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여른여섯에 큰애를 보고 일년후인 서른 일곱에 첫돌잔치를 거하게 했다. 그날 우리집은 나와 친정어머니의 합작품인 돌상 차리느라 기념사진 찍느라 한바탕 난리가난 날이기도 하다. 며칠 후 사진을 찾았는데 마땅한 예쁜 사진틀이 없었다. 결혼 후 동생에게 사진틀 하나를 사 달라고 했더니 검정으로 된 주로 영정사진틀로 사용하는 것으로 사준 것이 있어 우선 그 사진틀에 넣어서 벽에 걸었다. 물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도 여럿 있었지만 내가 정성들여 차린 돌상앞에서 찍은 사진이 나는 더 좋았다. 그런데 그 사진틀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당시만해도 내가 사는 근처 중소도시인 창원, 마산은 너무나 작은 도시라 고급스런 물건은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큰 마음 먹고 근처 도시의 시장, 백화점을 샅샅이 뒤졌으나 내가 원하는 사진틀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리도 잘 모르는 부산으로... 그기서 아이보리색으로 된 사진틀 하나를 찾았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지금 우리집 거실 소파 뒤에는 아직 그 돌사진이 걸려 있다. 내가 마산 청과시장에 가서 싱싱한 과일을 고르고 어시장에서 윤기가 흐르는 생선을... 신선한 야채를 사서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이 차린 돌상... 나는 가끔 그 돌사진을 바라보면 내가 대견스럽고 태산이나 나른듯이 뿌듯한 마음이 든다. 또 내 삶이 고단할 때 나를 일어켜 세우는 힘은 그 사진 속에 있는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를 보노라면 어디선지 모를 힘이 샘솟는다. (당시 대형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없었음)
사진틀 하나를 찾아서...
내 나이 여른여섯에 큰애를 보고 일년후인 서른 일곱에 첫돌잔치를
거하게 했다.
그날 우리집은 나와 친정어머니의 합작품인 돌상 차리느라 기념사진
찍느라 한바탕 난리가난 날이기도 하다.
며칠 후 사진을 찾았는데 마땅한 예쁜 사진틀이 없었다.
결혼 후 동생에게 사진틀 하나를 사 달라고 했더니 검정으로 된 주로
영정사진틀로 사용하는 것으로 사준 것이 있어 우선 그 사진틀에 넣어서
벽에 걸었다.
물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도 여럿 있었지만 내가 정성들여 차린 돌상앞에서
찍은 사진이 나는 더 좋았다.
그런데 그 사진틀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당시만해도 내가 사는 근처 중소도시인 창원, 마산은 너무나 작은 도시라
고급스런 물건은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큰 마음 먹고 근처 도시의 시장, 백화점을 샅샅이 뒤졌으나 내가 원하는
사진틀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리도 잘 모르는 부산으로...
그기서 아이보리색으로 된 사진틀 하나를 찾았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지금 우리집 거실 소파 뒤에는 아직 그 돌사진이 걸려 있다.
내가 마산 청과시장에 가서 싱싱한 과일을 고르고 어시장에서 윤기가 흐르는
생선을... 신선한 야채를 사서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이 차린 돌상...
나는 가끔 그 돌사진을 바라보면 내가 대견스럽고 태산이나 나른듯이
뿌듯한 마음이 든다.
또 내 삶이 고단할 때 나를 일어켜 세우는 힘은 그 사진 속에 있는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를 보노라면 어디선지 모를 힘이 샘솟는다.
(당시 대형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