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비판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것도,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을 비판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자본주의에 충실한 것이며 자본주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삼성의 위대한 기업 일대기, 성장신화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나 역시 삼성의 반도체신화, 현대 정주영의 조선소 일화에 전율했던 '자랑스런 한국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막대한 경제력, 더러운 돈을 이용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떡주무르듯 농락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 누군가. 독점을 악용해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근간를 뒤흔들며 공정한 자본주의적 경쟁을 가로막고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모든것을 합법, 탈법, 범법으로 짓밟아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 누군가. 그 더러운 돈과 권력으로 이북의 주체군주제 같이 탈법, 범법을 일삼으며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누군가.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질서, 법질서를 무참히 짓밟고 시민사회와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까지 돈물을 먹여 선한 척 가면을 뒤집어스고 있는 것이 누군가. 이러한 더러운 행위로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만 부각시켜 극단적인 반감을 초래함으로써 진정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 누군가. 난 이래서 삼성을 비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난 자본주의에 여러가지 문제가 많을지언정, 자본주의 자체가 극악무도한 것으로 타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여러 모순에 둘러싸여 있을지언정, 그 모순 중 상당수는 우리가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태생적 한계를 갖고 태어난 체제임에 분명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이고 생태적이며 지속가능한 체제가 들어서야 하지만, 이는 우리의 자본주의를 보완하고 개혁해가며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 지금 자본주의를 폭력적으로 뒤엎는다고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자본주의를 어지럽히고 개혁을 가로막으며 그 본질과 긍정성을 훼손하는 삼성을 용납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반역자인 삼성을 두고볼 수 없다. 난 자본주의를 긍정하니까.
내가 삼성을 미워하는 이유
삼성을 비판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것도,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을 비판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자본주의에 충실한 것이며 자본주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삼성의 위대한 기업 일대기, 성장신화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나 역시 삼성의 반도체신화, 현대 정주영의 조선소 일화에 전율했던 '자랑스런 한국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막대한 경제력, 더러운 돈을 이용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떡주무르듯 농락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 누군가.
독점을 악용해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근간를 뒤흔들며 공정한 자본주의적 경쟁을 가로막고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모든것을 합법, 탈법, 범법으로 짓밟아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 누군가.
그 더러운 돈과 권력으로 이북의 주체군주제 같이 탈법, 범법을 일삼으며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누군가.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질서, 법질서를 무참히 짓밟고 시민사회와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까지 돈물을 먹여 선한 척 가면을 뒤집어스고 있는 것이 누군가.
이러한 더러운 행위로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만 부각시켜 극단적인 반감을 초래함으로써 진정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 누군가.
난 이래서 삼성을 비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난 자본주의에 여러가지 문제가 많을지언정, 자본주의 자체가 극악무도한 것으로 타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여러 모순에 둘러싸여 있을지언정, 그 모순 중 상당수는 우리가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태생적 한계를 갖고 태어난 체제임에 분명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이고 생태적이며 지속가능한 체제가 들어서야 하지만, 이는 우리의 자본주의를 보완하고 개혁해가며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 지금 자본주의를 폭력적으로 뒤엎는다고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자본주의를 어지럽히고 개혁을 가로막으며 그 본질과 긍정성을 훼손하는 삼성을 용납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반역자인 삼성을 두고볼 수 없다.
난 자본주의를 긍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