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동 공원(10.21) 동구릉 답사가 끝나고 광나루님의 인도로 망우리 묘지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근대사의 유명한 분들의 묘지가 있어 묘도 구경하고 잠시나마 어려운 시대를 살가가신 그 분들의 업적을 느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동구릉 앞에서 버스를 타니 한번에 갈 수 있는데 대신 정류장과 정류장 사이어서 조금 걸어서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큰길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린 것같았으며 많은 주민들이 그 곳을 산책로겸 운동겸 해서 다니시고 계셨다. 주차장 있는 곳에 망우산공원안내도가 있었다. 안내도 가까운 곳에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시인의 묘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으나 찾기가 쉽지 않다고 광나루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신 길가에 바위를 갖다놓고 목마와 숙녀 싯귀와 함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거기서 걸어가니 제일 먼저 만나는 유명한 분은 설산 장덕수 선생님이시다. 다녀올 사람만 다녀오라고 해서 기회다 싶어서 가보았다. 다음에는 최근에 과거사진상위원회에서 심사결과 복권된 죽산 조봉암 선생님의 묘소를 갔다. 정치가 무엇인지 묘비만 있고 뒷면에 글이 없다. 거기서 더 가니 만해 한용운선생님이 부인과 함께 묻혀 있었다. 한용운 선생님은 아마도 태고종으로 봉원사에 원적을 두셨는 지도 모르겠다. 일제시대에는 결혼하신 승려가 많았고 순천의 선암사에도 유명한 분의 아버지가 계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탑공공원에도 만해용운당대선사비가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묘도 그곳에 있었다. 봉분은 보이지 않고 돌과 시멘트 같은데 사각형 같은 모양을 꾸미고 동심여선이란 글이 적혀 있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33세에 돌아가신 것으로 적혀 있었는데 어떻게 돌아가셨나를 살펴보니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한마디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린이를 위하다가 짧고 굵게 살다 가신 것이다. 그 때 정한 어린이날이 지금도 사용하고 일본도 이를 본받고 있다고 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만드신 색동회는 아직도 존재하며 어린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일 위 부근에 지석영 선생님의 묘가 있었는데 아주 전망이 좋았다. 그 옆에 묘 하나가 더 있어서 누군가 했더니 아들의 묘로 확인이 되었다. 종두법을 우리나라에 전파하여 그 지긋 지긋한 천연두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구하게 한 분이시다. 망우동 높은 곳에 아들과 함께 누워 우리가 잘 살기를 살펴보고 계시는 것같았다. 내려오는 길은 건너편 길로 내려 왔는데 내려오다 올라오는 길과 만났다. 주차장에서 오던 길이 아닌 계단으로 내려가면 버스정류장 지름길로 갈 수 있다고 광나루님께서 말씀하셔서 그리 내려 왔는데 수월하게 내려왔다. 청량리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전철을 타고 안양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마음 속이 새로운 지식으로 꽉차가는 하루여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여행] 망우동 공원
망우동 공원(10.21)
동구릉 답사가 끝나고 광나루님의 인도로 망우리 묘지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근대사의 유명한 분들의 묘지가 있어 묘도 구경하고 잠시나마 어려운 시대를 살가가신 그 분들의 업적을 느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동구릉 앞에서 버스를 타니 한번에 갈 수 있는데 대신 정류장과 정류장 사이어서 조금 걸어서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큰길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린 것같았으며 많은 주민들이 그 곳을 산책로겸 운동겸 해서 다니시고 계셨다.
주차장 있는 곳에 망우산공원안내도가 있었다.
안내도 가까운 곳에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시인의 묘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으나 찾기가 쉽지 않다고 광나루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신 길가에 바위를 갖다놓고 목마와 숙녀 싯귀와 함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거기서 걸어가니 제일 먼저 만나는 유명한 분은 설산 장덕수 선생님이시다.
다녀올 사람만 다녀오라고 해서 기회다 싶어서 가보았다.
다음에는 최근에 과거사진상위원회에서 심사결과 복권된 죽산 조봉암 선생님의 묘소를 갔다.
정치가 무엇인지 묘비만 있고 뒷면에 글이 없다.
거기서 더 가니 만해 한용운선생님이 부인과 함께 묻혀 있었다.
한용운 선생님은 아마도 태고종으로 봉원사에 원적을 두셨는 지도 모르겠다.
일제시대에는 결혼하신 승려가 많았고 순천의 선암사에도 유명한 분의 아버지가 계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탑공공원에도 만해용운당대선사비가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묘도 그곳에 있었다.
봉분은 보이지 않고 돌과 시멘트 같은데 사각형 같은 모양을 꾸미고 동심여선이란 글이 적혀 있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33세에 돌아가신 것으로 적혀 있었는데 어떻게 돌아가셨나를 살펴보니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한마디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린이를 위하다가 짧고 굵게 살다 가신 것이다.
그 때 정한 어린이날이 지금도 사용하고 일본도 이를 본받고 있다고 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만드신 색동회는 아직도 존재하며 어린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일 위 부근에 지석영 선생님의 묘가 있었는데 아주 전망이 좋았다.
그 옆에 묘 하나가 더 있어서 누군가 했더니 아들의 묘로 확인이 되었다.
종두법을 우리나라에 전파하여 그 지긋 지긋한 천연두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구하게 한 분이시다.
망우동 높은 곳에 아들과 함께 누워 우리가 잘 살기를 살펴보고 계시는 것같았다.
내려오는 길은 건너편 길로 내려 왔는데 내려오다 올라오는 길과 만났다.
주차장에서 오던 길이 아닌 계단으로 내려가면 버스정류장 지름길로 갈 수 있다고 광나루님께서 말씀하셔서 그리 내려 왔는데 수월하게 내려왔다.
청량리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전철을 타고 안양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마음 속이 새로운 지식으로 꽉차가는 하루여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