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나를 가슴 속에 간직했던 여자

김하중200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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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가슴 속에 간직된다는 것은 참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다. 사랑이란 서로 교통(交通)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인데, 어느 한쪽에서만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한 사실을 어느날 문득 알았을 때, 그 당사자는
어떤 마음이 들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아픈 짝사랑의 대상이
돼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심리상태에 빠지게
될까?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천지가 온통 하얀눈에 뒤덮여
설국(雪國)으로 변해 있었다. 신정휴가를 맞아 고향집엘 내려갔다가
한 마을에 사는 이종사촌 여동생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동생이 "오빠, 경자 한번 만나보고 올라가" 하는 것이다.
"경자?" 누군지 금방 떠오르지 않아 의아해하는데 여동생이
"왜 우리 동창 이경자 말이야. 오빠하고 영어웅변대회 같이 나갔던---"
한다. 그제서야 나는 경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학교 1년 후배. 나하고 영어웅변대회에 같이 나갔던, 예쁘고 똑똑했던
여학생. 영어웅변을 준비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그런데 경자를 왜?"
내가 물었고 여동생은 "그냥 한번 만나봐" 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흘렀다. "경자가 오빠 엄청 좋아했는데, 오빠 그거 몰랐지?"
여동생의 그 한마디가 나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사실 중학교 3학년짜리가 무슨 특별한
감정을 갖겠는가!) 그녀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경자가 지금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나와있는데, 집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며칠 전 시내에서 만났는데 오빠 얘기를 하더라구. 난 경자가
올케감으로 괜찮은데---. 아무튼 한번 만나봐"
여동생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리고는 돌아갔다.

그날 시내에 볼일도 있고 해서 나는 집을 나섰다. 중학교가 있는
대미삼거리에서 버스를 내려, 그녀의 집으로 갔다. 대미식당. 그러나
식당주인은 바뀌어 있었고 "경자네는 저 언덕 교회옆집으로 이사갔다"는
말을 들었다. 교회 옆에 새로 지은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십대
아주머니가 "누구세요?" 한다. "이경자씨 있습니까? 저는 중학교 선배
되는 사람입니다" 여자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들어오세요. 경자는
친구네 집에 갔는데 내가 불러올테니" 하면서 대문을 나섰다. 그때 나는
여자의 얼굴에 번지는 반가움과 호기심, 관찰하는 눈치를 동시에 읽었다.
결혼 적령기의 딸을 찾아온, 허우대 멀쩡한 청년을 그녀가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지는 짐작을 하고도 남았다.
나는 방안에서 잠시 묘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오랜 세월의 저편에서
한때 한울타리 안에서 공부하던 한학년 아래의 여자를 찾아온, 마치
오래전에 만들어놓았던 애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하고서.
잠시후 신발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거기에,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그녀가 서 있었다. 단발머리 여학생이 8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어엿한 숙녀의 모습으로 변해서.
그녀는 설마 내가 자기집을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지
놀란 얼굴로 한참 나를 쳐다보았다. "오빠가 웬 일이예요?"
그녀가 그렇게 물었고 나는 "금희가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라고 말했다.
그 얼마나 건조한 대답이었던가? 오랜 세월 나를 자신의 가슴 속에
간직해왔던 여자에게, 이종사촌여동생이 만나보라고 해서 왔다니.

어색한 시간은 잠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중학교 2학년과
1학년으로 영어웅변을 함께 하면서 나를 마음 속에 두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내 졸업앨범에서 내 사진을 오려 수첩 속에 넣고 다녔다고 했다.
그 세월이 7년. 내가 충주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나중에 그녀가 충주여고로
진학하면서 먼 발치에서 항상 나를 지켜봤다고 했다. 나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한테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시골 중학교지만 내가 학생회장을 하고 고등학교 가서도 RCY의장을
하면서 충주사회에서 잘나가는(?) 모습을 그냥 혼자 지켜봤다는 것이다.
나중에 내가 서울로 올라오고 그녀는 대전에 있는 신학대학에 진학하면서
더이상 나를 보기가 힘들어졌고, 더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날 그녀는
수첩 속의 내 사진을 더 이상 간직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내 마음이 너무 가엾더라구. 혼자만 좋아하기엔. 그래서 오빠를 버렸지"
전혀 그녀에 대해 이성적인 감정을 품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7년동안
누군가에 의해 가슴 속에 간직돼있던 '또 하나의 나"라는 존재가
그 가슴 속에서 버려졌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내 옆에 서 있을 '여자'를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녀를 만나러 갈 때 솔직히 일말의 은근한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었다.
꼭 그녀와 연관지어 생각했던 것도 아니면서도 내가 '버려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면서, 숙녀로 성장한 그녀를 향해 분수처럼 솟구쳐오르는
연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초연한 입장이 돼있었다.
"난 목사가 될거야. 원주에서 일단 전도사로 시작한 다음"
그녀의 인생스케줄은 이미 확고하게 서 있었다. 순간 나는 그녀가
하필이면 왜 신학대학을 갔을까 하는 원망의 마음이 생겼다.
그녀가 일어나더니 벽장에서 조그만 단지를 꺼냈다. 꿀단지였다.
그녀는 꿀을 한숟가락 퍼서 "입벌려 봐요" 했다. 나는 엉겁결에 입을
벌렸고 한움큼의 꿀이 내입을 가득 채웠다. 그 꿀은 이를테면 그녀가
나한테 주는, 7년 동안 가슴 속에 은밀하게 고여온 가슴 아픈 짝사랑의
엑기스였으리라.

그날 우리는 시내로 함께 나갔다. 눈덮인 충주거리엔 사람들로 넘쳤고
그녀가 구두를 산다고 해서 구두점에도 들리고 나중엔 중앙시장 안에
있는 선술집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셨다. 중학교 시절 그저 예쁘고
똑똑했던 후배여학생이던 그녀가, 세월이 흘러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적당히 취기가 오른 내 가슴은 왜 그리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상태가
됐던지---. 마치 오랫동안 나도 함께 사랑하던 여인이 이제 어디론가
떠나게 된 것같은 그런 아쉬움과 회한이 밀려오면서, 나는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중학교 시절 어느
비오는 날 내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대미삼거리 정거장 가게
툇마루에 앉아 있을 때 어둠 속에서 한 여학생이 타박타박
뛰어와 우산을 내미는데, 똑바로 건네주는게 아니라 뒤로
돌아서 우산만 내미는 것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 우산을
받았다.
"그때 네가 준 우산 참 못돌려줬네" 하고 내가 말하자 그녀가
"그 기억이 나요?" 했다. 그녀는 내가 거기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버스를 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날 우산이 없는 나에게 우산을
갖다 주었던 것이다. 그 "잃어버린 우산"은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간직한 채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는 그 뒤로 한번도 만나지 못했고, 그녀가 원주에서 전도사생활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한테 들으니 그녀가 결혼을 해서 외국엘
갔다는 말도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 그녀도 중년의 나이가 돼있을 것이다.
어디에 살든 그녀가 행복하게 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는 아득한 옛날의 그리운 삽화지만, 그 삽화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켠엔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누군가에 의해 긴 세월동안
간직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남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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