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폭로라는 이름으로 감히 자판기 두들기는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시대적 희생물( 교 육정책; 뺑뺑이의 운명)이며 감수성이 민감했고 도덕 교과서 그대로 살기를 바랐던 어리석음으로 인하 여 2003년 7월 29일까지도 가슴속 恨서린 추억 앞에 어쩔 수 없이 다치고 또 다치는 미련한 것이라, 이 제는 말해도 될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제 자신의 초라함을 견딜 수 없을 만치 모자란 학업성적과 빛나고 자랑스런 그 런 인품이 될 수 없음에 확인하고 또 다시 확인된 사실이라 자폭하고 스스로 가슴속에 깊이 박힌 못들을 뽑아내는 일입니다. 다 뽑아낸 뒤에는 분명히 흔적은 남겠지만, 더 이상 아프고 슬프지 않을 것 같아서 고백합니다. 더욱이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에 청소년 마음을 헤아려줌에 작은 역할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교사. 학부모. 또래친구들. 혹은 지역주민에서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들이 자꾸만 엇나가고, 빗장 걸고, 위선하며 포장하여 겉보기엔 멀쩡한 청소년들이.. 언제 터질지 모를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청소년이해에 도움이 될까해서 글을 잇겠습니다. - 사건의 시작- 1977년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산대리 소재 안강여자중학교( 現 안강여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大邱라는 땅에서 뺑뺑이의 운명으로 원치 않았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1977년 당시 경북 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배정 받기 전에는 바로 위 언니가 다니던 대구 여자고등학교를 배치 받기를 원했다. 언니가 든든했던 것이었다. 1977년 3월 초 입학식에서,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입학식이란 형식에서 단순하게 거 론하면 될 것을 아주 억압적으로 무지하게 눌렸었다. 어느 선생님인지는 기억에도 없다. 그 때의 그 말씀이 지금까지 따라 붙은 내 가슴에 콱 박힌 커다란 못이었다. " 너희는 뺑뺑이다. 너희들의 선배들은 엄선하여 입학하였고, 너희들은 지금 여기 있는 너희들은 1등 에서 꼴등까지 골고루 있어서 너희들은 자랑스런 선배들이 일궈 놓은 빛나는 群星人의 이름에 누가 되 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고, 어딜 가든지 그냥 사대부고라고 하지 말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 학교 이름을 그대로 알려라".... 이하 기타 등등 굳게 새겨주는 "자랑스런 군성인"에 관련된 이야기. 난 매우 큰 충격 받았다. 나 자신이 겁나거나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열등의식도 아니었고, 나 나 름대로 당당한 삶을 발전시켜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냥 눌리기 시작했다. 원치 않는 학 교로 가게 된 것도 싫었는데, 강압적으로 눌린 점이 시린 아픔이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갑작스럽게 변화 된 환경적응이 어려웠던 것, 그 자체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난, 누구에게도 말못할 벙어리 냉가슴을 앓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 청소년기 여린 감수성에 자아존중감이 깐깐했던 나로선 사건이라 말하고 싶어진 다) 빙산의 일각으로 다음에 내 가슴에 깊이 박힐 못들이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도 말한다, 나는. 1977년 그해에 죽어야만 했던 것이다. 2003년 7월 29일 난, 살아서 말한다. 나는 그렇게 자랑스런 인 품이나 자질이 못되며 그만한 실력이 없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차라리 1977년에 부실한 학교라 하여 명문 축에 못 드는 그런 학교에 배정 받았더라면 나이 마흔 넷에 이렇게 아프고도 지린 추억을 이렇 게 세상에 내어놓는 게다. 베란다 문 열어두니.....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 소리 들으며 애달팠던 아픈 기억 하나씩 꺼내는 일을 시 작한 것이다. 참새는 참새로 살아야지, 죽었다 깨어나도 독수리는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참새가 참새로 살면서 열 등의식이나 자신 비하는 하지 않는다. 다만, 공짜는 부담스럽고, 반짝이는 것은 조심되며, 빛나는 것은 어지럽다. 우르르~~ 달겨들어 밥그릇 챙기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고. 그리고 아무라도 모여서 외압 내압 가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표현은 하고 싶다. 아마 8~10개월에 걸쳐 1977년부터 일어난 사건( 청소년기의 충격으로 인한 지리고 아픈 사연 계속 올 리겠습니다. 누구를 탓하려하는 의도 전혀 없으며, 어떻게 상처를 싸매며 살아온 흔적을 자폭하듯 밝혀 서라도 오늘날,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일조하고 싶습니다. 제 글을 끝까지 다 읽으시 면, 청소년이해에 다소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청소년기가 소중한 이유는 인간은 영원히 청소년으로 남을 수 없기 때문이고, 청소년이 자라서 청년이 되고, 청년은 중장년 -> 노인초기 -> 노인중기 -> 임종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라서 그 중요함을 확인하 려 하는 바이다. -------계속 글을 이어 올리겠습니다----- 2003년 7월 29일 이른 아침에 빗소리 들으며 -어설픈 시간강사 李 禮 先 배상-
나는 1977년 죽어야만 했다, 그런데 살아있어 폭로한다 (1)
육정책; 뺑뺑이의 운명)이며 감수성이 민감했고 도덕 교과서 그대로 살기를 바랐던 어리석음으로 인하
여 2003년 7월 29일까지도 가슴속 恨서린 추억 앞에 어쩔 수 없이 다치고 또 다치는 미련한 것이라, 이
제는 말해도 될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제 자신의 초라함을 견딜 수 없을 만치 모자란 학업성적과 빛나고 자랑스런 그
런 인품이 될 수 없음에 확인하고 또 다시 확인된 사실이라 자폭하고 스스로 가슴속에 깊이 박힌 못들을
뽑아내는 일입니다. 다 뽑아낸 뒤에는 분명히 흔적은 남겠지만, 더 이상 아프고 슬프지 않을 것 같아서
고백합니다.
더욱이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에 청소년 마음을 헤아려줌에 작은 역할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교사. 학부모. 또래친구들. 혹은 지역주민에서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들이 자꾸만
엇나가고, 빗장 걸고, 위선하며 포장하여 겉보기엔 멀쩡한 청소년들이.. 언제 터질지 모를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청소년이해에 도움이 될까해서 글을 잇겠습니다.
- 사건의 시작-
1977년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산대리 소재 안강여자중학교( 現 안강여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大邱라는 땅에서 뺑뺑이의 운명으로 원치 않았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1977년 당시 경북
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배정 받기 전에는 바로 위 언니가 다니던 대구
여자고등학교를 배치 받기를 원했다. 언니가 든든했던 것이었다.
1977년 3월 초 입학식에서,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입학식이란 형식에서 단순하게 거
론하면 될 것을 아주 억압적으로 무지하게 눌렸었다.
어느 선생님인지는 기억에도 없다. 그 때의 그 말씀이 지금까지 따라 붙은 내 가슴에 콱 박힌 커다란
못이었다.
" 너희는 뺑뺑이다. 너희들의 선배들은 엄선하여 입학하였고, 너희들은 지금 여기 있는 너희들은 1등
에서 꼴등까지 골고루 있어서 너희들은 자랑스런 선배들이 일궈 놓은 빛나는 群星人의 이름에 누가 되
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고, 어딜 가든지 그냥 사대부고라고 하지 말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
학교 이름을 그대로 알려라".... 이하 기타 등등 굳게 새겨주는 "자랑스런 군성인"에 관련된 이야기.
난 매우 큰 충격 받았다. 나 자신이 겁나거나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열등의식도 아니었고, 나 나
름대로 당당한 삶을 발전시켜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냥 눌리기 시작했다. 원치 않는 학
교로 가게 된 것도 싫었는데, 강압적으로 눌린 점이 시린 아픔이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갑작스럽게 변화
된 환경적응이 어려웠던 것, 그 자체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난, 누구에게도 말못할 벙어리
냉가슴을 앓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 청소년기 여린 감수성에 자아존중감이 깐깐했던 나로선 사건이라 말하고 싶어진
다) 빙산의 일각으로 다음에 내 가슴에 깊이 박힐 못들이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도 말한다, 나는.
1977년 그해에 죽어야만 했던 것이다. 2003년 7월 29일 난, 살아서 말한다. 나는 그렇게 자랑스런 인
품이나 자질이 못되며 그만한 실력이 없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차라리 1977년에 부실한 학교라
하여 명문 축에 못 드는 그런 학교에 배정 받았더라면 나이 마흔 넷에 이렇게 아프고도 지린 추억을 이렇
게 세상에 내어놓는 게다.
베란다 문 열어두니.....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 소리 들으며 애달팠던 아픈 기억 하나씩 꺼내는 일을 시
작한 것이다.
참새는 참새로 살아야지, 죽었다 깨어나도 독수리는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참새가 참새로 살면서 열
등의식이나 자신 비하는 하지 않는다. 다만, 공짜는 부담스럽고, 반짝이는 것은 조심되며, 빛나는 것은
어지럽다. 우르르~~ 달겨들어 밥그릇 챙기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고. 그리고 아무라도 모여서 외압
내압 가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표현은 하고 싶다.
아마 8~10개월에 걸쳐 1977년부터 일어난 사건( 청소년기의 충격으로 인한 지리고 아픈 사연 계속 올
리겠습니다. 누구를 탓하려하는 의도 전혀 없으며, 어떻게 상처를 싸매며 살아온 흔적을 자폭하듯 밝혀
서라도 오늘날,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일조하고 싶습니다. 제 글을 끝까지 다 읽으시
면, 청소년이해에 다소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청소년기가 소중한 이유는 인간은 영원히 청소년으로 남을 수 없기 때문이고, 청소년이 자라서 청년이
되고, 청년은 중장년 -> 노인초기 -> 노인중기 -> 임종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라서 그 중요함을 확인하
려 하는 바이다.
-------계속 글을 이어 올리겠습니다-----
2003년 7월 29일
이른 아침에 빗소리 들으며
-어설픈 시간강사 李 禮 先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