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샷 - 소설 - 4 편 총이 되기엔 멀었다.

소설지기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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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희뿌연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그제야 사방이 뚜렷이 보였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주변에는 붕대를 감은 사람들이 나처럼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친 사람들이 누운 곳이라면, 

구호소? 천천히 생각해 보자……. 내가 어쩌다 구호소에 누워 있는 거지? 

상반신을 일으키려 하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관자놀이를 쥐고 시트를 걷어 몸을 살펴봤다. 

왼쪽 허벅지에 붕대가 감겨 있고, 피가 스며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래, 릭이 있었지. 릭이 내게 총을 쐈고, 그 다음엔…….


릭의 첫 번째 총알이 발사되고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귀가 먼 것처럼 먹먹한 채 잡음이 울려댔다. 

총구에서 피어나오는 연기와 먼지 때문에 계속 기침만 나왔다. 나는 릭에게 소리쳤다.

“릭! 그만 둬!”

그런데도 릭은 다시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첫 번째 총알처럼 겁만 주기 위한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왜…?

릭은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그 전에 보았던 릭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자신을 쫓아온 거라고 정체를 밝히라 하고, 누가 시켰냐며 물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자칫하면 이 미친 녀석 손에 죽을지도 몰랐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릭…… 제발 그만 둬.”

“닥쳐. 내가 얌전히 당할 줄 알았나?”

쾅!

“니들 뭐야?!”

탕!

누군가 무기고 문을 열고 쳐들어 왔고, 그 순간 총알이 왼쪽 다리에 날아와 박혔다.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이런 게 총에 맞은 건가? 점차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때 총을 맞은 부위가 왼쪽 허벅지였던 것이다. 

릭이 내 머리나 심장을 쏘지 않은 걸 고마워해야 하나. 

대체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 애초에 이런 건 맞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내가 원하는 걸 해보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어쩌다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는 처음부터 어긋나고. 

용병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됐으니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딸깍. 무슨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겨우 불 끄는 소리일 뿐인데. 

그 일 때문에 나도 모르게 오감이 곤두서 있다. 어둑한 곳에서 누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누구지?


으윽-. 나도 모르게 잇새로 신음소리가 새나갔다. 이상하다. 

아까까진 아무 느낌도 없던 상처 부위가 갑자기 미칠 듯이 아파왔다. 

꼭 살갗이 찢어지고 타오르는 것처럼.

허벅지를 쥐고 이를 악물었다.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때 그림자 하나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봐, 괜찮아?”

여자 목소리였다. 여자라면…… 의무병인가?

“지…진통제 좀……”

“진통제? 진통제…진통제가 어떤 거지?”

여자는 침대 옆의 상자를 뒤졌다. 하지만 진통제가 뭔지 구분도 못하는 것 같았다.

“저, 저기 잠깐만. 많이 아픈 거야?”

“그럼…안 아프겠습니까?”

“흠, 진통제라…아스피린 정도면 되려나? 여기.”

여자가 알약 하나를 내밀었다.

“하나론 안 돼요. 다 줘요.”

“미쳤어? 자, 한 알이면 충분해.”

아스피린을 씹어 삼켜도 나아지질 않았다. 

나는 여자의 손에서 약통을 빼앗아 들어 한 움큼을 입에 넣었다. 

여자가 낮게 소리쳤다.

“이봐!”

머리가 몽롱해지면서 그제야 고통이 좀 사그라졌다. 어둠 속에서 여자의 그림자는 더 흐릿했다.

“당신, 10745지?”

10745……? 머릿속이 뿌옇게 뒤섞였다. 순식간에 잠이 쏟아졌다.


“10745. 훈련병 케이.”

“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사고치는 구만. 너, 용병이 만만해 보이나?”

“아닙니다.”

프랭크라고 불리는 교관은 나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인 표정이었다. 

반면에 애꾸 교관은 여전히 별 관심 없다는 얼굴. 

저들은 릭 때문에 벌어진 일에서 나도 규율을 어긴 거라며 다그치고 있다. 

규율, 지켜야 할 것들. 밖으로 나와도 마찬가지다. 무슨 규율이 그렇게 많은지.

“10744, 릭 훈련병은 어제 부로 SS에서 퇴출되었다. 그 놈은 이제 어디 가서 이 일 못 한다. 

  그만큼 여긴 신뢰가 깊은 사회란 거야. 알아 듣나? 그 놈뿐만 아니라 너도 징계대상이다.”

“…….”

“용병 간에 개인적인, 더군다나 인간적인 마찰은 절대 용납 못한다. 이미 듣지 않았나? 

  너희는 인간으로 여기 온 게 아니라, 도구로서 온 거다. 병기다, 이 말이야.”

인간 병기. 이렇게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인간이 병기란 말인가? 

당신처럼 기계 같은 몸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프랭크는 정말 기계처럼 단단해 보이는 몸을 갖고 있었다.


“너 말야. 우리가 한 발만 늦었으면 이미 저 세상 갔어. 그건 알고 그런 표정인 거냐?”


나는 두 교관 앞에 뻣뻣이 서 있었다. 총상 때문에 가만히 서 있는 것 만으로도 힘겨웠다. 

얼굴에선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만하지. 어차피 치료받으면서 잡일 하면 그게 징계 아닌가.”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던 애꾸가 입을 열었다.

“자넨 이렇게 무른 놈이 이 일 해낼 수 있을 것 같은가?”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건 어차피 우리 몫이 아냐. 

 실전에서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 녀석도 알겠지.”

말을 끝내고 둘은 동시에 날 쳐다보았다.

“어이, 신참. 들었지? 훈련에 참가하되 잡일은 알아서 도맡아라.”

“네.”

막사를 나오는데 그냥 걸어서는 도무지 몇 발짝 걷지 못할 것 같았다.

“자,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

단발머리의 여자가 주저 앉아 있는 내게 목발을 내밀었다. 나는 바닥을 짚으며 힘겹게 일어섰다. 

여자는 나를 부축해주었다. 여자는 나와 같은 동양계였다. 

같은 동양계였는데 왜 훈련 때는 눈에 띄지 않았을까.

“바네사!”

그때 누군가 소리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노란 커트 머리의 여자였다.

“바네사, 의료 보관함은?”

“구호소에 없어?”

“의무병들도 몰라. 잠깐…… 이 녀석은, 혹시 10745?”

커트 머리 여자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는 금발이었지만 이 여자 역시 동양계임을 알 수 있었다.

“네가 이번 사건 주인공이군.”

“주인공?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때문에 10744, 릭인가 하는 녀석 나갔어.”

“뭐? 나 때문? 이봐! 그 녀석 때문에 내 다리가 이렇게 됐어. 난 죽을 뻔했다고!”

여자의 말이 하도 괘씸하고 억울해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갔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 때문이라니.

“유카, 그만 둬. 그 녀석이 가해자인 거 알잖아.”

바네사라고 불린 단발머리 여자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커트 머리는 나를 쏘아 보았다. 

그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가해자인 건 중요하지 않아.”

“뭐라고, 유카?”

“아무 것도 아냐. 어쨌든 얼른 구호소로 가자.”

바네사는 유카라는 여자를 따라 구호소로 향했다.

“10745.”

목발을 움직여보는 내게 바네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제는 아스피린, 오늘은 목발이다. 빚 갚아.”

아스피린? 그럼 어제도 바네사가?


“어이 10745! 여기 물이 없댄다!”

“여기 기관총 다 어디 갔어?”

“미리미리 준비 안 해놔?”

총상은 아물 틈이 없었다. 두 교관이 징계랍시고 온갖 잡일을 맡긴 탓에 훈련시간은 물론이고 휴식시간, 

취침시간까지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히려 상처가 덧날 판이었다. 


모두들 심부름 시킬 땐 나만 찾았다. 릭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은연 중에 소문이 퍼진 듯했고 

다들 그걸 재미 있어 하는 것 같았다.


철야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저녁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쉬지 않고 실제 전투처럼 

서바이벌 하는 훈련이라고 했다. 

애꾸는 내게 철야 훈련을 할 수 있을지 상처 상태를 확인 받고 오라고 했다. 

철야 훈련 탓인가, 구호소 안은 한산했다.


아마 훈련소라서 중상을 입은 환자가 없어 다들 훈련에 참석하러 간 모양이었다. 

침상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의무병도 보이질 않았다. 그때 사물함 근처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켰다.


“검사 받으러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아까 그 바네사라는 여자였다.

“10745, 내가 의무병인 줄 아는 건가?”

“예?”

아차, 또 실수한 건가. 의무병이 아니라면 왜 구호소에 있는 거지?

“좋아. 어차피 의무병들은 자리에 없으니 내가 봐주지. 기초지식은 있으니까.”

“다리를 더 뻗어.”

상처에서 흐른 고름이 굳었는지 붕대는 잘 풀리지 않았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드러난 상처를 보고 바네사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휴, 그렇게 막 부려먹더니만. 이거 안 되겠어. 이틀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돼.”

“이틀이나 쉬진 못할 텐데요.”

“안 그럼 절단할 것 같다고 말하든가.”

바네사는 상처를 간단히 소독하고 새 붕대를 감아주었다.

“나랑 같은 기수입니까?”

“왜? 기분 나쁘면 너도 말 놔.”

바네사는 붕대 끝을 질끈 묶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밤새도록 강행한 훈련 때문에 정오가 되도록 모두 곯아떨어져 있었다. 

나는 혼자 한가로운 해변가에 나와 앉아 있었다. 

고국을 떠난 뒤로 이처럼 혼자 있어본 시간은 처음인 듯했다. 

그땐 그토록 싫었던 혼자 있는 시간이 지금은 무척이나 달게 느껴진다.


나는 허리춤에 꽂힌 총을 꺼내보았다. 지급받은 이후에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총이었다. 

총의 묵직하고 차가운 느낌이 좋았다. 양손에 쥐고 훈련 때 배웠던 자세를 취해보았다. 

뭔가 나를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듯한 느낌이 찌릿하게 전해졌다. 

지금까지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를 격상시켜준다고 할까. 하지만 아직 내 손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어이, 자세가 안 좋아.”

언제 보았는지 애꾸 교관이 곁에서 말했다. 나는 총을 다시 허리춤에 채웠다. 

그가 다가오더니 총을 빼앗아 들었다.

“왜 지금 너한테 총이 안 익숙한지 아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마치 깨진 유리잔 같았다.

검은 안대로 싸인 왼쪽 눈 주변에 길게 그어진 상처가 있었다. 

그런데도, 안대를 채우지 않은 오른쪽 눈동자는 굉장히 유순해 보였다.

“자, 보라고.”

담배를 문 채 그가 총을 쥐고 나에게 보였다.

“틈이 보이나?”

“네?”

“내 손바닥과 총 사이에 틈이 보이냐고. 잡아봐.”

그가 총을 쥐고 내민 손을 잡아보았다. 딱딱했다. 

손과 총 모두. 그리고 총은 정말 알맞게 그의 손에 딱 들어맞아 있었다.

“자세는 이렇게 잡는 거다. 총 쥔 손 때문에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일체가 되게 말이다.”

그는 오른손으로 총의 몸체를 잡고 왼손으로 그것을 받치고 있었다. 

다른 때에는 뭔가 헐렁해 보이던 그였는데, 

총을 제대로 잡으니 프랭크 교관보다 더욱 체격이 단단해 보였다.

“지금 내 손은 곧 총이다. 네 손은 아직 부드러워서 총 따위가 들어맞을 게 못 돼. 너 사람 죽여봤나?”

애꾸가 오른쪽 눈에 잔뜩 힘을 주며 나를 쳐다봤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죽여…봤다고? 

대답하면 누구를, 언제, 왜 죽였냐고 묻지 않을까?

“죽여본 적… 없습니다.”

“하, 그래. 만일… 만일 말이야. 총이란 걸로 자신이 기억도 못할 정도의 사람을 죽이면, 

총의 감각을 따로 느끼지 않는다. 총이 곧 네 손인 거다.”

“…….”

“그러면 인생 막장이지.”

총을 바라보며 애꾸는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띄었다. 자조적으로 보이는 웃음이었다. 

애꾸가 총을 내게 건네주고 바닷가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손에 들린 HKMK23 권총과 내 손바닥을 번갈아 보았다. 

권총은 잘 닦여 있었고 기름냄새가 살짝 났다. 

손바닥에는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내 손은 아직 총이 되기엔 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