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성들이 본 " 걱정스러운 기독교 "

앗싸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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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들이 본 기독교

 

 

문성근 영화배우- 교회 생활 거의 안 한다”

-한국 교회가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떠나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신앙생활은 어떤가.

교회 생활을 거의 안 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하면서 옳고 그름이라는 것에 대한 판단 근거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가 결국 이렇게 변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세습을 비롯한 교회의 여러 문제들도 결국 이기주의 때문이 아니겠나. 이럴 때는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나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기 위해 모든 부문 운동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국민의 정부 이후에 여성 운동이 제도적으로 얼마나 발전을 했나. 영화계 또한 지난 10 여 년 동안의 투쟁이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서 급격히 호전되었다. 결국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영되느냐에 따라서 부문 운동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해소될 것이다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당시 <한겨레> 기획위원, 2002년 3월호)
“시대는 21세기를 넘었으나, 한국교회 신자들의 이성은 기원전에 있다”

한국 사회에 가져왔을 때 개신교 현상은 한국 사회의 이성의 성숙 단계가 신약 시대 이전은 분명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하드웨어는 그야말로 21세기를 달리고 있지만 이성은 신약 시대 이전이다. 어쩌면 유아기에도 더 못 미치는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전래의 기복성과 합쳐져서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주 공격적으로 표현되는 곳이 한국의 개신교다. 그러면서 또 굉장히 물질적이다. 한국 사회의 병든 모습이 개신교 속에서도 반영된 것 같다.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실존적 자아로서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정말 어렵다.

-우리 사회의 뻔뻔스러움을 극복하는 데 신앙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예수님 말씀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 달라는 것이다. 넘쳐나는 빨간 네온사인은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은 데, 그렇다면 이웃사랑이 넘쳐나야 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굉장히 이기적인 가족중심주의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만인에 대한 투쟁만 느껴질 뿐이다.

다음 프랑스와 견주어서 하나 파악되는 것이 있다. 드레퓌스 사건 때 가톨릭은 반드레퓌스 편에 섰었다. 드레퓌스 파가 승리하고 정의와 진실이 승리하던 1901년에 시민 단체법이 생긴다. 그런데 그 법에 대해 교회(가톨릭)만 그 법을 불법으로 여겼다. 대단히 웃기는 이야기였다. 지금 프랑스에는 70만개의 시민단체가 있다. 스포츠도 하고 이웃도 돕고 엠네스티 활동도 한다. 성인의 반이 기부금을 내거나 직접 참여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 살면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 표현의 본능적 욕구를 개신교는 잘못된 방향에서 충족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거기에 기복성이 합쳐져서 교회의 융성으로 나타났다고 한다면 너무 잘못된 지적인가. 어떤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건강한 시민 사회의 발전을 부정적 본능적 욕망으로 대체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교회가 장례나 결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표현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수용하여 신도들을 이기주의적인 기복성과 이분법 속에 가두어 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훈 소설가 (2002년 4월호)
“회개가 가장 불가능한 사람들은 종교인이다”

언론사의 편집국장을 지낸 선생으로는 한국 기독교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종교인들처럼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회개가 가장 불가능한 사람들이 종교집단이다. 도그마 때문일 것이다. 저들은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남들은 악이라고 본다. 회개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종교인이란 현실 인간의 사회 속에서 공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도그마가 이해관계와 직결되었을 때 더욱 추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교리와 도그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것을 남을 위해 희생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독교인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그것일 것이다. 남을 위해서 양보할 만한 선의가 인간 속에 살아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확인해야 할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다.


김형태 변호사 (2003년 4월호)
“옳고 그름만 따지는 종교의 종착점은 전쟁이다”

지금까지는 눈앞에 잘못된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여기까지 왔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우리의 심각한 과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다양성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 나가야 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고, 나도 개인적으로도 생각이 그렇게 바뀌었다. 거기엔 철학의 문제가 따른다. 결국 자기를 털어버리는 게 사랑이고 자비 아닌가.

종교가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옳고 그름만 따지다보면 부시처럼 전쟁만 일으키려고 하지 않겠나. 뚜렷한 답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당시 시사평론가, 2001년 1월호)
“베를린 와서 교회 자랑하던 김선도 목사 설교에 기겁했다”

옛날에 광림교회의 김선도 목사가 베를린 와서 설교를 하는데 정말 못 듣겠더라고요. 끔찍해서. 우리 교회의 헌금이 얼만데, 그 중에 얼마를 아프리카에 뭐를 짓는데 썼다는 둥, 자기 자랑을 막 하는 거예요. 조그만 교회 와 가지고 말이지. 엄청 열 받았죠. 하나님 돈인데 왜 김선도 목사가 자랑을 하죠? 대단치도 않은 사람을 큰 교회 목사라고 불러다가 설교시킨 주최 측도 짜증 납니다. 조그만 교회에도 좋은 목사님 많잖아요. 큰 교회 목사님들 설교는 만날 그거거든요. 완전히 남대문 장사꾼들처럼 정형화된 패턴. 목소리도 정형화되어 있고요. 완전 상품이거든요

심지어 어떤 목사는 노아의 아들 야벳은 흑인이 되었다고 하면서, 스포츠 정도나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저주를 받았다더군요! 이건 인종주의거든요. 이런 몰상식하고 완전히 파시즘적인 설교가 한국 교회 내에선 막 튀어나옵니다. 일상적인 영역에선 교회출입이 잦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대형교회는 정말 문젭니다. 서울에서만 목회하려는 것도 그렇고요. 왜 촌에 안 가려는 거죠?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교회가 너무 공격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점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지…

교회 팻말을 붙여 놓았는데, 왜 다른 교회 전단을 들여보냅니까? 뭐 하는 짓거리들인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교회에 안 나가는 것은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죠. 자꾸 길바닥에 나와서 확성기 틀고 시끄럽게 만드는 것도 짜증납니다. 선교가 거리를 시끄럽게 하면서 공중도덕 깨는 거 아니잖아요? 잘살고 있는 모습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선교가 어디 있습니까? 파리의 뽕삐두 센터 같은 데서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서 손 율동을 하더라고요. 얼마나 유치해요. 피해를 주는 거거든요. 강요하는 것 이고요. 옆집에 절이 생겼는데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나! 아, 정말 스트레스 받습니다.(웃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2001년 5월호)
“기독교는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중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을 다녔다. 대학 다닐 때 교회를 좀 다니면서 청년회 활동도 좀 했다. 그때도 날라리 신자였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지식으로서의 기독교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를 하지만.

버트란트 러셀처럼 ‘기독교는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버트란트 러셀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기독교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 다 악한 사람이 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를 지켜온 사람들이 대개 매우 악했습니다”-편집자 주) 함석헌 선생 같은 무교회주의 자를 존경한다.

-왜 교회를 떠났는가.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고, 교회 자체에 대한 불만이 너무 컸다. 운동권 교회였는데도 대사회적인 발언에 대한 보수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자기 유지를 위한 보수성을 드러내는 일에서도 일반 교회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배치된다고 생각하는 여러 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교회를 등졌다.

-어떤 모습이 가장 싫었나.

글쎄다. 신도 확보를 위해서 시장 논리에 의존하는 게 제일 맘에 들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하여 신도의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것이 굉장히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도 결국은 저렇게 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점들이 안타까웠다.

-교회의 담임 목사직 세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른 복잡한 말이 필요 없다. 당사자들이 뭐라 변명을 하든, 교회에 돈과 권력이 없다면 세습은 일어날 수도, 일어날 필요도 없다. 세습이 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세습이 부자교회에서 무리하게 강행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타락상의 노출이라 생각한다. 교회의 막강한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를 위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아들 밖에 없다는 논리가 세습이다. 때문에 나는 칼럼을 통해 이북의 권력 세습과 재벌의 권력 세습, 그리고 교회의 담임 목사직 세습이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논리가 똑같다. 가장 잘 알고 있고, 충분한 수련을 쌓았고 선배의 업적을 그대로 계승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 때문에 세습한 것이지 아들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논리야말로 북한의 논리이자 기업의 논리 아니던가.


홍성담 화가 (2001년 7월호)
“기독교 신앙은 없다. 그래서 굉장히 자유롭다”

-대형 교회의 세습을 어떻게 보나

교회가 지 것인가, 예수 것이지. 신의 것이고 신의 아들의 것이지. 교회를 소유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지. 한국 교회는 성장한 만큼 타락했다. 교회는 하나님의 처소이고 그분과 만나는 자리 아니가. 은밀하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자리가 아닌가. 그런 교회가 어떻게 개인의 재산이 될 수가 있나. 이런 환장할 노릇이 어디 있는가. 대형 교회의 세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진다. 한국 기독교가 이 땅에 손님으로 들어와서 못된 짓거리를 많이 했다.

기독교의 덩치가 엄청나게 커져 이젠 정치도 어찌 못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놓고 국민운동을 전개할 수 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한국 기독교가 살려면 스스로가 자성하여 이 땅에서 저질렀던 해악들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설자리가 없다. 갈수록 그럴 것이다.

-신앙이 있는가

없다. 그래서 굉장히 자유스럽다.

 

김규항 컬럼니스트 (2000년 8월호, 2001년 9월호)
솔직히 보수적인 기독교권 안에 과연 진정한 영적 진정성이 있는가?

 

 <뉴스앤조이>나 일련의 복음주의권의 개혁적인 분들을 빼고 난 나머지 분들의 정신이 예수와 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이러한 교회들은 잘못된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아니라는 게 내 입장이다. 교회라고 상징되는 건물이 있고, 십자가 달고, 스테인 글라스하고, 꽃꽂이하고, 성가대 하면 교회가 되는가? 그렇게 되묻는다면 그 사람들조차도 아니라고 그럴 것이다

종교적인 테두리 밖에 있는 여러 가지 진실한 노력이나 사람의 선행에 대해서 폄하하거나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본 것인가. 그런 노력들을 마귀의 책략이라고 비난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임무는 사랑의 정신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이지, 마귀새끼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정신이란 대립되었을 때 종국적으로 자기가 말없이 죽어주는 데 있다. 사람을 때려죽여서라도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행태 앞에서 나는 대단한 분노를 느낀다.

 

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당시 문학과지성 상임고문, 2002년 1월호)
“과거에는 기독교의 본질 때문에, 지금은 신자들 때문에 신앙 갖기를 주저한다”

고등학교 때 3년 동안 교회를 상당히 열심히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종교적인 번뇌 같은 것이 있었다. 학생이었지만 실존주의라든가 전위적인 분위기 속에 끌려들어 갔었던 것이다. 대학 2학년 4월쯤으로 기억되는 데, "더 이상 교회를 나갈 수 없다"고 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맨 처음 한 일이 담배를 사들이는 일이었다(웃음).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기독교 신자가 담배를 태운다는 것은 배교 행위처럼 여겨질 때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을 생각하지 않고 담배를 태워왔다.

한국 교회에 대한 실망이 교회를 떠나게 했나.

청소년 시절, 그러니까 5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신의 존재를 실체로 믿는다든가 부활을 문자 액면 그래도 믿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비기독교적인 사유들을 접촉하게 되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요즘 와서는 기독교 본질과 관계없이 교회의 타락, 신자들의 독선에 대해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증오감을 느낀다. 신을 믿고 안 믿고는 그 자체로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고, 교회를 나가느냐 안 나가느냐로 죄인과 의인으로 구분할 수 있겠나.

인하대학의 강의를 위해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 타려고 하면 어떤 한 분이 인천행 수원행 표지판을 들고 승객들에게 "인천행입니다, 수원행입니다"라고 외친다.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한 마디도 안 하지만 인천행 수원행 팻말 한 귀퉁이에는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이 적혀 있다. 신자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 유럽의 사람들은 예의와 양보와 희생을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행하기보다는 한 인간의 도리와 양식으로서 한다. 이에 반해 우리 한국 기독교는 하느님이라든가 예수라든가 교회란 말을 숱하게 외치는 데 정작 사회를 향한 그러한 미덕이나 양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전에는 기독교의 본질 때문에 교회를 포기했지만 지금은 한국 교회와 그 신자들의 못마땅한 행태 때문에 신뢰감을 못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