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타임이 지나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넓은 지붕 밑으로 몰려다니며 씨끄럽게 굴고 있다. 어른들은 지붕 바로 밑 햇볕이 들어오기 어렵게 뚫어 놓은 창문으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믓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이제 버닝타임이 지나고 태양도 인간들에 대한 처벌의 눈빛을 거두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어제와 오늘을 무사히 살아있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아무 상관없는 수다로 축하 할 것이다. 그는 마을의 지도자가 마련해 준 숙소에서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었다. 젊고 그런대로 예뻐 보이는 여인이 그의 발 밑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잘박거리며 물소리를 내고 있다.
"이봐, 이제 그만 해." "싫으..... 세요.....?" "발까지 닦으라고 하던가?" "그건..... 아니요." "잠자는데 방해되니까 그만 가 봐."
그는 삼일 전 멀쩡한 몸으로 마을을 나섰지만 어제 돌아올 때는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몸을 엉망으로 만들어왔다. 그는 얼굴까지 덮은 지저분한 천을 치우며 얼굴을 드러냈다. 그걸 본 여자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 상처가...." "몸에 난 상처도 이제 조금 있으면 다 아물거니까 어서 가." "닦아야 해요." "나가."
여자는 하는 수 없이 물이 담겨진 대야를 들고 나가며 아쉬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지만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상처를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하는데 밖에서 왔다갔다 하며 떠드는 아이들 소리에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 소리는 그의 머리속에서 희미한 영상으로 바뀌어 그가 아직 기억하는 회상으로 그의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가는 또 다시 그 꿈을 꿀 것만 같다. 그 꿈만큼은 정말 싫다.
한 달 전에 비가 왔었는데...... 비라도 온다면 머리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
아무리 비가 와도 젖지 않을 것 같은 땅을 건너 어떤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는 아지랑이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기 위해 얼굴까지 천으로 덮은 그는 스파키가 잠을 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작은 마을로 거의 다다랐다. 버닝타임은 여행자들에게는 발을 묶어 놓는 가장 귀찮은 것이다. 12시부터 오후 4시. 아무리 갈 길이 급한 여행자라 하더라도 그 시간이 되면 작은 천막으로라도 그늘을 만들어서 걸음을 멈추고 태양으로부터 숨는다. 아직 그 버닝타임이 지나지 않은 시간에 누군가 마을 입구쪽으로 서둘러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입구가 가까워지면서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입구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멈추었다. 마을을 누군가 지키고 있을 것이고 그의 허락 없이는 이 마을로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멈춰!"
사내는 이미 멈췄지만 한 발 늦게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그늘에서 나타난 깡마른 사내는 자신의 가는 몸을 충분히 덮을 만한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는 판자를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누구냐?"
깡마른 몸에 쇠로 만든 창조차 힘겹게 들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은 전혀 위협을 주지 못했다. 그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는지 목소리에 한 껏 힘을 주었다.
"누구냐고 묻잖아!" "이 곳이 메탈타운인가?" "그렇다. 바로 여기가 메탈타운이다. 그것도 모르고 왔나?"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다오." "이...... 썅..... 누구냐고 물었잖아!" "..........."
사내는 얼굴을 가린 천을 조금 내리더니 허리에 찬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웃었다.
"난 엔젤마을의 지도자 카란의 아들 카얀이다.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뭐? 엔...... 젤.... 마을?" "시간이 없다.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이렇게 말한 사내는 깡마른 문지기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고 문지기는 창을 얼른 앞으로 내밀어서 위협한다는 것이 그만 너무 내미는 바람에 창 끝이 사내의 가슴을 조금 파고 들고 말았다. 바로 사내의 가슴팍에 동그란 모양으로 피가 베어나왔지만 사내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난 엔젤마을에서 왔다. 지도자를 ....."
그때, 뒤에 숨어있던 다른 문지기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야, 이 병신아! 왜 찾냐고 물어야지. 저 병신새끼." "에이, 썅~ 왜 왔어?" "그건 당신들 지도자를 만나 얘기하겠다. 안내 해 다오."
문지기는 동료들에게 욕을 얻어먹자 화가 났고 갑자기 예고없이 찾아온 사내에게 그 탓을 돌렸다.
"먼저 말해. 왜 왔어?" "멍청하군." "뭐, 뭐?"
문지기가 눈을 크게 뜨며 따지려듯 덤비자 사내는 문지기의 몸 옆으로 돌아 마을 안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문지기까지 배치한 마을의 경우 지도자의 거처는 마을 중앙에 위치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내는 얼마 뛰지도 못하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에게 가로막혔다.
"그만."
검은 옷은 여유있게 말했지만 그 눈빛은 달리던 사내를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무슨 일인지 말하라."
이렇게 말하며 검은 옷은 사내의 드러난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돌파하겠다." "얼마든지."
사내는 허리를 짚었지만 칼이 없다. 정문에서 문지기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던져놓은 것이 생각나며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어쩌면 잘 된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도 맨손이고 자신이 이 마을에서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까.
"합!"
사내가 먼저 돌진하며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어 뚫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 주먹에 힘을 주며 밑으로 내렸다. 검은 옷은 싱글 웃었다.
"이얍!"
검은 옷 가까이 간 사내는 어깨를 갑자기 뒤로 빼며 준비한 주먹을 위로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예상한 듯 뒤로 물로서며 주먹을 피하고는 그대로 발 끝으로 사내의 턱을 공격했다. 사내는 놀라며 얼른 몸을 옆으로 굴려 피하고는 다시 검은 옷의 뒤로 돌아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하자 검은 옷은 다시 뒤로 물러서며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 옷이 이제 제대로 해 보려는 듯 자세를 취하려는데 사내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다시 처음 가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 이봐!" "나중에 보자."
사내는 이 말을 던지며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눈 앞에 높은 건물이 보였다. 분명 저 집이 지도자의 집일 것이다. 검은 옷이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저 자식 잡앗! 스파키가 위험해!"
스파키란 말에 사내가 주춤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멈추면 붙잡힐 뿐이다. 지금 잡히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사내는 이를 악 물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그는 몸을 그대로 굴렸고 덕분에 집 안에서 벽에 부딪히지 않고 멈출 수 있었다.
"지도자님 여기 계십니까?"
사내는 소리치며 주변을 살폈다. 이 정도의 소란을 떨며 들어오고 소리까지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지금 없나?"
그때 문 밖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꼼짝없이 지도자가 돌아올 때까지 잡혀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는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발만 빼고 온 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사람이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그에게 다가갈 시간이 없었다. 문을 박차며 뛰어들어온 검은 옷이 목에 칼을 들이대며 눈을 번뜩였다.
검은 옷은 두건을 벗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나자 카얀의 머리속에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카얀의 머리에 씌워진 지저분한 천을 치우고는 귀 뒤를 살폈다. 하마터면 귀가 떨어질 뻔한 상처자국이 보였다. 그것은 노인이 어린 카얀에게 싸움을 가르쳐 주면서 생긴 흉터였다. 그 흉터를 확인한 노인의 얼굴이 환해지며 큰 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하하. 카얀. 맞구나. 이렇게 크다니...... 정말 잘 왔다. 하하하하" "이거 안풀어주세요?" "아, 맞아."
노인이 쪼그리고 앉아 애벌레가 되어버린 카얀을 풀어주는 동안 침대에 죽은 것처럼 누워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안돼!" "아차, 이거 손님이 계신 것도 잊고......"
노인은 다른 사람에게 카얀을 풀어주라고 손짓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벌떡 일어난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한숨을 크게 쉬더니 일어서서는 몸에 걸친 붕대를 풀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짧은 꿈이었지만 흠뻑 흘려버린 땀 때문에 붕대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그때 문 한쪽에서 그의 발을 닦던 여자가 얼른 뛰어오더니 그의 손을 멈추게 하며 자신이 붕대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보던 노인은 전부에게 말했다.
"다들 나가라. 아, 그놈은 여기 놔두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노인은 몸을 돌려 카얀을 일으키며 데리고 나갔다.
"저....... 땀이....... 닦아드릴까요?" "..........." "닦아도 돼요?" "무슨 일이지? 전부 들어와서는." "전 몰라요." "물이나 줘. 목이 마르군." "네."
그가 무언가를 시키자 여자는 머리속이 하애졌다. 너무 기뻐서 미칠것만 같았다.
"그래.... 카얀...... 정말 많이 컸구나. 허허허허." "허허는 무슨.... 허헙니까?" "녀석, 이제 그만 풀지 그러냐. 내가 미안하다고 아까부터....." "나 첨 봤을 때부터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조금 닮았다는 생각은 했지." "그럼 그때 물어봤어야죠." "네가 먼저 공격했잖느냐. 하긴.... 네 자세를 보며 혹시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 "많이 늙으셨군요."
그 말에 키에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카얀에게 물을 더 따라주었다. 카얀은 조심스럽게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도자가 머루르기엔 작아보였다.
"그런데 왜 여기 계십니까? 전 저기에 아저씨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럴 사정이 있다. 자, 엔젤마을엔 물이 귀할텐데. 많이 마셔두거라. 헌데..... 어쩐 일이냐? 네 애비가 허락하지 않을텐데." "이제 그만 좀 싸우세요. 그게 언제적 일인데....." "이놈아. 어떻게 그 일을 잊는단 말이냐? 난 지금도 혼자 살고 있는데." "어머님께서도...."
카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된 키에르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급한 일이 있어보이던데." "이곳에 스파키란 사람이 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냐?" "아저씨만 모르고 계시군요. 그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인근 마을에서는 전부 다 알고 있습니다." "벌써?" "메탈타운도 다른 마을에 사람 심었잖아요." "엥? 그럼 여기 엔젤타운의 스파이가 있다는거냐? 이런..... 네 애비는 아직도 그렇게 치사하냐?" "............"
카얀이 무표정이 되며 아무 말이 없자 키에르는 아차 하며 자신의 주둥아리를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나게 때리고는 얼른 화재를 바꾸었다.
"그 사람은 왜 찾냐?" "저희 마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젠데? 네 애비가 요즘 힘이 없냐?" "아저씨." "아아, 알았다. 이놈의 주둥아리가......"
키에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술을 벌주려다 손을 멈추었다. 카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키에르도 오랜만에 보는 카얀이기에 반가웠던 마음을 잠시 누르며 심각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설마. 네 애비가....... 카란한테 무슨 일이......." "제 아내가 납치당했습니다." "너 장가갔냐?" "........." "누구짓이냐?" "마을 북동쪽의 돌연변이들 짓입니다." "돌연변이? 그 짐승들이 네 안사람을 데려갔단 말이야?"
키에르는 놀라움의 연속을 당했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카얀이 벌써 장가를 갔다고 하더니 그 안사람이 납치를 당했고 그 원흉이 지능이 거의 없는 돌연변이들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스파키의 전설 - 1화 - 2424년 1편
서기 2424년.
버닝타임이 지나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넓은 지붕 밑으로 몰려다니며 씨끄럽게 굴고 있다.
어른들은 지붕 바로 밑 햇볕이 들어오기 어렵게 뚫어 놓은 창문으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믓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이제 버닝타임이 지나고 태양도 인간들에 대한 처벌의 눈빛을 거두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어제와 오늘을 무사히 살아있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아무 상관없는 수다로 축하 할 것이다.
그는 마을의 지도자가 마련해 준 숙소에서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었다.
젊고 그런대로 예뻐 보이는 여인이 그의 발 밑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잘박거리며 물소리를 내고 있다.
"이봐, 이제 그만 해."
"싫으..... 세요.....?"
"발까지 닦으라고 하던가?"
"그건..... 아니요."
"잠자는데 방해되니까 그만 가 봐."
그는 삼일 전 멀쩡한 몸으로 마을을 나섰지만 어제 돌아올 때는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몸을 엉망으로 만들어왔다.
그는 얼굴까지 덮은 지저분한 천을 치우며 얼굴을 드러냈다.
그걸 본 여자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 상처가...."
"몸에 난 상처도 이제 조금 있으면 다 아물거니까 어서 가."
"닦아야 해요."
"나가."
여자는 하는 수 없이 물이 담겨진 대야를 들고 나가며 아쉬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지만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상처를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하는데 밖에서 왔다갔다 하며 떠드는 아이들 소리에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 소리는 그의 머리속에서 희미한 영상으로 바뀌어 그가 아직 기억하는 회상으로 그의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가는 또 다시 그 꿈을 꿀 것만 같다.
그 꿈만큼은 정말 싫다.
한 달 전에 비가 왔었는데......
비라도 온다면 머리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
아무리 비가 와도 젖지 않을 것 같은 땅을 건너 어떤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는 아지랑이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기 위해 얼굴까지 천으로 덮은 그는 스파키가 잠을 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작은 마을로 거의 다다랐다.
버닝타임은 여행자들에게는 발을 묶어 놓는 가장 귀찮은 것이다.
12시부터 오후 4시.
아무리 갈 길이 급한 여행자라 하더라도 그 시간이 되면 작은 천막으로라도 그늘을 만들어서 걸음을 멈추고 태양으로부터 숨는다.
아직 그 버닝타임이 지나지 않은 시간에 누군가 마을 입구쪽으로 서둘러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입구가 가까워지면서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입구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멈추었다.
마을을 누군가 지키고 있을 것이고 그의 허락 없이는 이 마을로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멈춰!"
사내는 이미 멈췄지만 한 발 늦게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그늘에서 나타난 깡마른 사내는 자신의 가는 몸을 충분히 덮을 만한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는 판자를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누구냐?"
깡마른 몸에 쇠로 만든 창조차 힘겹게 들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은 전혀 위협을 주지 못했다.
그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는지 목소리에 한 껏 힘을 주었다.
"누구냐고 묻잖아!"
"이 곳이 메탈타운인가?"
"그렇다. 바로 여기가 메탈타운이다. 그것도 모르고 왔나?"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다오."
"이...... 썅..... 누구냐고 물었잖아!"
"..........."
사내는 얼굴을 가린 천을 조금 내리더니 허리에 찬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웃었다.
"난 엔젤마을의 지도자 카란의 아들 카얀이다.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뭐? 엔...... 젤.... 마을?"
"시간이 없다.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이렇게 말한 사내는 깡마른 문지기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고 문지기는 창을 얼른 앞으로 내밀어서 위협한다는 것이 그만 너무 내미는 바람에 창 끝이 사내의 가슴을 조금 파고 들고 말았다.
바로 사내의 가슴팍에 동그란 모양으로 피가 베어나왔지만 사내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난 엔젤마을에서 왔다. 지도자를 ....."
그때, 뒤에 숨어있던 다른 문지기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야, 이 병신아! 왜 찾냐고 물어야지. 저 병신새끼."
"에이, 썅~ 왜 왔어?"
"그건 당신들 지도자를 만나 얘기하겠다. 안내 해 다오."
문지기는 동료들에게 욕을 얻어먹자 화가 났고 갑자기 예고없이 찾아온 사내에게 그 탓을 돌렸다.
"먼저 말해. 왜 왔어?"
"멍청하군."
"뭐, 뭐?"
문지기가 눈을 크게 뜨며 따지려듯 덤비자 사내는 문지기의 몸 옆으로 돌아 마을 안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문지기까지 배치한 마을의 경우 지도자의 거처는 마을 중앙에 위치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내는 얼마 뛰지도 못하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에게 가로막혔다.
"그만."
검은 옷은 여유있게 말했지만 그 눈빛은 달리던 사내를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무슨 일인지 말하라."
이렇게 말하며 검은 옷은 사내의 드러난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돌파하겠다."
"얼마든지."
사내는 허리를 짚었지만 칼이 없다.
정문에서 문지기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던져놓은 것이 생각나며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어쩌면 잘 된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도 맨손이고 자신이 이 마을에서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까.
"합!"
사내가 먼저 돌진하며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어 뚫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 주먹에 힘을 주며 밑으로 내렸다.
검은 옷은 싱글 웃었다.
"이얍!"
검은 옷 가까이 간 사내는 어깨를 갑자기 뒤로 빼며 준비한 주먹을 위로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예상한 듯 뒤로 물로서며 주먹을 피하고는 그대로 발 끝으로 사내의 턱을 공격했다.
사내는 놀라며 얼른 몸을 옆으로 굴려 피하고는 다시 검은 옷의 뒤로 돌아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하자 검은 옷은 다시 뒤로 물러서며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 옷이 이제 제대로 해 보려는 듯 자세를 취하려는데 사내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다시 처음 가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 이봐!"
"나중에 보자."
사내는 이 말을 던지며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눈 앞에 높은 건물이 보였다.
분명 저 집이 지도자의 집일 것이다.
검은 옷이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저 자식 잡앗! 스파키가 위험해!"
스파키란 말에 사내가 주춤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멈추면 붙잡힐 뿐이다.
지금 잡히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사내는 이를 악 물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그는 몸을 그대로 굴렸고 덕분에 집 안에서 벽에 부딪히지 않고 멈출 수 있었다.
"지도자님 여기 계십니까?"
사내는 소리치며 주변을 살폈다.
이 정도의 소란을 떨며 들어오고 소리까지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지금 없나?"
그때 문 밖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꼼짝없이 지도자가 돌아올 때까지 잡혀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는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발만 빼고 온 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사람이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그에게 다가갈 시간이 없었다.
문을 박차며 뛰어들어온 검은 옷이 목에 칼을 들이대며 눈을 번뜩였다.
"누구냐?"
"자, 잠깐!"
"이렇게 쳐들어 오고도 무사하길 바라진 않겠지."
"잠깐. 내 말좀...."
"묶어라."
검은 옷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에 서 있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사내의 팔과 다리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곧 애벌레처럼 된 그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이제 괜찮겠지."
"이런 경우가...."
"네놈이 지금 경우를 찾나? 이 더러운 침입자 자식."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사내가 묶인 상태에서도 당황하거나 겁먹지 않고 눈을 반짝이자 검은 옷은 무언가 옛생각이 스쳤다.
혹시 하는 마음에 물었다.
"누구냐? 어디서 왔나?"
"난 엔젤 마을에서 왔소. 그 마을 지도자 카란의 아들 카얀이오."
그때 처음 이 자의 소개를 받은 문지기가 헐떡이며 들어왔다.
검은 옷은 뒤돌아 서며 그 문지기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힘껏 후려쳤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쓰러진 침입자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많이 컸구나. 카얀."
"에? 아..저....씨?"
"그래, 나다. 이놈.... 정말 몰라보겠구나."
"이것 좀 풀어요."
"안돼."
"에? 아저씨. 저라니까요."
"네가 진짜인지 확인을 해야겠다."
검은 옷은 두건을 벗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나자 카얀의 머리속에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카얀의 머리에 씌워진 지저분한 천을 치우고는 귀 뒤를 살폈다.
하마터면 귀가 떨어질 뻔한 상처자국이 보였다.
그것은 노인이 어린 카얀에게 싸움을 가르쳐 주면서 생긴 흉터였다.
그 흉터를 확인한 노인의 얼굴이 환해지며 큰 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하하. 카얀. 맞구나. 이렇게 크다니...... 정말 잘 왔다. 하하하하"
"이거 안풀어주세요?"
"아, 맞아."
노인이 쪼그리고 앉아 애벌레가 되어버린 카얀을 풀어주는 동안 침대에 죽은 것처럼 누워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안돼!"
"아차, 이거 손님이 계신 것도 잊고......"
노인은 다른 사람에게 카얀을 풀어주라고 손짓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벌떡 일어난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한숨을 크게 쉬더니 일어서서는 몸에 걸친 붕대를 풀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짧은 꿈이었지만 흠뻑 흘려버린 땀 때문에 붕대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그때 문 한쪽에서 그의 발을 닦던 여자가 얼른 뛰어오더니 그의 손을 멈추게 하며 자신이 붕대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보던 노인은 전부에게 말했다.
"다들 나가라. 아, 그놈은 여기 놔두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노인은 몸을 돌려 카얀을 일으키며 데리고 나갔다.
"저....... 땀이....... 닦아드릴까요?"
"..........."
"닦아도 돼요?"
"무슨 일이지? 전부 들어와서는."
"전 몰라요."
"물이나 줘. 목이 마르군."
"네."
그가 무언가를 시키자 여자는 머리속이 하애졌다.
너무 기뻐서 미칠것만 같았다.
"그래.... 카얀...... 정말 많이 컸구나. 허허허허."
"허허는 무슨.... 허헙니까?"
"녀석, 이제 그만 풀지 그러냐. 내가 미안하다고 아까부터....."
"나 첨 봤을 때부터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조금 닮았다는 생각은 했지."
"그럼 그때 물어봤어야죠."
"네가 먼저 공격했잖느냐. 하긴.... 네 자세를 보며 혹시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
"많이 늙으셨군요."
그 말에 키에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카얀에게 물을 더 따라주었다.
카얀은 조심스럽게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도자가 머루르기엔 작아보였다.
"그런데 왜 여기 계십니까? 전 저기에 아저씨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럴 사정이 있다. 자, 엔젤마을엔 물이 귀할텐데. 많이 마셔두거라. 헌데..... 어쩐 일이냐? 네 애비가 허락하지 않을텐데."
"이제 그만 좀 싸우세요. 그게 언제적 일인데....."
"이놈아. 어떻게 그 일을 잊는단 말이냐? 난 지금도 혼자 살고 있는데."
"어머님께서도...."
카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된 키에르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급한 일이 있어보이던데."
"이곳에 스파키란 사람이 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냐?"
"아저씨만 모르고 계시군요. 그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인근 마을에서는 전부 다 알고 있습니다."
"벌써?"
"메탈타운도 다른 마을에 사람 심었잖아요."
"엥? 그럼 여기 엔젤타운의 스파이가 있다는거냐? 이런..... 네 애비는 아직도 그렇게 치사하냐?"
"............"
카얀이 무표정이 되며 아무 말이 없자 키에르는 아차 하며 자신의 주둥아리를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나게 때리고는 얼른 화재를 바꾸었다.
"그 사람은 왜 찾냐?"
"저희 마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젠데? 네 애비가 요즘 힘이 없냐?"
"아저씨."
"아아, 알았다. 이놈의 주둥아리가......"
키에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술을 벌주려다 손을 멈추었다.
카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키에르도 오랜만에 보는 카얀이기에 반가웠던 마음을 잠시 누르며 심각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설마. 네 애비가....... 카란한테 무슨 일이......."
"제 아내가 납치당했습니다."
"너 장가갔냐?"
"........."
"누구짓이냐?"
"마을 북동쪽의 돌연변이들 짓입니다."
"돌연변이? 그 짐승들이 네 안사람을 데려갔단 말이야?"
키에르는 놀라움의 연속을 당했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카얀이 벌써 장가를 갔다고 하더니 그 안사람이 납치를 당했고 그 원흉이 지능이 거의 없는 돌연변이들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