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곳에서 새해를 맞게되었내요...... 한국이 그리워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참 외롭내요.... 어느덧 눈을 떠보니 리비아라는 나라에서 건물을 올리고 있내요.....
제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후회는 안하지만 제인생 참 험난하기만 한거 같아요....
초등학교 4학년때 암에 걸렸습니다. 3년간의 투병생활 참 힘들었습니다. 투병생활을 끝내고 중학교 시절은 병균 균덩어리 취급받으며 끔 찍한 "왕따", 집단폭행의 시절을 이겨야 했고, 고딩시절에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학업에 절규의 시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간신히 들어가
전액장학금을 받고도 집안의 빚보증으로 대1년 말에 부산에 내려가 낮에는 비파괴검사, 밤에는
어린나이에 포장마차를 하며 초인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습니가.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지는 충격으로 병원에 형은 군대에 있고, 참 캄캄했습니다.
복학후에는 나라에 충성심보다는 오로지 돈때문에 ROTC 일명 바보티시에 지원해서 결코 멋있지 않고 오로지 돈때문에 군생활하여 제대 했습니다. 제대 하구선 후회를 많이했습니다. 괸히 일명 RT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요..... 사회에서는 토익이 그렇게 중요한지 정말 몰랐습니다. 제대할 무렵 발가락 점수 참 인생에 또한번 후회하는 시기였지않나 싶습니다. 1년간의 고통끝에 소위말하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시공회사에 입사해 첫발령지가 이곳 리비아 현장이었습니다.
그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한번의 고난이 기다리고있더군요
문제는 일을하다가 왼손 4번째 손가락 약 0.8CM 잘려져 나가는 사고를 당해서였습니다.
암투병이후로 이런 고통은 참........ 참담했습니다.
리비아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크다면 큰 사고, 항생제가 무엇인지 진통제가 몬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참 외이리 인생에 고통만 오는지 몰랐었습니다.
리비아 의사가 손가락 잘라야 한다고 말할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해외현장특성상 바쁘다보니 누구하나 신경써주는 사람 없고.......
사막이 한가운데 있어서 병균이 별로 없는 나라여서 하늘이 도왔는지 지금은 이렇게 한손
붕대 감고 타자를 칠수있내요......
지금은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벽 3시에 기상 7시 퇴근,,,,,, 강행군의 연속이지만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저인지도 모르겟습니다.
여기 개시판에 글읽다보면 나두 저사람들처럼 인생 평범하게 좀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것이
제 조그마한 소망입니다. 그소망에서 이 넋두리를 써보는지도 모르겠습니가.
내일 새벽부터는 지금이 11시니깐 한국은 6시겠내요. 또 호랑이 사수님이 저를 가르켜주시려고
호통을 쳐 주시겠지요..... 노다지 혼나고 실수를 하고, 깨지고,일을하기 위해 손가락 고통을 참아가면서 사는 상황이 솔직히 힘들어 한국이그립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 리비아 하늘에서 언젠가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젊은 청년이기도 합니다. 정말 저에게도 그런날이 왔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저는 잘난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이글은 너무나 외롭고 살려고 바둥치는 사람의 넋두리로만 읽어 주셨음 합니다.
한국에 계신 모든분들 그래도 전 한국이 좋습니다.
이제 자야겠내요.....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안오내요... 내일 야리가다 매야하는디....^^
리비아현장에서.그동안 인생을 돌아보며......
어느덧 이곳에서 새해를 맞게되었내요...... 한국이 그리워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참 외롭내요.... 어느덧 눈을 떠보니 리비아라는 나라에서 건물을 올리고 있내요.....
제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후회는 안하지만 제인생 참 험난하기만 한거 같아요....
초등학교 4학년때 암에 걸렸습니다. 3년간의 투병생활 참 힘들었습니다. 투병생활을 끝내고 중학교 시절은 병균 균덩어리 취급받으며 끔 찍한 "왕따", 집단폭행의 시절을 이겨야 했고, 고딩시절에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학업에 절규의 시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간신히 들어가
전액장학금을 받고도 집안의 빚보증으로 대1년 말에 부산에 내려가 낮에는 비파괴검사, 밤에는
어린나이에 포장마차를 하며 초인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습니가.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지는 충격으로 병원에 형은 군대에 있고, 참 캄캄했습니다.
복학후에는 나라에 충성심보다는 오로지 돈때문에 ROTC 일명 바보티시에 지원해서 결코 멋있지 않고 오로지 돈때문에 군생활하여 제대 했습니다. 제대 하구선 후회를 많이했습니다. 괸히 일명 RT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요..... 사회에서는 토익이 그렇게 중요한지 정말 몰랐습니다. 제대할 무렵 발가락 점수 참 인생에 또한번 후회하는 시기였지않나 싶습니다. 1년간의 고통끝에 소위말하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시공회사에 입사해 첫발령지가 이곳 리비아 현장이었습니다.
그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한번의 고난이 기다리고있더군요
문제는 일을하다가 왼손 4번째 손가락 약 0.8CM 잘려져 나가는 사고를 당해서였습니다.
암투병이후로 이런 고통은 참........ 참담했습니다.
리비아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크다면 큰 사고, 항생제가 무엇인지 진통제가 몬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참 외이리 인생에 고통만 오는지 몰랐었습니다.
리비아 의사가 손가락 잘라야 한다고 말할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해외현장특성상 바쁘다보니 누구하나 신경써주는 사람 없고.......
사막이 한가운데 있어서 병균이 별로 없는 나라여서 하늘이 도왔는지 지금은 이렇게 한손
붕대 감고 타자를 칠수있내요......
지금은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벽 3시에 기상 7시 퇴근,,,,,, 강행군의 연속이지만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저인지도 모르겟습니다.
여기 개시판에 글읽다보면 나두 저사람들처럼 인생 평범하게 좀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것이
제 조그마한 소망입니다. 그소망에서 이 넋두리를 써보는지도 모르겠습니가.
내일 새벽부터는 지금이 11시니깐 한국은 6시겠내요. 또 호랑이 사수님이 저를 가르켜주시려고
호통을 쳐 주시겠지요..... 노다지 혼나고 실수를 하고, 깨지고,일을하기 위해 손가락 고통을 참아가면서 사는 상황이 솔직히 힘들어 한국이그립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곳 리비아 하늘에서 언젠가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젊은 청년이기도 합니다. 정말 저에게도 그런날이 왔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저는 잘난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이글은 너무나 외롭고 살려고 바둥치는 사람의 넋두리로만 읽어 주셨음 합니다.
한국에 계신 모든분들 그래도 전 한국이 좋습니다.
이제 자야겠내요.....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안오내요... 내일 야리가다 매야하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