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자기가 동기 모임에 회장이 되었다는 인사와 함께 첫 사업으로 동기 수첩을 제작하기로 했는데, 인적 사항과 사진 1장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가 지방이라는 핑계로 나는 평소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치 못했는데, 이 친구가 용케 나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연락을 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그 친구를 떠올려 보았 다.
고3 시절, 맨 앞줄에 앉을 정도로 작은 키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는 듯, 성적은 거의 뒤쪽에 가깝고 항상 주눅든 모습을 한 친구였다. 아마 반 친구 들은 그 친구가 우리 반이라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
떻게 그 친구와 친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는 참 친하게 지냈다.
당시 우리 학교는 지역에서는 꽤 실력 있는 명문으로 평판을 받았고, 어느 정도 공부 한 사람이라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은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지방 전문대에 진학을 했고, 그 친구와 나는 졸업 후, 군대 가기 전에 몇 번인가 만난 기 억밖에 없으니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그 다음 날 인적 사항과 사진을 보냈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수첩이 나오면 보내달라는 말과 언제 한번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그 후 두 달쯤 지나자, 나의 우편함에는 <<고교동창수첩>>이 꽂혀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든 손끝에 야릇한 감정이 묻어 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첩을 펴고 그 동안 궁금했던 친구들의 삶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너나 내나 참 많이 변해 있었다. 같이 보던 딸이 옛날 아빠 사진을 보면서 웃긴다며 낄낄거린다.
고교 앨범 사진과 현재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20여년 세월의 이끼가 낀 모습이 어찌 보면 정감이 있고, 또 어찌 보면 회한이 생기는 연유 는 무엇일까?
어떤 친구는 예상했던 바 평범한 길을 가고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전혀 다른 길을 개척했으며 심지어 어떤 친구는 성격과 달리, 성직자의 길을 가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벌써 이 세상에 없었다.
각자 얼굴 모양만큼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들이 다양한 길을 가는 모습이 한없이 아 름다워 보인다. 정말 좋은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그냥 행 복했고 또 그들 모두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득 엉뚱한 상상력이 머리를 스친다.
고교를 졸업하고 20년 이상 지난 지금, 각자 학창 시절 가졌던 꿈들이 과연 얼마나 이루어졌고 중년에 접어드는 현재 모습에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를 조사하고 추적하여 책으로 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앙케이트를 위해 설문지를 만들고 동기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이겠고, 수익금의 일부는 동창회에 기부한다면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설문 내용은 대개 이런 것들로 구성하면 어떨까?
* 당신의 자녀는 몇명인가? * 당신은 자녀를 유학시킬 것인가? * 당신은 지금 아파트에 사는가? 평수는? * 당신은 골프가 취미인가? * 당신의 자가용 차종은? * 당신은 현재 직장에 만족하는가? * 당신은 해외 여행을 자주 가는가? * 당신의 현재 재정 상태는? * 당신의 특별한 재테크 전략은?
이 정도로는 너무 약하다면, 역시 성생활을 빼면 재미가 없지... 그래, 40대의 성 보고서를 만드는거야!
* 당신의 결혼 생활은 만족스러운가? * 당신은 이혼을 한 경험이 있는가? * 당신의 월 섹스 횟수는? 그리고 지속 시간은? * 당신은 결혼 후 외도를 몇번 했는가? *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외도를 하는가? * 당신은 현재 만나는 애인이 있는가? * 당신의 정력을 위한 특별한 노하우는?
그래도 너무 상투적이라면 적당히 도표와 그래프를 만들고 색바랜 흑백 사진으로 치 장을 하며 당시 유행하는 대중 문화 코드를 알맞게 덧씌운다면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본다.
하지만 나는 이것만은 꼭 묻고 싶다.
* 그 때 네 꿈이 옳았니? * 지금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하고 있니? * 그리고 너, 지금 행복하니?
아직도 나는 관념적이고 너무 이상적인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지면이로나마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보니 옛날 기분을 좀 내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들에게 마냥 호의적이지 않아 걱정이다. 이 아름다운 세대를 시기하는 세상은 멋진 중년을 꿈꾸는 나와 내 친구들의 작은 소 망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사회는 미친 듯이 바삐 돌아가고, 뜻도 모를 용어가 난무하며 변하지 않으면 죽는 다고 위협한다.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남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구호에 헛손질을 하면서 좇아가기에 바빠 피곤하고 지친 우리들의 모습을 언뜻 바라볼 때, 나는 슬프 고 또한 친구들이 안타깝다.
친구들아! 제발 이 진절머리나는 사회에 끌려 다니지 말고 우뚝 서서 사회를 리드하고 좋은 영 향력을 주는 실력자들이 되도록 우리들의 마지막 투쟁심을 불사르자.
그리하여 20년쯤 후 우리가 다시 수첩을 만들었을 때는 비록 모습은 초라하게 늙었 더라도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찬란한 삶을 살았노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 기원하자.
이제 불과 인생의 반 정도만 걸어 왔잖니? 남은 길은 우리 어깨 동무라도 하고 같이 가자.
고교 동창 수첩
고교동창수첩
몇 달 전,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자기가 동기 모임에 회장이 되었다는 인사와 함께 첫 사업으로 동기 수첩을
제작하기로 했는데, 인적 사항과 사진 1장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가 지방이라는 핑계로 나는 평소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치 못했는데, 이 친구가
용케 나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연락을 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그 친구를 떠올려 보았
다.
고3 시절, 맨 앞줄에 앉을 정도로 작은 키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는 듯, 성적은 거의 뒤쪽에 가깝고 항상 주눅든 모습을 한 친구였다. 아마 반 친구
들은 그 친구가 우리 반이라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
떻게 그 친구와 친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는 참 친하게 지냈다.
당시 우리 학교는 지역에서는 꽤 실력 있는 명문으로 평판을 받았고, 어느 정도 공부
한 사람이라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은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지방
전문대에 진학을 했고, 그 친구와 나는 졸업 후, 군대 가기 전에 몇 번인가 만난 기
억밖에 없으니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그 다음 날 인적 사항과 사진을 보냈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수첩이 나오면 보내달라는 말과 언제 한번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그 후 두 달쯤 지나자, 나의 우편함에는 <<고교동창수첩>>이 꽂혀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든 손끝에 야릇한 감정이 묻어 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첩을 펴고 그 동안 궁금했던 친구들의 삶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너나 내나 참 많이 변해 있었다. 같이 보던 딸이 옛날 아빠 사진을 보면서 웃긴다며
낄낄거린다.
고교 앨범 사진과 현재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20여년
세월의 이끼가 낀 모습이 어찌 보면 정감이 있고, 또 어찌 보면 회한이 생기는 연유
는 무엇일까?
어떤 친구는 예상했던 바 평범한 길을 가고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전혀 다른 길을
개척했으며 심지어 어떤 친구는 성격과 달리, 성직자의 길을 가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벌써 이 세상에 없었다.
각자 얼굴 모양만큼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들이 다양한 길을 가는 모습이 한없이 아
름다워 보인다. 정말 좋은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그냥 행
복했고 또 그들 모두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득 엉뚱한 상상력이 머리를 스친다.
고교를 졸업하고 20년 이상 지난 지금, 각자 학창 시절 가졌던 꿈들이 과연 얼마나
이루어졌고 중년에 접어드는 현재 모습에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를 조사하고
추적하여 책으로 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앙케이트를 위해 설문지를 만들고 동기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이겠고,
수익금의 일부는 동창회에 기부한다면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설문 내용은 대개 이런 것들로 구성하면 어떨까?
* 당신의 자녀는 몇명인가?
* 당신은 자녀를 유학시킬 것인가?
* 당신은 지금 아파트에 사는가? 평수는?
* 당신은 골프가 취미인가?
* 당신의 자가용 차종은?
* 당신은 현재 직장에 만족하는가?
* 당신은 해외 여행을 자주 가는가?
* 당신의 현재 재정 상태는?
* 당신의 특별한 재테크 전략은?
이 정도로는 너무 약하다면, 역시 성생활을 빼면 재미가 없지...
그래, 40대의 성 보고서를 만드는거야!
* 당신의 결혼 생활은 만족스러운가?
* 당신은 이혼을 한 경험이 있는가?
* 당신의 월 섹스 횟수는? 그리고 지속 시간은?
* 당신은 결혼 후 외도를 몇번 했는가?
*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외도를 하는가?
* 당신은 현재 만나는 애인이 있는가?
* 당신의 정력을 위한 특별한 노하우는?
그래도 너무 상투적이라면 적당히 도표와 그래프를 만들고 색바랜 흑백 사진으로 치
장을 하며 당시 유행하는 대중 문화 코드를 알맞게 덧씌운다면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본다.
하지만 나는 이것만은 꼭 묻고 싶다.
* 그 때 네 꿈이 옳았니?
* 지금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하고 있니?
* 그리고 너, 지금 행복하니?
아직도 나는 관념적이고 너무 이상적인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지면이로나마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보니 옛날 기분을 좀 내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들에게 마냥 호의적이지 않아 걱정이다.
이 아름다운 세대를 시기하는 세상은 멋진 중년을 꿈꾸는 나와 내 친구들의 작은 소
망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사회는 미친 듯이 바삐 돌아가고, 뜻도 모를 용어가 난무하며 변하지 않으면 죽는
다고 위협한다.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남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구호에 헛손질을
하면서 좇아가기에 바빠 피곤하고 지친 우리들의 모습을 언뜻 바라볼 때, 나는 슬프
고 또한 친구들이 안타깝다.
친구들아!
제발 이 진절머리나는 사회에 끌려 다니지 말고 우뚝 서서 사회를 리드하고 좋은 영
향력을 주는 실력자들이 되도록 우리들의 마지막 투쟁심을 불사르자.
그리하여 20년쯤 후 우리가 다시 수첩을 만들었을 때는 비록 모습은 초라하게 늙었
더라도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찬란한 삶을 살았노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 기원하자.
이제 불과 인생의 반 정도만 걸어 왔잖니?
남은 길은 우리 어깨 동무라도 하고 같이 가자.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아!
정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