 앉아서 남자 친구와도 헤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교코는 고양이를 버릴 수가 없고, 마치 원래 그랬듯이 벼룩의 상처를 몸에 지닌 채, 다른 관계들을 포기한다. 마치 미련한 습관과 관계들을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사는 나를 보는 거 같다.

녹신녹신 - 너무 사랑하는 남자가 있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녹신녹신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져 바람을 피는 미요의 이야기.

밤과 아내와 세계 - 종종 작은 이유를 들어 헤어지자고 말하는 아내를 달래기 위하여 물건을 사들이는 남편. 아내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시미즈 부부 - 장례식에 가는 것이 취미이고 일상인 시미즈 부부와 함께 장례식에 다니게 된 여자의 기묘한 이야기. 그들은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경건함과 편안함을 느끼며 인생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듯.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 드뎌 ‘반짝반짝 빛나는’의 주인공 쇼코, 무츠키, 곤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로와 치나미의 주변 인물로 살짝 등장하지만, 반가움에 다시 반짝반짝을 읽고 싶어진다. 곤에게 다른 애인이 생겼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의 전개가 충격적이긴 했다. 영원할 줄 알았다. 그들은..

기묘한 장소 - 세 모녀가 한 해를 보내는 유익한 방법을 알려주는 유익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