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얼마가 지났는지 모른다. 테이블에는 오렌지카운티에서 날라 온 오렌지 빛 털모자가 햇살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유리를 닮은 모노톤 빛 비니도 함께 햇살을 가득 담고 웃고 있었다.
“으흥, 눈꽃이다. 눈꽃은 항상 행운을 상징해.”
“정말?”
햇살을 투영하는 창가에는 눈꽃이 날라 와 내리 앉았다. 오렌지 빛 털모자가 오렌지카운티 화보 촬영 중 제이슨이 유리의 머리에 씌어 준 것이었다면 비니는 예기치 못하게 제이슨과 깜짝 데이트 중 함께 했던 행운의 소품이었다.
“빅토리아. 네가 결혼만 약속해준다면 샌프란시코의 고필드에도 갔다 올 수 있어. 네게 줄 반지를 가지고 말이야. 정말이야! 아프리카에 가서 수박만한 다이아몬드를 가져다 줄 수도 있어.”
“영화 대사들은 하나 같이 감미로워.”
로미와 쥴리엣, 캐더린과 히드클리프. 그들은 모두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하다 죽었다. 하지만, 사랑이 과연 그렇기만 할까?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비운의 주인공들이 겪는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가 인기인지도 모른다. 유리가 수현으로부터 듣는 어떤 영화의 대사도 그런류였다.
대사의 운율을 맞추듯 시원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눈꽃들은 햇살에 녹아들며 창가에 내리 앉았고 이상하게도 먼저 내리 앉은 어떤 한 송이만이 그 빛을 발하며 계속 창가에 서성였다.
“내 스캔들도 영화 대사처럼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난 사실 운동선수 싫은 데!”
수현은 눈꽃을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 얼굴을 찡그렸다.
“대낮에 마티니라 좋은데 뭐!”
유리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마티니 잔을 들어올렸다.
대낮부터 웬 마티니냐고들 그렇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연애인지 일인지 구분이 안갈 순간이 있다. 유리와 수현은 이벤트 행사 중 만난 야구선수의 인터뷰를 위해, 시내 한 복판의 바에 주저앉았다. 기자들이 자주 들락거린다는 시내 한 복판의 바에는 색색가지 와인들과 작은 칵테일들이 오갔고 유리와 수현의 칵테일도 그 중 하나였다. 시큼 상큼한 마티니는 그 맛만큼 기분도 상큼하게 해주었다.
수현은 말했다. 야구선수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에 별로 재능이 없는 수현은 그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다니는 여자라면 적어도 싫은 남자와 밥도 먹고 술도 마셔야된다. 수현이 싫어하는 집 채 만한 덩치의 야구선수는 유리가 제이슨을 운명같이 만난 이벤트 클럽에서의 선수다. 당시 수현은 자신이 일으킨 사건 때문에 유리와 제이슨을 살살 피해 다녔고 피해 다니다 그만 그와 쾅하니 부딪혔다. 수현에겐 단지 육체적 통증이 심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수현을 따라다녔다. 수현은 그를 요 핑계 조 핑계 대며 피해 다녔고 마침내 그는 결국 사회적 완력을 사용했다. 전지훈련 가기 전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부장에게 찌른 것이다.
“말하는 것도 너무 촌스러. 그게 뭐야? 나 쓸만합니다.”
마티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수현은 핸드폰 문자의 폴더를 치하니 닺았다.
“유리 넌 좋겠다.”
수현은 일에 대한 실적이 별로 안 좋은 직원답게 싫어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수현아 그도 떠오르는 신인 선수잖아! 10대 여자애들이 보기엔 너도 굉장한 부러움의 대상이야. 회사에 사인 볼도 가져왔잖아.”
“안타 몇 번 쳤다고 톱이 된 건 아니라네요.”
“또 오늘 여기 물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수현에게 또 다시 문자가 날라 왔고 수현은 문자를 보며 바를 휘익 둘러보았다. 문자는 차가 막혀 늦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고 바는 진짜 평소보다 물이 좋았다. 왜냐하면 과히 국제화 시대에 맞는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낮이라서 그런지 기자들 보단 젊은 외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짧게 친 머리에 쓰윽 하니 올린 비니에 두툼하니 딱 붙는 점퍼에 바지, 바지 위에 멋들어지게 무릎까지 신켜진 롱부츠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물론, 영어를 잘하겠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세태 때문인지 외국인들을 흔히 볼 수는 있지만, 저 정도 멋진 외국 남자를 보기는 힘들다. 두 손에는 제법 커다란 카메라도 들려있었다.
“우리 영어 학원 다시 다닐까?”
유리는 대학시절 수현과 함께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뭔가 획기적인 일들을 하고 싶었던 유리와 수현은 외국인 강사들과 미팅을 계획하였다. 강사들은 뭐 영어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로 꽤나 잘 노는 애들이었고 몇 번의 애프터로 그만 말문이 트여 곧바로 유리와 수현은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야기가 거기까지 전개되었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배낭여행 후 기사화 된 일인데 그들은 본국에서 수배중인 불법체류자들이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불량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단기간 영어를 배워서 좋긴 좋은데 좀만 더 만났더라면 유리와 수현도 연루가 될 뻔했다. 그 때 일을 생각하자 유리는 웃음이 나왔다.
“그럴 필요 없네요.”
“얘!”
사람은 시점만 다를 뿐 항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나보다. 갑자기 수현은 뭔가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깜찍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흔들었다.
“Your smile is very bright.”
“You looks very sweet.”
결국 사건 빵이었던 것이다. 멋들어진 비니의 사나이도 수현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테이블로 걸어들어 왔다. 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비니를 움켜쥐었다.
제9장 애인만들기
제9장 애인 만들기
그리고 얼마가 지났는지 모른다. 테이블에는 오렌지카운티에서 날라 온 오렌지 빛 털모자가 햇살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유리를 닮은 모노톤 빛 비니도 함께 햇살을 가득 담고 웃고 있었다.
“으흥, 눈꽃이다. 눈꽃은 항상 행운을 상징해.”
“정말?”
햇살을 투영하는 창가에는 눈꽃이 날라 와 내리 앉았다. 오렌지 빛 털모자가 오렌지카운티 화보 촬영 중 제이슨이 유리의 머리에 씌어 준 것이었다면 비니는 예기치 못하게 제이슨과 깜짝 데이트 중 함께 했던 행운의 소품이었다.
“빅토리아. 네가 결혼만 약속해준다면 샌프란시코의 고필드에도 갔다 올 수 있어. 네게 줄 반지를 가지고 말이야. 정말이야! 아프리카에 가서 수박만한 다이아몬드를 가져다 줄 수도 있어.”
“영화 대사들은 하나 같이 감미로워.”
로미와 쥴리엣, 캐더린과 히드클리프. 그들은 모두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하다 죽었다. 하지만, 사랑이 과연 그렇기만 할까?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비운의 주인공들이 겪는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가 인기인지도 모른다. 유리가 수현으로부터 듣는 어떤 영화의 대사도 그런류였다.
대사의 운율을 맞추듯 시원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눈꽃들은 햇살에 녹아들며 창가에 내리 앉았고 이상하게도 먼저 내리 앉은 어떤 한 송이만이 그 빛을 발하며 계속 창가에 서성였다.
“내 스캔들도 영화 대사처럼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난 사실 운동선수 싫은 데!”
수현은 눈꽃을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 얼굴을 찡그렸다.
“대낮에 마티니라 좋은데 뭐!”
유리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마티니 잔을 들어올렸다.
대낮부터 웬 마티니냐고들 그렇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연애인지 일인지 구분이 안갈 순간이 있다. 유리와 수현은 이벤트 행사 중 만난 야구선수의 인터뷰를 위해, 시내 한 복판의 바에 주저앉았다. 기자들이 자주 들락거린다는 시내 한 복판의 바에는 색색가지 와인들과 작은 칵테일들이 오갔고 유리와 수현의 칵테일도 그 중 하나였다. 시큼 상큼한 마티니는 그 맛만큼 기분도 상큼하게 해주었다.
수현은 말했다. 야구선수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에 별로 재능이 없는 수현은 그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다니는 여자라면 적어도 싫은 남자와 밥도 먹고 술도 마셔야된다. 수현이 싫어하는 집 채 만한 덩치의 야구선수는 유리가 제이슨을 운명같이 만난 이벤트 클럽에서의 선수다. 당시 수현은 자신이 일으킨 사건 때문에 유리와 제이슨을 살살 피해 다녔고 피해 다니다 그만 그와 쾅하니 부딪혔다. 수현에겐 단지 육체적 통증이 심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수현을 따라다녔다. 수현은 그를 요 핑계 조 핑계 대며 피해 다녔고 마침내 그는 결국 사회적 완력을 사용했다. 전지훈련 가기 전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부장에게 찌른 것이다.
“말하는 것도 너무 촌스러. 그게 뭐야? 나 쓸만합니다.”
마티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수현은 핸드폰 문자의 폴더를 치하니 닺았다.
“유리 넌 좋겠다.”
수현은 일에 대한 실적이 별로 안 좋은 직원답게 싫어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수현아 그도 떠오르는 신인 선수잖아! 10대 여자애들이 보기엔 너도 굉장한 부러움의 대상이야. 회사에 사인 볼도 가져왔잖아.”
“안타 몇 번 쳤다고 톱이 된 건 아니라네요.”
“또 오늘 여기 물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수현에게 또 다시 문자가 날라 왔고 수현은 문자를 보며 바를 휘익 둘러보았다. 문자는 차가 막혀 늦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고 바는 진짜 평소보다 물이 좋았다. 왜냐하면 과히 국제화 시대에 맞는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낮이라서 그런지 기자들 보단 젊은 외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짧게 친 머리에 쓰윽 하니 올린 비니에 두툼하니 딱 붙는 점퍼에 바지, 바지 위에 멋들어지게 무릎까지 신켜진 롱부츠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물론, 영어를 잘하겠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세태 때문인지 외국인들을 흔히 볼 수는 있지만, 저 정도 멋진 외국 남자를 보기는 힘들다. 두 손에는 제법 커다란 카메라도 들려있었다.
“우리 영어 학원 다시 다닐까?”
유리는 대학시절 수현과 함께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뭔가 획기적인 일들을 하고 싶었던 유리와 수현은 외국인 강사들과 미팅을 계획하였다. 강사들은 뭐 영어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로 꽤나 잘 노는 애들이었고 몇 번의 애프터로 그만 말문이 트여 곧바로 유리와 수현은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야기가 거기까지 전개되었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배낭여행 후 기사화 된 일인데 그들은 본국에서 수배중인 불법체류자들이었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불량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단기간 영어를 배워서 좋긴 좋은데 좀만 더 만났더라면 유리와 수현도 연루가 될 뻔했다. 그 때 일을 생각하자 유리는 웃음이 나왔다.
“그럴 필요 없네요.”
“얘!”
사람은 시점만 다를 뿐 항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나보다. 갑자기 수현은 뭔가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깜찍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흔들었다.
“Your smile is very bright.”
“You looks very sweet.”
결국 사건 빵이었던 것이다. 멋들어진 비니의 사나이도 수현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테이블로 걸어들어 왔다. 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비니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