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엔 매우 늦었다. 그래서 꾸중을 들을까 봐 몹시 겁이 났다. 선생님께서 자음과 모음에 대해서 물어보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욱이 나는 ㄷㄷㄷ나 ㅎㅎ는 알았어도 모음에 대해선 깜깜 절벽이었던 것이다.
땡땡이치고 요새 주워들은 팝송을 흥얼거리며 오락실에서나 죽칠까 하는 생각도 문득 났다. 날씨는 얼마나 우중충하고 대운하 옆에 늘어선 공장의 매연으로 자욱했던가! 5년이 넘어도 아직 못다 판 대운하에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삽질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 왔고, 얼마 전 유출사고가 난 바닷가에선 기름 냄새가 줄기차게 퍼져왔다.
이 모든 것이 한글 모음보다는 훨씬 내게 참을 만했다. 하지만, 나는 그 꼬드김을 억지로 물리치고 학교를 향해 줄달음쳤다.
면사무소를 지나다가, 조그만 게시판 쇠창살 앞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인수위 출현 때부터, 이산가족인 할아버지를 분노케 한 통일부 폐지, 양식장이 오염되어도 보상을 못 받아 자살한 옆 동네 황씨 아저씨와, 농림부 폐지 후 지원이 끊겨 결국 논을 갈아엎고 농약을 마신 우리 동네 김씨 부부와, 남편에게 매만 맞다가 이혼당했는데도 여성부와 인권위 폐지 로 의지할 데 없어 야반도주한 베트남 새댁 등, 일체의 나쁜 소식들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게시판 앞에서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생각해 보았다. '또 무슨 삽질을 벌이나?'
그러면서 이미 농사를 포기해 쑥대밭이 된 논두렁을 달음박질하며 건너가자, 자기 부인과 함께 거기서 방(榜)을 보고 있던 대추나무집 희영 아저씨가 어눌한 영어로 나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헤이 보이, 그렇게 서둘 건 없단다. 학교엔 언제 가더라도 늦지 않을 테니까! 돈 워리~"
나는 희영 아저씨가 나를 놀리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조그마한 교실로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갔다.
여느 때 같으면, 수업이 시작될 무렵에는 길에서도 들릴 만큼 왁자지껄한 소리가 일어나는 법 이다. 서랍을 여닫는 소리, 더욱 잘 외우기 위해서 큰 고함으로 학과를 반복하는 소리, 선생님 이 정신봉이라는 몽둥이로 교탁을 두드리며 '좀 조용히!' 하는 소리 따위가.
이런 북새통을 틈타서 나는 내 자리로 들키지 않게 가서 앉을 셈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은 모든 것 이 조용하기만 했다. 마치 일요일 아침처럼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벌써 제자리에 앉은 친구들 과 옆구리에 그 무시무시한 정신봉을 끼고 서성거리는 국어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별 수 없이 문을 열고 이 고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얼마나 얼굴이 뜨거웠으며 또 얼마나 겁이 났던지!
그런데 뜻밖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화도 내지 않고 나를 바라보셨다. 그러고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 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삼순아, 얼른 네 자리에 가 앉으렴. 하마터면 너 없이 시작할 뻔했구나."
나는 걸상을 뛰어넘어 곧 책상 앞에 앉았다. 공포가 약간 가신 뒤에야 비로소 나는 우리 선생님 이 고운 한복 위 초록색 마고자에 맵시 있게 접은 장식을 달았으며, 수놓은 저고리 자락을 드리우셨 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것들은 명절이나 상(賞)을 수여하는 날에만 선생님께서 착용하시는 것 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실은 온통 이상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무엇보다고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교실 뒤쪽, 언제나 텅 비어 있던 걸상 위에 마을 사람들이 우리 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앉아 있는 사실이었다. 밀짚모자를 쓴 태수 영감님, 전 면장님, 전 우체부, 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모두들 슬픈 표정이었다. 일본강점기에 한글을 못 배워 여태 까막눈이신 태수 어르신은 가장자리 가 낡아 빠진 국어책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무릎 위에 활짝 펴 놓고서는 커다란 안경 너머로 여기 저기 훑어보고 있었다.
내가 이런 모든 광경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선생님은 교단으로 올라가셨다. 그러고는 아까 나를 교실로 맞아 주실 때와 같이 그 부드럽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애들아, 이 시간은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대한민국 전국의 학교에서는 인제 영어로만 수업하라는 명령이 인수위에서 왔단다. 원어민 새 선생님이 내일 오실 거야. 오늘 이 시간이 너희들의 마지막 국어 시간이다. 열심히 들어주기를 바란다."
이 몇 마디의 말이 내 마음을 깡그리 흔들어 놓았다. 아아! 치사스러운 놈들, 면사무소에 붙여 놓은 방문(榜文)이 바로 그거였구나. 나의 마지막 국어 수업.
그런데 나는 제대로 한글을 쓸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영영 못 배우고 말게 되었구나. 그럼 여기서 그치고 말아야 하나. 옆집 민재 다닌다고 등 떠밀려 피아노 학원이나 다니고 오락실 에서 버블보블에 목숨 거느라 빠진 수업, 잃어버린 시간들을 얼마나 뉘우쳤던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따분하고 가지고 다니기가 무겁게만 느껴지던 책들, 국어책, 거룩한 국사책 등이 그때는 몹시 헤어지기 아쉬운 오랜 친구들처럼 여겨졌다. 선생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선생님이 떠나려 하신다, 이제는 다시 뵙지 못할 거야, 하는 생각에, 마구 밟히던 일, 정신봉으로 매 맞던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가엾은 분.
이 마지막 수업을 위하여 선생님은 한복을 입으신 거다. 그제야 나는, 마을 노인들이 왜 교실 뒤쪽 에 와 앉아 있는지 알게 되었다. 마치, 이 학교에 자주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그것은 우리 선생님의 40년 동안의 훌륭한 봉사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사라지려는 국어 에 대해 그들의 경의를 표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외울 차례였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이 한 소절을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첫 마디부터 엉망이 되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으며,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삼순아, 난 너를 나무라지 않겠다. 넌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이 꼴이 된 거란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지 - '젠장! 지금은 글로벌시대인걸 뭐. 한국어는 내일 배우면 될 텐데'라고. 그런데 이 꼴이 되고 말았구나. 아! 언제나 우리네 교육을 내일로 미뤄 왔던 것이 우리 한국의 커다란 불행이었다.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테지- '오 마이 갓! 자기 나라 말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주제에 한국사람이라니. 차라리 우리나라의 한 주로 편입되는 게 낫겠다.'라고.
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은, 삼순아, 네가 가장 어벙했던 탓은 아니란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비난받을 점을 지니고 있단다. 너희들의 부모님들도 너희들의 학업에 관심을 충분히 쏟지 않으셨지. 다만 몇 푼이라도 더 벌려는 생각에 XXX당을 찍고 너희들을 인성교육보다는 이기적인 무한경쟁사회에 몰아넣으셨지.
내 자신인들 나무랄 데가 없겠느냐? 너희들을 공부시키는 대신 걸핏하면 나무바닥 왁스 걸레칠 을 시키지 않았던가? 내가 붕어 낚으러 가고 싶을 때엔 서슴없이 너희들을 알바로 풀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것저것 말씀하시더니, 국어 선생님은 한글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며, 가장 분명하고 가장 실팍한 말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우리들 사이에서 지켜야 하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왜냐하면, 한 민족이 노예 신세로 떨어졌을 때, 제 나라 말을 잘 간직하고만 있다면 감옥의 열쇠 를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문법책을 들고 그날 배울 과(課)를 읽어 주시 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이해가 잘 되는지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말씀이 모두가 쉽게 느껴졌다. 아니, 정말 쉬웠다. 나는 여태껏 내가 이렇게도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들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으며, 선생님 역시 이렇게도 꼼꼼하게 설명하신 적이 없었다고 느꼈다. 가엾은 선생님은 떠나시기 전에 당신의 모든 지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는 모양이었다.
문법 수업이 끝나자,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날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글씨본을 마련 해 오셨는데, 거기에는 아름다운 필체로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책상에 가로 매달려서, 마치 조그만 깃발들처럼 온 교실에 펄럭이고 있었다.
누구나 어찌나 골똘했던지, 볼만했다. 그리고 얼마나 조용했던가! 종이 위에 미끄러지는 펜 소리밖 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때는 풍뎅이란 놈들이 들어왔으나, 아무도 그따위에는 관심 을 쏟지 않았다. 아주 어린 꼬마들조차도 감동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마치 풍뎅이 소리마저도 한국어인 양 글씨 획을 긋는데 여념이 없었다.
학교 지붕 위에서는 참새들이 나지막한 소리도 짹짹거리고 있었다. 나는 참새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론 참새들까지도 영어로 노래하기를 강요당하지 않을까?'
이따금 책에서 눈을 들어 보니, 선생님은 교단 위에서 꼼짝도 않고 주위에 물건들을 눈여겨보고 계시는 것이었다. 이 조그만 학교의 집을 몽땅 당신의 눈 속에 집어넣어 가져가고 싶으신 듯이...
생각해 보라! 40년을 한결같이 저기, 바로 저 자리를 지키셨던 것이다. 변함 없는 교실과 눈앞에 교정을 마주한 바로 저 자리에 말이다. 다만, 교육경쟁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지원 한번 못 받은 책걸상 만은 오랜 세월 동안 닳을 대로 닳아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고, 교정의 은행나무들이 크게 자랐으며, 손수 심으신 상록수가 창문을 화환으로 두르듯 감싸며 지붕까지 뻗어 있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한다니, 가엾은 선생님으로서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을까?
그리고 선생님의 누이 동생이 짐을 꾸리느라고 윗방에서 왔다갔다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그럴 것이, 이튿날이면 그들은 영원히 이 고장을 떠나 어느 섬에 있다는 인수위 직영의 해직교사들 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대에 수감되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끝까지 수업을 끌고나갈 용기를 가지셨던 것이다. 글씨 쓰기가 끝나자, 우리는 인수위가 권장한 친일적 뉴라이트버전이 아닌 이전의 교과서로 국사를 배웠다.
다음에는 꼬마들이 모두 '가, 나, 다, 라, 마, 바, 사'를 합창했다. 저기 교실 뒤쪽에서 태수 어르신 이 안경을 쓰고 두 손으로 책을 든 채 꼬마들과 함께 한 자 한 자 읽고 있었다. 그도 몹시 열중해 있 는 모습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감동으로 떨고 있었다. 그가 읽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무도 이상해서 우리는 모두가 웃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했다. 아! 난 이 마지막 수업 시간을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할 것이다.
문득 면사무소의 시계가 정오를 알렸다. 이윽고 어느새 영어로 바뀐 새마을 운동가와 애국가. 바로 이때 동네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원어민들의 영어 소리가 창문 밖에서 시끄럽게 들려 왔다.
"애들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 나는-."
무엇인가가 선생님의 목을 매게 했다. 말을 끝맺지 못하셨다. 그러자 칠판을 향하여 돌아서시더니 분필 한 도막을 집어들고 온 힘을 다하여, 되도록 크게 쓰시는 것이었다.
마지막수업-한글버전
받은 글입니니다. 원본은 어디있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게시판도 영어로 써야 하는 걸까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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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엔 매우 늦었다. 그래서 꾸중을 들을까 봐 몹시 겁이 났다.
선생님께서 자음과 모음에 대해서 물어보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욱이 나는 ㄷㄷㄷ나 ㅎㅎ는 알았어도 모음에 대해선 깜깜 절벽이었던 것이다.
땡땡이치고 요새 주워들은 팝송을 흥얼거리며 오락실에서나 죽칠까 하는 생각도 문득 났다.
날씨는 얼마나 우중충하고 대운하 옆에 늘어선 공장의 매연으로 자욱했던가!
5년이 넘어도 아직 못다 판 대운하에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삽질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 왔고, 얼마 전 유출사고가 난 바닷가에선 기름 냄새가 줄기차게 퍼져왔다.
이 모든 것이 한글 모음보다는 훨씬 내게 참을 만했다. 하지만, 나는 그 꼬드김을 억지로
물리치고 학교를 향해 줄달음쳤다.
면사무소를 지나다가, 조그만 게시판 쇠창살 앞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인수위 출현 때부터, 이산가족인 할아버지를 분노케 한 통일부 폐지, 양식장이 오염되어도
보상을 못 받아 자살한 옆 동네 황씨 아저씨와, 농림부 폐지 후 지원이 끊겨 결국 논을 갈아엎고
농약을 마신 우리 동네 김씨 부부와, 남편에게 매만 맞다가 이혼당했는데도 여성부와 인권위 폐지
로 의지할 데 없어 야반도주한 베트남 새댁 등, 일체의 나쁜 소식들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게시판 앞에서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생각해 보았다. '또 무슨 삽질을 벌이나?'
그러면서 이미 농사를 포기해 쑥대밭이 된 논두렁을 달음박질하며 건너가자, 자기 부인과 함께
거기서 방(榜)을 보고 있던 대추나무집 희영 아저씨가 어눌한 영어로 나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헤이 보이, 그렇게 서둘 건 없단다. 학교엔 언제 가더라도 늦지 않을 테니까! 돈 워리~"
나는 희영 아저씨가 나를 놀리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조그마한 교실로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갔다.
여느 때 같으면, 수업이 시작될 무렵에는 길에서도 들릴 만큼 왁자지껄한 소리가 일어나는 법
이다. 서랍을 여닫는 소리, 더욱 잘 외우기 위해서 큰 고함으로 학과를 반복하는 소리, 선생님
이 정신봉이라는 몽둥이로 교탁을 두드리며 '좀 조용히!' 하는 소리 따위가.
이런 북새통을 틈타서 나는 내 자리로 들키지 않게 가서 앉을 셈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은 모든 것
이 조용하기만 했다. 마치 일요일 아침처럼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벌써 제자리에 앉은 친구들
과 옆구리에 그 무시무시한 정신봉을 끼고 서성거리는 국어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별 수 없이 문을 열고 이 고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얼마나 얼굴이 뜨거웠으며 또 얼마나 겁이 났던지!
그런데 뜻밖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화도 내지 않고 나를 바라보셨다. 그러고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
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삼순아, 얼른 네 자리에 가 앉으렴. 하마터면 너 없이 시작할 뻔했구나."
나는 걸상을 뛰어넘어 곧 책상 앞에 앉았다. 공포가 약간 가신 뒤에야 비로소 나는 우리 선생님
이 고운 한복 위 초록색 마고자에 맵시 있게 접은 장식을 달았으며, 수놓은 저고리 자락을 드리우셨
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것들은 명절이나 상(賞)을 수여하는 날에만 선생님께서 착용하시는 것
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실은 온통 이상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무엇보다고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교실 뒤쪽, 언제나 텅 비어 있던 걸상 위에 마을 사람들이 우리
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앉아 있는 사실이었다. 밀짚모자를 쓴 태수 영감님, 전 면장님, 전 우체부,
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모두들 슬픈 표정이었다. 일본강점기에 한글을 못 배워 여태 까막눈이신 태수 어르신은 가장자리
가 낡아 빠진 국어책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무릎 위에 활짝 펴 놓고서는 커다란 안경 너머로 여기
저기 훑어보고 있었다.
내가 이런 모든 광경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선생님은 교단으로 올라가셨다. 그러고는 아까 나를
교실로 맞아 주실 때와 같이 그 부드럽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애들아, 이 시간은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대한민국 전국의 학교에서는
인제 영어로만 수업하라는 명령이 인수위에서 왔단다. 원어민 새 선생님이 내일 오실 거야.
오늘 이 시간이 너희들의 마지막 국어 시간이다. 열심히 들어주기를 바란다."
이 몇 마디의 말이 내 마음을 깡그리 흔들어 놓았다. 아아! 치사스러운 놈들, 면사무소에 붙여 놓은
방문(榜文)이 바로 그거였구나. 나의 마지막 국어 수업.
그런데 나는 제대로 한글을 쓸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영영 못 배우고 말게 되었구나.
그럼 여기서 그치고 말아야 하나. 옆집 민재 다닌다고 등 떠밀려 피아노 학원이나 다니고 오락실
에서 버블보블에 목숨 거느라 빠진 수업, 잃어버린 시간들을 얼마나 뉘우쳤던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따분하고 가지고 다니기가 무겁게만 느껴지던 책들, 국어책, 거룩한
국사책 등이 그때는 몹시 헤어지기 아쉬운 오랜 친구들처럼 여겨졌다. 선생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선생님이 떠나려 하신다, 이제는 다시 뵙지 못할 거야, 하는 생각에, 마구 밟히던 일,
정신봉으로 매 맞던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가엾은 분.
이 마지막 수업을 위하여 선생님은 한복을 입으신 거다. 그제야 나는, 마을 노인들이 왜 교실 뒤쪽
에 와 앉아 있는지 알게 되었다. 마치, 이 학교에 자주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그것은 우리 선생님의 40년 동안의 훌륭한 봉사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사라지려는 국어
에 대해 그들의 경의를 표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외울 차례였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이 한 소절을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첫 마디부터 엉망이 되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으며,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삼순아, 난 너를 나무라지 않겠다. 넌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이 꼴이 된 거란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지 - '젠장! 지금은 글로벌시대인걸 뭐. 한국어는 내일 배우면 될
텐데'라고. 그런데 이 꼴이 되고 말았구나. 아! 언제나 우리네 교육을 내일로 미뤄 왔던 것이
우리 한국의 커다란 불행이었다.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테지- '오 마이 갓!
자기 나라 말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주제에 한국사람이라니. 차라리 우리나라의 한 주로
편입되는 게 낫겠다.'라고.
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은, 삼순아, 네가 가장 어벙했던 탓은 아니란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비난받을 점을 지니고 있단다. 너희들의 부모님들도 너희들의 학업에 관심을
충분히 쏟지 않으셨지. 다만 몇 푼이라도 더 벌려는 생각에 XXX당을 찍고 너희들을 인성교육보다는
이기적인 무한경쟁사회에 몰아넣으셨지.
내 자신인들 나무랄 데가 없겠느냐? 너희들을 공부시키는 대신 걸핏하면 나무바닥 왁스 걸레칠
을 시키지 않았던가? 내가 붕어 낚으러 가고 싶을 때엔 서슴없이 너희들을 알바로 풀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것저것 말씀하시더니, 국어 선생님은 한글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며, 가장 분명하고 가장 실팍한 말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우리들 사이에서 지켜야 하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왜냐하면, 한 민족이 노예 신세로 떨어졌을 때, 제 나라 말을 잘 간직하고만 있다면 감옥의 열쇠
를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문법책을 들고 그날 배울 과(課)를 읽어 주시
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이해가 잘 되는지 깜짝 놀랐다. 선생님의 말씀이 모두가 쉽게 느껴졌다.
아니, 정말 쉬웠다. 나는 여태껏 내가 이렇게도 열심히 귀를 기울여 들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으며,
선생님 역시 이렇게도 꼼꼼하게 설명하신 적이 없었다고 느꼈다. 가엾은 선생님은 떠나시기 전에
당신의 모든 지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려는 모양이었다.
문법 수업이 끝나자,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날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글씨본을 마련
해 오셨는데, 거기에는 아름다운 필체로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책상에 가로 매달려서, 마치 조그만 깃발들처럼 온 교실에 펄럭이고 있었다.
누구나 어찌나 골똘했던지, 볼만했다. 그리고 얼마나 조용했던가! 종이 위에 미끄러지는 펜 소리밖
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때는 풍뎅이란 놈들이 들어왔으나, 아무도 그따위에는 관심
을 쏟지 않았다. 아주 어린 꼬마들조차도 감동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마치 풍뎅이 소리마저도
한국어인 양 글씨 획을 긋는데 여념이 없었다.
학교 지붕 위에서는 참새들이 나지막한 소리도 짹짹거리고 있었다. 나는 참새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론 참새들까지도 영어로 노래하기를 강요당하지 않을까?'
이따금 책에서 눈을 들어 보니, 선생님은 교단 위에서 꼼짝도 않고 주위에 물건들을 눈여겨보고
계시는 것이었다. 이 조그만 학교의 집을 몽땅 당신의 눈 속에 집어넣어 가져가고 싶으신 듯이...
생각해 보라! 40년을 한결같이 저기, 바로 저 자리를 지키셨던 것이다. 변함 없는 교실과 눈앞에
교정을 마주한 바로 저 자리에 말이다. 다만, 교육경쟁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지원 한번 못 받은 책걸상
만은 오랜 세월 동안 닳을 대로 닳아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고, 교정의 은행나무들이 크게 자랐으며,
손수 심으신 상록수가 창문을 화환으로 두르듯 감싸며 지붕까지 뻗어 있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한다니, 가엾은 선생님으로서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을까?
그리고 선생님의 누이 동생이 짐을 꾸리느라고 윗방에서 왔다갔다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그럴 것이, 이튿날이면 그들은 영원히 이 고장을 떠나 어느 섬에 있다는 인수위 직영의 해직교사들
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대에 수감되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끝까지 수업을 끌고나갈 용기를 가지셨던 것이다. 글씨 쓰기가 끝나자,
우리는 인수위가 권장한 친일적 뉴라이트버전이 아닌 이전의 교과서로 국사를 배웠다.
다음에는 꼬마들이 모두 '가, 나, 다, 라, 마, 바, 사'를 합창했다. 저기 교실 뒤쪽에서 태수 어르신
이 안경을 쓰고 두 손으로 책을 든 채 꼬마들과 함께 한 자 한 자 읽고 있었다. 그도 몹시 열중해 있
는 모습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감동으로 떨고 있었다. 그가 읽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무도 이상해서
우리는 모두가 웃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했다. 아! 난 이 마지막 수업 시간을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할 것이다.
문득 면사무소의 시계가 정오를 알렸다. 이윽고 어느새 영어로 바뀐 새마을 운동가와 애국가.
바로 이때 동네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원어민들의 영어 소리가 창문 밖에서 시끄럽게 들려 왔다.
"애들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 나는-."
무엇인가가 선생님의 목을 매게 했다. 말을 끝맺지 못하셨다. 그러자 칠판을 향하여 돌아서시더니
분필 한 도막을 집어들고 온 힘을 다하여, 되도록 크게 쓰시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그러고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 서 계시다가, 말없이 우리에게 손짓으로 알렸다.
"끝났다-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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