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통계를 보면 이 세상에서 화장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우리 나라 여성이란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한국 여성이 화장품을 사들이는 돈의 비율이 국민 한 사람당 평군 소득에 비해 한국이 가장 높게 나왔다나요
어쨌든, 여성이라면 누구나 예뻐지고 싶은 바램이 있을 테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옛날의 여성도 마찬가지 였다.
우리 나라 여성들의 화장, 어떤 변천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화장에 관한 얘기를 해 드리겠다.
우리 나라에 개화바람이 불어 닥치기 이전에는 머리를 곱게 빗기 위한 동백기름이라든가 분꽃의 씨를 곱게 빻아 만든 분가루같은 것이 있었다. 머리를 매만질 때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을 써서, 행여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질세라 참빗으로 곱게 빗어서 찰싹 붙게 빗어 내렸다. 몸을 닦는 데에도 옛날에는 비누가 없어서 팥이나 녹두를 맷돌에 갈아서 그 가루를 한줌 쥐고 세수대야에 풀어서 세수를 했다. 이 때 몸이나 얼굴에 녹두의 날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향내 나는 꽃으로 살짝 발라서 비린내를 없애곤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향수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옛날분들이 팥비누 녹두비누를 쓰다가 '사분'이라는 이름의 비누를 사용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라 한다. 지금도 경상도 지방에선 비누를 '사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대중화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비누만 하더라도 무척 귀한 물건으로 여겨졌었다.
비누가 상품으로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882년 조선과 청나라가 체결한 무역협정이 조인된 후 부터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상해와 인천간의 정기항로가 트인 다음부터는 여러 가지 서양상품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왔고, 진고개에 일본 사람들이 가게를 차린 다음에 가장 불티나게 팔린 물건이 성냥과 남포, 그리고, 비누였다고 한다.
청일전쟁 직후, 하루의 품삯이 80전이었는데, 비누 한 개의 값은 그보다 비싼 1원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귀중품이였다.
우리 나라에 화장품이 처음 들어와서 어떤 사람이 썼느냐 하면, 대부분이 기생들이 고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여성들은 거의 시집갈때나 처음 화장을 하고 연지, 곤지를 찍어봤다고 한다. 그러다가 개방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1920년에 외국의 상품에 대항하기 위해 국산품 분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때 가장 많이 사용됐던 것이 '박가분'이란 것이다.
박가분이란 네모 반듯한 고형분인데, 두께는 2∼3밀리 정도이고 표면에 바둑판 모양으로 금이 가 있어서 이것을 한 조각씩 떼어내서 손바닥위에 놓고,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서 잘 풀어 개어서 얼굴에 찍어 발랐던 것이다.
박가분은 값은 싸지만, 품질이 별로 좋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서양에서 들여온 양분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왜분을 썼다만, 요즘은 우리 나라 화장품도 외국것 못지않게 품질이 좋아졌다.
당시에는 화장품을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서 창기들의으 등급이을 나눠져서 양분을 쓰는 양분기생이 일등이고 그 다음이 왜분기, 그리고, 맨끝으로 연분기라고 했는데, 이 연분이란 것은 납으로 만든 분으로 중독현상이 아주 심했던 분이다.
연분(鉛粉)이란 납 연(鉛)자를 쓰는데, 싼 값으로 살 수가 있고, 처음에는 얼굴에 잘 퍼지고 해서 한동안 화류계 여성들에게 인기가 대단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분은 무서운 중독현상이 뒤따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화장품이었다.
본래 연분이란 납조각에 식초기운을 쐬어서 한 보름쯤 계속해서 숯불에 달구어 놓으면 납조각에는 하얗게 납꽃이 피어난다. 납조각에 피어 있는 납꽃가루를 긁어 모아서 그것을 주성분으로 해서 만든 것이 연분이다. 그러니 얼마나 인체에 해로웠겠습니까.
화장품 얘기를 하자면, 1930년대 서울에 등장한 '티호노프'란 러시아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까만 색안경을 쓰고, 아코디언을 구성지게 연주하면서 이골목 저골목 화장품을 팔러 다녔던 사람인데, 이 러시아 사람은 빨간 머리에다 빨간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골목을 찾아다녔다.
그가 끌고 다니는 손수레에는 큼직한 생철통에 크림하고 상자에는 파나물이 담긴 유리병이 가득했다. 이 파란물을 미안수라 했는데, 지금의 로션이다. 이 티호노프 영감은 자신이 특별한 처방으로 크림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데, 값도 일제 상품의 반 밖에 안됐다고 한다. 티호노프 영감님은 우리말도 약간 할 줄 알아서, 골목 어귀에 와서 한참 아코디언을 켜다가는 우리말로
"예쁜이모 나와요, 복순이도 나와요, 누구든지 바르면 이뻐지는 구리무를 가지고 왔어요"
하면서 모여드는 계집애 콧잔 등에 크림을 슬쩍 찍어서 발라 주곤 했단다.
크림을 살때 크림 병을 가지고 나오면, 편편한 수저같은 길쭉한 주걱으로 크림을 떠서 병속에 넣는데, 반쯤 차면 크림병을 탁탁 쳐서 크림이 안으로 들어가게 해, 가득 채워 주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티호노프영감이 골목마다 화장품을 팔러 다닌 것은 전에 같이 살던 한국인 여인이 가출을 해서 그 여인을 찾아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 진부는 알길이 없고, 일제의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올랐을 때,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누
최근 한 통계를 보면 이 세상에서 화장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우리 나라 여성이란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한국 여성이 화장품을 사들이는 돈의 비율이 국민 한 사람당 평군 소득에 비해 한국이 가장 높게 나왔다나요
어쨌든, 여성이라면 누구나 예뻐지고 싶은 바램이 있을 테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옛날의 여성도 마찬가지 였다.
우리 나라 여성들의 화장, 어떤 변천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화장에 관한 얘기를 해 드리겠다.
우리 나라에 개화바람이 불어 닥치기 이전에는 머리를 곱게 빗기 위한 동백기름이라든가 분꽃의 씨를 곱게 빻아 만든 분가루같은 것이 있었다. 머리를 매만질 때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을 써서, 행여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질세라 참빗으로 곱게 빗어서 찰싹 붙게 빗어 내렸다. 몸을 닦는 데에도 옛날에는 비누가 없어서 팥이나 녹두를 맷돌에 갈아서 그 가루를 한줌 쥐고 세수대야에 풀어서 세수를 했다. 이 때 몸이나 얼굴에 녹두의 날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향내 나는 꽃으로 살짝 발라서 비린내를 없애곤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향수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옛날분들이 팥비누 녹두비누를 쓰다가 '사분'이라는 이름의 비누를 사용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라 한다. 지금도 경상도 지방에선 비누를 '사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대중화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비누만 하더라도 무척 귀한 물건으로 여겨졌었다.
비누가 상품으로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882년 조선과 청나라가 체결한 무역협정이 조인된 후 부터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상해와 인천간의 정기항로가 트인 다음부터는 여러 가지 서양상품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왔고, 진고개에 일본 사람들이 가게를 차린 다음에 가장 불티나게 팔린 물건이 성냥과 남포, 그리고, 비누였다고 한다.
청일전쟁 직후, 하루의 품삯이 80전이었는데, 비누 한 개의 값은 그보다 비싼 1원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귀중품이였다.
우리 나라에 화장품이 처음 들어와서 어떤 사람이 썼느냐 하면, 대부분이 기생들이 고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여성들은 거의 시집갈때나 처음 화장을 하고 연지, 곤지를 찍어봤다고 한다. 그러다가 개방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1920년에 외국의 상품에 대항하기 위해 국산품 분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때 가장 많이 사용됐던 것이 '박가분'이란 것이다.
박가분이란 네모 반듯한 고형분인데, 두께는 2∼3밀리 정도이고 표면에 바둑판 모양으로 금이 가 있어서 이것을 한 조각씩 떼어내서 손바닥위에 놓고,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서 잘 풀어 개어서 얼굴에 찍어 발랐던 것이다.
박가분은 값은 싸지만, 품질이 별로 좋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서양에서 들여온 양분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왜분을 썼다만, 요즘은 우리 나라 화장품도 외국것 못지않게 품질이 좋아졌다.
당시에는 화장품을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서 창기들의으 등급이을 나눠져서 양분을 쓰는 양분기생이 일등이고 그 다음이 왜분기, 그리고, 맨끝으로 연분기라고 했는데, 이 연분이란 것은 납으로 만든 분으로 중독현상이 아주 심했던 분이다.
연분(鉛粉)이란 납 연(鉛)자를 쓰는데, 싼 값으로 살 수가 있고, 처음에는 얼굴에 잘 퍼지고 해서 한동안 화류계 여성들에게 인기가 대단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분은 무서운 중독현상이 뒤따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화장품이었다.
본래 연분이란 납조각에 식초기운을 쐬어서 한 보름쯤 계속해서 숯불에 달구어 놓으면 납조각에는 하얗게 납꽃이 피어난다. 납조각에 피어 있는 납꽃가루를 긁어 모아서 그것을 주성분으로 해서 만든 것이 연분이다. 그러니 얼마나 인체에 해로웠겠습니까.
화장품 얘기를 하자면, 1930년대 서울에 등장한 '티호노프'란 러시아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까만 색안경을 쓰고, 아코디언을 구성지게 연주하면서 이골목 저골목 화장품을 팔러 다녔던 사람인데, 이 러시아 사람은 빨간 머리에다 빨간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골목을 찾아다녔다.
그가 끌고 다니는 손수레에는 큼직한 생철통에 크림하고 상자에는 파나물이 담긴 유리병이 가득했다. 이 파란물을 미안수라 했는데, 지금의 로션이다. 이 티호노프 영감은 자신이 특별한 처방으로 크림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데, 값도 일제 상품의 반 밖에 안됐다고 한다. 티호노프 영감님은 우리말도 약간 할 줄 알아서, 골목 어귀에 와서 한참 아코디언을 켜다가는 우리말로
"예쁜이모 나와요, 복순이도 나와요, 누구든지 바르면 이뻐지는 구리무를 가지고 왔어요"
하면서 모여드는 계집애 콧잔 등에 크림을 슬쩍 찍어서 발라 주곤 했단다.
크림을 살때 크림 병을 가지고 나오면, 편편한 수저같은 길쭉한 주걱으로 크림을 떠서 병속에 넣는데, 반쯤 차면 크림병을 탁탁 쳐서 크림이 안으로 들어가게 해, 가득 채워 주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티호노프영감이 골목마다 화장품을 팔러 다닌 것은 전에 같이 살던 한국인 여인이 가출을 해서 그 여인을 찾아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 진부는 알길이 없고, 일제의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올랐을 때,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