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1]

블루엠200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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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1]


그 집을 소개 받은 것은 잘 알고 지내던 남자에 의해서였다.

캐나다의 연로한 사람들이 주로 사는,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아주 싼 임대아파트였다.

임대 아파트라고 해도 넓고 건물도 깨끗했다. 조금 꺼려진 것은

이웃이 거의 모두 노인들이었다는 것. 그것 이외에는 돈을 절약해야 하는 유학생으로서 가릴 것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가까웠고, 특히 조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자리에서 두달치를 선불로 냈다.

관리인은 내가 살 방 하나에 모든 게 다 들어있는 우리식으로 하면 원룸을 보여 주었다.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그 방은 아주 빨간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14평 조금 넘는 그 방에 가구라고는 소파하나가 전부였다.

빨간 카펫위의 소파.

8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는 인자하게 웃으셨다.

왜 그 집에서 나가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단지 관리인에게 이사 올 때에 저 카펫을 걷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었다.

관리인은 내게 계속 아주 운이 좋다라고 말을 계속했다.


이사하던 날 카펫이 걷어진 방은 마치 시골 초등학교의 교실처럼 나무가 깔려 있었다.

비록 왁스칠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빨간 카펫보단 나았고, 시멘트나 대리석 바닥일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기분을 안정시켰다.

주문한 침대가 오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락스로 청소한 그 차가운 1층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야만 했다.


그날.

문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문이 이렇게 가까이 있지 않을 텐데.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마치 문이 나를 덮칠 것처럼 가까이 있었다.


다음날 침대가 들어오자 전날 이사하느라, 또 이상한 꿈 탓에 찌뿌둥한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어학원에 가서 수업을 받고 근처 슈퍼에서 이탈리안 브레드를 사왔다.

오븐에 빵을 넣고 살짝 구운 후에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new age음악이 흘러 나왔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아마도 새로운 집에 이사 와서 적응을 하지 못해서일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새집이라 적응을 못해서이겠지.

방 불을 켜고, 주방불도 켜고, 들어오는 현관 불도 켰다.

여름이라 창문은 다 열었지만 1층이라 밖에서 보일까 커텐은 모두 내린 상태였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공부를 하려고 자리에 앉았더니, 다리 많은 벌레가 나왔다. 돈벌레?

다리가 끔찍했지만 죽일 수밖에 없었다.

벌레를 눌러 죽이자 회색도 아닌, 갈색도 아닌 물이 젖었다.

1층은 이래서 안 좋아.

얼굴을 찌푸리고서 기분이 상해 침대에 누웠다.

TV를 켰다가 다시 껐다.


침대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할머니의 빨간 카펫이 깔려 있었다.

할머니의 소파가 내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침대가 너무 빨리 돌면서 날아 다녔다.

할머니의 소파는 끝까지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잠에서 깨고서 나는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얼어 있었다.

아침도 되기 전인지 어둡고 깜깜했다.

다시 잠들 수도 없고, 일어나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간신히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서 숨도 죽였다.

계속 할머니의 소파가 침대 옆에 있는 것 같아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 연상되는 것은 할머니의 소파였다.


내가 지금 몸이 허한가?

혼자 사니까, 너무 마음이 약해졌나 보다.



-그거 알아?

--뭘?

-집에도 주인이 따로 있대.

방에도 그렇고.

--무슨 말이야?

-내가 그렇게 들어가고 싶은 집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주인이 안 주는 거야. 웃기지?

근데, 세상에 나한테는 안 주더니 덜컥 딴 사람에게 판 거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아냐, 아냐.

그때 그 기숙사 기억해?

그 기숙사 3층 말야.

여름방학 때 같은 유닡에 있는 사람들이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고 신고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까 시체가 썩고 있었대잖아.

--정말?

-그 방 주인도, 그 방에서 나와서 4층에 오려고 그렇게 한학기 동안 애를 썼대잖아. 그런데, 세상에나 방학하고 집에 간줄 알았는데, 거기서 자살했대.

그런거 보면 다 주인이 따로 있다니까.

--무슨 이야기 같다. 그 왜 있잖아. 바다에서 배를 난파시키는.

-아, 로렐라이. 그래 바다의 요정들처럼 방의 요정이 있나 보지?

--암튼 기분 나쁘다. 괜히 그런 얘기 들었잖아.


축 처져 있어서인지 친구는 소개팅을 시켜 준다고 했다.

-그사람은 콜하면 바로라니까, 내일하자. 아파트 앞에서 8시에 기다릴게.


그날 밤

나는 또다시 꿈을 꾸었다.

침대 옆에는 붉은 카펫도, 할머니의 소파도 없었지만, 작은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항아리는 누워 있는 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내 기다란 머리카락부터 그 항아리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깨었다.



남자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다.

깡마른 체격에 안경을 썼고 키는 보통 크기였다.

그러나 정말 특이한 점은 그 사람이 심령술사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렸을 때는 친구들로부터 굉장한 무시를 당했었는데, 20대 후반, 어느 날 자신의 손에 영적인 기(氣)가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 세계를 다니면서 손으로 사람들을 치료해 준다는 것이다.

나는 황당해서 친구를 보았다. 친구는 무시하라는 식으로 웃어 넘겼다.

이런 사람을 소개해 주다니.

화장실에서 친구도 자신의 친구에게서 소개받은 거라고 웃으며 변명했다. 

24시간 운영되는 차이나 타운의 한 중국까페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조각 케익을 먹었다.

그리고 24시간 운영되는 중국 레스토랑에 갔다.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레스토랑 안은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뭘 먹을까? 친구의 남자가 묻자

친구는 랍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커다란 랍스터가 새까만 머리와 꼬리와 함께 가운데에는 막 썰어낸 랍스터 살로 가득했다.     

랍스터의 까만 눈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랍스터의 촉수가 계속 움직여 댔다.

친구와 남자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살이 사라지자 랍스터 머리와 꼬리로 스프를 끓여왔다. 랍스터는 이제 빨갛게 변해 있었다. 빨간 랍스터의 눈은 여전히 부릅떠 있었다. 


돈을 물 쓰듯 쓰는 두 남자에게 친구는 거의 넘어가 있었다.

- 나 먼저 갈게. 저사람에게 바래다 달라고 해.


새벽인데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나는 할 수 없이 그 심령술사의 차에 탈 수 밖에 없었다.

심령술사의 차의 앞유리에는 종이 달려 있었다.

종은 내가 타자 갑자기 울렸다.

종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거 알아요?

한국에서는 무당들이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영혼을 부를 때 흔든다는 것.


나는 그 남자에게 저 종소리가 무척 거슬린다고 말했다.

남자는 그냥 웃어 넘겼다.

그 남자는 캐다다의 동쪽 끝 온타리오 호수근처의 공원으로 차를 운전했다.

공원에는 아무도 업었다.

너무도 넓은 하늘과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고, 바다 같은 호수가 끝없이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보름달이네.

보름달을 바라보던 내 얼굴 위로 남자의 입술이 내려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종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너무 안 좋아.

항아리도 생각났다.

나는 커다랗게 저항하지 않고, 상황을 어떻게든 잘 풀어나가려 했다.

남자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나는 너무 피곤하다고 하고 아파트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남자도 피곤했는지 그날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아파트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게 내 뒤에 뭔가가 있다라고 말을 덧붙였다.


새벽 6시.

조용한 복도 끝까지 나는 소리를 죽여 걸어갔다.

내 방. 102호.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화장실에서는 요란하게 변기 물이 내려가고 있었고,

TV는 최대한 볼륨이 켜진 채 무슨 종교방송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겁을 먹어서, 문을 연 현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현관의 불을 켜고, 화장실의 불도 켰다. 열려진 화장실 문의 뒤에 누군가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

변기가 왜 쉴새없이 내려가는지 보니 밸브가 눌려져 있었다. 밸브를 올리고 혹시나 화장실 앞의 붙박이 옷장에 누군가가 있는지 뒤로 물러서서 열었다. 옷뿐이었다. TV를 끄고 바들바들 떨었다.

왜 TV가 켜있지?

이 TV는 알람이 안 되는데.

왜 변기가 계속 내려가지?

나가기 전에 화장실에 안 갔는데.


방 공기는 축축하고 싸늘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 남자를 만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그 후 방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했다.

소파도 나타나지 않았고, 항아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이 벽에 걸어 놓은 우정 모양의 트리전구 안에 꽂혀 있었다.



방이 말을 하는 것일까.

방주인이 정말 따로 있는 것일까.


한국으로 오려고 방을 내 놓았을 때, 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아예 없었다.

그 뒤 누가 그 집에 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