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스타 추성훈 일대기

ㅇㅇㅇㅇㅇㅇㅇ200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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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긴키대 시절 일본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고 대학 졸업 후에도 간사이팀 소속 선수로 활약, 일본내 랭킹 5위까지 오르는 등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끊임없이 귀화 유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74년 전국체전에 재일동포 대표로 출전해 우승했던 아버지 추계이(51)씨의 뜻에 따라 모국행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추성훈이 일본인으로서 살았으면 지금보다 더욱 인기를 얻었을꺼라 생각한다.. 몇몇 모르는사람들이 애국마케팅이다 거짓 애국심이다 하는데 일본인으로서 일본국적을가지고 국가대표를 나왔으면 더욱편했을꺼다 .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가슴에 달고싶어서 자신의 조국을 찾았는데 자신의 조국에 와서도 일본실업팀에서 스카웃에도 불구하고 "나는한국인이다"라며 조국을위해 뛰었는데 노력한 대가는  결과는 용인대에 텃세에 의한 편파 판정등등 결국 일본으로 귀화 했지만 일본에서도 한국최고라는둥 한국만세를 외쳐 일본에서도 곱지 않은시선으로 1년 출장정지라는 과다징계도 먹고 한국에서도 귀화인이라는 인식때문에 팬들도 많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욕하는사람이 많다.. 이도 저도 아닌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하고있는 비운의스타 추성훈.. 너무 안타깝다...

추성훈뿐만 아니라 윤동식도 당시 40전승에 빛나는 유도 천재였지만 학연 지연 혈연 용인대가 아니라는것에 발목을 잡혀 안타깝게 빛을 바랬는데.. 정말 다른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용인대 출신이 아니면 유도를 하지말라는건가.. 

 

용인대가 대한민국 유도 최고이긴 하지만 편파판정이 결국 실력있는사람들을 용인대로 불러모와 용인대를 유도최고대학의 명성을 주는 결과를 만들어 주는것이죠..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실력이 용인대를 능가하는 몇몇 선수가 나왔지만 추성훈이나윤동식처럼 용인대의 막강한 편파판정을 넘길수는 없었죠.. 전국의 엘리트들만 뭉친 조직에서 최고라고 나온 선수를 매번 한판으로 이긴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죠.. 결국 한판승부로 이기지못하면 유리하게 경기를 펼치던 어쨌건 용인대승입니다... 추성훈의 씁쓸한 인터뷰가 생각나는군요.. 내가 실력이 부족했다.. 그냥 모두 한판으로 이겼으면 됐는데 그러지 못했기때문에 내가 못나서 태극마크대신 일장기를 선택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