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삼촌보안2010.11.10
조회296

톡을 눈팅만 하다가 처음 써보는데요.

우선 저는 31세 남자고요. 본문의 내용은 예상하다시피 연애이야기입니다. 뭐 나이가 31살이나 돼서 여자를 모른답시고 글 올리는게 한심하게 보일수도 있습니다만, 짧은 인생 살아가면서 느낀 경험이라면... 여자는 나이 먹을수록 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대 초반에 비해, 좋아하는 이성에게 마음을 표현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조심스러워지는걸 보면 그런가봐요. 아무튼, 뭐 그러하니.... 너무 '둔한 놈'으로 보지 마시고 읽어주세요.

 

이 여자는 저보다 1살 어리고요. 3년전 제가 대학졸업 후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만났죠. 워낙 근본이 없고 힘든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끼리 의지하게 됐고, 그 친구와 저는 친구가 됐습니다.

 

이 친구 성격이 워낙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고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순진한 구석도 있습니다. 특히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성격이다 보니 말하는 거 좋아하는 저는 이 친구와 같이 일한 시간동안 오만 잡 이야기를 다 했죠. 그 친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었죠.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많은 걸 알아갔고, 나름 절친이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둘 때도 한날 한시에 드라마틱하게 그만둬서 그 후로도 쭉 연락을 하며 지냈고요. 둘이 만나서 밥먹고 영화보고 하거나 아니면 당시 같이 그만 둔 동료들과 만나서 놀고 했었습니다.

 

특히 둘이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남녀관계'에 대한 고민상담이었는데요. 저도 중간에 나름 괜찮은 처자도 있었고, 그 친구도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그 사람과 어떻게 해야 할 지 서로에게 상담을 하곤 했었죠. 앞서 이야기했지만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다 보니 많이 의지하게 되고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이성으로 보인건 작년 4월쯤이었는데요. 어느날 둘이서 '무계획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당일치기로 여행을 갔었죠. 아무 계획없이 공주로 여행을 떠나서 계룡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늦다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가 끊겼죠(당일치기였어요... 딴 마음 품을 여지가 없습니다). 이 친구가 마침 생각난 김에 천안에 사는 친구집에 간다고 했습니다. 마침 천안가는 버스는 남아있길래 우리는 천안으로 향했죠.

 

꽤 늦은 시각, 천안에 도착해서 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천안역으로 향했고, 이 친구는 저와 같은 시내버스를 타고 친구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 친구가 핸드폰이 밧데리가 없어서 제 폰으로 친구랑 연락을 했었는데요. 천안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이 친구의 천안친구에게 전화가 와서는 "얘가 도착할 시간인데 아직 안 왔다"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깐 버스가 도착해서 이 친구가 목적지에 내릴 시간인데 아직이라고 합디다. 순간 덜컥 걱정이 되더군요. 그런데 뭐 전화는 안되니 연락할 길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구나 "걱정할 수도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인생에 작은 철학이 "내 여자도 아닌 사람에게 친절하게 구는 건 피곤한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남자가 모든 여자에게 친절한 건 귀찮고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아무튼 뭐 천안에서 이 친구는 차가 밀린 덕에 늦게 갔다고 나중에 전화가 왔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친구가 순진하고 어리숙하다 보니 걱정스러운 점이 많은데요. 어느날 이 친구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신문기자'인데요. 저도 3년차 신문기자였던 입장에서는 그리 권하고 싶은 직장은 아니었죠. 영악하고 능청스러운 사람들이 하는 직업인 기자, 선후배 간의 질서가 엄격해서 늦은 나이에 갔다가 자칫 어린 선배에게 무시당하고 개고생 할 수도 있는 기자를 하는 것은, 솔직히 말리고 싶었죠.

 

그래도 뭐 제가 남자친구도 아니고, 말릴 명분이 없기에 그냥 "기자선배 입장에서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최근에 이 친구는 다니던 언론사를 옮겼는데요. 비록 지역일간지지만 나름 전통이 있는 회사였습니다. 어찌보면 다행입니다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더군요. 근본이 있는 회사면 그만큼 위계질서가 엄격하거든요. 혹 이 친구가 직장에서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또 걱정됐죠.

 

어느 순간부터 이 친구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자꾸 곁에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결국 이 친구를 여자로써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죠. 예전부터 이 친구에게 이성문제로 상담(혹은 수다)을 많이 하다보니 갑자기 "사귀자"는 말을 꺼냈을때 다른 의도로 오해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차이고 차이다 지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대쉬하는 꼴"로 보일수도 있겠더군요. 그래서 차근차근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죠. 해서 틈틈히 평소처럼 데이트도 하고 공연도 보고 하면서 나름 '자상한 사내'의 모습을 보였습니다...뭐 그랬다고 혼자 생각하는거죠.

 

그런데 어느날 덜컥 조급해지더군요. 이 친구가 엄격한 회사로 들어가고 나니 얼굴 볼 시간이 줄어들고 연락할 기회도 적어지니깐 또 늘 그랬던 것처럼 걱정이 앞서더군요. 늘 전화통화를 하면 이 친구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나름 조언해주고 했습니다.

 

사실 뭐 고민이라는게 별 큰 일은 아닙니다. 제목 그대로 속을 모르겠다는건데요. 함께 있으면 평소처럼 절친하고 수다스러운데 가끔은 연락도 안되고, 좀 싸늘한 인상도 느껴진다는건데요. 아....이거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데... 아무튼 뭐 가끔 태도가 돌변한다는겁니다. 워낙 순둥이라 믿었던 친구니 조금만 영악하게 굴어도 화들짝 놀라는데요. 최근에야 가끔 놀라게 된다는겁니다. 몇 차례 사귀자는 말을 꺼낼 기회를 놓친만큼 빠른 시일 내에 말을 꺼낼 계획인데요. 실로 오랜만에 이성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인만큼 신중하게 하고 싶어서 신경이 쓰이네요. 게다가 이 친구랑은... 결혼도 하고 싶거든요.

 

 

아마 여기까지 글을 읽으셨다면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새끼, 정말 고민 많고 소심하네"라고요.

 

예... 저는 고민도 많고, 소심하고, 집착도 강합니다. 20살때는 이런 집착강한 성격때문에 차이기도 차이고, 친구도 떨어져 나가고 했었죠. 그래서 이 부분은 저 나름대로도 고칠려고 애를 썼고, ...뭐 거의 컴플렉스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뭐 거의 대부분 고쳤고요. 요즘은 드디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아이덴티티를 찾게 됐습니다. 그런데 단 한 순간만큼은 안 고쳐질 때가 있는데요. 바로 '전화통화' 할 때죠.

 

그러니깐 제가 전화를 했는데 상대가 받지 않으면 정말 20살때처럼 신경을 쓴다는겁니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는 이게 '여자친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거죠. 거의 모든 사람이 제 전화를 받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계속 전화를 한다거나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다는겁니다. 돌이켜보면 '전화'때문에 떨어져 나간 친구도 꽤 많은 것 같네요.

 

글 위에서 언급한 여자애와 어제밤 상황이 딱 그랬습니다. 저녁에 이 친구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퇴근시간 맞춰서 여유있게 전화를 걸었죠. 그런데 안 받더군요. 가끔 회사선배들과 회식을 하면 전화를 못받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니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밤 11시쯤 다시 전화를 해보고는 "회식이 길어지나부다"라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에 또 뭐가 걱정이 되던지 이 친구 다니는 회사의 또 다른 후배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름 제 정보원이죠. 그런데 이 후배놈은 집에서 쉬고 있다더군요.

 

이때부터 좀 의아했습니다. 차장급 이상 기자가 출입처 사람들과 저녁 먹을 일 있으면 꼭 후배기자들을 데려가거든요. 기자사회의 생리로 비춰봤을때 후배놈은 쉬고 있는데 이 친구가 연락이 안되는 건 좀 이상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의심을 하다보니 "아... 내가 또 집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인연 끊긴 친구들이 꽤 있다보니 "혹시 얘도?"하는 불안함이 느껴지더군요.

 

아니라는 거 잘 알아요. 3년을 알고 지낸 친구고 불과 며칠전만해도 가평에 놀러 갈 만큼 잘 지냈고, 2일전에도 통화해서 평소처럼 수다떨었는데... 당연히 아니겠죠. 그런 거 잘 아는데도... 자꾸 예전에 인연 끊긴 친구들과 그로 인한 상처가 떠올라서... 불안하고, 힘드네요.

 

당최 이 심리적인 소심함과 불안은 뭐 어디가서 하소연할데도 없고... 힘드네요.

 

 

쓰다보니 글이 장난 아니게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드리고요. 뭐 이 친구에 대한 불안함과 제 자신에 대한 한심함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서 주절거렸습니다.

 

아마 해가 뜨고 다시 전화하면 분명 어디 경찰서 돌면서 취재하고 있을거에요. 그러면 또 평소처럼 수다를 떨겠죠.

 

이 나이먹고 조금 주책맞지만 '빼빼로데이'를 통해 이 친구에게 마음을 표현해볼까 합니다. 벌써 인터넷쇼핑으로 빼빼로모양 쿠션을 보내긴 했는데, ...역시 애기들이 챙기는 날이라 그런지 선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요. 만나서 뭐 근사한거라도 챙겨줘야죠.

 

아무튼 뭐 다시 한 번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쯤 잠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