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이란 무엇인가?

헬렌마르티나2007.11.09
조회510

에구 죄송합니다. 말을 하다 정작 중요한 영생에 대한 부분이 빠져 다시 한번 추가해서 올립니다. 죄송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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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장엔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로 영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정말 짧은 구절이죠? 이게 133 전체 장입니다. ㅋ 하지만 이글속엔 엄청난 말이 숨겨져 있죠.

이것에 대해 한번 설명 해볼께요 ^^

(성경구절에 의한 태클 환영합니다 단 어거지식 태클 사양합니다.)

 

형제들끼리 서로 연합하고 기쁠때나 슬플때나 함께 하는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답겠는가라는 말이 나오고 중략해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란 복을 주시겠다고 명령 하시죠 ^^ 그럼 여호와께서 주시겠다는 영생은 무엇을까요?

 

만약 여러분들께 위글에서의 영생이란 말을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영원한 생명??? 흠.... 아니면 영원히 죽지 않는것? 천국으로 이르는것?

 

그것에 대한 해답을 드릴께요 ^^

 

요한복음엔 다음과 같이 영생을 정의했죠 ^^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헬라어 기노스코(기본동사의 연장형;(절대형)“알다”, 매우 다양하게 적용되고, 많은 함축어와  함께(다음 같이 아주 명백하게 표현되지 않는 다른 것과 함께);허락하다, 알게되다, 느끼다, 인식(하다), 알아차리다,분석하다, 말할 수 있다, 확신하다, 이해하다 <마 13:11;롬 7:1>동. to know, learn; 허락하다, 알게되다, 느끼다, 인식(하다), 알아차리다, 분석하다, 말할 수 있다,확신하다, 이해하다) 라는 말도 됩니다.)에서 유래되었기때문에 확신하다로 쓰겠습니다. ^^

 

그럼 확신이란 무엇일까요? 곧 믿음이 동반된다라는 것이지요 믿기때문에 확신도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 그럼 확신할수있게 해주는 그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자 예수를 믿는것 이것이 영생이라는 것이지요. 저 말과 비슷한 유의어를 찾아 보았습니다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귀절 맨 앞에 헬라 원문에는 이유 접속사(*       )가 있어서 이 귀절이

앞절의 이유문임을  밝혀 준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독생자를 주셨으므로 이 세상은 소망이 있다.  사도 요한은, 인간이 무엇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솔선하여 하신 일이 있음과 사랑하심이 있음을 종종 말한다(요일 4:9-10).  "세상을 ... 사랑하사"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넓음을 알 수 있고,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으니  그 사랑의 뜨거움을 알게 한다.  여기 "사랑하사"란 말과
"주셨으니"란 말은 둘 다 과거사니 만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성육신(成肉身) 시키신 일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신  일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주로 속죄의 죽음을 위하여 그  아들을 선물로 주신 사건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여기 "세상을 사랑하사"란 말과 "믿는 자마다"라는 말은, 요한 복음에 흔히 나타나 는 구원의 보편성을  가리킨다. 요한 복음은 구원의  보편서에 대하여 역설한다(4:42, 6:33, 51, 8:12, 17:2).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도 종종 역설하였다(6:39, 10:26-29, 17:2).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도 종종 역설 하였다(6:39, 10:26-29,  17:2).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보편성에서 선택의 교리를 제외하면 안된다. 여기 "믿는 자"란 말도  역시 15절에서처럼, 현재 분사로 되어 있으니, 신앙의 계속성을 가리킨다.

   그러면, 요한복음에 계시된대로 그리스도를 믿음은 어떤 것인가?
   (1)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다. 5:25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였다.  바울도 롬
10:17에 말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믿음은 지식성(知識性) 있는 말씀의 권위를 배경하고 우리에게 임한다. 이 권위는 우리가 전연 이해 할 수 없는 불합리(不合理)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합리보다 초월한 합리이다. 따라서 신앙은 지적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 슐라이어마커(Schleiermacher)를 위시하여  많은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정서(情緖)로써만 상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곧,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분이시니 만큼, 우리 인간은 그에게 대하여 지식적으로 알 수  없고 다만 정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신앙의  지적 요소를 역설한다. 성경은, 인간이 초월
하신 하나님에게 대하여 "증거"를 받아  믿게 되는 사실을 가르친다. "증거"라는 말이 성경에 많이 있으니, 그것은, 기독교인이 복음 진리를 배워야 할 것을 가리킨다. 

   (2)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으로 신뢰하여 그와 연합함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뢰할 만한 절대적 조건을 받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사랑이다. 6:50,51,58을 보면, 신앙을 가리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과 같다고  하였다. 곧, 그것은,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신 그의  사랑을 받아 그를 사랑하여 신뢰하는  행위이다. 신앙은 저렇게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함을 얻을 만큼, 그로  더불어 살깊이 연락되고 있다(A.Wikenhauser,Das Evangelium nach Johannes, 1961, P.89).

 

   "영생"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의  이 세상 생명의 무한 연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세상 생명은 죄로 말미암아 불행하여졌으니, 그것을 그대로 연장하여 받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영생은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된 생명을 받아 누림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또는  인자(人子)를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였다(1:4, 5:26, 11:25, 14:6;  요일 5:20).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이시므로 그를  믿는 자가 살게 된다. 그러므로 요 14:19에 말하기를,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였다. 이 생명은 현세에서부터 소유되어지는 동시에 내세에는 영원히 존속한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벌써 영생이 있다고 하였다(3:36)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내  말을 듣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단지 귀로만  듣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내 말을 듣고 ... 영생을 얻는다"는 어귀는,  말씀이 생명력(生命力)을 마술적으로 전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셋트(Boussett)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의 작용을 마술적인 것으로 간취하고, 그것을 헬라의 비지적  오묘(秘智的奧妙)란 것 (Geheimnisvolles mysterien wort)과 동일하게  보았으니(Kyrios Christos, 1926, S.170) 잘못이다. 여기 "듣는다"함은, 헬라 신비주의의 범신론  사상(汎神論思想)이 가르친 마술적인 생명 전달이 아니다. 그 들음은, "나  보내신  이"를  믿는데 이르게 하는 지석 요소를 가진 동시에, 신자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결과로 가져온다. 이것은, 지식성과 인격성이 제외된 마술적 작용과는 청양지차로 다르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곧, 신자가  현세에서 부터 벌써 영생을 소유했다는 뜻이다. 이런 사상은, 성경 다른  부분에서도  가르친다 (눅 17:21; 고후 5:17; 골 3:3; 벧전 1:23). 스밀데(E.Smilde)는, 이 점에 있어서  요한의 사상이 바울의 칭의론(稱義論)과 원리상으로 같다고 하였다. 곧, 신자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벌써 옳다 함이 되도록 현세에서부터 심판 보장의  칭의를 받았다는 의미이다(Leven in de Johanneische Geschriften, P.44).


 

그를 믿는자 누구?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는 자 곧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라는 말이 되죠. ^^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안에서의  

공동체(동호회가 아닌 공동체와 동호회의 차이점은 아시죠?)가 연합하고 같이 즐거워 하는것을 (그 안에서 많은 부분에 대하여 모자르고 시험들고 그사람을 미워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를 누가 감히 질타할수있겠습니까? 높으신분의 자녀로서 존중해줘야한다는 것이지요 ^^ 그럼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라고 써있습니다. 이말은 곧 하나님을 믿는자 곧 영생을 얻은자이지요. 또한 앞으로 영생을 얻을자곧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자녀들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장로교에서는 예정설이 있습니다. 예정설이라함은

오늘날에는 예정이라는 용어를 결정론 및 운명론과 구별해서 사용하고 인간의 도덕의지의 자유로운 결정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지만, 이 교리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원한 섭리에 근거한다고 가르친다. 예정 문제의 근본주제들은 종교만큼이나 보편적인 것이지만, 〈신약성서〉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특히 두드러진 쟁점이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예정 교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로의 말을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로마 8 : 29~30)    - 엠파스 백과사전에서 발췌)

 

그말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자에게도 통용되는 말인것이지요. 고대 이스라엘을 주님께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나라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온 천하에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하여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친히 이땅에 보내신것이지요. 그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때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셨지요. ) 주님께서는 또한 이런말씀을 하셨죠. ^^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야고보는 진정한  믿음을 논하지 않고,  행함이 없는 믿음 , 곧 이론적  신앙을 말하였다. 그런 믿음은 외모에 나타난  형식뿐이니 사람의  몸 에 비유된다.  그리고 여기  행함 이란 것은 단지 외부적  행동만 아니라  그 실행  능력까지 가리킨는것이지요. 그러므로 그것은  영혼으로 비유됩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성립되지 못한다는것이지요. 이처럼 영생을 믿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그 추운 곳에서도 노방전도를 하는것입니다. ^^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선하게 보시겠습니까? 이것은 아론(대제사장이죠.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에게 머리에 뿌려지는 성령의 기름부으심 곧 머리에서 기름이 흘러 넘쳐 수염을 지나 옷깃까지 내림 같이 흠뻑 기름부으심을 받고 혈몬의 이슬이 시온산의 내림같도다라고 하는것은 ("혈몬"은 팔레스틴 복부에 있는 높은 산으로 그 꼭대기에 있는 눈이 증발하여 올라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유다에 이슬을 줍니다. 유다의 있어서는 이슬이  중요하죠. 그것이 없으면 곡초(穀草)가 살지 못하거든요.) 그 이슬이 높은 곳인  헐몬산에서 내려 퍼지는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위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까요 ^^  

 

(롬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