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때 아무리 수업시간 내내 졸아도, 제목이 길면서 특이하고 어쩌다 읽거나 문제집에서 접하면 동화같은 문체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를지라도 기억하기는 쉬울테니까. 그렇지만 이 소설의 의외성(?)이 있다. 평소 우리가 봐왔을 때에는 난장이 부부와 삼남매의 자식들이 사는 집은 강제로 팔려 철거되어 막내딸 영희가 다시 되찾지만 ,이미 난장이는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의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셜록 홈즈』에서는 '주홍색 연구'를 읽었다고 해서 셜록홈즈의 활약과 스토리를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삼국지』에서는 영화 '적벽대전1,2'를 관람하거나 판소리 '적벽가'를 듣고 안다고 해서 삼국지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역시 우리가 흔히 봐왔던 고등학교 문제집이나 명단편집 모음에서 보게 되는 같은 이름의 부분적인 한 개의 단편만 읽게되면, 그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이 한 권짜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뫼비우스의 띠', '칼날'부터 시작하여 네 번째 순서이자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져있는 단원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을 거쳐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로 끝나는 열두 개의 단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먹고 살기 어려웠던 1970년대의 시대배경에서 난장이와 그 주변 사람들의 빈곤한 생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저항, 반대로 축적한 부를 통하여 여유있게 자들의 냉담한 시선을 함께 다뤄져있다. 동화같은 짧은 간결한 문체, 적은 등장인물과 좁은 배경을 보면 읽는 이에게 친숙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 속에 있는 생략된 흐름과 불규칙한 순서의 진행은 점점 읽어볼수록 난해한 소설이라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배경과 어디서나 볼 수 있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사실적인 의미 속에는 반드시 추상이고 사상적임을 내포하는 이중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 난장이의 소망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사람들한테 업신여겨지고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떠나, 달에 있는 천문대에서 렌즈를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에 천문대가 세워질 수 없고 무엇보다 인간이 달에 가서 지낼 수가 없다. 이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현재 처절한 상황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작은 쇠공을 쏘아올리고 굴뚝에서 몸을 던지는 최후를 맞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작은 공이 정말 쏘아올려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것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것이 아니라 난장이에게서 떠난 꿈과 희망의 작은 공. 난장이는 그렇게 작은 공을 쏘아올렸다쳐도, 난장이의 가족들에게 달라지는 것은 그다지 없었다. 원래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이었고 그냥 계속 여전할 뿐이다. 난장이의 첫째아들 영수는 커가면서 각성하며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나, 법률과 규정은 있는 자들의 보호수단에 불과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투쟁을 하게 된다. 결국에는 법의 덫에 걸리며 영수 역시 비극적인 결과를 암시하게 되지만, 그 저항과 투쟁 행위 자체로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큰 의미를 주고 생각의 변화를 주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라 할 수 있는 '뫼비우스의 띠'와 마지막 단원인 '에필로그'를 보면, 맨 처음과 맨 끝은 어느 한 수학교사의 마지막 수업을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전체적인 내용의 난장이 이야기하고는 흐름상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수학교사는 교실의 학생들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있는 독자들에게도 난장이의 이야기를 읽기 전에 미리 알고가야할 점을 짚어주고 전부 다 읽고나서는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정말 난장이하고는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소설의 길잡이라 여겨두면 좋을 것이다. 동화같은 분위기에 빠지지만 말고 읽고나서 뭔가 배우고 얻어갈 수 있는 의미로. 분명 1970년대의 배경은 지금과 많이 다르고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지금은 난장이와 그 가족들처럼 엄청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어찌보면 그냥 그 시대의 추억 혹은 과거사를 다룬 독특한 내용의 소설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가난이 지금에 와서 많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불행으로부터 완전 벗어난 것을 아닐 것이다. 소설에서 나오는 그 당시의 부자들도 고뇌하며 마음에 행복이 차지 못한 것은 난장이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분명 난장이는 가난해서 세상에서의 선택권이 많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유없는 가난을 왜 맞이해야하고 해결은 할 수 없는 삶에 대해서 슬퍼했을 것이다. 허나. 점점 우리들 속에서 짙어져가는 성과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진정시킬 틈도 변하는 세상의 급격한 변화들. (과연 그 변화들을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어쩌면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난장이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우리 자기자신이 난장이일 수도 있다. 이것은 물질적인 가난에만 해당되는 것은 절대 아닐테니까. 건강에도 육체적인 건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때 아무리 수업시간 내내 졸아도, 제목이 길면서 특이하고 어쩌다 읽거나 문제집에서 접하면 동화같은 문체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를지라도 기억하기는 쉬울테니까.
그렇지만 이 소설의 의외성(?)이 있다.
평소 우리가 봐왔을 때에는
난장이 부부와 삼남매의 자식들이 사는 집은 강제로 팔려 철거되어 막내딸 영희가 다시 되찾지만 ,이미 난장이는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의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셜록 홈즈』에서는 '주홍색 연구'를 읽었다고 해서 셜록홈즈의 활약과 스토리를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삼국지』에서는 영화 '적벽대전1,2'를 관람하거나 판소리 '적벽가'를 듣고 안다고 해서 삼국지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역시 우리가 흔히 봐왔던 고등학교 문제집이나 명단편집 모음에서 보게 되는 같은 이름의 부분적인 한 개의 단편만 읽게되면, 그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이 한 권짜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뫼비우스의 띠', '칼날'부터 시작하여 네 번째 순서이자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져있는 단원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을 거쳐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로 끝나는 열두 개의 단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먹고 살기 어려웠던 1970년대의 시대배경에서 난장이와 그 주변 사람들의 빈곤한 생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저항, 반대로 축적한 부를 통하여 여유있게 자들의 냉담한 시선을 함께 다뤄져있다.
동화같은 짧은 간결한 문체, 적은 등장인물과 좁은 배경을 보면 읽는 이에게 친숙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 속에 있는 생략된 흐름과 불규칙한 순서의 진행은 점점 읽어볼수록 난해한 소설이라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배경과 어디서나 볼 수 있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사실적인 의미 속에는 반드시 추상이고 사상적임을 내포하는 이중적인 구성을 띠고 있다.
난장이의 소망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사람들한테 업신여겨지고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떠나, 달에 있는 천문대에서 렌즈를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에 천문대가 세워질 수 없고 무엇보다 인간이 달에 가서 지낼 수가 없다.
이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현재 처절한 상황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작은 쇠공을 쏘아올리고 굴뚝에서 몸을 던지는 최후를 맞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작은 공이 정말 쏘아올려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것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것이 아니라 난장이에게서 떠난 꿈과 희망의 작은 공.
난장이는 그렇게 작은 공을 쏘아올렸다쳐도, 난장이의 가족들에게 달라지는 것은 그다지 없었다.
원래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이었고 그냥 계속 여전할 뿐이다.
난장이의 첫째아들 영수는 커가면서 각성하며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나,
법률과 규정은 있는 자들의 보호수단에 불과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투쟁을 하게 된다.
결국에는 법의 덫에 걸리며 영수 역시 비극적인 결과를 암시하게 되지만,
그 저항과 투쟁 행위 자체로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큰 의미를 주고 생각의 변화를 주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라 할 수 있는 '뫼비우스의 띠'와 마지막 단원인 '에필로그'를 보면,
맨 처음과 맨 끝은 어느 한 수학교사의 마지막 수업을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전체적인 내용의 난장이 이야기하고는 흐름상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수학교사는 교실의 학생들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있는 독자들에게도 난장이의 이야기를 읽기 전에 미리 알고가야할 점을 짚어주고
전부 다 읽고나서는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정말 난장이하고는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소설의 길잡이라 여겨두면 좋을 것이다.
동화같은 분위기에 빠지지만 말고 읽고나서 뭔가 배우고 얻어갈 수 있는 의미로.
분명 1970년대의 배경은 지금과 많이 다르고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지금은 난장이와 그 가족들처럼 엄청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어찌보면 그냥 그 시대의 추억 혹은 과거사를 다룬 독특한 내용의 소설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가난이 지금에 와서 많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불행으로부터 완전 벗어난 것을 아닐 것이다.
소설에서 나오는 그 당시의 부자들도 고뇌하며 마음에 행복이 차지 못한 것은 난장이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분명 난장이는 가난해서 세상에서의 선택권이 많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유없는 가난을 왜 맞이해야하고 해결은 할 수 없는 삶에 대해서 슬퍼했을 것이다.
허나.
점점 우리들 속에서 짙어져가는 성과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진정시킬 틈도 변하는 세상의 급격한 변화들.
(과연 그 변화들을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어쩌면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난장이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우리 자기자신이 난장이일 수도 있다.
이것은 물질적인 가난에만 해당되는 것은 절대 아닐테니까. 건강에도 육체적인 건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