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와서 제가 쓰던 방. 이젠 짐놓는 창고가 되어버린 휑한 방 쓸어놓고 작은 가방 하나 주섬주섬 풀어놓고 글 씁니다. 결혼한다고 친정아버지 붙잡고 눈물 흘리며 그래도 웃으며 남편 손 잡고 화장 고쳐가며 시댁에 가던 때가 일년전인데 이제 이렇게 다시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네요. 저는 이십대 후반 여자입니다. 평범한 집에 평범하게 태어나서 열심히 공부하고, 모범생 소리 들으며 학교 다니고 대학교 대학원 졸업하고 취직하고. 사람 만나서 사랑하고 프로포즈 받고 결혼했었죠. 프로포즈 받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제 연인이었던 전 남편이 무릎도 꿇었었는데.. 제가 너무 예쁘고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면서. 둘이 정말 행복하게 살아보자면서. 서로 아껴주자고. 그랬었는데. 시댁에 들어가서 살았어요. 남편이 장남이라 효심이 지극하다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죠 시집살이는 남 얘기인 줄 알았어요. 남편이 그랬거든요. "우리 엄마 너무 곱고 착한 분이셔. 네가 딸같이 잘 지내면 정말 좋겠다. 내가 퇴근하면 다 같이 저녁 먹으면서 그렇게 한 가족이 되면 나 너무 행복하겠다" 저는 엄마가 결혼하기 삼년전에 돌아가셔서 아빠가 제 결혼 준비해주셨어요. 아빠가 저한테 그러셨거든요. 시댁에 잘하라고, 그게 다 네 할 몫이고 복이라고. 그때 전 왜 몰랐을까요. 모두가 나에게 희생을 바라고 있다는 걸. 남편이 그리는 행복에는 저는 없고. 자기 가족에 묻혀버린 부인과 며느리가 있을 뿐인걸. 저는 계속 공부만 했어요. 대학원까지 나왔죠. 지금도 일하고 있어요. 지난 이틀간은 남편 (이젠 전남편인가..) 하고 정리하고 나오느라 나가지 않았지만..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면 출근이 빠듯했어요. 다섯시부터 일어나서 아침하시는 어머님. 신랑 더운 국 더운 밥 안 먹이면 하늘이 무너지시는 줄 알았던 어머님. 저는 눈비비고 일어나 종종대며 거들었죠. 어머님이 그러시대요. 넌 시집와서 한 게 뭐있냐. 신랑 밥을 한 번 챙겨봤냐. 시어머니 밥상을 한 번 대령해봤냐. 그래요. 저 공부만 하고 커서, 그리고 직장 계속 다녀서 요리 잘 못했어요. 그치만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어머님께 친한척 말붙여 가며 부엌에 서있던 전 그럼 뭐가 되나요. 남편 자는데 소리 크게 내지 말라던 어머님. 저 성격 얼마나 밝았는지 몰라요. 남편도 제 애교에 반했다고 그랬어요. 그 애교로 어머님께 딸처럼 대해달랬어요. 남편이 "이 사람 애교 많죠" 하니까 어머님이 그러시대요 "정신머리없고 말이 많아서 원." 제가 섭섭해했더니 남편이 그래요 " 어머님이 쑥스러워서 그러셔- 아들만 키우셔서" 이런게 어쩜 이렇게 다 기억나나 몰라요. 명절때 혼자 계신 아빠 생각나서 몰래 밤에 울었더니 남편이 "이제 좀 그만하라" 던거. 시어머님이 "언제까지 친정식구 노릇할거냐" 던거 퇴근하고 오면 어머님 눈빛이 언짢으세요.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냐. 넌 그 돈 번거 꼬박꼬박 저금했다가 나 줘라. 애는 얼른 낳아야지. 니가 준돈으로 내가 애 키워주마. 우리 아들 오기전에 반찬 뭐라도 하나 더 차려야지. 애가 요즘 야근이 너무 많다. 힘들겠네. 저 서러웠어요. 남자분들 아세요? 명절에요. 온 집안 사람들이 북적북적 하는데 저 혼자 부엌에 서서 설거지 하는 기분이요. 여기에 아무도 없구나. 우리 아빠도 우리 엄마도 없구나. 우리 가족 다 없구나. 남편은 저렇게 자기네 엄마. 자기네 삼촌. 도련님하고 같이 있는데 나는 왜 혼자일까. 남편이 우리 남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하는 기분 섭섭한 맘 털어놓으면 남편이 저한테 "지혜로운 여자가 되어" 달래요 저 결혼 일년 살면서 그 말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지혜롭게. 지혜롭게. 남편이 말하는 지혜는 이런거죠 새벽 다섯시부터 일어나서 어머니 나오시기 전에 밥차려놓으면 어머니가 기뻐하실거야. 지혜로운 며느리다. 퇴근 일찍해서 청소도 하고 어머님이랑 장도 보고 하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딸같이 살가운 지혜로운 며느리. 나 일하고 와서 힘든데 너 이러면 나 정말 피곤하다. 너 지혜로운 여잔줄 알았는데 왜 이러니. 우리 식구가 너 한테 잘못한게 뭐 있니. 너 지혜로운 여자 아니니.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이니. 니가 착하고 이쁘게 굴면 엄마가 뭐라고 하실리가 있니. 전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바보. 어리석은 일하는 기계가 되었어요 제가 지혜롭지 못해서 이런 일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알아요. 저는 그냥 실패가 두려웠어요. 늘 무난하게 살아온 제 삶에 결혼 실패한 여자라는 딱지 붙는게 두려웠고 제가 너무 사랑했던 남자가 절 이렇게 아프게 만드는 걸 믿기 어려웠어요. 근데 이젠 괜찮아요. 남편을 봐도 애틋하지도 않고. 그래서 헤어지기로 했죠. 생각해보니까. 애도 없고. 시댁에 들어가 살았으니까 저만 나오면 되더라고요. 아직 혼인신고도 안했고. 그 집에는 아무 변화 없을 걸요. 근데 정말 궁금해요. 제가 더 지혜로웠어야 했나요? ----------------------------------------------------------------------------- 분가. 제가 헤어지기로 결심한 계기가 바로 분가예요. 분가하자고 먹지도 못하는 술마시고 울며 얘기했더니 남편이 그랬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가 이럴줄은 몰랐다. 너도 똑같다. 나는 우리 어머니 절대 못버린다. 니가 너무 독해보인다" 어머니도 이 사실 알고 그러셨죠 "니가 남편 끼고 나가보려고 했던 모양인데. 니가 나가라." 제가 정말 얘기 안해봤겠어요.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하는 거랑 같아요. 저만 잘하면 되고 저만 참으면 되는데 제가 이기적이고 지혜롭지 못해서 모두를 힘들게 한다잖아요 제가 힘들다고 그러면 뭐가 힘드냐고 그래요 남편이 때렸냐 바람을 피웠냐 시어머니가 머리채를 잡더냐 잘 곳이 없냐 먹을 게 없냐 입을 게 없냐. 뭐가 힘드냐고 물어요. 이게 저게 힘들다고 그러면. 다시 반복. 제 얘기를 듣질 않아요. 둘이 같이 행복하자고 했으면서. 귀도 닫고 마음도 닫고 눈도 닫는 남편. 제가 아침부터 일어나 힘들게 일하고 있으면 웃어주고 제가 좀 늦게 퇴근해서 자기가 먼저 들어와 있는 날이면 눈빛부터 차가운 남편. 제가 지켜야 할 가정은 저와 남편의 가정이었는데 남편이 지키려는 가정은 남편이랑 시어머니의 가정이었어요.
지혜로운 여자가 되어달래요
친정에 와서 제가 쓰던 방. 이젠 짐놓는 창고가 되어버린 휑한 방 쓸어놓고
작은 가방 하나 주섬주섬 풀어놓고 글 씁니다.
결혼한다고 친정아버지 붙잡고 눈물 흘리며
그래도 웃으며 남편 손 잡고 화장 고쳐가며 시댁에 가던 때가 일년전인데
이제 이렇게 다시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네요.
저는 이십대 후반 여자입니다.
평범한 집에 평범하게 태어나서 열심히 공부하고, 모범생 소리 들으며 학교 다니고
대학교 대학원 졸업하고 취직하고. 사람 만나서 사랑하고 프로포즈 받고 결혼했었죠.
프로포즈 받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제 연인이었던 전 남편이 무릎도 꿇었었는데..
제가 너무 예쁘고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면서.
둘이 정말 행복하게 살아보자면서. 서로 아껴주자고. 그랬었는데.
시댁에 들어가서 살았어요. 남편이 장남이라 효심이 지극하다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죠
시집살이는 남 얘기인 줄 알았어요. 남편이 그랬거든요.
"우리 엄마 너무 곱고 착한 분이셔. 네가 딸같이 잘 지내면 정말 좋겠다.
내가 퇴근하면 다 같이 저녁 먹으면서 그렇게 한 가족이 되면 나 너무 행복하겠다"
저는 엄마가 결혼하기 삼년전에 돌아가셔서 아빠가 제 결혼 준비해주셨어요.
아빠가 저한테 그러셨거든요. 시댁에 잘하라고, 그게 다 네 할 몫이고 복이라고.
그때 전 왜 몰랐을까요. 모두가 나에게 희생을 바라고 있다는 걸.
남편이 그리는 행복에는 저는 없고. 자기 가족에 묻혀버린 부인과 며느리가 있을 뿐인걸.
저는 계속 공부만 했어요. 대학원까지 나왔죠. 지금도 일하고 있어요.
지난 이틀간은 남편 (이젠 전남편인가..) 하고 정리하고 나오느라 나가지 않았지만..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면 출근이 빠듯했어요. 다섯시부터 일어나서 아침하시는 어머님.
신랑 더운 국 더운 밥 안 먹이면 하늘이 무너지시는 줄 알았던 어머님.
저는 눈비비고 일어나 종종대며 거들었죠.
어머님이 그러시대요. 넌 시집와서 한 게 뭐있냐. 신랑 밥을 한 번 챙겨봤냐.
시어머니 밥상을 한 번 대령해봤냐.
그래요. 저 공부만 하고 커서, 그리고 직장 계속 다녀서 요리 잘 못했어요.
그치만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어머님께 친한척 말붙여 가며 부엌에 서있던
전 그럼 뭐가 되나요. 남편 자는데 소리 크게 내지 말라던 어머님.
저 성격 얼마나 밝았는지 몰라요. 남편도 제 애교에 반했다고 그랬어요.
그 애교로 어머님께 딸처럼 대해달랬어요.
남편이 "이 사람 애교 많죠" 하니까 어머님이 그러시대요 "정신머리없고 말이 많아서 원."
제가 섭섭해했더니 남편이 그래요 " 어머님이 쑥스러워서 그러셔- 아들만 키우셔서"
이런게 어쩜 이렇게 다 기억나나 몰라요.
명절때 혼자 계신 아빠 생각나서 몰래 밤에 울었더니 남편이 "이제 좀 그만하라" 던거.
시어머님이 "언제까지 친정식구 노릇할거냐" 던거
퇴근하고 오면 어머님 눈빛이 언짢으세요.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냐. 넌 그 돈 번거 꼬박꼬박 저금했다가 나 줘라.
애는 얼른 낳아야지. 니가 준돈으로 내가 애 키워주마. 우리 아들 오기전에
반찬 뭐라도 하나 더 차려야지. 애가 요즘 야근이 너무 많다. 힘들겠네.
저 서러웠어요.
남자분들 아세요? 명절에요. 온 집안 사람들이 북적북적 하는데
저 혼자 부엌에 서서 설거지 하는 기분이요. 여기에 아무도 없구나.
우리 아빠도 우리 엄마도 없구나. 우리 가족 다 없구나.
남편은 저렇게 자기네 엄마. 자기네 삼촌. 도련님하고 같이 있는데
나는 왜 혼자일까. 남편이 우리 남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하는 기분
섭섭한 맘 털어놓으면 남편이 저한테 "지혜로운 여자가 되어" 달래요
저 결혼 일년 살면서 그 말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몰라요. 지혜롭게. 지혜롭게.
남편이 말하는 지혜는 이런거죠
새벽 다섯시부터 일어나서 어머니 나오시기 전에 밥차려놓으면 어머니가 기뻐하실거야.
지혜로운 며느리다.
퇴근 일찍해서 청소도 하고 어머님이랑 장도 보고 하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딸같이 살가운 지혜로운 며느리.
나 일하고 와서 힘든데 너 이러면 나 정말 피곤하다. 너 지혜로운 여잔줄 알았는데 왜 이러니.
우리 식구가 너 한테 잘못한게 뭐 있니. 너 지혜로운 여자 아니니.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이니. 니가 착하고 이쁘게 굴면 엄마가 뭐라고 하실리가 있니.
전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바보. 어리석은 일하는 기계가 되었어요
제가 지혜롭지 못해서 이런 일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알아요. 저는 그냥 실패가 두려웠어요.
늘 무난하게 살아온 제 삶에 결혼 실패한 여자라는 딱지 붙는게 두려웠고
제가 너무 사랑했던 남자가 절 이렇게 아프게 만드는 걸 믿기 어려웠어요.
근데 이젠 괜찮아요.
남편을 봐도 애틋하지도 않고. 그래서 헤어지기로 했죠.
생각해보니까. 애도 없고. 시댁에 들어가 살았으니까 저만 나오면 되더라고요.
아직 혼인신고도 안했고. 그 집에는 아무 변화 없을 걸요.
근데 정말 궁금해요. 제가 더 지혜로웠어야 했나요?
-----------------------------------------------------------------------------
분가.
제가 헤어지기로 결심한 계기가 바로 분가예요.
분가하자고 먹지도 못하는 술마시고 울며 얘기했더니
남편이 그랬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가 이럴줄은 몰랐다. 너도 똑같다.
나는 우리 어머니 절대 못버린다. 니가 너무 독해보인다"
어머니도 이 사실 알고 그러셨죠
"니가 남편 끼고 나가보려고 했던 모양인데. 니가 나가라."
제가 정말 얘기 안해봤겠어요.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하는 거랑 같아요.
저만 잘하면 되고 저만 참으면 되는데
제가 이기적이고 지혜롭지 못해서 모두를 힘들게 한다잖아요
제가 힘들다고 그러면 뭐가 힘드냐고 그래요
남편이 때렸냐 바람을 피웠냐 시어머니가 머리채를 잡더냐
잘 곳이 없냐 먹을 게 없냐 입을 게 없냐.
뭐가 힘드냐고 물어요.
이게 저게 힘들다고 그러면. 다시 반복.
제 얘기를 듣질 않아요.
둘이 같이 행복하자고 했으면서. 귀도 닫고 마음도 닫고 눈도 닫는 남편.
제가 아침부터 일어나 힘들게 일하고 있으면 웃어주고
제가 좀 늦게 퇴근해서 자기가 먼저 들어와 있는 날이면 눈빛부터 차가운 남편.
제가 지켜야 할 가정은 저와 남편의 가정이었는데
남편이 지키려는 가정은 남편이랑 시어머니의 가정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