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가 끝나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와 솔져 하나가 에디를 가져왔다. 상자모양으로 접혀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것만 보아도 아주 깨끗한 상태로 고쳐놓은 것 같았다. 가운을 입은 자가 스파키에게 헤드셋을 건네주며 물었다.
"이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정말 놀랐습니다." "그냥 사막에서 주웠습니다." "어쩐지...... 지금은 그저 기록상으로나 존재하는 물건입니다. 허락도 받지 않고 고치는 과정에서 몇군데를 개조했습니다. 완전히 망가져서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스파키가 조금 걱정하는 눈빛을 보이자 그 자는 얼른 어디를 개조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에너지 계통을 손보았습니다. 우라늄전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만일 그 에너지가 떨어지면 더 이상 그 에너지를 구할 곳이 지금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 전력을 사용하는 체계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스캔 기능은 지금 저희가 만드는 테크솔져보다 훨씬 뛰어나더군요. 그래서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기록을 해두었습니다. 양해를 먼저 구하지 않은 점...." "괜찮습니다."
기술자로 보이는 자는 시장의 방에 있는 손님이기 때문인지 스파키에게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무기 계열은 아주 양호한 편이더군요. 실탄은 다행히 저희 솔져의 것과 같은 사이즈여서 충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형 미사일은 저희에게 기술이 없어서 보충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저희가 기록을......" "하하하하. 그거 아주 좋은 물건인가 보군요."
시장이 나서며 기술자의 말을 끊었다. 이건 고쳐준다는 핑계로 완전히 기술카피를 당한 꼴이다. 하지만 스파키는 에디가 예전처럼 자신의 명령에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점을 물었다.
"인공지능은 어떻습니까?" "그 부분은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기술이더군요. 그것도......" "그럼 새로 바뀐 에너지로는 얼마나 움직일 수 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테스트를 하려고 했지만 어찌된 것인지 어떠한 명령도 입력이 거부되고 있습니다. 기록을 뒤져보니 만들어질 당시에 입력된 주인의 음성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도록 되어 있더군요. 저희도 이 모델이 실제 명령을 수행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그때, 스파키가 벌떡 일어서더니 헤드셋을 얼른 주머니에 넣으며 딴 소리를 했다.
"시장님, 그럼 저에게 주실 부하들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중앙센터에서 나오는 그는 뒤에 다섯 마리의 테크솔져를 달고 있었다. 에디는 시장이 사람을 시켜 있던 자리에 갖다 놓을테니 걱정 말라고 하는 바람에 가져오지 못했다. 인질까지 잡힌 셈이다. 스파키가 고른 로봇들은 그 기술자의 지시에 의해 명령계통에 손을 보았다. 전부 똑같은 놈들이 지하에 대기중이었는데 그 외에도 200개는 족히 넘는 로봇군인이 보였다. 그는 그냥 아무거나 고르려다가 그 기술자가 에디에 대해 물으려는 눈치가 보이면 바로 눈 앞에 있는 놈을 지목하며 다른 소리를 해 대느라 진땀을 뺐다. 그저 기술 좋은 사람 하나 만나서 고치려고 했는데 무슨 호기심이 그리도 많은지...... 설마 이런 곳에 에디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스파키를 따라 걷고 있는 솔져들은 스파키의 요청에 따라 헬멧 한쪽에 노란 번개모양을 그려넣었다. 다른 놈과 섞이면 전혀 구분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부탁한 것이다.
건물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그는 시장에 다다르자 로봇들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야." "네."
그냥 그렇게 부른 것인데 바로 대답한다. 인공지능만큼은 에디의 것보다 훨씬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사람 하나를 찾는다." "누굽니까?" "이름은 호파스. 나이는........ 대략 60살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남자다." "어디부터 수색할까요?"
녀석들은 사람처럼 물었다. 더군다나 한 놈이 질문을 하고 있자 다른 놈들은 그저 듣기만 하는지 아무 말도 없다. 마치 고참이 질문을 하고 신참들이 메모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주택가부터 시작해서 안쪽으로 좁히면서 수색한다. 지금 시작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번데기'라는 말을 하면 바로 반응을 보일거니까 그 점을 참고하도록." "그게 뭡니까?"
호기심 있는 로봇이다. 기가 막힌다.
"나다."
곧 로봇들이 흩어지고 스파키는 메를린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루키드라는 조직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어디서부터 수색을 해야 그 당찬 여자들을 잡을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메를린이라면 아주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가게에 들어설때는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머, 스파키. 디얀 봤어요? 아까 왔다가 또 나갔는데."
가게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메를린이 그에게 말하는 소리도 겨우 들렸다.
"예. 만났습니다."
그가 대답하며 바에 앉자 수많은 시선이 그의 뒤통수에 꽂혔다.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이 온 도시에 퍼진 모양이다. 누가 성큼 다가오더니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람한 근육에 팔에는 요상한 문신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닐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주변에서 알아서 기기 때문에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해보이는 사람은 아주 깔보는 경향이 있다. 죽도록 맞기 전에는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이봐. 당신이 그 유명한 오지마라는 사낸가?"
예상한대로 시비조의 말투다.
"이 도시에 들어온지 겨우 이틀째라고 하더구만. 벌써 출세를 했나? 중앙센터를 출입하는 카드를 갖고 있다고 하던데 그거 구경 좀 할 수 있을까?"
스파키는 처음엔 자신이 도적떼를 물리쳐서 유명해진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여행객이거나 무역을 하는 장사치들이다. 그가 가진 카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싫다면?" "그럼 당신이 스스로 보여주도록 설득을 해야지. 조금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가 이렇게 말하며 팔에 힘을 주자 힘줄이 불거져 나왔고 그의 패거리로 보이는 자들이 저쪽 테이블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여자들 조금 혼내줬다고 우쭐대는 모양인데 그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자랑거리지 우리에겐 아냐. 그러니까 그 카드 좀 보자구." "당신 근육이 아주 많이 나왔는데~" "하하하. 누구든 나한테 걸리면 걸어다니는데 시간이 걸리지."
예상대로 단순하다.
"그 근육이 귓구멍까지 막았나?" "그럼~ ....... 뭐야?" "싫다고 했잖아. 이 돌연변이 같은 놈아."
그 자가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그가 앉았던 높은 의자가 뒤로 벌렁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그 소리와 동시에 가게 안의 사람들 중 반이 일어섰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빠르게 자리를 피하며 가게 벽쪽으로 몰렸다. 그의 카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자는 일어선 것이고 누가 카드의 다음 임자가 되는지 궁금한 자는 피한 것이다.
"너 이자식! 좋게 말할 때 내놔."
메를린이 스파키의 팔에 손을 얹으며 어서 줘버리라는 눈짓을 했다. 하지만 스파키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치우며 씽긋 웃었다.
"이거 좀 시끄럽겠는데...... 혹시 이 카드로 망가진 것들도 살 수 있습니까?"
그가 이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자 일어선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스파키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뒤로 돌렸다. 저 쪽 구석에서 스캇이 그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파키는 다 듣도록 크게 말했다.
"내 주머니에 카드가 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덩치를 쓰러뜨리는 사람에게 주겠다."
스파키의 말에 모든 눈이 그 덩치에게로 쏠렸다. 오로지 그 덩치만이 스파키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고 메를린은 웃기 시작했다.
"뭐, 뭐, 뭐야? 이런...... 너......" "자, 지금부터 시간을 재겠다. 무기는 사용하면 안되고 친구와 힘을 합해서 쓰러뜨려도 좋다."
사람들의 눈에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도시 안에서의 싸움은 범죄라지만 이 카드는 모두의 이성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덩치의 동료로 보이던 놈들까지 눈빛이 변하자 덩치가 이빨을 갈며 스파키를 노려보았다.
"그럼.... 난?" "넌 당연히 이 사람들을 전부 쓰러뜨려야지. 그런 다음에 내 목을 비틀면 이건 네거야." "이런 망할자식!" "그러니까 그 주둥이에도 근육이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예의바른 부탁을 하게 말야."
메를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대다가 빈 병을 집더니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던졌다.
"시작!"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대 활극이 시작되었다. 그 중 몇 놈은 바로 스파키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얼른 카드를 빼앗아서 도망가려고 했겠지만 스파키가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뒤에서 다른 놈들이 잡아채고는 반칙에 대한 벌칙을 알아서 주었다.
"어딜! 저건 내 거야." "비켜 이놈들아. 난 오지마의 친구야!"
스캇도 끼어들어서 주먹을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어보인다. 덩치가 가장 힘들어 보였다. 일곱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그의 목과 팔, 다리를 붙잡고는 이빨로 물기도 하고 주먹으로 남자의 맞으면 안타까운 부분을 마구 때리기도 했다.
"크아악! 내거야!" "죽어! 죽어!" "아악! 내 손가락~" "친구를 쳐? 이런 개같은 자식!"
누가 누구와 친구고 적인지 전혀 구분이 안가는 아비규환이 계속되었다. 스파키는 느긋하게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고 메를린이 부서지는 의자와 테이블을 보면서도 여유있는 표정으로 스파키에게 마실 것을 내밀었다.
"정말 변상 해 주실거죠?" "물론. 이 카드만 있으면 아무거나 필요한데로 구한다면서요?" "식량과 물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교환하면 되요. 근데 그거 상으로 받은 건가요?" "상이라..... 목숨 하나 살려주고 받긴 했는데 별로 내키진 않네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그거라면 당신을 죽여서라도 빼앗으려고 할테니까." "그러죠. 근데 다들 싸움실력이 형편없군."
그때, 빈 병 하나가 스파키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메를린이 빠른 속도로 그 병을 공중에서 깨트려버렸다.
"후아~ 어쩌면 난 당신을 가장 조심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글쎄요."
스파키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가게를 나와버렸다. 다들 그가 나가는 것도 모르고 이젠 카드보단 살기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시내구경을 더 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옮겼다. 해가 완전히 질때까지 도시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아무데서나 맛있어 보이는 걸 실컷 먹고 돌아오기로 했다. 테크타운은 도시 이름처럼 전기시설도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밤이 되자 여기저기서 불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물 구석에 달린 가로등에서 나오는 불빛은 그리 환하진 않았지만 밤에도 사람들이 돌아다니기엔 충분했다. 시장은 거의 대부분의 장사꾼들이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고 어두운 덕분에 멀리 보이는 빌딩들의 전경이 멋있게 보였다. 스파키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또 다시 회상에 잠겼다. 눈 앞에 펼쳐진 좁은 골목을 보니 옛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겠지...... 전쟁으로 죽었을까. 아니면 명을 다 하고 죽었을까.... 수명을 다 했다 하더라도 이미 몇백년 전에 죽은 그녀의 모습을 그는 죽을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을 꼬옥 잡던 귀여운 아이. 이제 겨우 두살박이 어린 아들을 두고 먼 우주로 나갈때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주 잠깐이었는데...... 수면장치에서 꾸는 악몽이기를 몇번이나 바랬는지 모른다. 이 참혹한 현실은 그에겐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런대로 적응하며 또 다른 문명을 발달시키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는 아까 산 과자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칼로리스틱'이라는 이것은 세 개만 먹어도 하루동안 필요한 영양분을 전부 보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도시를 더날 때 넉넉하게 사기로 했는데 막상 맛을 보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무슨 약냄새도 조금 나는 듯 하고 씹는 느낌도 별로다. 그는 반쯤 남은 그것을 그냥 앞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떼는데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냥 무시하고 다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자 예상대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자신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것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 그는 주머니의 카드에 손을 댔다. 아무래도 이 카드가 있는 한 편안한 시간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아무한테나 줘버릴까 하는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필요하다. 볼일을 빨리 보고 나가면서 식량과 바꿔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뛰기 시작했다. 보통의 경우 몰래 미행하고 있는데 대상이 도망가기 시작하면 미행자도 엉겁결에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쫒기 마련이다. 스파키는 도시 외곽쪽으로 뛰었다. 우선 이 놈을 잡아서 족치려면 사람들이 별로 없는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 호되게 혼을 내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한참을 달리자 그럴싸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그는 달리던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하다가 건물 사이의 틈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2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자신을 미행하던 녀석이 보였다. 여자이긴 했지만 차림새도 달랐고 나이도 많이 들어보였다. 조금 뛴 걸로 숨을 헐떡이는 것 보니 그냥 평범한 여자로 보였다.
"아...... 놓쳤네....... 하는수 없지 뭐." "안놓쳤으면 어쩔거지?"
왔던 길로 뒤돌아 가려던 그녀는 자신의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머!" "당신은 누군데 날 미행했지?" "저기..... 해칠 뜻은 없었어요."
스파키는 여자의 눈에 적의가 없음을 알고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는 그제서야 안심을 하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도둑은 아닌 것 같은데. 실력도 없고." "죄송해요. 기회를 보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그때 솔져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밤엔 밝은 곳에서 활동하십시오. 여긴 위험합니다."
스파키는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로봇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기술자시군요. 그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로봇은 바로 가던 방향으로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가 스파키의 손에 들린 카드를 보며 눈이 반짝였다.
"정말 그 카드를 갖고 계시군요. 설마했는데." "이 카드를 훔치려고 날 미행했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시오. 여자랑 싸우는 것은 이제 지겨우니까."
스파키는 다시 메를린의 가게 방향이 어느쪽인지 가늠하며 발을 떼는데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멈추었다.
"저기요.... 저기...." ".........."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뭡니까?"
스파키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그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메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그 카드를 저에게 빌려주세요. 단 하루만..... 아니, 잠깐이라도....." ".........." "제 아이들에게 먹을걸 사주고 싶어요. 안될까요?" "아이?" "남편이 추방당하고 아이들과 저만 남았어요. 아직 직업을 얻지 못해서 먹을 것이 부족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럼 남편과 함께 떠나면 될 것 아닙니까?" "아이들이 아직 어립니다. 그 애들은 아직 힘든 여행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하는수 없이...." "남편은 어딨습니까?" "트럭에 실려서 마을 밖으로 끌려나갈 때 가장 가까운 마을에 있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도 여기서 며칠은 가야 합니다. 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식량도 물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 "제발 도와주세요. 그 카드만 잠시 빌려주시면 먹을걸 구하고 바로 돌려드릴께요."
스파키는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여자의 얼굴은 진실되어 보였다. 그는 카드를 꺼냈다.
"아! 정말......" "가져가시오. 도시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메를린이라는 흑인여자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습니다. 내가 없더라도 그 여자에게 맡겨 놓으시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다른 사람이 알면 위험하니까 조심하는게 좋을겁니다. 아까도 그것 때문에 패싸움이 벌어졌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카드를 두손으로 받아들고는 계속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는 그녀의 감격어린 눈물을 뒤로 하고 메를린의 가게로 향했다.
그는 또 꿈을 꾸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그는 팔까지 앞으로 쭈욱 뻗고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상이 구겨지더니 중얼거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고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며 순식간에 오른손에 전력을 모았다.
"누구냐?" "저에요. 디얀." ".........."
스파키는 고개를 떨구며 숨을 고르게 했다. 오늘 꾼 꿈은 너무 생생했다. 그는 속으로 제발 이 꿈만큼은 다신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꿈을 꾸셨나봐요." "너도 그 카드가 탐이 나냐?"
그가 맥빠지는 표정으로 말하자 디얀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바닥에 조용히 앉았다.
"아니요. 아저씨의 실력을 안 이상 무모한 짓은 안해요. 저도 아까 봤어요. 광장 근처에서 도둑들 잡는 거요." "그럼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부탁이 있어서요." "부탁?"
스파키는 아까 만난 여자를 떠올렸다. 이녀석도 카드를 빌려달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 같다. 표정도 그렇다. 무언가 미안한 얘기를 꺼내려는 표정이 분명하다.
"그만두시면 안돼요?" ".........." "그거 꼭 하셔야 해요?" "뭘 말이냐?" "그 루키드 잡는 일 말에요." ".........."
아무리 사람이 많은 도시라지만 이 꼬맹이가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알았지?" "아저씨가 그 건물에서 나올 때 군인들을 끌고 나왔잖아요. 그리고 뒤에서 시장이 직접 배웅까지 하던데요. 도둑들을 잡은 사람이 그렇게 나오면 뻔~ 하잖아요. 맞죠? 그쵸? 아저씨." "그래, 맞다." "꼭 하셔야 해요? 그냥 아저씨 볼일 보시고 가면 안돼요?" "넌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구나." "그건....."
스파키는 디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방이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창으로 비치는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그 도적떼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죽은 많은 수의 도적떼를 생각하며 울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왜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가족이거든요." "가족?"
눈물을 닦은 그녀는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그에게 바싹 다가갔다.
"거기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키드 언니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녜요." "말해봐라." "언니들은 나쁜 시장을 죽이려는 것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언니들을...... 흑...."
디얀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흐느꼈다.
"부탁할께요. 아저씨. 볼일 다 보시면 그냥 가세요. 네?" "음......"
스파키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둘 중의 하나다. 이 어린 녀석도 소매치기를 하는 도둑이다. 그 루키드라는 것들이 이 순진한 애를 속이고 있거나 시장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거나. 하지만 그가 직접 본 것들은 그의 마음을 이미 한 쪽으로 기울였다.
"난 내가 본 것만 믿는다. 그들은 분명 도둑질을 하고 있었어." "그건....."
디얀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문이 열리며 메를린이 소리쳤다.
"디얀! 너 무슨짓이니?" "아...... 이모......" "이모?"
메를린이 방의 불을 켜며 들어왔다.
"그래요. 저 아이의 엄마가 제 언니죠. 그리고 오늘 아침에 시장을 인질로 잡았다가 죽었죠."
순간 대장으로 보이는 솔져의 정확한 사격에 머리가 날아가버린 여자가 떠올랐다.
"그럼 당신도......." "네, 루키드의 일원이죠." "이런, 기가 막히군. 왜 날 죽이지 않았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텐데."
스파키가 일어서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공격에 대비하자 메를린이 풀석 웃었다.
"당신은 이 도시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우린 사람을 헤치진 않아요." "아까 당신도 있었나?"
그는 식량을 훔치는 것을 방해하던 일을 떠올리며 물은 것이다.
"정말 솜씨 하나는 끝내주더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팔목을 들어보였다.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다.
"당신도 할 수 있었지만 우릴 죽이지 않았죠." "푸~ 여잘 죽이면 뒤가 좋지 않아서." "제발 부탁이에요. 그냥 이 도시를 떠나세요.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이젠 상관이 있소." "그 카드값을 하겠단 건가요?" "당신들은 도둑이 분명하니 조금 혼을 내준다고 해서 나쁠건 없지."
그는 시장과 얘기한 것을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잘 설득해서 감옥에 가둬두었다가 키에르나 카얀의 마을에 이주하도록 권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메를린의 뒤로 두건을 쓴 여자들이 한 손엔 칼을 들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스파키는 얼른 팔을 뻗어 칼을 집어들었다.
"또 무슨 일을 저지를 계획이군. 이번엔 납치를 할 계획인가 보군." "그래요. 과학자들이 사는 건물을 습격할 계획이죠." "벌집이 될텐데."
코렐이라는 자가 자랑하듯 보여준 벽에 숨겨진 총들이 생각났다.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메를린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다른 건물에 있죠. 솔져들이 지키고 있지만 문제없어요." "도데체 원하는게 뭐야?" "이 도시를 진정한 인간의 도시로 만들거에요." "그게 납치랑 무슨 상관이지?" "그자들만 없으면 더 이상 솔져들은 나오지 않을테니까. 우리가 아무리 없애도 그들은 금방 만들어서 우릴 죽이도록 명령을 내리죠." "아무리 그래도 ........" "우리도 민간인들이 다칠까봐 두건을 쓰기 시작했어요. 안그러면 솔져들은 우릴 잡기 위해 시민들의 피해도 각오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구분을 해주면 그들도 우리만 노릴테니까요." "..........."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당신은 속고 있어요. 제발 떠나세요.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거에요." "그럴수 없다면?" "당신을 죽이겠어요." "이제 명확해졌군. 당신은 테러범이고 난 군인이지. 자, 이제 어떡할텐가?"
그가 메를린에게 다가가며 칼을 뽑았다.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잡으려면 전력이 필요한데 지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 시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에디를 가지고 무사히 나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힘들겠지만 무력만으로 그녀을 제압하기로 한 그는 성큼 다가섰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뒤에서 두건을 쓴 여자들이 나타났다.
"좋아, 아까처럼 해주지."
스파키는 우선 한명의 칼을 튕기며 달려들었고 그녀들은 방어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섣불리 덤비지는 못했다. 낮에 본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칼에 자신의 칼이 부딪히면서 느꼈던 강한 전류도 겁이 났다. 그가 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아직 전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칼을 휘두르던 그는 어떻게 전부 헤치지 않고 잡을까 궁리하다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고 말았다.
"큭!" "아...."
그의 허벅지엔 큼직한 칼이 박혀있었다.
"디얀! 너!"
메를린이 소리치며 다가와 디얀의 팔을 잡아끌었다. 디얀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기가 방금 저지른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런.... 당신네들은 애들까지 전투에 활용하나?"
어리둥절해 있는 디얀을 한 번 보더니 그가 으르릉거렸다.
"당신을 죽이진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말하는 거에요. 이 도시를 떠나세요."
그 말을 끝으로 메를린은 두건을 쓴 여자들과 함게 멍한 표정의 디얀을 데리고 사라졌다. 스파키는 이를 악 물고 다리에 박힌 칼을 잡았다. 그리곤 힘차게 뽑았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오며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그대로 누웠다. 피는 곧 멈출것이고 상처도 이정도면 두시간이 지나기 전에 아물 것이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루키드라는 여자들은 시장이 말한 것처럼 그리 질이 좋지 않은 자들은 아니다. 도데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저 여자들이 지금 저지르려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 있는 도둑들이 납치까지 하려는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막아야 한다.
스파키의 전설 - 제3화 - 테크타운 9편
식사가 끝나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와 솔져 하나가 에디를 가져왔다.
상자모양으로 접혀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것만 보아도 아주 깨끗한 상태로 고쳐놓은 것 같았다.
가운을 입은 자가 스파키에게 헤드셋을 건네주며 물었다.
"이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정말 놀랐습니다."
"그냥 사막에서 주웠습니다."
"어쩐지...... 지금은 그저 기록상으로나 존재하는 물건입니다. 허락도 받지 않고 고치는 과정에서 몇군데를 개조했습니다. 완전히 망가져서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스파키가 조금 걱정하는 눈빛을 보이자 그 자는 얼른 어디를 개조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에너지 계통을 손보았습니다. 우라늄전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만일 그 에너지가 떨어지면 더 이상 그 에너지를 구할 곳이 지금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 전력을 사용하는 체계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스캔 기능은 지금 저희가 만드는 테크솔져보다 훨씬 뛰어나더군요. 그래서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기록을 해두었습니다. 양해를 먼저 구하지 않은 점...."
"괜찮습니다."
기술자로 보이는 자는 시장의 방에 있는 손님이기 때문인지 스파키에게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무기 계열은 아주 양호한 편이더군요. 실탄은 다행히 저희 솔져의 것과 같은 사이즈여서 충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형 미사일은 저희에게 기술이 없어서 보충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저희가 기록을......"
"하하하하. 그거 아주 좋은 물건인가 보군요."
시장이 나서며 기술자의 말을 끊었다.
이건 고쳐준다는 핑계로 완전히 기술카피를 당한 꼴이다.
하지만 스파키는 에디가 예전처럼 자신의 명령에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점을 물었다.
"인공지능은 어떻습니까?"
"그 부분은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기술이더군요. 그것도......"
"그럼 새로 바뀐 에너지로는 얼마나 움직일 수 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테스트를 하려고 했지만 어찌된 것인지 어떠한 명령도 입력이 거부되고 있습니다. 기록을 뒤져보니 만들어질 당시에 입력된 주인의 음성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도록 되어 있더군요. 저희도 이 모델이 실제 명령을 수행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그때, 스파키가 벌떡 일어서더니 헤드셋을 얼른 주머니에 넣으며 딴 소리를 했다.
"시장님, 그럼 저에게 주실 부하들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중앙센터에서 나오는 그는 뒤에 다섯 마리의 테크솔져를 달고 있었다.
에디는 시장이 사람을 시켜 있던 자리에 갖다 놓을테니 걱정 말라고 하는 바람에 가져오지 못했다.
인질까지 잡힌 셈이다.
스파키가 고른 로봇들은 그 기술자의 지시에 의해 명령계통에 손을 보았다.
전부 똑같은 놈들이 지하에 대기중이었는데 그 외에도 200개는 족히 넘는 로봇군인이 보였다.
그는 그냥 아무거나 고르려다가 그 기술자가 에디에 대해 물으려는 눈치가 보이면 바로 눈 앞에 있는 놈을 지목하며 다른 소리를 해 대느라 진땀을 뺐다.
그저 기술 좋은 사람 하나 만나서 고치려고 했는데 무슨 호기심이 그리도 많은지......
설마 이런 곳에 에디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스파키를 따라 걷고 있는 솔져들은 스파키의 요청에 따라 헬멧 한쪽에 노란 번개모양을 그려넣었다.
다른 놈과 섞이면 전혀 구분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부탁한 것이다.
건물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그는 시장에 다다르자 로봇들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야."
"네."
그냥 그렇게 부른 것인데 바로 대답한다.
인공지능만큼은 에디의 것보다 훨씬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사람 하나를 찾는다."
"누굽니까?"
"이름은 호파스. 나이는........ 대략 60살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남자다."
"어디부터 수색할까요?"
녀석들은 사람처럼 물었다.
더군다나 한 놈이 질문을 하고 있자 다른 놈들은 그저 듣기만 하는지 아무 말도 없다.
마치 고참이 질문을 하고 신참들이 메모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주택가부터 시작해서 안쪽으로 좁히면서 수색한다. 지금 시작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번데기'라는 말을 하면 바로 반응을 보일거니까 그 점을 참고하도록."
"그게 뭡니까?"
호기심 있는 로봇이다. 기가 막힌다.
"나다."
곧 로봇들이 흩어지고 스파키는 메를린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루키드라는 조직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어디서부터 수색을 해야 그 당찬 여자들을 잡을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메를린이라면 아주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가게에 들어설때는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머, 스파키. 디얀 봤어요? 아까 왔다가 또 나갔는데."
가게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메를린이 그에게 말하는 소리도 겨우 들렸다.
"예. 만났습니다."
그가 대답하며 바에 앉자 수많은 시선이 그의 뒤통수에 꽂혔다.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이 온 도시에 퍼진 모양이다.
누가 성큼 다가오더니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람한 근육에 팔에는 요상한 문신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닐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주변에서 알아서 기기 때문에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해보이는 사람은 아주 깔보는 경향이 있다.
죽도록 맞기 전에는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이봐. 당신이 그 유명한 오지마라는 사낸가?"
예상한대로 시비조의 말투다.
"이 도시에 들어온지 겨우 이틀째라고 하더구만. 벌써 출세를 했나? 중앙센터를 출입하는 카드를 갖고 있다고 하던데 그거 구경 좀 할 수 있을까?"
스파키는 처음엔 자신이 도적떼를 물리쳐서 유명해진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여행객이거나 무역을 하는 장사치들이다.
그가 가진 카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싫다면?"
"그럼 당신이 스스로 보여주도록 설득을 해야지. 조금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가 이렇게 말하며 팔에 힘을 주자 힘줄이 불거져 나왔고 그의 패거리로 보이는 자들이 저쪽 테이블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여자들 조금 혼내줬다고 우쭐대는 모양인데 그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자랑거리지 우리에겐 아냐. 그러니까 그 카드 좀 보자구."
"당신 근육이 아주 많이 나왔는데~"
"하하하. 누구든 나한테 걸리면 걸어다니는데 시간이 걸리지."
예상대로 단순하다.
"그 근육이 귓구멍까지 막았나?"
"그럼~ ....... 뭐야?"
"싫다고 했잖아. 이 돌연변이 같은 놈아."
그 자가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그가 앉았던 높은 의자가 뒤로 벌렁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고 그 소리와 동시에 가게 안의 사람들 중 반이 일어섰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빠르게 자리를 피하며 가게 벽쪽으로 몰렸다.
그의 카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자는 일어선 것이고 누가 카드의 다음 임자가 되는지 궁금한 자는 피한 것이다.
"너 이자식! 좋게 말할 때 내놔."
메를린이 스파키의 팔에 손을 얹으며 어서 줘버리라는 눈짓을 했다.
하지만 스파키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치우며 씽긋 웃었다.
"이거 좀 시끄럽겠는데...... 혹시 이 카드로 망가진 것들도 살 수 있습니까?"
그가 이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자 일어선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스파키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뒤로 돌렸다.
저 쪽 구석에서 스캇이 그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파키는 다 듣도록 크게 말했다.
"내 주머니에 카드가 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덩치를 쓰러뜨리는 사람에게 주겠다."
스파키의 말에 모든 눈이 그 덩치에게로 쏠렸다.
오로지 그 덩치만이 스파키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고 메를린은 웃기 시작했다.
"뭐, 뭐, 뭐야? 이런...... 너......"
"자, 지금부터 시간을 재겠다. 무기는 사용하면 안되고 친구와 힘을 합해서 쓰러뜨려도 좋다."
사람들의 눈에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도시 안에서의 싸움은 범죄라지만 이 카드는 모두의 이성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덩치의 동료로 보이던 놈들까지 눈빛이 변하자 덩치가 이빨을 갈며 스파키를 노려보았다.
"그럼.... 난?"
"넌 당연히 이 사람들을 전부 쓰러뜨려야지. 그런 다음에 내 목을 비틀면 이건 네거야."
"이런 망할자식!"
"그러니까 그 주둥이에도 근육이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예의바른 부탁을 하게 말야."
메를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대다가 빈 병을 집더니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던졌다.
"시작!"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대 활극이 시작되었다.
그 중 몇 놈은 바로 스파키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얼른 카드를 빼앗아서 도망가려고 했겠지만 스파키가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뒤에서 다른 놈들이 잡아채고는 반칙에 대한 벌칙을 알아서 주었다.
"어딜! 저건 내 거야."
"비켜 이놈들아. 난 오지마의 친구야!"
스캇도 끼어들어서 주먹을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어보인다.
덩치가 가장 힘들어 보였다.
일곱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그의 목과 팔, 다리를 붙잡고는 이빨로 물기도 하고 주먹으로 남자의 맞으면 안타까운 부분을 마구 때리기도 했다.
"크아악! 내거야!"
"죽어! 죽어!"
"아악! 내 손가락~"
"친구를 쳐? 이런 개같은 자식!"
누가 누구와 친구고 적인지 전혀 구분이 안가는 아비규환이 계속되었다.
스파키는 느긋하게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고 메를린이 부서지는 의자와 테이블을 보면서도 여유있는 표정으로 스파키에게 마실 것을 내밀었다.
"정말 변상 해 주실거죠?"
"물론. 이 카드만 있으면 아무거나 필요한데로 구한다면서요?"
"식량과 물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교환하면 되요. 근데 그거 상으로 받은 건가요?"
"상이라..... 목숨 하나 살려주고 받긴 했는데 별로 내키진 않네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그거라면 당신을 죽여서라도 빼앗으려고 할테니까."
"그러죠. 근데 다들 싸움실력이 형편없군."
그때, 빈 병 하나가 스파키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메를린이 빠른 속도로 그 병을 공중에서 깨트려버렸다.
"후아~ 어쩌면 난 당신을 가장 조심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글쎄요."
스파키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가게를 나와버렸다.
다들 그가 나가는 것도 모르고 이젠 카드보단 살기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시내구경을 더 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옮겼다.
해가 완전히 질때까지 도시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아무데서나 맛있어 보이는 걸 실컷 먹고 돌아오기로 했다.
테크타운은 도시 이름처럼 전기시설도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밤이 되자 여기저기서 불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물 구석에 달린 가로등에서 나오는 불빛은 그리 환하진 않았지만 밤에도 사람들이 돌아다니기엔 충분했다.
시장은 거의 대부분의 장사꾼들이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고 어두운 덕분에 멀리 보이는 빌딩들의 전경이 멋있게 보였다.
스파키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또 다시 회상에 잠겼다.
눈 앞에 펼쳐진 좁은 골목을 보니 옛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겠지......
전쟁으로 죽었을까. 아니면 명을 다 하고 죽었을까....
수명을 다 했다 하더라도 이미 몇백년 전에 죽은 그녀의 모습을 그는 죽을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을 꼬옥 잡던 귀여운 아이.
이제 겨우 두살박이 어린 아들을 두고 먼 우주로 나갈때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주 잠깐이었는데......
수면장치에서 꾸는 악몽이기를 몇번이나 바랬는지 모른다.
이 참혹한 현실은 그에겐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런대로 적응하며 또 다른 문명을 발달시키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는 아까 산 과자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칼로리스틱'이라는 이것은 세 개만 먹어도 하루동안 필요한 영양분을 전부 보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도시를 더날 때 넉넉하게 사기로 했는데 막상 맛을 보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무슨 약냄새도 조금 나는 듯 하고 씹는 느낌도 별로다.
그는 반쯤 남은 그것을 그냥 앞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떼는데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냥 무시하고 다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자 예상대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자신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것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 그는 주머니의 카드에 손을 댔다.
아무래도 이 카드가 있는 한 편안한 시간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아무한테나 줘버릴까 하는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필요하다.
볼일을 빨리 보고 나가면서 식량과 바꿔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뛰기 시작했다.
보통의 경우 몰래 미행하고 있는데 대상이 도망가기 시작하면 미행자도 엉겁결에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쫒기 마련이다.
스파키는 도시 외곽쪽으로 뛰었다.
우선 이 놈을 잡아서 족치려면 사람들이 별로 없는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
호되게 혼을 내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한참을 달리자 그럴싸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그는 달리던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하다가 건물 사이의 틈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2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자신을 미행하던 녀석이 보였다.
여자이긴 했지만 차림새도 달랐고 나이도 많이 들어보였다.
조금 뛴 걸로 숨을 헐떡이는 것 보니 그냥 평범한 여자로 보였다.
"아...... 놓쳤네....... 하는수 없지 뭐."
"안놓쳤으면 어쩔거지?"
왔던 길로 뒤돌아 가려던 그녀는 자신의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머!"
"당신은 누군데 날 미행했지?"
"저기..... 해칠 뜻은 없었어요."
스파키는 여자의 눈에 적의가 없음을 알고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는 그제서야 안심을 하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도둑은 아닌 것 같은데. 실력도 없고."
"죄송해요. 기회를 보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그때 솔져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밤엔 밝은 곳에서 활동하십시오. 여긴 위험합니다."
스파키는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로봇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기술자시군요. 그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로봇은 바로 가던 방향으로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가 스파키의 손에 들린 카드를 보며 눈이 반짝였다.
"정말 그 카드를 갖고 계시군요. 설마했는데."
"이 카드를 훔치려고 날 미행했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시오. 여자랑 싸우는 것은 이제 지겨우니까."
스파키는 다시 메를린의 가게 방향이 어느쪽인지 가늠하며 발을 떼는데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멈추었다.
"저기요.... 저기...."
".........."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뭡니까?"
스파키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그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메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그 카드를 저에게 빌려주세요. 단 하루만..... 아니, 잠깐이라도....."
".........."
"제 아이들에게 먹을걸 사주고 싶어요. 안될까요?"
"아이?"
"남편이 추방당하고 아이들과 저만 남았어요. 아직 직업을 얻지 못해서 먹을 것이 부족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럼 남편과 함께 떠나면 될 것 아닙니까?"
"아이들이 아직 어립니다. 그 애들은 아직 힘든 여행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하는수 없이...."
"남편은 어딨습니까?"
"트럭에 실려서 마을 밖으로 끌려나갈 때 가장 가까운 마을에 있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도 여기서 며칠은 가야 합니다. 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식량도 물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
"제발 도와주세요. 그 카드만 잠시 빌려주시면 먹을걸 구하고 바로 돌려드릴께요."
스파키는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여자의 얼굴은 진실되어 보였다.
그는 카드를 꺼냈다.
"아! 정말......"
"가져가시오. 도시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메를린이라는 흑인여자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습니다. 내가 없더라도 그 여자에게 맡겨 놓으시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다른 사람이 알면 위험하니까 조심하는게 좋을겁니다. 아까도 그것 때문에 패싸움이 벌어졌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카드를 두손으로 받아들고는 계속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는 그녀의 감격어린 눈물을 뒤로 하고 메를린의 가게로 향했다.
그는 또 꿈을 꾸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그는 팔까지 앞으로 쭈욱 뻗고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상이 구겨지더니 중얼거렸다.
"안돼..... 가지마...... 위험해...... 에디..... 대답하라....... 그녈..... 보호...... 안돼!!!"
그는 벌떡 일어나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고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며 순식간에 오른손에 전력을 모았다.
"누구냐?"
"저에요. 디얀."
".........."
스파키는 고개를 떨구며 숨을 고르게 했다.
오늘 꾼 꿈은 너무 생생했다.
그는 속으로 제발 이 꿈만큼은 다신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꿈을 꾸셨나봐요."
"너도 그 카드가 탐이 나냐?"
그가 맥빠지는 표정으로 말하자 디얀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바닥에 조용히 앉았다.
"아니요. 아저씨의 실력을 안 이상 무모한 짓은 안해요. 저도 아까 봤어요. 광장 근처에서 도둑들 잡는 거요."
"그럼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부탁이 있어서요."
"부탁?"
스파키는 아까 만난 여자를 떠올렸다.
이녀석도 카드를 빌려달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 같다. 표정도 그렇다.
무언가 미안한 얘기를 꺼내려는 표정이 분명하다.
"그만두시면 안돼요?"
".........."
"그거 꼭 하셔야 해요?"
"뭘 말이냐?"
"그 루키드 잡는 일 말에요."
".........."
아무리 사람이 많은 도시라지만 이 꼬맹이가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알았지?"
"아저씨가 그 건물에서 나올 때 군인들을 끌고 나왔잖아요. 그리고 뒤에서 시장이 직접 배웅까지 하던데요. 도둑들을 잡은 사람이 그렇게 나오면 뻔~ 하잖아요. 맞죠? 그쵸? 아저씨."
"그래, 맞다."
"꼭 하셔야 해요? 그냥 아저씨 볼일 보시고 가면 안돼요?"
"넌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구나."
"그건....."
스파키는 디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방이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창으로 비치는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그 도적떼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죽은 많은 수의 도적떼를 생각하며 울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왜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가족이거든요."
"가족?"
눈물을 닦은 그녀는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그에게 바싹 다가갔다.
"거기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키드 언니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녜요."
"말해봐라."
"언니들은 나쁜 시장을 죽이려는 것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언니들을...... 흑...."
디얀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흐느꼈다.
"부탁할께요. 아저씨. 볼일 다 보시면 그냥 가세요. 네?"
"음......"
스파키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둘 중의 하나다.
이 어린 녀석도 소매치기를 하는 도둑이다.
그 루키드라는 것들이 이 순진한 애를 속이고 있거나 시장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거나.
하지만 그가 직접 본 것들은 그의 마음을 이미 한 쪽으로 기울였다.
"난 내가 본 것만 믿는다. 그들은 분명 도둑질을 하고 있었어."
"그건....."
디얀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문이 열리며 메를린이 소리쳤다.
"디얀! 너 무슨짓이니?"
"아...... 이모......"
"이모?"
메를린이 방의 불을 켜며 들어왔다.
"그래요. 저 아이의 엄마가 제 언니죠. 그리고 오늘 아침에 시장을 인질로 잡았다가 죽었죠."
순간 대장으로 보이는 솔져의 정확한 사격에 머리가 날아가버린 여자가 떠올랐다.
"그럼 당신도......."
"네, 루키드의 일원이죠."
"이런, 기가 막히군. 왜 날 죽이지 않았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텐데."
스파키가 일어서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공격에 대비하자 메를린이 풀석 웃었다.
"당신은 이 도시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우린 사람을 헤치진 않아요."
"아까 당신도 있었나?"
그는 식량을 훔치는 것을 방해하던 일을 떠올리며 물은 것이다.
"정말 솜씨 하나는 끝내주더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팔목을 들어보였다.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다.
"당신도 할 수 있었지만 우릴 죽이지 않았죠."
"푸~ 여잘 죽이면 뒤가 좋지 않아서."
"제발 부탁이에요. 그냥 이 도시를 떠나세요.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이젠 상관이 있소."
"그 카드값을 하겠단 건가요?"
"당신들은 도둑이 분명하니 조금 혼을 내준다고 해서 나쁠건 없지."
그는 시장과 얘기한 것을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잘 설득해서 감옥에 가둬두었다가 키에르나 카얀의 마을에 이주하도록 권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메를린의 뒤로 두건을 쓴 여자들이 한 손엔 칼을 들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스파키는 얼른 팔을 뻗어 칼을 집어들었다.
"또 무슨 일을 저지를 계획이군. 이번엔 납치를 할 계획인가 보군."
"그래요. 과학자들이 사는 건물을 습격할 계획이죠."
"벌집이 될텐데."
코렐이라는 자가 자랑하듯 보여준 벽에 숨겨진 총들이 생각났다.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메를린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다른 건물에 있죠. 솔져들이 지키고 있지만 문제없어요."
"도데체 원하는게 뭐야?"
"이 도시를 진정한 인간의 도시로 만들거에요."
"그게 납치랑 무슨 상관이지?"
"그자들만 없으면 더 이상 솔져들은 나오지 않을테니까. 우리가 아무리 없애도 그들은 금방 만들어서 우릴 죽이도록 명령을 내리죠."
"아무리 그래도 ........"
"우리도 민간인들이 다칠까봐 두건을 쓰기 시작했어요. 안그러면 솔져들은 우릴 잡기 위해 시민들의 피해도 각오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구분을 해주면 그들도 우리만 노릴테니까요."
"..........."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당신은 속고 있어요. 제발 떠나세요.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거에요."
"그럴수 없다면?"
"당신을 죽이겠어요."
"이제 명확해졌군. 당신은 테러범이고 난 군인이지. 자, 이제 어떡할텐가?"
그가 메를린에게 다가가며 칼을 뽑았다.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잡으려면 전력이 필요한데 지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 시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에디를 가지고 무사히 나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힘들겠지만 무력만으로 그녀을 제압하기로 한 그는 성큼 다가섰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뒤에서 두건을 쓴 여자들이 나타났다.
"좋아, 아까처럼 해주지."
스파키는 우선 한명의 칼을 튕기며 달려들었고 그녀들은 방어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섣불리 덤비지는 못했다.
낮에 본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칼에 자신의 칼이 부딪히면서 느꼈던 강한 전류도 겁이 났다.
그가 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아직 전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칼을 휘두르던 그는 어떻게 전부 헤치지 않고 잡을까 궁리하다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고 말았다.
"큭!"
"아...."
그의 허벅지엔 큼직한 칼이 박혀있었다.
"디얀! 너!"
메를린이 소리치며 다가와 디얀의 팔을 잡아끌었다.
디얀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기가 방금 저지른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런.... 당신네들은 애들까지 전투에 활용하나?"
어리둥절해 있는 디얀을 한 번 보더니 그가 으르릉거렸다.
"당신을 죽이진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말하는 거에요. 이 도시를 떠나세요."
그 말을 끝으로 메를린은 두건을 쓴 여자들과 함게 멍한 표정의 디얀을 데리고 사라졌다.
스파키는 이를 악 물고 다리에 박힌 칼을 잡았다.
그리곤 힘차게 뽑았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오며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그대로 누웠다.
피는 곧 멈출것이고 상처도 이정도면 두시간이 지나기 전에 아물 것이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 루키드라는 여자들은 시장이 말한 것처럼 그리 질이 좋지 않은 자들은 아니다.
도데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저 여자들이 지금 저지르려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 있는 도둑들이 납치까지 하려는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