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야기

푸른바다200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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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이야기


텃밭에 상추와 열무, 얼갈이배추와 고추를 심었지만 단출한 두 식구에다 아침에 출근을 하고 밤늦게 귀가를 하다보니 보채어 먹을 사람도 없고 이웃들도 전문농사를 짓는 집들인지라 나누어 줄 곳도 없다.  열무와 얼갈이배추는 제멋대로 웃자라 너무 억세어 식용은 포기한지 오래지만  꽃대들이 무수히 올라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밭이 되었다. 배추속대 꽃은 꼭 유채꽃밭을 보는 것과 같다.


 

매운 고추도 한 이십 여주 심었는데 아랫집 밭의 고추를 보면 우리 집 고추는 부끄러워 말도 못할 만큼 빈약하고 부실하다. 그래도 하얀 별처럼 아름답고 앙증맞은 흰 꽃을 피우더니 고추들이 가지마다 제법 주렁주렁 매달렸다. 상추도 역시 마찬가지로 남의 집 상추와 견주지를 못한다. 윗집 아주머니가 비료를 뿌리라고 하지만 비료를 뿌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자며 무리지어 왔을 때 무 농약에 무 비료로 재배한 고추와 상추를 따다 풍로에 숯불 피우고 땅기운만 마시고 자란 푸성귀에 푸지게 쌈 싸서 매운 풋고추 된장에 찍어 먹는 맛이야 전문 농사꾼들이 키운 채소보다 한맛을 더해준다. 그것은 관념의 맛이다.


 

장마가 일찍 든지라 정원에 잡초들이 끝없이 번식하고 과수나무아래에는  갑자기 물것이 많아졌다. 지난해에 사다 둔 연막 소독기로 해충을 구제(驅除)할까 하다가 열무와 배추꽃에 날아드는 나비들을 보고 혹시라도 다칠세라 포기했다. 햇살이 없는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어도 하얀 속살 내보인 작은 나비 같은 열무 꽃에 흰 나비들이 수도 없이 날아와서 군무를 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춤판이다. 꽃과 나비가 화답하고 합창하는 소리가 내 귀에 소복소복 담기는 즐거움을 나는 꽃이 질 때 까지 즐길 것이다.

 

 

무성한 세월처럼 공중에서 팔랑거리는 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사이를 지나며 흥얼거리는 나비들의 나풀거림, 가벼운 바람에도 탄성을 지르는 꽃잎의 기지개들, 그기에 더하여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이 모두가 우리 집 마당 여름의 활짝 열려 있는 작은 자연의 정경이다.


 

이상하게도 호랑나비들은 붉은 봉숭아꽃과 채송화, 그리고 몇 년 전 답사 차 방문한 경북 봉화군에 소재한 거북바위 위의 정자가 장관인 권충재 선생의 종가집 며느님에게 얻어온 이름모를 꽃의 군락에 꼬여든다. 주변에 흔하게 보이는 꽃인데도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꽃 이름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식물도감에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냥 봉화 꽃이라 부른다. 물론 이 꽃도 붉다. 흰 꽃에는 흰나비, 노란 배추꽃에는 노랑나비만 날아든다. 참 신기하다.


 

나비는 가녀린 날개와 몸을 가지고 있지만 1억 3천만 년 전부터 이 지구상에 존재해왔다고 한다. 우리들 인간보다 더 오랜 이 땅의 주인이다. 나비들의 화려한 군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옛날 흑백 필름을 보는듯한 아릿한 향수에 젖어든다. 어릴 적 뜨거운 햇살 밭에 돌아다니며 호랑나비 뒤를 돌아 살금살금 기어가 나비를 쫓아 다녔던 아련한 추억의 영혼을 깨워주기 때문이다.


 

장마로 인한 습기 때문에 보일러를 잠시잠시 가동하다보니 그 열기가 싫어서 테라스에 나와 풍로에 모깃불을 피운다. 집 주변에서 채취한 쑥을 잘 말려 태우는 쑥 모깃불이다. 테라스의 조명등에 밤이면 하루살이와 나방이 지천으로 날아들다 보니 아내는 밤이면 살충제를 마구잡이로 뿌렸다.

 

 

하루살이의  애벌레는 물속에서 2~3년 걸려 애벌레로 살아가다가 탈피하여 하루살이가 되는데 하루살이의 수명은 한 시간에서 며칠 정도라 한다. 애벌레를 탈피한 하루살이는 식음을 전폐(全廢)하고 수 시간에서 하루 이틀 살아있는 동안 오로지 짝짓기에만 몰두하다가 일생을 마친다 하니 사람에게 좀 귀찮게 한다하여 살충제를 뿌려댄다는 것이 뭔지는 모를 께름칙함이 내 양심을 두드려 마른 쑥으로 모깃불을 피워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내 나름 낸 꾀이다. 쑥 타는 냄새 알싸한 향기가 그럴듯하니 속을 적시고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가 여름밤의 운치도 더한다.


 

매미도 밤이면 불을 따라 날아와 아무데나 붙어서 운다.  매미의 일생도 하루살이 못지않다. 매미들은 7년간 땅속에서 굼벵이로 있다가 매미가 되어 땅 위로 나와 일주일 동안 산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살면서 매미는 죽어라 울어댄다. 수매미는 울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이 매미 우는 소리는 일주일 동안 살며 짝짓기를 하기 위해 수놈을 애 터져라 부르는 구애의 소리이다. 일주일 동안만 살기 때문에 그렇게 기를 쓰면서 우는 모습을 보면 인고의 7년, 그동안의 땅속 생활의 보상 치고는 일주일이라는 삶의 기간이 너무도 허무한 마음에 나 역시 크게 울어주고 싶다.


 

산속의 스님들이 한여름 일정기간동안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가는 것은 무더위로 인한 체력 안배와 득도의 공부를 위한 뜻도 있다하지만 무성히 번식한 풀벌레들이 발아래에 밟혀 본의 아닌 살생을 피하기 위한 숨은 뜻도 있다한다.


 

존재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조금 더 자연으로 다가가 진심으로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아름다운 생명의 사랑과 존엄의 진한 감동이 있다. 동틀 녘 이슬에 맺힌 들풀 한 송이가 품어내는 향기의 솔솔함도 해 저물녘 소담하게 피어나는 달맞이꽃의 영롱함도 나 역시 그들과 하나임은 분명하려니 할 때 모든 것이 범상하고 하찮지 않다. 그들과 하나가 된다는 것의 일체, 그들 역시 나이고 나 역시 그들이 아니런가.

 

 

자궁속의 태아가 보지 못한 엄마를 느끼듯 아직 세상의 알지 못한 아름다운 존재의 가치를 마음의 눈을 뜨고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존재의 본질적인 순수한 가치에 한 발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려니.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 나무와 풀, 날아가는 새들, 밤이면 불꽃에 모여드는 나방까지도 아무리 하찮은 작은 미물까지도 한 가지씩 존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존재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한다.


 

햇살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새싹의 잎이 푸르러 가고 꽃잎의 색깔이 찬란히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존재의 이야기, 이 많은 이야기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별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부드럽게 대지를 덮어가는 달빛도, 푸른 들판을 달려가는 바람도 알고 있을 것이다. 더러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이고 더러는 듣기 싫은 것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들의 존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면 바쁜 일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영혼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영원히 아름다운 존재의 비밀스러운 가치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귀 기울여 그것을 들어야 한다. 그것은 영롱한 무지개와 같은 희망의 이야기들일 것이다.


                                                                                         2003,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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