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 먹으며 탐스럽게 잘 익어가던 자두가 절반이상 낙과하고 튼실한 가지 하나는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말았다. 작년엔 한 그루의 자두나무에서 한 말 가량의 자두를 수확했지만 금년엔 일찍 온 장마로 인해 옳은 자두 맛을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나마 수십 개 정도의 자두가 익어가고 있었으나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두나무를 쳐다보니 누군가 한 알 남김없이 매정하게 따 가버렸다. 개구쟁이들이 서리를 해 갔을까? 아니면 절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입맛이 당겨 따 갔을까?
과일은 햇살이 만들어 준다. 햇살 잘 받은 과일은 단 맛이 물씬 풍긴다. 자두를 강원도에서는 ‘꾀’라고 부른다. 경상도 일부지방에서는 ‘애애추’라고 부른다. 지금이야 사물을 부르는 말이 전국적으로 통일되다 시피 되었지만 지방을 다니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단어를 그 지역 사람들은 생경스럽게 불러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가령 경기 서울 지방에서 불리는 ‘부추’는 전국적으로 통하는 표준말이지만 전라도에서는 ‘졸’ 충청도에서는 ‘솔’ 경상도 남녘 지방에서는 ‘소풀’ 경상도 윗녘 지방에서는 ‘정구지’ 강원도에서는 ‘분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릴 적 강원도 산골에서 살았다. 읍내에서 살고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골짜기마다 살고 있었기에 나의 어린시절 추억은 참으로 아름다움으로 가득 고여 있다. 그 순결무구하고 천진난만한 내 성장기의 추억 속에 자두는 따뜻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과일중의 하나다.
햇살 잘 익어 시리디 시린 골 깊은 계곡의 맑은 물살에 피라미 등에 부수어져 내리는 냇가 산골 양지바른 ‘마교’라는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읍내에서 야무진 시오리길을 더덤어며 나는 마교를 잘도 다녔다. 철길 따라 따박따박 걸어가며 개암나무아래 떨어진 개암이라도 있나 살피기도 하고 수줍게 붉은 보석 알 초롱초롱 매달린 산딸기로 입 적셔가며 햇살 가득고인 바위에서 재롱 피우는 다람쥐를 희롱하기도 하고 고운 싸리꽃 무리에 눈길 주다보면 마교는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햇살에 콧잔등 익어가며 시오리길 마교를 잘도 다닌 까닭은 서리의 천재이자 대가인 내 친구 준관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준관이는 우리 또래 중에서 어느 곳에는 가래나무가 있고 또 어느 집에는 무슨무슨 과수나무가 있고 어느 비탈에서 뽕나무가 자라고 어느 골짜기에 산딸기가 지천이고 민가가 먼 감나무가 어디에 있고, 어느 밭의 옥수수가 익어가고 진달래는 ‘득구’ 어느 비탈진 곳, 수달래는 ‘고사리’와 ‘마차리’, 어느 계곡에 물고기가 많고 가재가 많고 ‘점리’의 달래밭, 씀바귀밭, 고사리밭과 싸리버섯, 화석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심포’ 골짜기…….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부근을 꾀 뚫고 있는 친구이기에 준관이 뒤만 따르면 무엇이든 배를 채울 수 있었고 눈요기를 할 수 있었고 가질 수 있었기에 인기가 요즘 아이들 말로 ‘짱’이었다.
중소기업을 하는 친구 부부와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산이며 계곡에서 나무며 풀이며 물고기며 먹는 것 못 먹는 것 이것저것 맛을 보이기도 하고 설명도 하면서 가재를 코펠 한가득 잡아서 그 자리에서 뽁아 먹었더니 친구 부인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ㅇㅇ아빠 혹시 간첩 아인교?”
친구 부인은 잡스러운 것을 많이 알고 있는 나를 보고 순간적으로 표현한 말이 간첩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 했지만 기실 어릴 때 산으로 들로 시냇가로 준관이 따라 다니며 듣고 보고 만지며 알음알음 배운 것이다.
이야기가 가지를 쳤다. 우리는 일요일이나 방학때면 어김없이 준관이네 집으로 갔다. 그날도 일요일 만나자는 준관이의 말 따라 나는 아침을 먹기 바쁘게 마교 시오리길을 바쁘게 갔다. 준관이는 씨익 웃으며 “우리 오늘 꾀 서리 가자” 하며 뚜벅뚜벅 앞장서 간다. 나는 준관이 뒤만 따르면 오늘 꾀는 배가 터지도록 먹는 일만 남았을 뿐 다른 생각할 필요가 없는 보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마교에서 폭포를 지나 선녀 탕을 지나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면 정겨운 너와집이 서너 채 있다. 그 골짜기에 사는 유일한 사람들의 집들이다.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경사가 심한 밭을 경작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준관이의 말대로 꾀나무에는 꾀가 가지가 부러지도록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너와집을 한 바퀴 돌고난 준관이는 씨익 웃으며 주인인양 능청스럽게 꾀나무 가지를 잡아 다녀 훑듯이 꾀를 타작하였다. 우리는 허리띠를 바짝 조여 매고 러닝셔츠 안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만삭의 임산부처럼 불어난 가슴속의 꾀 때문에 걸음을 땔 수 없을 정도로 출렁거리는 걸음을 걸어가고 있는 데 언제 나타났는지 갑자기 뒤에서 ‘이놈들아’하는 고함소리에 혼비백산을 하고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걸음아 날 살려라 했지만 가슴에 품은 꾀의 출렁거림은 도망가는 데 방해만 될 뿐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잡혔다.
“꾀값을 물어줄래 아니면 일을 할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을 해 주기로 했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변소 푸기다. 변소를 들여다보니 깊기가 여간 아니고 넓이도 기가 질렸다. 구드기는 어찌도 그리 많은지…….
늦은 아침나절부터 시작한 똥 푸기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낙일 할 때야 끝났다. 온몸은 구린내로 범벅이 되고 옷에는 튀어오른 오물로 말이 아니다. 준관이와 나는 옷을 훌훌 벗고 수정 같은 맑은 물에 풍덩 뛰어 들었다. 배는 고파서 등가죽에 붙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주인아주머니가 잘 익은 찰옥수수와 삶은 감자를 한 바가지 내어 왔다. 우리는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다.
“이놈들 똥 푸고 나서 먹는 음식은 천하제일 보약이지”
주인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앞으로 주인 없다 해도 남의 농사 마음대로 서리하면 하늘이 벌 내린다.”
골짜기 내려오는 길 협곡속의 하늘은 다 모아야 한 줌이고 넓어야 한 뼘이었다. 산그늘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가벼웠다. 손에 들린 보따리 속에는 정성스레 담아준 옥수수와 자두, 그리고 감자가 한보따리 옹알이 하며 우리들을 따라 간다. 냇가에 피어난 갖가지 들꽃들이 놀다가라 손짓하고 유리알 같은 물속에 생동하는 물고기들이 반짝 비늘을 자랑하며 물을 부수고 있었다. 도랑치고 가재 잡은 것이 아니라 똥 푸고 자두 얻은 내 어린시절 아련하고 아슴아슴한 추억이 묻어있는 우리 집 자두가 오늘 서리를 당했다. 내가 잡았으면 우리 집 푸세식 변소 진하게 푸게 하였을 것인데 생각하며 멋적은 웃음을 웃었다.
그리움이 있기에 아름다운 시절
그리움이 있기에 아름다운 시절
따스한 햇살 먹으며 탐스럽게 잘 익어가던 자두가 절반이상 낙과하고 튼실한 가지 하나는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말았다. 작년엔 한 그루의 자두나무에서 한 말 가량의 자두를 수확했지만 금년엔 일찍 온 장마로 인해 옳은 자두 맛을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나마 수십 개 정도의 자두가 익어가고 있었으나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두나무를 쳐다보니 누군가 한 알 남김없이 매정하게 따 가버렸다. 개구쟁이들이 서리를 해 갔을까? 아니면 절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입맛이 당겨 따 갔을까?
과일은 햇살이 만들어 준다. 햇살 잘 받은 과일은 단 맛이 물씬 풍긴다. 자두를 강원도에서는 ‘꾀’라고 부른다. 경상도 일부지방에서는 ‘애애추’라고 부른다. 지금이야 사물을 부르는 말이 전국적으로 통일되다 시피 되었지만 지방을 다니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단어를 그 지역 사람들은 생경스럽게 불러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가령 경기 서울 지방에서 불리는 ‘부추’는 전국적으로 통하는 표준말이지만 전라도에서는 ‘졸’ 충청도에서는 ‘솔’ 경상도 남녘 지방에서는 ‘소풀’ 경상도 윗녘 지방에서는 ‘정구지’ 강원도에서는 ‘분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릴 적 강원도 산골에서 살았다. 읍내에서 살고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골짜기마다 살고 있었기에 나의 어린시절 추억은 참으로 아름다움으로 가득 고여 있다. 그 순결무구하고 천진난만한 내 성장기의 추억 속에 자두는 따뜻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과일중의 하나다.
햇살 잘 익어 시리디 시린 골 깊은 계곡의 맑은 물살에 피라미 등에 부수어져 내리는 냇가 산골 양지바른 ‘마교’라는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읍내에서 야무진 시오리길을 더덤어며 나는 마교를 잘도 다녔다. 철길 따라 따박따박 걸어가며 개암나무아래 떨어진 개암이라도 있나 살피기도 하고 수줍게 붉은 보석 알 초롱초롱 매달린 산딸기로 입 적셔가며 햇살 가득고인 바위에서 재롱 피우는 다람쥐를 희롱하기도 하고 고운 싸리꽃 무리에 눈길 주다보면 마교는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햇살에 콧잔등 익어가며 시오리길 마교를 잘도 다닌 까닭은 서리의 천재이자 대가인 내 친구 준관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준관이는 우리 또래 중에서 어느 곳에는 가래나무가 있고 또 어느 집에는 무슨무슨 과수나무가 있고 어느 비탈에서 뽕나무가 자라고 어느 골짜기에 산딸기가 지천이고 민가가 먼 감나무가 어디에 있고, 어느 밭의 옥수수가 익어가고 진달래는 ‘득구’ 어느 비탈진 곳, 수달래는 ‘고사리’와 ‘마차리’, 어느 계곡에 물고기가 많고 가재가 많고 ‘점리’의 달래밭, 씀바귀밭, 고사리밭과 싸리버섯, 화석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심포’ 골짜기…….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부근을 꾀 뚫고 있는 친구이기에 준관이 뒤만 따르면 무엇이든 배를 채울 수 있었고 눈요기를 할 수 있었고 가질 수 있었기에 인기가 요즘 아이들 말로 ‘짱’이었다.
중소기업을 하는 친구 부부와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산이며 계곡에서 나무며 풀이며 물고기며 먹는 것 못 먹는 것 이것저것 맛을 보이기도 하고 설명도 하면서 가재를 코펠 한가득 잡아서 그 자리에서 뽁아 먹었더니 친구 부인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ㅇㅇ아빠 혹시 간첩 아인교?”
친구 부인은 잡스러운 것을 많이 알고 있는 나를 보고 순간적으로 표현한 말이 간첩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 했지만 기실 어릴 때 산으로 들로 시냇가로 준관이 따라 다니며 듣고 보고 만지며 알음알음 배운 것이다.
이야기가 가지를 쳤다. 우리는 일요일이나 방학때면 어김없이 준관이네 집으로 갔다. 그날도 일요일 만나자는 준관이의 말 따라 나는 아침을 먹기 바쁘게 마교 시오리길을 바쁘게 갔다. 준관이는 씨익 웃으며 “우리 오늘 꾀 서리 가자” 하며 뚜벅뚜벅 앞장서 간다. 나는 준관이 뒤만 따르면 오늘 꾀는 배가 터지도록 먹는 일만 남았을 뿐 다른 생각할 필요가 없는 보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마교에서 폭포를 지나 선녀 탕을 지나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면 정겨운 너와집이 서너 채 있다. 그 골짜기에 사는 유일한 사람들의 집들이다.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경사가 심한 밭을 경작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준관이의 말대로 꾀나무에는 꾀가 가지가 부러지도록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너와집을 한 바퀴 돌고난 준관이는 씨익 웃으며 주인인양 능청스럽게 꾀나무 가지를 잡아 다녀 훑듯이 꾀를 타작하였다. 우리는 허리띠를 바짝 조여 매고 러닝셔츠 안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만삭의 임산부처럼 불어난 가슴속의 꾀 때문에 걸음을 땔 수 없을 정도로 출렁거리는 걸음을 걸어가고 있는 데 언제 나타났는지 갑자기 뒤에서 ‘이놈들아’하는 고함소리에 혼비백산을 하고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걸음아 날 살려라 했지만 가슴에 품은 꾀의 출렁거림은 도망가는 데 방해만 될 뿐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잡혔다.
“꾀값을 물어줄래 아니면 일을 할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을 해 주기로 했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변소 푸기다. 변소를 들여다보니 깊기가 여간 아니고 넓이도 기가 질렸다. 구드기는 어찌도 그리 많은지…….
늦은 아침나절부터 시작한 똥 푸기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낙일 할 때야 끝났다. 온몸은 구린내로 범벅이 되고 옷에는 튀어오른 오물로 말이 아니다. 준관이와 나는 옷을 훌훌 벗고 수정 같은 맑은 물에 풍덩 뛰어 들었다. 배는 고파서 등가죽에 붙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주인아주머니가 잘 익은 찰옥수수와 삶은 감자를 한 바가지 내어 왔다. 우리는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다.
“이놈들 똥 푸고 나서 먹는 음식은 천하제일 보약이지”
주인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앞으로 주인 없다 해도 남의 농사 마음대로 서리하면 하늘이 벌 내린다.”
골짜기 내려오는 길 협곡속의 하늘은 다 모아야 한 줌이고 넓어야 한 뼘이었다. 산그늘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가벼웠다. 손에 들린 보따리 속에는 정성스레 담아준 옥수수와 자두, 그리고 감자가 한보따리 옹알이 하며 우리들을 따라 간다. 냇가에 피어난 갖가지 들꽃들이 놀다가라 손짓하고 유리알 같은 물속에 생동하는 물고기들이 반짝 비늘을 자랑하며 물을 부수고 있었다. 도랑치고 가재 잡은 것이 아니라 똥 푸고 자두 얻은 내 어린시절 아련하고 아슴아슴한 추억이 묻어있는 우리 집 자두가 오늘 서리를 당했다. 내가 잡았으면 우리 집 푸세식 변소 진하게 푸게 하였을 것인데 생각하며 멋적은 웃음을 웃었다.
2003, 07, 11
푸 른 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