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추는 실하다

정태조200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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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추는 실하다

고추농사는 힘이 무척이나 많이 든다. 오죽이나 힘들면 자식 농사보다 어렵단 속설이 있을꺼나만 뿌린대로 거둔다는 옛말이 그른데가 없으렸다. 이마에 구슬 땀 흘려 가며 땅 파 뒤집어 고르고 비닐 작업과 온갖 수고로움 끝에 꽃이 피면 열매가 맺는다 는 그 위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 자라기 시작했던 내 고추..

 

얼마나 무성하고 실헌지 따 먹기가 아까울 지경이었다만 먹자고 심었으니 그넘 두 어 개만 따냄 밥 한공기는 너끈터라.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고추같이 많은 농약을 쳐대는 작물도 없다. 진딧물 낀다고 치고 잎 마른다고 치고 어떠하다고 치고 저떠하다고 친다. 심지어는 뻐얼겋게 익은 고추를 따선 함지에 씻어선 말리는 웃지 못할 비극들도 보았다. 농약물이 우러 나와 희멀겋턴가...

 

허나 땅심만 강하면 탄저병도 들지 않고 진딧물도 끼지 않더라. 그 어느해인가 경험했던 바..

그 고생끝에 실하게 달려준 풋 고추 하나 따먹으려고 고추밭에 들어섰다가 말마따나 우글 우글 득시글 득시글 대던 진딧물에 기절 초풍을 하고 말았었다. 에쿠! 이젠 도저히 약이라도 한번 쳐야 고추를 먹든지 말든지 하겠다 며 돌아섰다가 일상에 쫓기고 정나미가 떨어져 고추 밭에 발길을 끊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찌 되었나 궁금하여 나가보았던 나의 고추밭에서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린재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게 진딧물의 천적인 모양이었다.

 

그놈들이 하루 진종일 오르락 내리락 해대며 그 흉물스러운 진딧물을 냠냠 해대주던 덕에 고추는 날로 푸르고 무성해지고 있었다. 그덕에 고추밭 이랑은 그놈의 억새풀이 기승을 부려대고 있었다. 이놈들은 말 그대로 얼마나 억센지 풀 메주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놓치면 몇 배의 힘이 들어가도 뽑아 내기가 쉽지 않다. 고추밭 이랑 풀 메는 일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한 여름 뙤약 볕은 이마를 벗겨낼듯 해 엄두가 나질 않고 이른 새벽이나 작열하던 태양이 기를 다하고 뉘엿 뉘엿해질때라야만 밭고랑을 타고 앉아 풀과 메데기를 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제인듯 꽃이 맺혔던 자리에 옹알이 하는 갓난애기 눈꼽 만한 고추가 달려 나오고 가지는 튼실한게 신비스럽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 한알의 고추 씨앗에서 이리도 많은 열매를 맺어 준다니 .. 아침 이슬에 훌러덩 바지 가랭이를 온통 적셔 대며 고추밭을 돌아보는 재미는 이미 재미 그 이상이다. 흙에서 생명이 자람에도 그 당연한 이치가 실감이 가질 않으며 무덤덤 해대기만 했던건 생명의 신비를 자각하지 못했었음이라. 메마른 흙 ..후..하고 불면 흙먼지 이는 흙에서 생명이 나보란 듯이 자란다. 회백색 잿빛 하늘 모든것이 죽어 있는 듯 하던 땅에서 그리도 싱그런 생명이 솟아오를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풋고추를 따먹는 기쁨을 아시는가 .참기름을 발라놓은양 반드레한 풋 고추를 따선 삽겹살에 상추에 된장을 얹어 쌈 싸먹던 기쁨 그 풋풋한 희열을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고추***

 

약이 오를 대로 올라 뻣뻣해진 내 고추

약 오르다 못해 벌게버린 내 고추를 따며

풀이 죽어버린 내 고추를 생각한다.

 

뻘겋게 태양빛에 잘익은 태양초로 잘 버무려 삭힌 뻘건 고추장에

그 놈을 푹 찍어 내 빈 육신에 쑤셔넣는다.

이내 내 입안이 얼얼해지고 내 오감이 달아오른다.

 

입맛 없는 여름철엔 그저 찬밥 물에 말아

매콤한 고추가 식욕을 돋워 주는데

식욕 잃은 내 고추는 무얼로 식욕을 돋울꺼나..

 

에라이! 순 고추만도 못한

고추야 고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