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주연 : 마리아 슈나이더, 말론 브란도, 마리아 미치, 지오바나 갈레티, 기트 마그리니 장르 : 드라마 상영시간 : 129분 제작년도 : 1972 국가 : 이탈리아, 프랑스
내용
세느강 위를 달리는 열차, 교각 아래 한 중년의 신사(폴, Paul: 마론 브란도 분)가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괴로운 듯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비명은 기차의 기적 소리에 이내 파묻혀 버린다. 허탈하게 허공을 보고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그 남자 뒤로 걸어오는 젊은 여인(잔느, Jeanne: 마리아 슈나이더 분)은 그의 눈물을 보지만 그냥 지나치고 그 역시 무관심하게 스쳐간다. 영화감독인 약혼자 폴((Tom: 쟝-피에르 러드 분) 에게 전화를 걸려고 들어가던 잔느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폴과 다시 마주친다. 얼마 후 그 둘은 허름하지만 오래되어 다소 운치가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또 마주친다. 집과 가구를 둘러보는 잔느를 벽에 몰아붙인 채 키스를 퍼붓는 폴. 잔느도 열렬히 응하고 둘은 이름도 모른 채 짐승들처럼 격렬하게 정사를 나눈다. 섹스가 끝난 뒤 둘은 인사도 없이 서로 모르는 남남으로 거리를 나선다. 잔느는 기차역으로 달려가 사랑에 빠진 얼굴로 약혼자에게 안기고 폴은 아내가 자살한 여관방으로 향한다. 장모(Rosa's Mother: 마리아 미치 분)는 폴에게 딸의 자살 이유를 묻지만 폴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분노하며 소리친다. 폴이 알고 있는 것은 아내가 위층에 세들어 사는 마르셀이란 남자에게 자신과 똑같은 파자마, 똑같은 술, 똑같은 육체를 제공하며 살았다는 것 뿐이다. 혼란에 쌓인 그는 허탈해하며 아파트로 돌아간다. 임대아파트에서 다시 만나는 폴과 잔느 둘은 당연한듯이 정사를 나눈다. 폴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잔느에게 소리친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는 이름도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거야." 폴의 고독감에 짓눌린 잔느는 약혼자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약혼자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인 폴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시 아파트를 찾는다. 그러나 이미 폴은 이사를 가버렸고 잔느는 빈방에서 흐느낀다. 처음, 아파트를 나서면서 남남으로 돌아섯듯이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세느강변을 걷는 잔느. 그녀에게 다가가는 폴. 폴은 도망가려는 잔느를 따라 탱고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는 홀로 들어서며 그동안 그렇게도 거부해 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잔느는 대화보다 둘이 정사를 나눌 수 있는 호텔을 원한다. 폴은 잔느를 업고,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곳으로 걸어나가 미친듯이 파격적인 춤을 추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엉덩이를 까보이기까지 한다. 폴의 슬픔과 삶에 대한 분노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잔느는 폴의 파행적 행동에서 도망가고 싶은 뿐이다. 잔느는 폴을 버려둔 채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 뒤를 쫓아 달리는 폴. 드디어 폴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잔느를 붙잡는다. 비명을 지르며 폴의 손을 뿌리치는 잔느. 잔느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을 손에 쥔다. 뒤따라 들어온 폴은 잔느에게 다가가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잔느는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폴은 비틀거리며 테라스로 나가 난간에 자신이 씹던 껌을 붙이고는 쓰러진다. 폴의 죽음을 보면서 잔느는 미친듯이 중얼거린다. "난 저 사람을 몰라. 저 사람이 날 쫓아왔어. 날 겁탈하려고 했어. 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야. 난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 누군지 몰라..."
해설
소외된 현대인의 파행적인 인간 관계를 변태적이고 충격적인 성행위 묘사를 통해 그려내어 이탈리아에서는 개봉 후 며칠만에 상영금지가 되어 87년에 와서야 해금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개봉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불후의 명작으로 손 꼽고 있으며, 평론가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새로운 발견이 계속되는 그런 영화다. 이 중 우리 일반의 가슴에 쉽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은 원초적 성을 정신적 슬픔으로 끌어 올렸다는 대목일 것이다. 스토리 만으로 연상한다면 지독히도 야한 포르노 영화로 오해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오해 때문에 영화가 나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었고, 23년만인 96년 겨울에 수입 개봉되었다. 미국과 영국에선 X등급 판정을 받았고, 미국의 극장 개봉 때는 성행위 묘사 장면 몇군데를 삭제하고 별도의 'R' 등급 버젼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두 장의 그림(흰 속옷을 입고 노란색 벽과 초록색 바닥의 방에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과 흰 자켓과 갈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검은 색 벽과 자주색 바닥의 마루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압축시킨 듯한 느낌을 준다. 베이컨이 그린 초상화 시리즈 중에 몇 작품이다. 폴이 장모와 이야기할 때 화면의 절반을 커다란 벽이 차지하고 두 인물은 조그맣게 배치된다거나, 심지어는 아내의 정부인 마르셀과 나란히 앉아 죽은 아내의 이해하지 못할 성격들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조차도 서로 다른 감도의 조명이 두 사람의 얼굴에 비치고 두 사람 사이에 짙은 어둠이 배치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혹은 사랑한다는) 믿음은 얼마나 순진한 망상이며 속물적인 고정관념 인가 하는 질문을 이 분할된 화면들은 말하는 듯 하다. "2백년을 함께 산다해도 아내의 본질을 남편을 모를 것이다"라고 아내의 주검에게 속삭이는 폴의 대사처럼. 음울한 불길함으로 가득차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만약 움직인다면, 그래서 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하는 그림 속의 두 남녀가 입을 연다면 위에서 인용한 폴의 대사를 서로에게 주고받지 않을까. "원래 나는 한쌍, 즉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촬영을 하며 윤곽이 잡혀갈 무렵 문득 내 자신이 고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의 고독이 영화의 가장 심오한 내용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 작품의 최종적 의미는 항상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라고 감독인 베르톨루치는 말한다. 화가인 베이컨은 1909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베이컨의 어린시절을 규정하는것은 가정의 상대적 불안정 이라기보다는 아일랜드의 정치적 동요와 런던 시절의 제1차 새계대전 등 당시 팽배해 있던 전쟁의 기운속에서 느껴진 긴장과 폭력의 분위기였다. 그는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전쟁의 위협이 그를 형성한 기본적 경험이라는 점을 자주말 했 다 . 1925년 아버지는 그의 교육을 위해 한 친구에세 그를 위탁했는데 그래서 그는 몇달 동안을 베를린에 다음으 로 파리에 체류할 기회를 얻게된다 .1927년의 파리생활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 전기가 된다. 그 곳에서 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품들을 마주하는 일생일대 의 체험을 하게된다.베이컨은 푸생의 <결백한 자들의 학살>에 크게 감명 받았으며 피카소의 전람회는 현대미술 을 체험하는 첫대면이었다고 말했다 베이컨은 형식적 추상,초현실주의자들이 개척해 놓은 우연의 경험,형상에 대한 매우 영국적인 애착등에 잇따라 기대면서 그 모두를 다 소홀히 하지 않는 공간을 창안한다. 그는 차고를 개 조한 아틀리에에 터를 잡았는데 몇번 안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현대적 장식물들은 이용한 그의 과감한 장식안 과 가구들이 주목을 받아 영국 전문지에 평이 실리기도했다. 1936전에는 한 국제 초현실주의 전람 회에서 그의 작품이 너무 '덜 초현실적'이라고 해서 전시가 거부된 일이 있었다. 노름쟁이에다가 방탕아였던 그는1944년 <십자가 아래 형상들의 세 연구 >를 출발점으로 확실히 '기이한 괴물작가'화가로서 출발하는 계기 가 되었다 베이컨은 정 작품을 인정할 수 없으면 부수었다. 그는 한번의 승리에 운명을 거는 노름을 하듯 우연한 이미지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러니 수많은 화폭이 찢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태도가 중요하게 차지한다. 베이컨은 자신이 쿠르베를 찬탄하지만 그의 리얼리즘은 쿠르베와 거리가 멀다. 그는 사물의 시각적 외양을 묘사 하지 않는대신 실재하는 시작, 지각의 경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유화라는 아주 고적적인 재료를 가지고도 그는 아주 현대적이고 생생한 리얼리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고깃덩어리'는 베이컨의 인물화를 푸는 주요한 열쇄의 하나가 된다. <페인팅1946 >과 그 새로운 재판이라 할 < 고깃덩어리와 인물>(1971)또는 <고깃덩어리와 사냥새>(1981)등을 통해 동물그림의 체계가 서서히 스타일을 잡아간다 . 그보다는 훨씬 세속적이지만 또 다른 두 화가가 이러한 살의 모습,동물성과 죽음을 한층 강조했는데 그 들은 램브란트와 수틴이다. 램브란트의 <가죽을 벗긴 소1655>는 동물그림에서 의미를 끄집어 내려했던 것으 로는 전례가 없는 작품이다. 또한 수틴은 그림을 정규적으로 배운일이 없다는 공통점을 베이컨이 은근히 자랑하곤 했던 화가로 끔찍한 폭력성을 간직한 색감으로 동물의 내장을 그리는데 심취해 있었다.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는 에로티시즘에 관한 영화이지만 성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 그리고 현대인들이 감추고 살아가는 본능의 발톱을 상징과 은유로서 보여주는 베를톨루치의 수작이다. 문명과 산업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성적인 억압을 주었고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을 감추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표출하지만 체제로 부터 혹은 사회적 윤리와 자신이 설정한 가치관에 의해 제재 당하고 때론 공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파격적인 성행위를 보고 야하다는 느낌 보다는 마음을 할퀴듯이 아프고 우울했다면 이해가 될까? <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줄거리
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주연 : 마리아 슈나이더, 말론 브란도, 마리아 미치, 지오바나 갈레티, 기트 마그리니
장르 : 드라마
상영시간 : 129분
제작년도 : 1972
국가 : 이탈리아, 프랑스
내용
세느강 위를 달리는 열차, 교각 아래 한 중년의 신사(폴, Paul: 마론 브란도 분)가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괴로운 듯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비명은 기차의 기적 소리에 이내 파묻혀 버린다. 허탈하게 허공을 보고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그 남자 뒤로 걸어오는 젊은 여인(잔느, Jeanne: 마리아 슈나이더 분)은 그의 눈물을 보지만 그냥 지나치고 그 역시 무관심하게 스쳐간다. 영화감독인 약혼자 폴((Tom: 쟝-피에르 러드 분) 에게 전화를 걸려고 들어가던 잔느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폴과 다시 마주친다. 얼마 후 그 둘은 허름하지만 오래되어 다소 운치가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또 마주친다. 집과 가구를 둘러보는 잔느를 벽에 몰아붙인 채 키스를 퍼붓는 폴. 잔느도 열렬히 응하고 둘은 이름도 모른 채 짐승들처럼 격렬하게 정사를 나눈다. 섹스가 끝난 뒤 둘은 인사도 없이 서로 모르는 남남으로 거리를 나선다. 잔느는 기차역으로 달려가 사랑에 빠진 얼굴로 약혼자에게 안기고 폴은 아내가 자살한 여관방으로 향한다. 장모(Rosa's Mother: 마리아 미치 분)는 폴에게 딸의 자살 이유를 묻지만 폴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분노하며 소리친다. 폴이 알고 있는 것은 아내가 위층에 세들어 사는 마르셀이란 남자에게 자신과 똑같은 파자마, 똑같은 술, 똑같은 육체를 제공하며 살았다는 것 뿐이다. 혼란에 쌓인 그는 허탈해하며 아파트로 돌아간다. 임대아파트에서 다시 만나는 폴과 잔느 둘은 당연한듯이 정사를 나눈다. 폴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잔느에게 소리친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는 이름도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거야." 폴의 고독감에 짓눌린 잔느는 약혼자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약혼자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인 폴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시 아파트를 찾는다. 그러나 이미 폴은 이사를 가버렸고 잔느는 빈방에서 흐느낀다. 처음, 아파트를 나서면서 남남으로 돌아섯듯이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세느강변을 걷는 잔느. 그녀에게 다가가는 폴. 폴은 도망가려는 잔느를 따라 탱고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는 홀로 들어서며 그동안 그렇게도 거부해 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잔느는 대화보다 둘이 정사를 나눌 수 있는 호텔을 원한다. 폴은 잔느를 업고,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곳으로 걸어나가 미친듯이 파격적인 춤을 추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엉덩이를 까보이기까지 한다. 폴의 슬픔과 삶에 대한 분노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잔느는 폴의 파행적 행동에서 도망가고 싶은 뿐이다. 잔느는 폴을 버려둔 채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 뒤를 쫓아 달리는 폴. 드디어 폴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잔느를 붙잡는다. 비명을 지르며 폴의 손을 뿌리치는 잔느. 잔느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을 손에 쥔다. 뒤따라 들어온 폴은 잔느에게 다가가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잔느는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폴은 비틀거리며 테라스로 나가 난간에 자신이 씹던 껌을 붙이고는 쓰러진다. 폴의 죽음을 보면서 잔느는 미친듯이 중얼거린다. "난 저 사람을 몰라. 저 사람이 날 쫓아왔어. 날 겁탈하려고 했어. 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야. 난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 누군지 몰라..."
해설
소외된 현대인의 파행적인 인간 관계를 변태적이고 충격적인 성행위 묘사를 통해 그려내어 이탈리아에서는 개봉 후 며칠만에 상영금지가 되어 87년에 와서야 해금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개봉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불후의 명작으로 손 꼽고 있으며, 평론가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새로운 발견이 계속되는 그런 영화다. 이 중 우리 일반의 가슴에 쉽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은 원초적 성을 정신적 슬픔으로 끌어 올렸다는 대목일 것이다. 스토리 만으로 연상한다면 지독히도 야한 포르노 영화로 오해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오해 때문에 영화가 나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었고, 23년만인 96년 겨울에 수입 개봉되었다. 미국과 영국에선 X등급 판정을 받았고, 미국의 극장 개봉 때는 성행위 묘사 장면 몇군데를 삭제하고 별도의 'R' 등급 버젼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두 장의 그림(흰 속옷을 입고 노란색 벽과 초록색 바닥의 방에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과 흰 자켓과 갈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검은 색 벽과 자주색 바닥의 마루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압축시킨 듯한 느낌을 준다. 베이컨이 그린 초상화 시리즈 중에 몇 작품이다. 폴이 장모와 이야기할 때 화면의 절반을 커다란 벽이 차지하고 두 인물은 조그맣게 배치된다거나, 심지어는 아내의 정부인 마르셀과 나란히 앉아 죽은 아내의 이해하지 못할 성격들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조차도 서로 다른 감도의 조명이 두 사람의 얼굴에 비치고 두 사람 사이에 짙은 어둠이 배치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혹은 사랑한다는) 믿음은 얼마나 순진한 망상이며 속물적인 고정관념 인가 하는 질문을 이 분할된 화면들은 말하는 듯 하다. "2백년을 함께 산다해도 아내의 본질을 남편을 모를 것이다"라고 아내의 주검에게 속삭이는 폴의 대사처럼. 음울한 불길함으로 가득차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만약 움직인다면, 그래서 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하는 그림 속의 두 남녀가 입을 연다면 위에서 인용한 폴의 대사를 서로에게 주고받지 않을까. "원래 나는 한쌍, 즉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촬영을 하며 윤곽이 잡혀갈 무렵 문득 내 자신이 고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의 고독이 영화의 가장 심오한 내용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 작품의 최종적 의미는 항상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라고 감독인 베르톨루치는 말한다. 화가인 베이컨은 1909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베이컨의 어린시절을 규정하는것은 가정의 상대적 불안정 이라기보다는 아일랜드의 정치적 동요와 런던 시절의 제1차 새계대전 등 당시 팽배해 있던 전쟁의 기운속에서 느껴진 긴장과 폭력의 분위기였다. 그는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전쟁의 위협이 그를 형성한 기본적 경험이라는 점을 자주말 했 다 . 1925년 아버지는 그의 교육을 위해 한 친구에세 그를 위탁했는데 그래서 그는 몇달 동안을 베를린에 다음으 로 파리에 체류할 기회를 얻게된다 .1927년의 파리생활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 전기가 된다. 그 곳에서 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품들을 마주하는 일생일대 의 체험을 하게된다.베이컨은 푸생의 <결백한 자들의 학살>에 크게 감명 받았으며 피카소의 전람회는 현대미술 을 체험하는 첫대면이었다고 말했다 베이컨은 형식적 추상,초현실주의자들이 개척해 놓은 우연의 경험,형상에 대한 매우 영국적인 애착등에 잇따라 기대면서 그 모두를 다 소홀히 하지 않는 공간을 창안한다. 그는 차고를 개 조한 아틀리에에 터를 잡았는데 몇번 안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현대적 장식물들은 이용한 그의 과감한 장식안 과 가구들이 주목을 받아 영국 전문지에 평이 실리기도했다. 1936전에는 한 국제 초현실주의 전람 회에서 그의 작품이 너무 '덜 초현실적'이라고 해서 전시가 거부된 일이 있었다. 노름쟁이에다가 방탕아였던 그는1944년 <십자가 아래 형상들의 세 연구 >를 출발점으로 확실히 '기이한 괴물작가'화가로서 출발하는 계기 가 되었다 베이컨은 정 작품을 인정할 수 없으면 부수었다. 그는 한번의 승리에 운명을 거는 노름을 하듯 우연한 이미지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러니 수많은 화폭이 찢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태도가 중요하게 차지한다. 베이컨은 자신이 쿠르베를 찬탄하지만 그의 리얼리즘은 쿠르베와 거리가 멀다. 그는 사물의 시각적 외양을 묘사 하지 않는대신 실재하는 시작, 지각의 경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유화라는 아주 고적적인 재료를 가지고도 그는 아주 현대적이고 생생한 리얼리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고깃덩어리'는 베이컨의 인물화를 푸는 주요한 열쇄의 하나가 된다. <페인팅1946 >과 그 새로운 재판이라 할 < 고깃덩어리와 인물>(1971)또는 <고깃덩어리와 사냥새>(1981)등을 통해 동물그림의 체계가 서서히 스타일을 잡아간다 . 그보다는 훨씬 세속적이지만 또 다른 두 화가가 이러한 살의 모습,동물성과 죽음을 한층 강조했는데 그 들은 램브란트와 수틴이다. 램브란트의 <가죽을 벗긴 소1655>는 동물그림에서 의미를 끄집어 내려했던 것으 로는 전례가 없는 작품이다. 또한 수틴은 그림을 정규적으로 배운일이 없다는 공통점을 베이컨이 은근히 자랑하곤 했던 화가로 끔찍한 폭력성을 간직한 색감으로 동물의 내장을 그리는데 심취해 있었다.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는 에로티시즘에 관한 영화이지만 성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 그리고 현대인들이 감추고 살아가는 본능의 발톱을 상징과 은유로서 보여주는 베를톨루치의 수작이다. 문명과 산업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성적인 억압을 주었고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을 감추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표출하지만 체제로 부터 혹은 사회적 윤리와 자신이 설정한 가치관에 의해 제재 당하고 때론 공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파격적인 성행위를 보고 야하다는 느낌 보다는 마음을 할퀴듯이 아프고 우울했다면 이해가 될까?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