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탄생시킨 모슬렘

헬렌마르티나200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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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장에는 사라의 제안에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마엘 후손들이 오늘날 아랍인들이며 그들이 이삭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들나귀처럼(창 16:12) 학살했는데 그 아랍의 배후에는 로마 교황청이 도사리고 있었고 마호멧드는 교황청의 작품이란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교황청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것이 하나의 꿈이었지만 항상 실패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죽일 카리스마적 인물을 키웠는데 교황청의 치맛자락에 넣기 원해서 아랍인들을 모아 수녀원에서 수도하는 돈 많은 과부 카톨릭 교도인 하디자(Khadijah)라는 여인을 그의 삼촌이며 카톨릭 신자인 바라카(Waraquah)의 도움으로 무명의 젊은 청년 마호멧드와 결혼시켜서 바라카와 몇몇 카톨릭 선생들을 보내 마호멧트를 강력한 카톨릭 사상을 가진 인물로 훈련시켰다.
한편으론 교황청이 북아프리카에 아랍인 가운데 위대한 지도자가 곧 나올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마호멧드가 동굴에서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환상은 마리아에 관한 것이었고 부인의 삼촌인 바라카가 꿈을 해석해 주었다. 마호멧드는 교황청을 사상을 받아 유대인들을 적이라고 가르치게 했는데 그 영향이 오늘날가지 계속되어 중동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호멧드를 앞세워 아랍을 하나로 모은 교황청은 회교군대를 동원해서 북아프리카 지역을 공격하도록 하락을 하고 조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유대인들과기독교인을 죽일 것, 로마 카톨릭은 보호할 것, 예루살렘을 넘겨줄것 등이다. 드디어 교황청의 소원대로 마호멧드의 강력한 회교군대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고 승리에 도취한 아랍인들은 교황과의 약속을 깨고 예루살렘을 넘겨주지 않고 그 곳에 자신들의 예배당인 '오마르 사원'을 691년에 세웠는데 오늘날까지 에루살렘 모리아 산의 솔로몬 성전 터에 버티고 서있다.
그 건물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마호멧드가 바라카의 도움으로 코란을 쓸 때 모리아 산에 이삭을 바친 것이 아니고 이스마엘을 바쳤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은 그 글을 읽고 그대로 믿고 있다. 그후 교황청과 아랍은 비밀조약을 맺어 서로 이스라엘을 인정치않기로 했기에 지금까지 유대인의 적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아랍은 한번 더 교황청을 위해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이며 그때 적그리스도는 본부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것이다. 여기서도 이삭과 이스마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가인이 아벨을 죽이듯 계속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1098년 제1회 십자군 때 수만명의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이래 1146년 초 교황 유진 3세에 의해 팔레스틴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자들"을 처단케 했고 스페인같은 곳에서는 이미 게토(격리된 수용소)지역을 설정해서 아리아인, 그리스인(튜톤人인 독인, 영국인도 포함)과 분리시키는 계획을 세웠는데 히틀러가 이를 이용했다.
주후 1420-1498년 스페인의 종교 재판관 '트로케마다'가 조직적 학살제도를 만들었는데 후에 나치의 히틀러와 '하히드리히'와 '아히히만'의 길을 예비했다.이미 17세기에 "피의 순결"사상이 나왔으며 후에 나치 게쉬타포 창설자인 히틀러가 "피의 순결" 사상을 다시 이용하였다.
중세기간 중 카톨릭으로의 개종을 거부해서 많은 유대친이 화형을 당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도 '볼테르'(1694-1778)같은 게몽학자 조차도 유대인을 무식, 야만, 호색가들이라고 혹평하여 대학살의 길을 서서히 준비했었다.
특히 1347-1351년 유럽의 흑사병으로 유럽의 인구 절반이 죽어갈즈음 유대인들은 위생 관념이 철저하여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 흑사병을 견디어 내자 유럽인들은 이를 시기하고 반유대주의 사상을 퍼뜨렸다. 1348년 유대인을 고문해서 흑사병을 퍼뜨렸다는 허위자백을 받아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소문이 유럽에 퍼지게 되자 유대인들을 추방하거나 학살하여 약 1백만명이 죽어간 일도 있다. 이후로 제정 러시아에서 100만 이상이 학살되었고 폴란드에서 40만이 학살당했으며 1492년 스페인에서는 30만이 추방당하였다.

최후의 중동사태 /  생명의 서신,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