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태어나시기전에 이미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8살경 외할아버지 직업군인 꽤 높은직책이신것같은데 여튼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어머니 밑으로 여동생이있었고 8살부터 온갖고생을 하며 살아온 우리어머니입니다.
당연히 학교라는 문턱도 못가봤죠..하지만 왠만한 생각은 이세상 어느누구보다 머리회전빠릅니다.
단 흠이라면 교육이란것을 못받아봤으니 남들보다 지식은 딸립니다.
저희 아버지 중퇴이십니다.. 그리고 남들 말하는 동네 불량배이셨습니다.
저희어머니만나 결혼하시고 어머니 포장마차하시고 아버지 일하시고 이렇게해서 제가 7살되었을때 저희 집이 생겼습니다. 주공이라는 연세민아파트지만 저희 집이라는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건축업 머 말하면 노가다 이런것인데 덤프트럭일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덤프트럭한대로 시작해서 나중엔 번창하셔서 대구에서 덤프트럭 그 세상에서는 저희 아버지 모르시는분이 없을정도로 번창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2때 연세민아파트를 떠나 32평 빌라 저희집이 생겼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저희 아버지 소득 한달 천만원정도 되었습니다.
전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요..그런데 저희아버지가 고용하신 직원이 사고를 당하셔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재판가서 지고 엄청난 병원비에 저희는 월수입이 있는게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었지요.
그리고 건축업하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공사현장 못따내면 일이없다는것을..ㅠㅠ 그렇게 일이없어 아버지가 일도 안하시게 되었습니다.
여튼 그렇게해서 얼마전까지 32평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 집이 어렵다는건 알았지만 이정도로 어려울지는 몰랐습니다. 32평에서 18평되는 집으로 왔습니다.
자리가 안좋지만 32평 집이 싸게 나온게있었는데 돈 500을 못구해서 18평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 바람기도 있고 도박 우리가말하는 노름을 좋아하십니다.
돈많이벌때는 몰라도 아버지가 배우신게 없으시니까 일대신 노름으로 사나봅니다.
사실 어머니랑 사이가 안좋아서 고2때부터 아버지는 집에 잘 안들어오셨습니다.
일도안하시는데 밖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밥은 챙겨먹으시는지..정말 걱정스럽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밉기에 그렇게 고생하는 엄마한테 상처주기에 너무 화가나고 미웠습니다.
아 ㅅㅂ 또 눈물나네 ..
그리고 저는 고3때 거의 학교를 졸업될수있을만큼은 나갔습니다 .대부분 안나갔지요..방황이라면 방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컴퓨터는 좀 해둬서 전국대회에서 상먹고 특별전형을 대학을 갔습니다.
작년에 대학가서는 ㅅㅂ 대학왔다고 친구들 만나고 하다보니 매일같이 술을 마셨습니다.
1학기동안 타지에서 술값쓴것만으로도 엄청나고 ..1학기마치고 와서는 방학때 일을하면서 저의 생활을 후회를하고 2학기때는 초반에는 술도 절제하고 학교도 잘 나갔으나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제가 병신같은새끼라서 그렇죠..그리고 저도 토토라는것을 한번씩 하다가 스포츠배팅을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도박이죠 ..아버지가 도박할때 싫어하면서 저의 이런모습을 보니 참 제가 정말 너무 못난것같습니다.
작년에 2학기마치고 내려와서 한달은 친구들만나고 그랬습니다. 제가 사주는걸 좋아해서 술도 제가 사주고 이랬습니다. 미친놈이죠 ..어머니에게 손은 안벌렸지만 스포츠배팅으로 딴 돈으로 그렇게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2월달을 쉬고 1월달부터 제가 일을했습니다. 정말 피곤에 쩔어 삽니다.
평일에는 5시 ~11시까지 배달 11시30~ 아침 9시까지 피시방..
주말에는 클럽에서 일을 합니다. 이렇게해서 월수입 200정도 됩니다.
이렇게 제가 살아가서 그런지 일하고오면 바로 자고 일어나서 또 일하러가고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갑니다. 사는게 사는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 집에 안들어오시는데 저 밥먹고 있을때 술이 좀 되서 들어오시더나 잔다그러고 방에서 주무십니다. 그리고 조금뒤 다시 아빠 갈게 이럽니다. 저는 너무 안된것같아 아버지 차타는곳까지만이라도 배웅을 해드렸습니다. 배웅하는데 길거리에서 한 30분얘기를 하셨습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너희 이런집에서 사는거 정말 잘못했다 잘할게 엄마한테도 잘할게 아빠집에 잘 안들어오니까 엄마 동생 니가 챙겨라 대충 이런내용이었고
딱한마디에 제가 엄청울었습니다. 그 큰집 32평 어떻게 얻은건데 니랑 니동생이랑 그 거실에서 레슬링하던걸 내가 왜팔았냐 하시며 우십니다. 저 그말듣고 엄청울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그 말이 엄청생각납니다. 아빠도 정말 힘들구나.
저희 어머니도 저 대학갈때부터 이래선안되겠다하여 큰 대형횟집에서 일을 하십니다.
몸도 안좋으신데 지금은 더 안좋아지셨습니다. 그거보면 전 진짜 미쳐버리겠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하나 ..남들처럼 우리가족 4명 식탁에 모여 밥한끼못먹는걸까..이런생각 수십번듭니다..정말 하루벌어 하루살아갑니다. 몇일벌어 전기세 폰값 저 1학기 2학기 대출 두번받았으니 한달에 20만원씩 대출빚갚고 ...정말 살아가는게 너무 빠듯합니다.
ㅅㅂ 이런시기에 군대도 가야된다는게 정말 저는 ....말이안나오네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 이렇게 힘들때 저희어머니 이렇게 힘들때 어느누구 도와주는 사람없네요.
사실 저희어머니 할아버지댁에서 처음에 못배웠다고 엄청구박받고 무시받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저희들데리고 할머니댁가서 청소해주고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이랬습니다. 큰어머니 ?? 작은어머니 ? 명절때 한번오십니다...치킨집하시는데 명절때도 차례지낼때 와서 차례상도와주고 설겆이도 안하고갑니다. 저희어머니 혼자 다합니다. 이런게 몇십년되니까 고모쪽이랑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희 어머니보고 그래 제가 ㅁㅁ이면 ㅁㅁ엄마밖에없다 이러십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고인이되셨고 할머니는 약간의 중풍기를 보이며 고모집에서 생활하시고 계십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 우리 엄마 고생한거 다 물거품이네요 ..전화한통이라도해서 힘들제 이런 전화도 안옵니다. 친척 그게 멉니까 ? 전 저희 가족만있으면 됩니다. 저희 부모님 제동생 제가 뼈빠지게 벌어서 호강시켜드리고 제가 먼저죽더라도 저희 부모님 오래사시게 하고싶습니다.
젊었을때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지금 또 고생하면 언제 인생이라는걸 즐겨봅니까..
그러니 정말 오래오래살아서 정말 인생이란걸 한 번 즐겨봤으면합니다.
이번 설때 저 할아버지에게 절은 하고싶지만 큰집 큰아빠집안갑니다. 그 집안구석가봤자 예의상 힘들제 이것좀먹어라이러고 속으로는 어떤말할지 모르는 인간들입니다.
할아버지께는 제가 시간날때 산소에 따로 찾아갈렵니다.
제 동생도 이제 고1올라가는데 사춘기입니다. 다른애들같으면 방황도하고 그럴껀데 너무 착해서 제 말도 잘듣고 놀려고싶은마음은 많은지 나가기는 자주 나갑니다. 하지만 너무 착해서 일찍들어오고 저 일하러가기전에 밥도 차려주는 정말 착한 제 동생입니다.
오늘 아버지께서 술이 되셔서 오후에 전화가 오셨더군요 ..저는 오전인줄알았는데 피곤에 지쳐 살다보니 시간개념도 잘 모릅니다. 자다가 받았는데 또 우십니다. 정말 저희앞에서는 눈물한방울도 안보이시는 분인데 또 우십니다. 아빠가 잘못했다 이럽니다. 아빠밉제 이럽니다.
저 안그래도 피곤한데 또 전화해서 이러는게 짜증나서 어 밉다 ..아빠 한번만보자 보고싶다..너 군대가면 아빠어쩌냐 ...
저 바로 화냈습니다. 가면머어쩔껀데 아빠 또 술채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잘할게 이말밖에 더할거냐고 이러고 끊어버렸습니다. 원래 술취하시면 전화끊어도 다시 오는데 오늘은 안오더군요..
일어나서 씻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이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술취해서 어떻게 사고라도 난 건아닌지..저도 먼 마음인지 전화를 먼저 걸지못하네요..
문자한통보냈습니다. 낮에 화내서 죄송하고 일어나면 해장이라도 하고 밥거르지말라고..
그리고 아빠 힘들게살지말고 우리 신나게살자 이렇게 보냈습니다.
지금 새벽3시 20분인데 아직까지 연락없네요 ..새벽이라도 저 일하시는거 아니까 연락하실텐데..
저 정말 웃으면서 한 번 살아보고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데 우리부모님하고 제동생만 정말 얼굴에 웃음이라도 생겼으면 합니다.
저 피시방일하면서 눈물나는데 손님들한테 보여주기싫어 화장실 들락날락거리며 한시간동안 쓴 글입니다.
세상은 나눠져있는가요? 너무 힘이듭니다
저는 올해 21된 남자입니다.
전 여기에 톡이 되고싶어서도 아니고 그냥 제 마음속을 털어놓을때가 없어서 글을 적습니다.
사는게 너무 힘이들고 불공평하고 지칩니다. 길어도 이해해주시고 악플이라도 좋으니 힘좀나게 해주십시오
저 경상도 남자이고 무뚝뚝합니다.
아버지도 역시 무뚝뚝합니다.
저희 어머니태어나시기전에 이미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8살경 외할아버지 직업군인 꽤 높은직책이신것같은데 여튼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어머니 밑으로 여동생이있었고 8살부터 온갖고생을 하며 살아온 우리어머니입니다.
당연히 학교라는 문턱도 못가봤죠..하지만 왠만한 생각은 이세상 어느누구보다 머리회전빠릅니다.
단 흠이라면 교육이란것을 못받아봤으니 남들보다 지식은 딸립니다.
저희 아버지 중퇴이십니다.. 그리고 남들 말하는 동네 불량배이셨습니다.
저희어머니만나 결혼하시고 어머니 포장마차하시고 아버지 일하시고 이렇게해서 제가 7살되었을때 저희 집이 생겼습니다. 주공이라는 연세민아파트지만 저희 집이라는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건축업 머 말하면 노가다 이런것인데 덤프트럭일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덤프트럭한대로 시작해서 나중엔 번창하셔서 대구에서 덤프트럭 그 세상에서는 저희 아버지 모르시는분이 없을정도로 번창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2때 연세민아파트를 떠나 32평 빌라 저희집이 생겼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저희 아버지 소득 한달 천만원정도 되었습니다.
전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요..그런데 저희아버지가 고용하신 직원이 사고를 당하셔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재판가서 지고 엄청난 병원비에 저희는 월수입이 있는게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었지요.
그리고 건축업하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공사현장 못따내면 일이없다는것을..ㅠㅠ 그렇게 일이없어 아버지가 일도 안하시게 되었습니다.
여튼 그렇게해서 얼마전까지 32평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 집이 어렵다는건 알았지만 이정도로 어려울지는 몰랐습니다. 32평에서 18평되는 집으로 왔습니다.
자리가 안좋지만 32평 집이 싸게 나온게있었는데 돈 500을 못구해서 18평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 바람기도 있고 도박 우리가말하는 노름을 좋아하십니다.
돈많이벌때는 몰라도 아버지가 배우신게 없으시니까 일대신 노름으로 사나봅니다.
사실 어머니랑 사이가 안좋아서 고2때부터 아버지는 집에 잘 안들어오셨습니다.
일도안하시는데 밖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밥은 챙겨먹으시는지..정말 걱정스럽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밉기에 그렇게 고생하는 엄마한테 상처주기에 너무 화가나고 미웠습니다.
아 ㅅㅂ 또 눈물나네 ..
그리고 저는 고3때 거의 학교를 졸업될수있을만큼은 나갔습니다 .대부분 안나갔지요..방황이라면 방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컴퓨터는 좀 해둬서 전국대회에서 상먹고 특별전형을 대학을 갔습니다.
작년에 대학가서는 ㅅㅂ 대학왔다고 친구들 만나고 하다보니 매일같이 술을 마셨습니다.
1학기동안 타지에서 술값쓴것만으로도 엄청나고 ..1학기마치고 와서는 방학때 일을하면서 저의 생활을 후회를하고 2학기때는 초반에는 술도 절제하고 학교도 잘 나갔으나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제가 병신같은새끼라서 그렇죠..그리고 저도 토토라는것을 한번씩 하다가 스포츠배팅을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도박이죠 ..아버지가 도박할때 싫어하면서 저의 이런모습을 보니 참 제가 정말 너무 못난것같습니다.
작년에 2학기마치고 내려와서 한달은 친구들만나고 그랬습니다. 제가 사주는걸 좋아해서 술도 제가 사주고 이랬습니다. 미친놈이죠 ..어머니에게 손은 안벌렸지만 스포츠배팅으로 딴 돈으로 그렇게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2월달을 쉬고 1월달부터 제가 일을했습니다. 정말 피곤에 쩔어 삽니다.
평일에는 5시 ~11시까지 배달 11시30~ 아침 9시까지 피시방..
주말에는 클럽에서 일을 합니다. 이렇게해서 월수입 200정도 됩니다.
이렇게 제가 살아가서 그런지 일하고오면 바로 자고 일어나서 또 일하러가고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갑니다. 사는게 사는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 집에 안들어오시는데 저 밥먹고 있을때 술이 좀 되서 들어오시더나 잔다그러고 방에서 주무십니다. 그리고 조금뒤 다시 아빠 갈게 이럽니다. 저는 너무 안된것같아 아버지 차타는곳까지만이라도 배웅을 해드렸습니다. 배웅하는데 길거리에서 한 30분얘기를 하셨습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너희 이런집에서 사는거 정말 잘못했다 잘할게 엄마한테도 잘할게 아빠집에 잘 안들어오니까 엄마 동생 니가 챙겨라 대충 이런내용이었고
딱한마디에 제가 엄청울었습니다. 그 큰집 32평 어떻게 얻은건데 니랑 니동생이랑 그 거실에서 레슬링하던걸 내가 왜팔았냐 하시며 우십니다. 저 그말듣고 엄청울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그 말이 엄청생각납니다. 아빠도 정말 힘들구나.
저희 어머니도 저 대학갈때부터 이래선안되겠다하여 큰 대형횟집에서 일을 하십니다.
몸도 안좋으신데 지금은 더 안좋아지셨습니다. 그거보면 전 진짜 미쳐버리겠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하나 ..남들처럼 우리가족 4명 식탁에 모여 밥한끼못먹는걸까..이런생각 수십번듭니다..정말 하루벌어 하루살아갑니다. 몇일벌어 전기세 폰값 저 1학기 2학기 대출 두번받았으니 한달에 20만원씩 대출빚갚고 ...정말 살아가는게 너무 빠듯합니다.
ㅅㅂ 이런시기에 군대도 가야된다는게 정말 저는 ....말이안나오네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 이렇게 힘들때 저희어머니 이렇게 힘들때 어느누구 도와주는 사람없네요.
사실 저희어머니 할아버지댁에서 처음에 못배웠다고 엄청구박받고 무시받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저희들데리고 할머니댁가서 청소해주고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이랬습니다. 큰어머니 ?? 작은어머니 ? 명절때 한번오십니다...치킨집하시는데 명절때도 차례지낼때 와서 차례상도와주고 설겆이도 안하고갑니다. 저희어머니 혼자 다합니다. 이런게 몇십년되니까 고모쪽이랑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희 어머니보고 그래 제가 ㅁㅁ이면 ㅁㅁ엄마밖에없다 이러십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고인이되셨고 할머니는 약간의 중풍기를 보이며 고모집에서 생활하시고 계십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 우리 엄마 고생한거 다 물거품이네요 ..전화한통이라도해서 힘들제 이런 전화도 안옵니다. 친척 그게 멉니까 ? 전 저희 가족만있으면 됩니다. 저희 부모님 제동생 제가 뼈빠지게 벌어서 호강시켜드리고 제가 먼저죽더라도 저희 부모님 오래사시게 하고싶습니다.
젊었을때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지금 또 고생하면 언제 인생이라는걸 즐겨봅니까..
그러니 정말 오래오래살아서 정말 인생이란걸 한 번 즐겨봤으면합니다.
이번 설때 저 할아버지에게 절은 하고싶지만 큰집 큰아빠집안갑니다. 그 집안구석가봤자 예의상 힘들제 이것좀먹어라이러고 속으로는 어떤말할지 모르는 인간들입니다.
할아버지께는 제가 시간날때 산소에 따로 찾아갈렵니다.
제 동생도 이제 고1올라가는데 사춘기입니다. 다른애들같으면 방황도하고 그럴껀데 너무 착해서 제 말도 잘듣고 놀려고싶은마음은 많은지 나가기는 자주 나갑니다. 하지만 너무 착해서 일찍들어오고 저 일하러가기전에 밥도 차려주는 정말 착한 제 동생입니다.
오늘 아버지께서 술이 되셔서 오후에 전화가 오셨더군요 ..저는 오전인줄알았는데 피곤에 지쳐 살다보니 시간개념도 잘 모릅니다. 자다가 받았는데 또 우십니다. 정말 저희앞에서는 눈물한방울도 안보이시는 분인데 또 우십니다. 아빠가 잘못했다 이럽니다. 아빠밉제 이럽니다.
저 안그래도 피곤한데 또 전화해서 이러는게 짜증나서 어 밉다 ..아빠 한번만보자 보고싶다..너 군대가면 아빠어쩌냐 ...
저 바로 화냈습니다. 가면머어쩔껀데 아빠 또 술채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잘할게 이말밖에 더할거냐고 이러고 끊어버렸습니다. 원래 술취하시면 전화끊어도 다시 오는데 오늘은 안오더군요..
일어나서 씻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이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술취해서 어떻게 사고라도 난 건아닌지..저도 먼 마음인지 전화를 먼저 걸지못하네요..
문자한통보냈습니다. 낮에 화내서 죄송하고 일어나면 해장이라도 하고 밥거르지말라고..
그리고 아빠 힘들게살지말고 우리 신나게살자 이렇게 보냈습니다.
지금 새벽3시 20분인데 아직까지 연락없네요 ..새벽이라도 저 일하시는거 아니까 연락하실텐데..
저 정말 웃으면서 한 번 살아보고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데 우리부모님하고 제동생만 정말 얼굴에 웃음이라도 생겼으면 합니다.
저 피시방일하면서 눈물나는데 손님들한테 보여주기싫어 화장실 들락날락거리며 한시간동안 쓴 글입니다.
이 긴글 끝까지 읽으신분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