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는것의 주저스러움....(재탕)

서오능200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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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낙서에 관한 추억의 일편 하나 간직하고 있지않은 사람은 없을터.
정말 흥분되고 재미있는 일이었지. (개울에서 갈피리를 맨 손으로 포획했던 그 짜릿함에는 못 미쳣겠지만, ).


낙서의 내용이야 기실은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아이들의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은것에 불과했을지라도.
그당시, 담벼락 혹은 변솟간 거치른 판자벽에 "누구는 누구와 뭘 한다네".
하고 휘갈겨 쓰고 황급히 그곳을 도망쳐 나왔던 것이 아마도 나의 세상에대한 글쓰기의 첫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잡지 "학원"에 시를 아무도 몰래 투고해 놓고, 요즘 말로, 잡지에 게재되는 행운의 "대박"을 기다리며 잠많은 나이에 밤마다 전전반측하던 기억들....


그리곤 대학시절 알뵈르 까뮈와 싸르뜨르와 '변신"의 작가, 그 누구더라...오라!프란츠 카프카,니이체,하이데거 이런것에 탐익하여 실존주의입네 뭐네 하면서 밤새워 읽고 끄적이며 문학가로서의 미래를 그리며 얼마나 쓸데없이 젊음을 축내었던가.

난 당구를 못(안)치는 대신, 열심히 책을 읽으며 글쓰기의 열망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직장시절 나는 아예 글과는 무관한 분야에서 모든것 잊고 사무에 열중하였다.
아니 차라리 나의 글쓰기 좋아하는 감수성이 드러나면 직무에 부적절한 소양의
소지자로 찍혀 불이익을 당할 그런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너털웃음을 웃는 연습을 열심히 하여 제법 그럴싸한 나만의 character를 획득하여 얼마간 성공을 거뒀다.(입사 동기생 중에서 꼴찌로 진급한 무능한 놈은 면했으니까!)

너털웃음이야 말로 현실을 단순화하여 세속적 결론에 가장 신속히 도달해가는

가장 요령있고 명쾌한 처세도구가 아니었던가!

사안의 본질을 가치론에 입각하여 천착하는 문학적 탐구심이야말로

우유부단으로 간단히 매도되는 세상이었음으로... 

 
난 그때부터 business man 으로서 지니면 안될 소양으로 문학적 감수성을 꼽았고부하직원,후배 들에대하여 그러한 성향을 지닌다는다는것이 출세를 위하여
무용함을 넘어 얼마나 걸림돌이되는지를 누누히 설명해 주었다.

 

이문열이나 최인호처럼 될 가망이 없는 바에야 철저한 속물이 되어라.
우리사회에서 정치건 사업이건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매사에 임한다면 차라리 그건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와 별반 다를것없어...
왜냐하면 그런태도는 사회적인 미숙아나 정신적인 또라이 취급당하기가 딱 쉽상이거든...

뭐 이런 식으로......

 

 

이제 나이 오십....
글이라곤 소액민사재판 솟장이나,내용증명류의 사무적인 것밖에 쓸일이 없어 왔던 터여서,
간혹 옛날의 문학적 감성의 잔재가 되살아날려치면 막연한 좌절감을 느끼곤 했었는데...
 
그런데,
오늘날 피시통신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도구가 생겨나서 이토록 손쉽게 글을 써서 즉시 남에게 보일 수있는 세상이 되었다니!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써서 불특정한 다수가 그걸 읽게하는 메커니즘은 인간사회에서 아주 특별한
조건과 경로를 요구하는 전문분야가 아니었나 싶다.
언론인, 문필가,학자.... 뭐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허여되는 특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원고지와 만년필과, 사색과 반추와, 주저와 부끄럼까지도 사라져버린 이 얄궂은 공간에서
단지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글이 생성되는 한껏 생략되고 간이해져 버린 편의성으로 인하여
아무나 그야말로 게나 고동이나 글을 발생시켜 떡 발표(?)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버렸으니!
 
가히 성역이 무너지는 혁명적 상황이 아니고 무었이랴!

그런데 이 혁명의 전개가 인류에게 커다란 좋은 선물이되는 동시에 아주 어려운 난제를 안겨 주게될 줄이야!


무어냐 하면, 말과 글의 구분이 없어져 간다는 것이다.


전자통신의 공간에 말이 아무런 여과나 정제과정없이 곧바로 글이 되어 떠오르는현상이다.

그게 얼마나 좋은 현상이냐고?
그럴까...

 

말과 글은 외부로 표출되는 프로세스에 있어서 분명 다른 공정을 거쳐야 할것이라고 할진대

정규과정이 왼통 생략된채 말이 즉시 문자로 변환되어 발표되어 버리는 황당한 도깨비 장난은

적어도 문학으로서의 글쓰기 과정으로서는 온당치 않은것 아니겠는가... 


통신공간에서 횡행하는 말같은 글들의 경박,치졸,무책임,후안무치함은 얼마나 개탄스러운 것인가?

글의 속성은 즉시성,익명성,무한대의 파급성...결코 이런 것들은 아닐터....

 

그래서 나는 어릴적 담벼락 낙서 충동같은 욕구와

인터넷통신의 역기능 사이에서

매번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