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를 맞이하여 복잡한 밖보다는 집에 들어앉아, 좋은 수필을 보러고여러 사이트를 다니다 보면, 내가 몰랐던 참으로 좋은 글이 많다.
잘 알려지고 젊은 시절에 읽었던 글도 오십을 넘는 지금의 나이에 다시 보니, 그토록 감회가 깊은 글이요, 그토록 눈부신 글이요, 그토록 번뜩이는 영감이 스치는 글이라...... 역시 나이에 따라서 글을 받아 들이는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배가 고픈줄도 모르고, 오직 눈이 침침하여져야만 내 의식이 돌아오는 것이다.
글의 세계는 정신의 세계인 것이다.
인간정신의 무궁함이 펼쳐지고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니, 바다에서 퍼 올린 한 종기의 물같은 내 정신이 아닌가. 한 여름만 사는 쓰르라미가 가을을 알지 못하며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가 내일이 있는 줄을 모르는 것이 나의 삶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창 밖에 내리는 장마비 소리를 들으며 반성...... 반성을 한다.
더듬었던 코끼리의 다리로 그 모양새를 말했던 지금까지의 내 생각과 글에 대하여 가슴을 치는 통탄을 보낸다. 공자 앞에서 인륜을 논하고 달리는 열차 앞에서 수레바퀴의 신속함을 자랑하는 격이었으니, 태산이 그토록 높았건만 우매한 눈은 태산을 가리는 안개였음이라.
오늘은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 가셨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인데, 굼뱅이 같던 내가 그 동안에 내가 품었던 한가지 생각이 옳았음을 느꼈던 것이다.
글이란, 자신을 향한 질책이요, 위로요, 애정이다. 타인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글이 아니라 자신을 백지위에 그려 놓고 자신의 눈으로 똑똑이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글이다.
글은 자기 자신을 각성하고 사색하는 것에서 출발함이 옳았던 것이다. 글은 눈 밖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슴속에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태산의 거대함은 알아 보지 못했지만 막연하게나마 저 쪽에 산이 있었음을 알았던 것이니, 잠시나마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절망이 몰려왔다.
겨우 태산을 들어가는 오솔길을 잡았는데, 언제 첩첩으로 둘러쌓인 산계곡마다 구경할 것이며, 주봉을 오를 것이며, 능선을 달릴 것이며, 산의 모양새를 다 깨우칠 것인가......
장자의 전설에는 팔백 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고 하던데, 팔백 년은 켜녕 백 년도 못 사는 것이 인생이요, 그 나마 오십 년은 이미 넘긴 것이라. 평균 인간수명을 칠십 오세로 친다고 하면, 나머지 세월 중에 혹시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망령이라도 들어서 헛소리를 하면 어찌하나 하는 섬뜩함이 가슴을 친다.
도를 깨우치면 곧 죽어도 좋은 일이라고 공자는 말했다.
잡념많고 번거로운 내가 대오하여 커다란 도를 깨우칠리는 만무할 것이요, 죽을 때까지 도는 커녕 망령되이 헛소리나 하지 않으면 다행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안 받으면 하늘에 감사하여 업드릴 일이다.
별안간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창문을 두드린다.하얗게 질린 백면서생의 안색으로 창 밖을 본다. 올 여름은 천박하게 버려진 내 혼을 붙잡고 통곡이나 할 모양이다.
글에 대한 절망.
여름철를 맞이하여 복잡한 밖보다는 집에 들어앉아, 좋은 수필을 보러고여러 사이트를 다니다 보면, 내가 몰랐던 참으로 좋은 글이 많다.
잘 알려지고 젊은 시절에 읽었던 글도 오십을 넘는 지금의 나이에 다시 보니, 그토록 감회가 깊은 글이요, 그토록 눈부신 글이요, 그토록 번뜩이는 영감이 스치는 글이라...... 역시 나이에 따라서 글을 받아 들이는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배가 고픈줄도 모르고, 오직 눈이 침침하여져야만 내 의식이 돌아오는 것이다.
글의 세계는 정신의 세계인 것이다.
인간정신의 무궁함이 펼쳐지고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니, 바다에서 퍼 올린 한 종기의 물같은 내 정신이 아닌가. 한 여름만 사는 쓰르라미가 가을을 알지 못하며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가 내일이 있는 줄을 모르는 것이 나의 삶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창 밖에 내리는 장마비 소리를 들으며 반성...... 반성을 한다.
더듬었던 코끼리의 다리로 그 모양새를 말했던 지금까지의 내 생각과 글에 대하여 가슴을 치는 통탄을 보낸다. 공자 앞에서 인륜을 논하고 달리는 열차 앞에서 수레바퀴의 신속함을 자랑하는 격이었으니, 태산이 그토록 높았건만 우매한 눈은 태산을 가리는 안개였음이라.
오늘은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 가셨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인데, 굼뱅이 같던 내가 그 동안에 내가 품었던 한가지 생각이 옳았음을 느꼈던 것이다.
글이란, 자신을 향한 질책이요, 위로요, 애정이다. 타인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글이 아니라 자신을 백지위에 그려 놓고 자신의 눈으로 똑똑이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글이다.
글은 자기 자신을 각성하고 사색하는 것에서 출발함이 옳았던 것이다. 글은 눈 밖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슴속에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태산의 거대함은 알아 보지 못했지만 막연하게나마 저 쪽에 산이 있었음을 알았던 것이니, 잠시나마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절망이 몰려왔다.
겨우 태산을 들어가는 오솔길을 잡았는데, 언제 첩첩으로 둘러쌓인 산계곡마다 구경할 것이며, 주봉을 오를 것이며, 능선을 달릴 것이며, 산의 모양새를 다 깨우칠 것인가......
장자의 전설에는 팔백 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고 하던데, 팔백 년은 켜녕 백 년도 못 사는 것이 인생이요, 그 나마 오십 년은 이미 넘긴 것이라. 평균 인간수명을 칠십 오세로 친다고 하면, 나머지 세월 중에 혹시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망령이라도 들어서 헛소리를 하면 어찌하나 하는 섬뜩함이 가슴을 친다.
도를 깨우치면 곧 죽어도 좋은 일이라고 공자는 말했다.
잡념많고 번거로운 내가 대오하여 커다란 도를 깨우칠리는 만무할 것이요, 죽을 때까지 도는 커녕 망령되이 헛소리나 하지 않으면 다행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안 받으면 하늘에 감사하여 업드릴 일이다.
별안간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창문을 두드린다.하얗게 질린 백면서생의 안색으로 창 밖을 본다.
올 여름은 천박하게 버려진 내 혼을 붙잡고 통곡이나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