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칼리 나무 #21

아레쿠스200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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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실은........뚜렷하게 할 일이 떠오르진 않는다.

 

성준에겐 먼저 연락하기 싫다.

소영 자신도 안다.

먼저 연락해서 좋았던 적이 없는 것이다.

쌀쌀맞은 반응을 받아내기가 싫다.


하지만 왠지 희진 선배한테 엮이긴 싫은데....


소영이 막 뭔가 일이 있다고 말하려는 찰나 희진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오늘 저녁 때 구경오지 않을래?”


“구경? 뭐를요?”


“압구정동에 있는 하바나라는 곳이야. 거기서 오늘 공연이 있거든.”

 

“....................?”


“나도 참가하거든.”


아하! 희진 선배가 댄서로 출연한다는 얘긴 것 같다.

며칠 전 그 요란한 복장과  구두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당연히 나로서는 관심이 없거든요.’


아니...잠깐!


희진 선배의 파트너가 윤수라는 그 남자랬지?

그럼 그 사람도 나오는 건가?


“너 혼자 시간 보내기 뭐할 것 같고 해서 놀러오라고. 바에 오면

 재미있는 일 많을거야.”


뭐, 뭐야? 혼자 시간 보내기라니? 또 무시하시네그려.


소영은 불만을 억누르고 일부러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글쎄요....선배. 확실히 얘기는 못하겠는데 ...뭐...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고.”


 선뜻 “응” 이라고 하기는 싫다.

 괜히 윤수라는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더더욱 싫고....


 “나 그럼 나간다.”


 희진은 소영의 방을 나가면서 손을 흔들어 보인다.

 확답은 필요없다는 식의 표정이다.

 

'올테면 오고 말테면 말라는 심본가?'


 다시 침대에 누워 반쯤 감기려는 눈꺼풀 사이로 현관 쪽으로 향하는 희진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등에 처음 소영의 집에 올 때 메고 왔던 배낭이 보인다.


 저렇게 나가니깐 꼭 소영의 집에서 완전히 나가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럼 난 어떤 기분일까?

 해방된 느낌이 들까?


 그게 당연할텐데....


 '설마 희진 선배가 떠난다고 내가 서운하지는 않겠지? '


 소영은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완전히 눈을 감았다.


 한참 다시 잔 것 같은데 다시 눈을 떠보니 한 시간 밖에 지나있지 않았다.


 이제 겨우 9시다.


 원래 소영은 다른 사람처럼 하루 종일 잔다든가 하질 못한다.

 정말 죽고 싶은 만큼 피로해도 피로를 완전히 다 연소시킬 만큼

 깊은 잠을 자는 재주는 없다.


 머릿 맡에 보니 웬 낯선 명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들어서  보니 모르는 남자 이름의 명함이다.


 무심코 뒷면을 돌려 보았다.

 약도가 인쇄되어 있었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방면이고

 붉은 색으로 색칠된 사각형 밑에 ‘하바나’라고 적혀 있었다.

 

 희진이 아까 오라고 한  장소일 것이다.


 소영이 손가락을 다시 한 번 뱅글 돌리자 처음 명함의 앞 면이 나타난다.


 ‘한 민혁’ 이라는 이름과 ‘바 매니저’라는 직함이 이번에는 똑바로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