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그 여자

나는 누구?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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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을 했습니다.

정말 불꽃튀는 사랑으로 애기까지 갖게 되었고,

둘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했습니다.

 

대부분 동화의 해피엔딩은 여기서 끝나죠...

 

그런데 부부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남자의 시댁은 겉만 그럴싸, 속은 완전 엉망징창이었고,

덕분에 30년된 주택 전세에서 시작된 결혼생활...

화장실에 거울도 없고, 오래된 하수구에서 벌레가 나오고,

보일러는 한겨울에 수십번씩 꺼지고,

집주인은 그 부부에게 직접 고쳐쓰던가 나가라고 했습니다.

구두쇠 집주인과 임신한 아내는 거의 매일 싸웠습니다.

여자는 점점 독해져갔죠.

그래도 이때까지는 남편도 아내도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내 둘째가 생기고 아내는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서울 명문대 우등생으로 졸업한 그녀...

애를 봐주지 않는 시댁어른들, 먼 지방의 친정...

어쩔수 없었지만 애들키우는 보람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연년생 터울의 애 둘과 하루종일 집에 있던 그녀는

날이 갈수록 푸석해지고 뚱뚱해지고 히스테리컬해졌지요.

애들이 언제 땡깡을 부릴지 몰라 밥을 먹을수 있을때 최대한 많이 먹었구요.

오래된 집이라 여기저기 개미, 바퀴벌레, 지네 할 것 없이 나오는 통에

질질 흘릴 수 밖에 없는 어린 아기들과 매일 씨름했습니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지쳐있는 그녀에게

밤 10시에 퇴근한 남편은 애교없다고, 섹시하지 않다고 그녀를 머라고 합니다.

그녀는 좀 미안했지만 매일 매일 전쟁같은 육아를 이해해 줄거라 믿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아내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을 다시 다니면서 이전의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다시 복귀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녀가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그 였거든요.

세상 그 누구가 바람을 피운다고 해도

내 그이만은 아닐거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틀렸습니다.

그녀가 잘못한 것입니다.

 

그는 한달전부터 새로운 여자를 만났지요.

그리고 그동안은 하지도 않던 문자, 전화 기록 지우기를 시작하더니

밤에 가끔씩 피씨방에 다녀온다고도 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요즘 좀 힘든가 보다 하고 그냥 놔둡니다.

그는 지방 출장도 다니고 상가집도 다닙니다.

그녀는 힘든 남편을 위해 청국장을 끓이고, 마를 갈아 줍니다.

 

그가 새로운 그녀에게 보낸 문자메세지를 얼떨결에 본 후

그녀는 남자의 새로운 그녀에게 전화를 합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떨립니다.

그 새로운 그녀는 그가 유부남인지도 애아빠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한번 만났는데 별로 맘에 안들었다...

보자마자 키스해달라고 그러는데 황당했다...

다음부터는 연락해도 일부러 안받았다... 고 합니다.

 

제가 바로 그녀입니다. 멍청하고 어리석고 우둔한 그녀... 부인이지요.

그가 바람을 피우려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사랑했던, 우리 이쁜 아이들의 소중한 아빠라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몰래 만나려고 했다는 사실보다

그 여자한테 버림(?)받았기 때문에 집에 일찍 왔다는 사실이 가슴아픕니다.

내 그 듬직한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여

죄책감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거절당해 돌아왔다는 사실...

 

그는 그녀와의 달콤한 첫날을 위해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제가 끓인 맛있는 청국장을 먹고 아이들과 좀 놀아준 뒤

상가집 간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혹시 모를 데이트비, 모텔비등을 위해 현금서비스를 15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그녀와 자고 오지 않았지만

저의 마음속에는 그는 자고 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날 자고 왔다면...

전 고생했다며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맛있는 음식을 하나라도 해줄려고

조금이라도 깨끗한 집을 보여줄려고 노력하느라

얼굴은 맨얼굴에 옷은 또 츄리닝이었겠지요.

그러고도 그저 남편을 안쓰러워 했겠지요... 후... 참...

 

제가 한 평생 믿고 살려 했던 남자가 이런 남자였다니...

제가 사랑한 것은 이 남자가 아닌가 봅니다.

내가 만든 허상일까요?

 

남편에게 아래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몇일 여행을 다녀오려구요.

아이들을 데려갈까 했는데 무슨 고생을 할 지 몰라 두고 가려 합니다.

 

몇 십년 된 벌레가 그득한 집에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

임신한 몸으로 집주인과 매일 싸우면서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참았다.

 

아이 둘에 먼 친정과 시댁,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집이 생길거란 기대로

아끼고 또 아끼고

살았다.

 

하지만 참고 산 만큼,

아끼고 산 만큼

나는 독해지고 못생겨졌다.

내가 봐도 정말 아닌 얼굴과 몸…

그래도 그가 변한 모습을 내가 사랑하듯

그도 나의 모습을 여전히 사랑하겠지…

 

회사일 힘들어 하는 남편,

종종 그만두고 싶어함에

불끈불끈 화를 냈지만,

결국 사표를 쓴다면

그저 시골에 가서 살아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냐.

사랑하는 그와 이쁜 아이들만 있으면 족하다.

 

하지만 점점 치쳐가는 몸과 마음…

그래도 내 남편을 사랑했기에

믿음도 있었다.

아니 믿음이 있었기에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 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믿었던 것인가?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들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오랜된 집이 그대로 있고,

나를 지치게 하는 아이둘이 그대로 있다.

다른 것은 그대로 인데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없고,

내가 한평생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위해 아득바득 살아왔는지…

이렇게 아끼고 고생해서

우리 집이라는게 생긴들…

하나도 기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