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샷 -소설- 5편 전쟁은 끝이 없다.

소설지기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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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Adam Garcia

2023년 8월 5일, AM 03시 17분.

“중위님. 중위님!”

“으음…… 뭐야?”

“대위님, 본부로부터 급한 연락입니다. 빨리 상황실로.”

잠에서 덜 깬 나는 정보병 녀석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었다.

“넌 눈치도 없냐? 적이 쳐들어왔다고 해도 자는 사람 깨우는 게 아냐, 인마.”

“아야, 본부장님이 길길이 뛰셨단 말입니다.”

“그래, 자식아. 내 말보다야 본부장 말이 무섭겠지.”


-훈련소 B-16, 듣고 있나?

“예, 무슨 일입니까?”

-아담 중위? 당장 모두 아프간으로 와야겠네.

“오늘 말입니까?”

-지금 당장! 한 시가 급해. 지원병이 턱없이 부족해. 훈련소 싹 비우고 모두 그리로 집결해. 당장!

“무슨 일입니까?”

-길게 설명할 시간 없네. 아프간에서 접전이 있었어. 지금도 전투 중이고. 사상자가 많네.

“그럼, 여기 교관 포함한 인원이 전부 59명. 수송기 두 대 더 필요합니다.”

-오케이. 당장 보내겠네. 두 시간 후면 도착할 거야.

“네! 머피, 당장 전 대원 무전 쳐. 프랭크부터.”

“네, 중위님.”


본부장 영감의 반응을 보아선 이번 작전은 분명 그냥 ‘작전’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테러 투입 작전이 아닌 전쟁 사태는 거의 일 년만이었다. 전쟁이라…… 내겐 빌어먹을 존재임이 당연한데, 

이상하게 기대감과 불안함이 교차했다.

이맘때의 전쟁이란 건 늘 돈이라는 단순한 원인이 시발점이고, 명분 따위는 애초에 없다. 

국군이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였다. 무작위한 전쟁 사태에 나라를 내세워봤자 싸우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프랭크처럼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는 직업군인 출신, 신원을 버리고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자들이나 

용병회사에 몰려들어 전쟁에 투입되었다.


그나마 SS는 가장 오래된 데다가 작전 성공률이 높아 최정예 부대란 말을 자주 들었다.

언젠가 훈련병 녀석 하나가 전쟁이 뭐냐고, 왜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리석었다. 어차피 전쟁을 하지 않으면 제 녀석 밥줄이 끊기게 될 텐데.

“그래. 네 말대로 명분 없는 전쟁이지. 왜 싸워야 하냐고? 그건 높으신 양반들한테 물어 봐.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하나, 돈 때문이다. 그리고 저 분들이 싸우라고 하는 이유도 똑같아.

우린 전쟁에 대해 알 필요 없다. 내가 달고 있는 이 계급장, 이게 전쟁을 잘 알아서 달은 줄 아나? 

이건 전쟁을 잘 해내서, 살아남아서 받은 거다. 너희들이 전쟁에서 할 일이 뭔지 이제 알겠나?”

어린 훈련병 녀석이 답했다.

“살아남는 겁니까?”

“아니, 적을 죽이는 거다. 승리? 그런 건 전쟁이 끝난 뒤에 나오는 결론 아닌가? 

 그러니까 승리 같은 건 애초에 없다. 

 우린 실적을 높게 하는 게 중요하지.”

새로 들어오는 녀석들 대부분은 전쟁이 어느 시점에 시작되고, 또 언젠가 끝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쟁은 인간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만일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있다면 

그건 전쟁의 끝이 아니라 휴식기였을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전쟁은 계속 되어왔다. 


그럴 때면 나는 혼란스럽다. 전쟁이 마치 인류를 이 땅에서 버티게 만드는 것 같아서다. 

나 같은, 전쟁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인간조차 전쟁으로 먹고 살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아담.”

“프랭크, 소식 들었지? 이 바보 같은 정보병 녀석이 자네 말고 날 깨우는 바람에.”

일 년 간 훈련소장을 맡고 있는 프랭크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
 
담당자인 프랭크가 아닌 날 깨운 정보병 때문에 그가 혹 기분 나빠할까 봐 나는 미리 선수를 쳤다.

“어디야?”

“아프간.”

“거긴 일년 동안 조용했잖아?”

“글쎄. 우리가 언제 그런 거 알고 싸웠나. 영감은 그저 급해서. 빨리 집결하래.”

“나까지?”

“그래. 여기 있는 전부 다.”

“잠깐… 지원병은?”

“글쎄.”

“설마……”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나.”

프랭크 녀석은 직업군인 출신이지만 사실 겁이 많다.
 
일 년 넘도록 이 갑갑한 무인도에서 훈련소 일을 도맡아 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나도 가야한다 이 말인가?”

“그럼 혼자 남겠나? 자네 같은 사람이 진짜 전쟁에 참가해야지.”

“그런 건 지겹게 했어.”

프랭크는 이라크전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전쟁에 참가했었다. 

미국 군인이긴 했지만, 특수부대라서 지원 요청이 있을 때마다 불려가서, 

지금 용병 활동과 크게 다를 바도 없었던 모양이다.


프랭크는 말하길 꺼리지만 이미 용병들 사이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꽤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뛰었다는 작전 이야기였다. 

코소보 지역으로 반군 진압 작전을 나간 특수부대가 작전을 실패하고 

부대원 전원이 사망했다는 이야기. 그 작전의 유일한 생존자가 프랭크였다.

“그럼 왜 용병이 됐어? 자네, 또 겁나는 건가?”

“겁은 무슨.”

“……그럼 뭐가 문젠가. 죽지만 않으면 되지.”

“끔찍해서 그러네.”

끔찍하다…… 나는 어쩌면 그런 상태에 면역이 됐는지도 몰랐다. 

이젠 총질을 해대는 것의 무엇이 그토록 끔찍한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뛰어들어야 차라리 견딜 수 있는 지도.


“이봐, 아담. 설마…… 그렇게 인원이 부족하다면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이봐. 애초에 제대로 된 게 뭐가 있나? 나도 지원병들이 멀쩡할 거라곤 생각 안 해.”

“이번엔 꽤 크겠구만.”

“그냥 작전하곤 다를 거네.”

정보병 머피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중위님, 모두 집합했습니다.”

프랭크는 무전기 앞에 망연자실한 듯 앉아 있었다.

“이봐. 명색이 대위가 그렇게 힘 빠져 있을 텐가?”

“너무 오랜만이라……”

프랭크는 겁먹은 아이처럼 눈을 찡그렸다. 그의 다부진 인상과 참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잠시 얹었다가 훈련장으로 나갔다.


“다들 들었겠지? 훈련은 끝났다. 당장 작전 투입이다! 지금부터 한 시간 30분 안에 수송기가 도착한다. 

 모두 빠짐 없이 장비 챙기고 번호 별로 대열 맞춘다. 실시!”

어둠 속에서 훈련병들이 구호에 맞춰 자리를 옮겼다.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줄이 맞추어졌다. 

훈련 며칠 째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 30일에는 못 미쳤다.

다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녀석들인지, 지독하구만. 

처음 훈련을 맡아본 나로서는 원래 훈련병들이 이 정도 실력인지, 

이놈들이 남달리 뛰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번 훈련병들의 발군은 사격과 산에서의 위장술에서였다. 

사격훈련 때는 유독 총 실력에 관해 욕심 내는 녀석들이 많았다. 

총알 한 발 한 발이 아까워 어쩔 줄 몰랐던 녀석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다들 저격수 출신인가? 나는 그런 녀석들의 총을 빼앗아 들며 말해주었다.


“전장에서 총알 하나가 아까울 것 같나? 그보다 중한 건 네 모가지란 말이다!”

진짜 전쟁터에 나가봐라. 명중률 따위가 중요한가? 머리를 쏘는 게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 

팔이든 다리든 내가 먼저 쏘는 것이다. 남이 먼저 날 쏴버리면 죽으니까.

나는 늘 녀석들에게 강조했다. 살아 남으라고. 정말 나는 그 외에는 녀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도, 

알려주고 싶은 것도 없었다.

“어이, 아담!”

“중위님. 수송기가 근접 중이랍니다.”

“다들 위치로! 열다섯 명씩 잘라서 네 줄로 선다! 수송기가 도착하면 차례차례 탄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오십여 명의 목소리가 잠든 섬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 휴식도 이제 끝이다. 

나는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또 마지막인가? 시가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순간 바람이 불어와 담뱃불은 꺼졌다. 

마치 불길한 예감처럼.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폐 깊숙이 빨아들였다.


저만치서 회오리바람과 함께 수송기가 다가왔다. 

개미병정들처럼 훈련병들이 차례차례 수송기에 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얼마 전 허벅지에 총 맞은 훈련병 녀석에게 말해주었던 걸 떠올렸다.

‘내 손이 곧, 총이다.’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인 손. 총이 된 대신 어째 손으로써의 기능은 상실한 것 같다. 

이 손이 또, 제 실력을 발휘할 땐가?

“중위님, 타셔야 합니다.”

“알았다.”

바닥에 던져 비벼 끄려던 담배가 강한 바람에 휩쓸려 멀리 날아갔다. 불씨가 그대로 남은 채.

나는 잠시 어둑한 가운데 고개 숙인 듯 서 있는 막사들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빠져나간 낡은 막사는 폐허처럼 보였다.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