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의상을 전공하고 있는 23살 청년입니다. 갓난아기때부터 아버지가 안계셔서 어머니(54)랑 저 단둘이 20여년을 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셔서 그때부터 집안에서 거의 내쫓기다시피 하셨습니다. 단 외할아버지 만큼은 그러지 않으셨죠. 5남매인 자식중에서도 저희 어머니를 가장 안쓰러워 하셨고 예뻐 하셨죠. 다른자식들은 공부도 많이 했고, 세상 힘든일 한번 안하고 컸고 소위 말하는 성공을 했으니까요(큰나랏일도 하는 이모도 있고. 사업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항상 집안뒷바라지만 했습니다. 외할아버지댁이 과수원을 하셨는데 과수원일부터해서 다른 형제자매들 뒷바라지까지 그렇게 젊음을 보내셨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셨습니다. 가족중에서 유일한 힘이 되셨던 외할아버지를 잃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슬슬 다들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권을 쥐고계시던 할아버지였으니 다들 꼼짝못하다가 그때서야 4남매와 외할머니까지 본심이 나오더군요. 외할어버지가 돌아가신 타이밍이 참 절묘합니다. 그때까 도시계획이 한참 진행중이었거든요. 개발이 되느니 어쩌느니..그때만해도 그 지역은 그야말로 허허들판 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그 과수원 일대며 부근 전부가 이 도시의 핵심으로 변했습니다. 땅값이며 보상비야 말 안해도 아시겠죠? 그때까지만해도 저와 어머니는 과수원에 얹혀 살았습니다. 가진것도 없고 배운것도 없으니 구박과 멸시를 받으며 집안일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았죠.
근데 어느날 큰 삼촌이라는 자가 어머니께 무슨 서류 하나를 주면서 도장 찍어달라더군요. 저야 뭐 어렸으니까 아무것도 몰랐고, 저희 어머니께서는 별 생각없이 유산을 큰삼촌한테 상속한다고 하면 내야 할 세금이 줄어든다니 그냥 도장 찍어주셨죠. 도장을 찍어준지 며칠 안되서 시에서는 공사 시작한다고 과수원을 비워달라고 하더군요. 과수원에는 큰삼촌 댁만 살았습니다. 큰삼촌은 그때부터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보상비에 뭐에 뭐에 어마어마한 돈이 큰 무리없이 죄다 자기 손으로 들어오니 뭐 두려울게 없었겠죠. 며칠뒤에 집을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가족들과 외할머니 모시고 이사가더군요, 저흰 내버려두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주위 동네주민들은 다 이사가고 저희만 동네에 남겨졌습니다. 옆에서는 공사한다고 큰 차들 몇 십대가 왔다갔다하고 인부들이며 별 잡다한 사람들까지 다 왔다갔다 하는데 지은지 20년 이상은 된 흙으로 만들어진 낡아빠진 집에서 빨리 나가달라고 재촉하는 공무원 관계자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몇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동안 저희 어머니 난리가 났었죠. 왜 내 몫 안챙겨주느냐... 내 몫만 주면 나 알아서 살수 있는데 도대체 왜 안주는거냐... 그때마다 그 큰삼촌이란자 보상비가 안나왔다고 딱 잡아뗍니다. 그럼 집을 어디서 샀냐? 대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집이나 하나 얻어줘야 하지 않겠냐? 그렇게 몇 달을 울고불고 사정했더니 천만원짜리 방두개 짜리 방 하나 얻어주더군요... 자기는 3억(10년전)짜리 집 살면서...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만족하면서 어머니랑 오손도손 잘 살았습니다. 그때가 국민학교 4학년... 그후로 3년내내 저희 어머니 내 몫 달라고 울고불고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뭐 이런 상황은 어느정도 인지 짐작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때마다 매번 답은 같습니다. 보상비 나오면 준다... 처음에는 돈으로 준다고했다가 나중에는 보상이 땅으로 나온다고 땅 팔리면 준다고 말을 바꾸더군요. 3년 후, 저희 어머니께서 큰병을 얻으셨습니다. 암이었습니다. 어느정도 암이 진행된 상태라서 어머니께서는 정말 많이 울으셨답니다. 가족하나 없는 저 혼자 남기고 세상 떠나면 저세상에서도 못편할거 같다고...다행이도 3번에 걸친 재수술과 1년에 가까운 걸친 투병생활로 하늘에 정말 감사하게도 완치가 되셨습니다. 그 투병기간 동안 이 망할놈의 작자들은 단 한번 얼굴 내밀더군요... 큰 삼촌이라는 자는 어머니와 너무 많이 싸워서 아예 오지도 않았고 이모란자는 큰 나랏일하는 고위 공무원이란 사람이 아침에 외할머니랑 목욕탕 갔다가 잠깐 얼굴 비치더니 5분인가 있다가 가버렸습니다. 어머니랑 싸워서 그랬을겁니다. 그 목욕탕 갔다온사이 저희 어머니께서 대변을 며칠을 못보시다가 너무 속이 안좋아서 마취도 덜 풀린 상태에서 혼자 걸어서 화장실 가다가 복도에서 실례를 하셨다고 합니다.................한손으로는 링겔을 부여잡고 한손으로 치우시다가 옆에 있던 환자 가족분들이 그걸 보고는 치우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목욕탕 갔다온 이모란 자와 외할머니에게 뭐라고 했더니 그게 듣기 싫었나
' 왜 언니는 엄마한테만 뭐라고 하고 일 시켜? 우리가 그걸 해야해? '
이런 개지랄을 합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저 분명 똑똑히 듣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입원하신동안 집안일은 제가 했습니다. 어려서 저는 어머니가 무슨 병인지도 말안해줘서 몰랐고 학교 끝나고 맨날 병원에 있다가 집에와서 청소랑 밥이랑 빨래 뭐 이런것들을 했지요. 재입원을 몇번이나 햇지만 어머니께서 긴 투병생활 끝에 퇴원하셨을때는 저는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지요. 하나님 부처님 사은님 보다 더한 어머니가 옆에 계시니 말입니다. 긴 투병생활 때문에 저희 형편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물도 고장나서 안나오고, 수술하시고 퇴원하신지라 방이라도 따뜻해야하는데 1월 한겨울에 전기장판도 없이 피트병을 밥통으로 물 데워서 둘이 껴안고 잤습니다. 가스도 떨어져서 가스레인지는 쓸수도 없었죠. 뭐 어차피 쌀이며 반찬 이런거 하나 없으니 쓸일도 없었지만요. 그나마 전기 안끊은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어머니랑 저 둘이서 이틀에 라면 하나 밥통에 끓여먹엇으니까요. 저야 뭐 학교가서 무료급식 먹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들 배고프다고 이틀에 라면 하나 드셨습니다... 그렇게 석달 정도지나니 다행히 아는분께서 도와주시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그나마 밥은 먹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개만도 못한자들은 뭐하고 살았냐구요? 다른자들은 서울에서 매우 잘사니 잘 모르고, 큰 삼촌이란자는 4층짜리 건물 짓고 그리로 들어가더라구요........... 우리야 어떻게 살든 어쩌든 어머니 몫은 생각지도 않구요......그 후에도 몇백번이나 전화했는데 온다고만하고 돈달라면 말 돌리고 정말 가끔 외할머니 우리집에 오셔서 어머니랑 큰 소리로 싸우고 2~3만원 집어던져주고 갑니다...무슨 거지마냥 몇만원 던져주고 '나도모른다, 니 오빠랑 어떻게 해봐' 매번 같은말입니다. 언젠가 한번은 이러더군요...
'짜장면 하나 시켜줄테니 먹을래?' 그래서 집앞에 전단지에서 번호 적어와서 전화할려니 XX반점거기 큰삼촌 손자가 그러는데 맛이 없다고 다른데 시키라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 엄마 우리 XX이는 그런거 먹어본게 언젠가 몰라........'
정말 가슴아팠습니다. 지금도 저 울고 있습니다........
대학등록금도 그렇습니다.... 대학간다고 정말 사정사정사정사정 그집에가서 들어 눞고 사정하고 그래서 겨우 등록금만 받아가지고 와서 2학기 다녔고 한학기는 제가 벌어서 해결했습니다. 왜 사정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거지처럼 빌고 사정하고......
저희 어머니께서 몸이 너무 안좋으셔서 일은 도저히 하실수가 없습니다. 거의 방에서 누워계시죠.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생활비 좀 달라고 했더니만 순순히 주더군요...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 다음날이 사촌 결혼식이었답니다. 바쁘기도 하고, 소란스러워지니까 생활비 얼마 주더군요 참....
그동안 일어났던 에피소드들 일거하면 끝이 없습니다...
더이상 읊었다가는 제가 견딜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게 숨겨놓았던 것들 더 끄집어내면 참을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전에는 이런생각 가지고 살았었죠... 어차피 막장 인생 이런꼴 저런꼴 보지말고 찾아가서 다 죽여버리고 불 지르고 나도 죽자... 정말로 식칼들고 집앞까지 찾아간적이 몇번있었습니다. 모두다 다 죽여버리고 저도 그냥 죽을려고 정말 작정하고 어린나이에 술도 먹고 찾아갔었죠. 맨정신으로는 못하니까. 그때마다 저희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더라구요..... 저 역시도 그렇지만 어머니도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데 저를 잃으면 어머니가 어떨지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러던중 이건 복수가 아니다 싶더라구요....진정한 복수는 이런게 아니라 뭔가 다른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그 복수심이 제가 지금 견디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몫만 주면 해결될꺼를 별의 별 핑계를 대가며 처음에는 보상비 나오면 준다...
다음에는 보상비가 현금으로 얼마 안나오고 땅으로 거의 나온데가 땅 팔리면 준다...
다음에는 땅 팔다가 사기 당해서 우리도 먹고 살게 없다.... 그러면 4층 건물은 어떻게 지었을까?..
어떤 도움이라도 좋습니다. 법조계에 몸담고 계시다거나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분을 아시는분, 법에 상당한 지식이 있으신분..... 제발 도와주세요.... 정말 간곡히 부탁 말씀드립니다.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돈? 받으면 좋지만 못받으면 뭐 어쩔수 없는거죠... 요즘은 판매가 너무 안돼지만, 저도 이제 나이거 23이나 먹어서 전공은 아니지만 컴퓨터 조립해서 팔아 밥은 먹고다닙니다....전 다만 우리가 당한거 우리가 맘고생한거 천분의 일 이라도 돌려주고 싶습니다.
전에 저나 어머니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상속에 대해 소송을 걸려면 6개월안에 해야한다고 하더라구요... 10년도 넘었는데 그건 힘들고.... 소송걸 돈도 없구요.... 그렇다면 사기죄로 고소하라는데 뭘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 녹취도 법정에서는 효과가 없다고 하구요... 제발 도와주십시오. 머리숙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안녕하세요.
세상이 참 답답하기도 하고 힘겨워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얻고자 용기내어 글 올립니다.
지금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힘겹고 어려운 가슴속에 끙끙 숨겨놓았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냥 지나치시지 말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알고 계시다면 도와주세요.
작은 말씀 하나하나가 저에겐 커다란 도움이 될거에요...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견딜수가 없어지네요.
저는 의상을 전공하고 있는 23살 청년입니다. 갓난아기때부터 아버지가 안계셔서 어머니(54)랑 저 단둘이 20여년을 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셔서 그때부터 집안에서 거의 내쫓기다시피 하셨습니다. 단 외할아버지 만큼은 그러지 않으셨죠. 5남매인 자식중에서도 저희 어머니를 가장 안쓰러워 하셨고 예뻐 하셨죠. 다른자식들은 공부도 많이 했고, 세상 힘든일 한번 안하고 컸고 소위 말하는 성공을 했으니까요(큰나랏일도 하는 이모도 있고. 사업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항상 집안뒷바라지만 했습니다. 외할아버지댁이 과수원을 하셨는데 과수원일부터해서 다른 형제자매들 뒷바라지까지 그렇게 젊음을 보내셨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셨습니다. 가족중에서 유일한 힘이 되셨던 외할아버지를 잃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슬슬 다들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권을 쥐고계시던 할아버지였으니 다들 꼼짝못하다가 그때서야 4남매와 외할머니까지 본심이 나오더군요. 외할어버지가 돌아가신 타이밍이 참 절묘합니다. 그때까 도시계획이 한참 진행중이었거든요. 개발이 되느니 어쩌느니..그때만해도 그 지역은 그야말로 허허들판 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그 과수원 일대며 부근 전부가 이 도시의 핵심으로 변했습니다. 땅값이며 보상비야 말 안해도 아시겠죠? 그때까지만해도 저와 어머니는 과수원에 얹혀 살았습니다. 가진것도 없고 배운것도 없으니 구박과 멸시를 받으며 집안일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았죠.
근데 어느날 큰 삼촌이라는 자가 어머니께 무슨 서류 하나를 주면서 도장 찍어달라더군요. 저야 뭐 어렸으니까 아무것도 몰랐고, 저희 어머니께서는 별 생각없이 유산을 큰삼촌한테 상속한다고 하면 내야 할 세금이 줄어든다니 그냥 도장 찍어주셨죠. 도장을 찍어준지 며칠 안되서 시에서는 공사 시작한다고 과수원을 비워달라고 하더군요. 과수원에는 큰삼촌 댁만 살았습니다. 큰삼촌은 그때부터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보상비에 뭐에 뭐에 어마어마한 돈이 큰 무리없이 죄다 자기 손으로 들어오니 뭐 두려울게 없었겠죠. 며칠뒤에 집을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가족들과 외할머니 모시고 이사가더군요, 저흰 내버려두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주위 동네주민들은 다 이사가고 저희만 동네에 남겨졌습니다. 옆에서는 공사한다고 큰 차들 몇 십대가 왔다갔다하고 인부들이며 별 잡다한 사람들까지 다 왔다갔다 하는데 지은지 20년 이상은 된 흙으로 만들어진 낡아빠진 집에서 빨리 나가달라고 재촉하는 공무원 관계자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몇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동안 저희 어머니 난리가 났었죠. 왜 내 몫 안챙겨주느냐... 내 몫만 주면 나 알아서 살수 있는데 도대체 왜 안주는거냐... 그때마다 그 큰삼촌이란자 보상비가 안나왔다고 딱 잡아뗍니다. 그럼 집을 어디서 샀냐? 대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집이나 하나 얻어줘야 하지 않겠냐? 그렇게 몇 달을 울고불고 사정했더니 천만원짜리 방두개 짜리 방 하나 얻어주더군요... 자기는 3억(10년전)짜리 집 살면서...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만족하면서 어머니랑 오손도손 잘 살았습니다. 그때가 국민학교 4학년... 그후로 3년내내 저희 어머니 내 몫 달라고 울고불고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뭐 이런 상황은 어느정도 인지 짐작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때마다 매번 답은 같습니다. 보상비 나오면 준다... 처음에는 돈으로 준다고했다가 나중에는 보상이 땅으로 나온다고 땅 팔리면 준다고 말을 바꾸더군요. 3년 후, 저희 어머니께서 큰병을 얻으셨습니다. 암이었습니다. 어느정도 암이 진행된 상태라서 어머니께서는 정말 많이 울으셨답니다. 가족하나 없는 저 혼자 남기고 세상 떠나면 저세상에서도 못편할거 같다고...다행이도 3번에 걸친 재수술과 1년에 가까운 걸친 투병생활로 하늘에 정말 감사하게도 완치가 되셨습니다. 그 투병기간 동안 이 망할놈의 작자들은 단 한번 얼굴 내밀더군요... 큰 삼촌이라는 자는 어머니와 너무 많이 싸워서 아예 오지도 않았고 이모란자는 큰 나랏일하는 고위 공무원이란 사람이 아침에 외할머니랑 목욕탕 갔다가 잠깐 얼굴 비치더니 5분인가 있다가 가버렸습니다. 어머니랑 싸워서 그랬을겁니다. 그 목욕탕 갔다온사이 저희 어머니께서 대변을 며칠을 못보시다가 너무 속이 안좋아서 마취도 덜 풀린 상태에서 혼자 걸어서 화장실 가다가 복도에서 실례를 하셨다고 합니다.................한손으로는 링겔을 부여잡고 한손으로 치우시다가 옆에 있던 환자 가족분들이 그걸 보고는 치우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목욕탕 갔다온 이모란 자와 외할머니에게 뭐라고 했더니 그게 듣기 싫었나
' 왜 언니는 엄마한테만 뭐라고 하고 일 시켜? 우리가 그걸 해야해? '
이런 개지랄을 합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저 분명 똑똑히 듣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입원하신동안 집안일은 제가 했습니다. 어려서 저는 어머니가 무슨 병인지도 말안해줘서 몰랐고 학교 끝나고 맨날 병원에 있다가 집에와서 청소랑 밥이랑 빨래 뭐 이런것들을 했지요. 재입원을 몇번이나 햇지만 어머니께서 긴 투병생활 끝에 퇴원하셨을때는 저는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지요. 하나님 부처님 사은님 보다 더한 어머니가 옆에 계시니 말입니다. 긴 투병생활 때문에 저희 형편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물도 고장나서 안나오고, 수술하시고 퇴원하신지라 방이라도 따뜻해야하는데 1월 한겨울에 전기장판도 없이 피트병을 밥통으로 물 데워서 둘이 껴안고 잤습니다. 가스도 떨어져서 가스레인지는 쓸수도 없었죠. 뭐 어차피 쌀이며 반찬 이런거 하나 없으니 쓸일도 없었지만요. 그나마 전기 안끊은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어머니랑 저 둘이서 이틀에 라면 하나 밥통에 끓여먹엇으니까요. 저야 뭐 학교가서 무료급식 먹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들 배고프다고 이틀에 라면 하나 드셨습니다... 그렇게 석달 정도지나니 다행히 아는분께서 도와주시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그나마 밥은 먹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개만도 못한자들은 뭐하고 살았냐구요? 다른자들은 서울에서 매우 잘사니 잘 모르고, 큰 삼촌이란자는 4층짜리 건물 짓고 그리로 들어가더라구요........... 우리야 어떻게 살든 어쩌든 어머니 몫은 생각지도 않구요......그 후에도 몇백번이나 전화했는데 온다고만하고 돈달라면 말 돌리고 정말 가끔 외할머니 우리집에 오셔서 어머니랑 큰 소리로 싸우고 2~3만원 집어던져주고 갑니다...무슨 거지마냥 몇만원 던져주고 '나도모른다, 니 오빠랑 어떻게 해봐' 매번 같은말입니다. 언젠가 한번은 이러더군요...
'짜장면 하나 시켜줄테니 먹을래?' 그래서 집앞에 전단지에서 번호 적어와서 전화할려니 XX반점거기 큰삼촌 손자가 그러는데 맛이 없다고 다른데 시키라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 엄마 우리 XX이는 그런거 먹어본게 언젠가 몰라........'
정말 가슴아팠습니다. 지금도 저 울고 있습니다........
대학등록금도 그렇습니다.... 대학간다고 정말 사정사정사정사정 그집에가서 들어 눞고 사정하고 그래서 겨우 등록금만 받아가지고 와서 2학기 다녔고 한학기는 제가 벌어서 해결했습니다. 왜 사정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거지처럼 빌고 사정하고......
저희 어머니께서 몸이 너무 안좋으셔서 일은 도저히 하실수가 없습니다. 거의 방에서 누워계시죠.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생활비 좀 달라고 했더니만 순순히 주더군요...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 다음날이 사촌 결혼식이었답니다. 바쁘기도 하고, 소란스러워지니까 생활비 얼마 주더군요 참....
그동안 일어났던 에피소드들 일거하면 끝이 없습니다...
더이상 읊었다가는 제가 견딜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게 숨겨놓았던 것들 더 끄집어내면 참을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전에는 이런생각 가지고 살았었죠... 어차피 막장 인생 이런꼴 저런꼴 보지말고 찾아가서 다 죽여버리고 불 지르고 나도 죽자... 정말로 식칼들고 집앞까지 찾아간적이 몇번있었습니다. 모두다 다 죽여버리고 저도 그냥 죽을려고 정말 작정하고 어린나이에 술도 먹고 찾아갔었죠. 맨정신으로는 못하니까. 그때마다 저희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더라구요..... 저 역시도 그렇지만 어머니도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데 저를 잃으면 어머니가 어떨지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러던중 이건 복수가 아니다 싶더라구요....진정한 복수는 이런게 아니라 뭔가 다른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그 복수심이 제가 지금 견디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몫만 주면 해결될꺼를 별의 별 핑계를 대가며 처음에는 보상비 나오면 준다...
다음에는 보상비가 현금으로 얼마 안나오고 땅으로 거의 나온데가 땅 팔리면 준다...
다음에는 땅 팔다가 사기 당해서 우리도 먹고 살게 없다.... 그러면 4층 건물은 어떻게 지었을까?..
어떤 도움이라도 좋습니다. 법조계에 몸담고 계시다거나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분을 아시는분, 법에 상당한 지식이 있으신분..... 제발 도와주세요.... 정말 간곡히 부탁 말씀드립니다.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돈? 받으면 좋지만 못받으면 뭐 어쩔수 없는거죠... 요즘은 판매가 너무 안돼지만, 저도 이제 나이거 23이나 먹어서 전공은 아니지만 컴퓨터 조립해서 팔아 밥은 먹고다닙니다....전 다만 우리가 당한거 우리가 맘고생한거 천분의 일 이라도 돌려주고 싶습니다.
전에 저나 어머니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상속에 대해 소송을 걸려면 6개월안에 해야한다고 하더라구요... 10년도 넘었는데 그건 힘들고.... 소송걸 돈도 없구요.... 그렇다면 사기죄로 고소하라는데 뭘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 녹취도 법정에서는 효과가 없다고 하구요... 제발 도와주십시오. 머리숙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