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정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시한부 인생20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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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서른살이 된 인천에 사는 남자입니다.
저는 작년 여름에 병원으로부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1달도 채 안 남았네요.
이제 하나씩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목에 나온 대로 오늘 사진관에 가서 영정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묘하게도 제 앞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할머니도 영정사진을 찍고 계시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간 곳이 영정사진 전문 스튜디오였나 봅니다.

오늘따라 왠지 제 첫사랑이 보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녀의 미니홈피를 방문했는데 다음달 2월 17일 부평에서 결혼한다면서 그녀의 신랑이 될 사람과 찍은 웨딩사진과 함께 메인에 올라와 있더군요.

 

1999년, 제나이 21살 때였습니다. 저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 호주로 유학을 가고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유학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다니던 성당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때 죽은 우리 어머니와 많이 닮았습니다. 마치 전 본적은 없지만 어머니의 20대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저는 그녀를 본 순간 숨이 멎어버렸습니다. 저는 그녀와 친해지고 싶었고 조금씩 우리는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약 석달 후, 성당사람들과 용유도로 1박 2일로 엠티를 가게되었습니다. 묘하게도 그 날밤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그녀가 배 갑판같은 곳에서 저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꿈은 예지몽이었는지 몇 시간 뒤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그녀가 꿈에서처럼 저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당시, 인천공항 없던 시절이라 유일한 교통수단이 배였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을 받아주기에는 저로썬 너무나도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때가 8월 29일이었으니까 약 5달후면 전 호주로 가서 몇 년동안 공부를 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저의 그런 고민과 진로를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전 그녀의 고백에 대해 어떠한 말한마디로 제대로 못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미련하게도  전 끝내 그녀의 고백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고, 그렇게 이듬해 봄에 그녀에게 말 한마디도 못하고 호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호주에 가면 자연스레 그녀가 잊혀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이들 중에서 그리움의 아픔을 겪어 본이는 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 할 거라 믿습니다.
전 호주 생활을 1년도 못 견디고 그녀를 보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디론가 떠났고 휴대폰이 지금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던 시절이 아니였기에 그녀를 찾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전 그녀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리 저리 백방으로 그녀의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제가 무리를 해서인지 어느 날 머리가 아프더니 갑자기 눈앞에 하얗게 되더니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일어나보니까 병원이더군요. 병원에서 그러더군요. 뇌종양이라고 그래도 다행히 악성종양까지는 아니고 양성종양이니까 제거수술만 받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 수술 덕분에 전 군대를 안 가게 되었고 그만큼 그녀를 찾기 위한 시간적 여유는 매우 확보되었던 저였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병 치료하느냐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고 세월은 흘러 2002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부천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우연찮게 그 곳에서 일하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그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를 못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토록 찾던 그녀를 보았기 때문에요. 그런데,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점점 커지는 법인지라, 저는 다시 한국에 왔을 때에는 그녀를 딱 한번만 더 보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었으나, 시간도 많이 흐르고 수술도 받다보니 이제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충동이 생기더군요. 저는 며칠 뒤 그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로 지원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 처음에 레스토랑을 들어갈 때에는 그녀를 매일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잠겼지만 그 곳은 저에게 있어서 지옥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녀를 찾는 동안 그녀는 그 곳의 매니저가 되었고 그 곳에서 근무하던 도중 아르바이트 하던 무려 4살이나 어린 이제 갓 20살 된 남자애랑 눈이 맞아서 알콩달콩 사랑을 꽃피우고 있더군요. 그녀의 입장에선 제가 매우 걸림돌 같은 존재였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녀에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매장에서 인정받는 아르바이트생이 되다보니 차마 제가 그만두기 전까지는 먼저 자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매일 보는 것만으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둘의 애정행각을 매일 지켜봐야 했던 것도 저로썬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래도 ‘1년 만 참자, 1년 만 참으면 그 아이는 군대간다.’ 라는 각오로 열심히 일하였고 제 예상대로 그 아이는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전 그 아이가 군대 간 이후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동안 그녀를 기쁘게 못 해준 것을 그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만 하자라는 심정으로 그녀를 한동안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모닝콜해주기, 더러운 유니폼 세탁해서 싹 다림미질로 다려주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주기 등등, 일 끝나고 같이 집에 가기 등등.......
 그렇게 세월은 흘러 2004년이 되었습니다. 2004년 늦여름 어느 날, 어김없이 그녀를 보러 아침에 아르바이트하러 나가는 길에 또 다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4년 전 했던 양성 종양 수술시 완벽하게 안 되어서 인지 몰라도 결국 악성 종양이라는 것을 선고받았습니다.
 전 그녀에게 차마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너무 슬프게 할 순 없었기 때문이지요. 비록 그녀는 저를 사랑안하지만 그래도 저라는 인간 때문에 조금이나마 기쁜 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뇌종양 제거 수술 이후 병약한 저의 모습과 만에 하나 수술이 잘 못 되면 기억을 상실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서 그녀를 기억 못하는 저의 모습 또한 그녀에게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냉정하게 아무 이유 없이 한 순간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는 동시에 당시 주고받던 메신저 등록한 것마저 삭제를 할 정도로 그녀 앞에 어떻게든 다시 나타나지 않기로 큰 맘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1년 넘게 여의도 S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였습니다.
 어느 새 전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28세가 되던 2006년, 저의 병세는 많이 호전이 되었고 병마와 싸우다보니 자연스레 그녀를 잊게 되더군요. 그 대신 병이라는 친구를 사귀었지요. 그나마 제가 살고자하는 의지가 있었는지 몰라도 2005년에 비해 제 몸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단지 수술로 인하여 약간의 언어장애는 생겼지만요. 저는 그제서야 저의 삶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2006년 한해 사이버 대학 시간제 학생으로 등록해서 기존 다니던 학교 학점과 합쳐서 전문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불치병과 함께 싸우면서 공부를 했던 그런 제가 대견스러웠는지 학위를 받던 날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2007년 작년 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일본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병원에서는 시한부 판정을 내리지는 않았으나 암 관련 질병이 아시다시피 한 순간 다시 악화 되는 거라 저로써는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약 1주일 동안의 일본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들어오고 공항을 빠져 나가던 순간, 다신 못 볼 거라 믿었던 그녀를 우연찮게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녀는 인천공항 내 한 다국적 기업 체인점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알고보니 그 매장의 점장이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저의 야윈 모습 때문인지 몰라도 아니면 아예 저를 못 봤는지 몰라도 이번에도 저만 그녀를 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전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이유는 위와 말했던 이유 그대로입니다. 물론 매일 매일 그녀를 보고 싶은 맘은 굴뚝같으나, 인내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인내가 제 뇌에는 너무나도 고통이었는지 몰라도 결국 또 병원 행을 하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는 그제서야 저에게 그녀를 확실히 정리할 시간을 명확히 내려주시더군요. 물론, 또 수술을 받으면 희망이 없지 않아 있다고 했으나, 전 더 이상 우리 아버지도 고생 안 시키고 싶고 그저 조용히 그녀 생각만 하다가 조금씩 정리하면서 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수술이 잘 못되어 코마상태가 된다면, 전 그녀를 정리 못하고 계속 누워있어야만 하니까요.

하느님께서 아직 저를 제 곁에 두고 싶지 않은지 몰라도, 아직 이렇게 숨을 쉬고 있네요. 몸이 아프다보니 정말 그녀고 뭐고 아무 생각이 안 나더군요. 그러다가 달력을 보다가 한 동안 제 기억 속에 잠시 사라진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그 이유는 며칠 후면 그녀의 생일이라서요. 그것만 기억 안했어도,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그녀의 싸이주소 아이디가 그녀의 생일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싸이를 하나 궁금해서 접속을 했는데 다음 달 중순에 결혼을 한다고 쓰여 있더군요. 기분이 참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복받쳐 오더군요. 특히 메인에 있는 그녀의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을 보니 더더욱 그렇네요.
휴대전화번호라도 알면 발신자 표시 없이 문자라도 보내서 축하메시지라도 보낼 텐데, 2년 전부터 번호를 바꾸어서 이제는 그 흔한 문자메시지 조차 그녀에게 보낼 수 없네요.
어쨌든, 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녀가 평생 행복한 결혼 및 가정 생활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만약에 정말로 정말로 환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다음 후생에는 그녀의 자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두서없이 쓴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고개깊이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저처럼 미련한 짓 하지 마시고 사랑이 오면 그 때 잡으시고 현재 사귀고 있는 이가 있다면 곁에 있을 때 잘해 주세요.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