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 초본을 떼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파루20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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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학교 장학금 신청 마감일이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서류들 챙기고 주민등록 등본이랑 초본

(제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기 때문에 부모님과의 관계를 입증할 서류가 필요함 ㅇ_ㅇ;) 을 떼러

학교랑 가까운 동사무소를 갔습니다.

 

등본을 떼는데..제가 자취하면서 자취방에 전입신고를 해서..

제 이름 하나 달랑 나오는데..참 서글프더군요.주민등록 초본을 떼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초본을 떼는데..

참 오랫만에 동생의 이름을..보았습니다.

 

선명하게 적혀있는, 사망.

 

 

 

세상에서 누구보다 소중했던 제 동생..

저희는..쌍둥입니다.

아니, 과거형이 맞겠군요.. 쌍둥이었습니다.. 

이란성 쌍둥이라서 성별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달랐지만

1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어릴 적 부터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4학년 때 까지는

몸 약한 동생이 걱정되서 엄마의 부탁으로 같은 반을 다녔었죠..

같은 초등학교를 나오고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던 동생..

 

제 동생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았습니다..

그 핏덩이 같은 몸에 수술 한 번..

그리고 3살 때 한 번.. 다섯살 때 한번..

총 3번의 수술을 했었네요..

저희 엄마도 고생 참 많이하셨죠....

기존의 심장병과는 좀 많이 다른 심장병이어서

경북대 교수님들이 해외 논문 번역해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술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그 때 의사선생님들이 그랬다네요.

길어야 10년이라고..

 

그래도 제 동생 13년을 살다가 2000년 8월 17일 세상을 떠났네요...

 

어린 시절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제 기억속에는 다섯살 이후의 동생이 퇴원하고

한달에 한번쯤 대구가서 치료 받던것만 기억 나기에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하루도 안빼고 함께 붙어다녔던 동생...

 

13살까지의 제 기억속에

동생이 없었던 순간은 한달에 한번 병원가는 날 말고는 거의 없었네요..

 

약하고, 달리기도 못하고, 그러면서 한없이 착하기만 한 동생이어서

제가 태권도를 배워서 동생 괴롭히거나 놀리는 친구들 있으면

때리고 같이 싸우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던 날에도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고

먹을걸로 다투기도 하고, 가위바위보 해서 서로 심부름도 시키고 그랬는데..

저녁쯤에 동생이 갑자기 발작을 하더군요... 머리 아프고 근육이 마비되는 것 같다고..

근래 들어서 가끔 그런일이 있었고

병원 응급실에 갔다오면 다시 얼마뒤면 웃으며 퇴원하던 동생이었기에..

그러리라고 믿었습니다.

동생이 아빠 등에 업혀서, 아빠 차를 타고 응급실로 가던 때가

꿈에도 마지막일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집에..

근처에 사시던 외삼촌이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서는

동생이 많이 아프다고 빨리 병원에 가자고..

 

많이..안좋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동생은 더이상의 수술로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어서

심장 기증자를 구하고 있었을 때여서

어린 마음에는, 나는 그동안 너무 건강히 잘 지냈으니까

엄마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하고 내 심장 동생에게 줘도 된다는 생각까지 하며 차를 타고 갔습니다..

 

응급실에 갔는데,,, 동생이 없습니다..

설마.. 설마..

 

너무 당황하는 저를 뒤로 하고

침착하게 외삼촌이 간호사에게 제 동생 이름을 대며, 이 환자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정말 아무렇지 않게.. 간호사..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하더군요.

 

영안실로 가라고..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기에..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영안실..

지하로 내려가는 곳에 있었는데..

정말 목에서 쉰소리를 내며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이런 곳이 영안실이구나..하고 둘러 볼 때

그 소리가 우리엄마라는걸 알았을 때

그제야 이게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 ... 그제서야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마지막 인사도 못했는데..

한번도 마음대로 뛰어 놀지도 못했는데..

내 착한 동생.. 항상 병원에서도 자기 병원비 때문에 빚을 떠안은

우리 엄마 아빠 걱정만 하고..

이제는 ..어느새 7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린 이제는.

가끔 가족들끼리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도 동생 이야기를 하지만

다들 가슴아파하는건 어쩔 수가 없네요..

 

어머니는 아픈 동생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우면 예의없게 자랄까봐,

아픈 줄 알면서도 더 강하게 키우려고 따끔하게 혼도 내셨고..

그걸 가장 마음 아파하더라구요..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에..

그리고 병원에서 다른 친구들이 RC 카 갖고 놀 때

엄마에게 한번도 사달라는 말을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던 동생 생각하며

지금도 마트나 백화점에서 RC카만 보면 그렇게 우십니다..

 

동생 장례를 치룰 때 아버지가 오열하며 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상주가 없다고..

내 장례식 때 상주가 없는건 상관 없지만..

내 새끼 장례식에 상주가 없다고.. 한참을 우셨네요..

 

저도.... 항상 이렇게 건강하기만 한 나 때문에..

내가 뱃속에서 동생 먹을거 다 뺏아 먹고 커서 나만 건강하고 동생은 아픈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많이 했고....

항상 나만 건강해서..

달리기도 못하고.. 먼곳으로 여행도 못가는 동생에게

나만 너무 잘 사는것 같아서 미안했던 생각이 나네요..

 

참 아이러니 한 것은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고 당시 초등학생 중학생 때니까

..엄마가 교통비 제외하고 한달에 용돈을 이천원씩 주셨거든요.

동생이 먹고싶은 과자도 안사먹고 몇년을 그 돈을 모아서

통장에 딱 10만원을 맞추던 달에 떠났습니다..이자 제외하고..

엄마는 동생이 자기 떠날 때를 알고 있었던것 같다고

유품 정리하면서 한참을 통장을 끌어안고 우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때 꿈은 화가였던 동생.

당시 포켓몬스터가 유행할 때 였는데 그 그림 다 그려내고

5년을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12살 때 미술학원에서 아그리파를 그렸으니..그림도 제법 잘 그렸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어느날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다 나으면, 이제 자기가 사람을 낫게 하겠다고..

 

 

가끔은 그런생각을 해봅니다.

아직도 내 맘속에는 13살, 소년이라고 하기에도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동생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저는 아빠를 닮아서 눈도 작고 얼굴도 동그란데

동생은 엄마를 닮아서 눈에 쌍커풀도 예쁘게 있고, 잘생겼었거든요.

아파도 항상 웃고, 항상 엄마에게 미안해할줄만 알았던 아이였는데..

 

 

아무튼 문득 생각이나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장학금 신청서를 내고 오면서도

동생의 사망 시간까지 정확히 적혀있는 그 초본이 포함된 서류들을 내고 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네요..

 

항상 부모님은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지만

다시..동생 몫까지 잘 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니 몫까지 잘 살겠다고..

열심히 살겠다고...

 

 

 

문득 동생이 너무 보고싶네요..

 

 

그 날 이후로 한동안은 정말 방황도 많이 하고..

사람 만나는 일도 너무 힘들고..

그렇게 활발하던 제가 성격도 많이 내성적으로 변했었는데

다행히 고등학교 때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성격도 밝아지고

지금은..어느 새 스물 한살, 곧 스물 두살이 되네요.

오늘의 저는..

여자라고, 대학 진학할 때 선생님과 부모님으로 부터 사범대와 교대 진학을

권유 받았는데

끝까지 고집 부려서

현재 서울에 있는 사립 대학의 러시아어문학과에서 나름대로 많은 꿈을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경제학 복수전공도 하고..꿈 많은 스물 한살 입니다.

동생이 그 때 옆에 있었다면 왜 엄마말 안듣냐고 뭐라 했을것 만 같네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꼭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서

동생 이름을 내걸고 심장병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재단을 만들고 싶은게 제 꿈입니다.^^

내년 부터는 정기적으로 소액이나마 기부도 할 생각이구요..

 

한동안

동생 생각도 많이 나고.. 올해 초에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지금은 충정로에 있는 복지재단에서 주말에 어르신 목욕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그리고 활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과 함께 목욕하는 봉사활동인데

봉사활동 할 때 마다 동생생각이 참 많이나네요...

동생도 만약에 지금 건강하다면 이렇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있었을 텐데..

항상 TV에 수재민이나 아픈 사람들 나오면

엄마에게 꼭 물어보고 전화를 들던 동생이었거든요..

 

생각해 보면 모든 일상 생활을 할 때도 동생을 잊어 본 적이 없는것 같아요.

휴대폰만 만지작 거려도..

동생이 응급실 실려가서 다음날 괜찮아 지면

퇴원하기 전에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자기 뭐 먹고싶다던지 그런 말 하고..

서태지도 참 좋아했었는데.. 노래방만 가면 같이 난 알아요 부르던 기억이 나네요.

꼬마곰 젤리만 봐도 동생 생각이 나고..

 

아무튼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서울에 와서 혼자 살고..

한동안 학점 경쟁이 치열한 대학생활....

그리고 얼마전 가족처럼 의지했던 남자친구와의 이별..

요즘 많이 힘들었는데..

 

동생이 13년간 겪었던 아픔..

아직도 가슴 아파하시는 우리 엄마 아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고..

다시 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시험도 잘 마무리 짓고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네요..

 

 

열심히 살겠습니다..

 

토커 여러분들, 열심히 삽시다!

좋은 하루 ..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