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를 왜곡시킨 개신교

김현갑20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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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2.net 추천입니다. 그 외 한퓨처, 한의 뿌리와 미래등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상고사가 왜곡되는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차분하게 보시면 수긍이 가실 것입니다.

 

[일제의 역사왜곡정책에 말려든 우리 겨레]
 이러한 위기의식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여기에는 일제시대 강력하게 진행된 역사왜곡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일제는 총독부 안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서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특히  단군 을 말살함으로써 한국의 역사를 2000년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단군 의 역사는 바로 우리 민족운동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가  단군 을 의도적으로 말살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없애고 그리고 일본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 하에서  단군 조선의 역사를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박성수)
 
 일제에 의해 발행된 『조선소사』1)라는 교과서를 보자. 조선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시조인  단군 의 이야기를 ‘전설’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사천년사』2)라는 또 다른 교과서. 조선의 역사는 4000년이라고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그 장구한 역사 자체가 ‘전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  단군 의 역사는 신화나 전설로 변조되었고, 그 역사마저 축소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보면 반만년 대륙민족의 영광사입니다. 그것을 일제는 2600년보다 줄이기 위해서 뿌리를 없애고 일본에 동화시키기 위해서, 말하자면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에 우리가 걸려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준환 회장 / 국사찾기협의회)
 
 실제 일제의 사이토 총독은  단군 과 고대사를 없애는데 주력했다.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先人)들의 무위(無爲), 무능(無能), 악행(惡行)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라.”(사이토가 발표한 ‘교육시책’ 중에서)
 
 “이마니시 류 이런 사람들은 『 단군 사』라든지 『 단군 고사』라든지 이런 글을 통해 그것은 신화다 또 승려 일연이 만든 망발이다 이런 식으로 봤고, 그것을 이어받아서 이병도 박사가 『삼국유사』를 해석할 때 고조선 부분을 신화로 몰아버린 것입니다. 1938년부터 본격화되어서 해방될 때까지 몇 년간 한 것이 전국에 퍼져서  단군 조선 2000년 역사가 전부 신화인 것처럼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의 뿌리가 없어져버리는 위기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고준환)
 
 
 식민사관 벗지 못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모든 배움의 근본이 되는 교과서. 그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어왔다. 해방 후에도 교과서는 일제 잔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단군 이 세운 고조선의 역사가 상당 부분 축소되는가 하면 여전히 신화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조선에 관한 역사왜곡은 크게 봐서 두 줄기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고조선의 역사,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간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의미는  단군 조선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공간을 축소시킨다는 의미는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 내 평안도 일대에 국한시키려는 움직임을 뜻합니다. 청동기 유적을 전부 한반도로 국한시켰는데, 우리 상고사의 본무대는 만주지역의 광활한 이쪽 지역이었지 한반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계속 우리 상고사의 무대를 좁은 한반도에 갇혀있었던 것처럼 (국사교과서 내 청동기시대) 지도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덕일)
 
 실증사학의 거두 이병도 박사. 그는  단군 조선을 신화로 생각한 대표 주자다. 그러나 그런 그도 지난 1986년 한 신문을 통해서  단군 의 실존에 대해 인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단군 의 진면목을 찾아야 겨레의 미래도 보인다
  단군 의 역사를 확신하며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이가 있다. 바로 김산호 화백. 그는 우리 상고사의 현장인 만주를 오가며 역사 속  단군 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실물을 보진 못했어도 옛 기록을 통해 잃어버리고 왜곡된 역사의 복원을 붓끝으로 실천하고 있다.  단군 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 마흔 일곱 명이다.
 
 “ 단군 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옛날(신라시대) 솔거가 그려준 할아버지의 모습만 놓고 하는데, 우리가 기마민족 아니에요! 말을 타고 적들을 하나하나 정복을 해서 거대 제국을 세울 수 있는 영웅의 모습은 절대로 아닙니다. 씩씩한 기상에 맞고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복장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 모습도 바뀌어야 합니다.” (김산호)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고 밝혀지고 있는 치우천황. 전쟁에 나서면 절대 패하지 않는 불패의 왕으로 이미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되살아나기도 했었다. 화가로서 우리의 상고사가 그림으로 정리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한다.
 
 93년  단군 릉 발견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한 북한. 그렇듯  단군 은 남과 북을 잇는 다리가 돼가고 있다. 오늘날  단군 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구심점이 없다는 거요. 어떤 구심점이 있어서 우리 국민이 하나로 화합을 해야지 지금처럼 열두 쪽 나서 잘 될 건 아무 것도 없어요.”(시민)
 


한국의 식민사대사학계가 더 큰 문제다
 한국사학계의 문제는 그 잘못된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통일될 때까지는 제정신을 가진 민족자주사학이 국사학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남쪽엔 사대식민사학이 지배하는 실정이고 북쪽은 유물계급사관이 판치는 형국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도 자주사학자가 드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도 한·중 역사전쟁이 불붙은 2004년도까지  고구려 를 전공한 박사가 1명도 없는 실정이었으며, 한국 전체에서  고구려 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단 3명에 불과했다. 중국 측이 1970년대에 발해사를 침탈할 때도 우리정부나 강단 사대식민학계에서 아무런 대응이 없었고, 이제 중국이  고구려 사에 이어 고조선사, 부여사, 백제사, 고려사를 침탈해 와도 사대식민사학계는 매국사학의 꿀 먹은 벙어리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강단의 사대식민사학자들의 기본논리는 나라역사 5천년을 통채로 중국에 바치기 좋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상을 보면 사대식민사학자들은 우리나라 최초 민족국가인 2천여 년의 단군조선을 잘 인정하지 않고, 사실이 아닌 중국 동래(東來)의 기자조선은 인정한다. 또한 진시황이 대동강까지 지배했으며, 요동·요서지방에 있던 한사군을 이병도설에 따라 한반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중국이 고양씨(황제의 손자)의 후손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고구려 와 백제가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 또한 사대식민사학자들은 남쪽에는 신라·북쪽에는 발해가 함께 있던 남북국시대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고려 건국의 태조 왕건도 중국에서는 중국 쪽의 낙랑군 후손이라 하여 중국 속방이라 하는데, 한국사대식민사학자들은 지금까지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본래 중국 속방으로 자처해 왔다. 그러면 한민족국가 역사 5천년 가운데 해방 후 50여년만이 한국의 자주국사로 남게 된다. 이들이 아무리 실증사학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이를 어찌 양심이 있고 애국심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리오? 중국의 시선(詩仙) 이태백도 시문집 『옥진총담』에서 발해를 고려( 고구려  이칭)라고 부르며 한민족 독자적 국가라고 썼는데, 우리학자들의 태도는 이렇게 해괴할 수 있는가?
 
 
 민족혼을 되찾아야
 나는 구한말에 애국자가 많았는데도 우리나라가 망한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이 나라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이해가 간다. 진실에 기초한 민족자주사학을 한국 사학자들이 외면하고 사회 곳곳이 분열되어 허위와 사기가 판을 치니 이 어찌 총체적 위기가 아니리오?
 
 더군다나 북한 핵실험 이후 국론은 극도로 분열되고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 4대강국의 국제정세도 심상치 않다. 여기서 우리는 심기일전하여 단합하고 위기를 호기로 꼭 바꿔야 한다.
 
 우리 국민은 모두 남북통일에 대비하여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주국사와 홍익인간 광화세계를 바탕으로 민족혼을 되찾아 국학을 굳건히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