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티비를항상켜둔채로 자는이유는.

R2008.02.05
조회1,124

아렸을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나서 줄곧 동생과 둘이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서로 우리를 못맡겠다며 나몰라라했던 부모님, 다른아저씨곁에있던 엄마

한없이 자상했는데  한순간에 이성을 잃어버린듯 나를 팼던 아부지

술에취해 어린나에게 안겨 굵은 눈물 뚝뚝 흘리며 미안하다고 울부짖던 아부지

많이 원망도 했었고 미워도했었고

 

할일 못할일 해가며 한장당 30원 50원 하는 전단지 알바부터

추운날 오들오들 떨며 했던 주유소 알바까지.

그래도 부모님한테 자랑스러워지고싶어서

돈을많이준다는 업소같은곳은 죽어도 가지않았고 땀흘려 정성스레 일하고 돈한푼

못받고 쫒겨난적도 있었지만 그것또한 모든것이 사회공부라 생각하며 ,그렇게

 

그렇게 18살이되었다.

난 초등학생때까지만해도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밝고 쾌할한 성격이였던걸로 기억한다.

지금과는 너무달랐던 과거의 모습때문에

난 어렸을적 알았던 사람들을 보게되며 뒷걸음부터 치게된다.

내 모습에 실망할까봐 그저 사람들에게 좋은모습으로 남겨지고 싶은 마음에  피하게되는것이

결국 아예 밖을 나가는것조차  싫어져버렸다.

 

가난하다며 욕하며 손가락질 했던 아이들 애미없는 자식이라 수근거리는 동네아줌마들

아무렇지 않은척 하려하지만 여린마음에 무시해도좋은 사소한 모든말들이 비수가되어

꽃혀가고 그렇게 시간을 흘렀으며 지금 또한 달라진건 아무것도없다.

달라진게있다면 약간의 동정

몇번의 자살시도 끝에 남겨진건 후회와 억울함만 가득,

 

그렇게 난 정말 괜찮다고 정말 아무렇지않다고

난 당당하다고 마음먹고 잘 살아왔는데 잘 버텨왔는데 잘 견뎌내왔는데.

잘 참고있던 높은 탑이 흔들린다. 조금씩 흔들려간다.

 

우울증과 편집증으로 고생하며 다녔던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는 달라지리라 새로 시작하리라 마음먹고 가능한 멀리 왔지만

달라진것은 16살에서 17살로 달라졌을뿐 아무것도 달라지지않았다.

 

친구가 간절히 필요하고 원했을뿐인데 아니, 내 곁에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을뿐인데.

소리내어 울수는 없었다

이 모든게 내가 자초한 일인것만 같아서  막연하게 원망하며 울수는없었다.

나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을테니 엉엉 주저앉아 울고있을수많은 없었다.

소리내어 우는법을 까먹었다

가슴이 미어 터지는데도 불구하고나는 소리내어 우는법을 까먹었다

작은 흐느낌조차없이 그렇게 숨죽여 눈물만이 곧이곧대로흐를뿐이였다

더러운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될때까지 하염없이 울어댔다

소리내어 울수는 없었다. 아니 울어서도안됐고 우는법도 몰랐다

더이상 보여지기위한 삶에 지쳐버렸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것 또한 벅찼다.

아니어쩌면 그냥 나는 정말 미쳤는지도 모르는일이다

 그렇게 난 내 나약함을 외로움이라는것으로

은폐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새끼 저새끼 정신나간새끼 병신새끼온갖욕을 다 들어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눈물이 나지않았다 아니 화도 나지않았을뿐더러

기분이 나쁘지도않았다정말 내가 그런가보다 할뿐이였다

 

그래도 장녀라고 아부지에게 실망시키는모습보여드리기 싫어

힘든단말 절대 입밖으로 꺼내지않고 이제껏 잘 견뎠고

그 흔한 사춘기시절 반항 한번 찍 소리 내보지도 못한 마음 이제와서

후회하면 어찌한들 , 지금와서 반항이랍시고 고래고래 소리질러 무엇을 얻겠는가.

반항해서 서로 좋은게 뭐가있겠는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는것뿐

분명 아부지도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얼마나 많은시간을 자식의대한 미안함으로 살아왔을까.

 

내가 티비를 항상 켜둔채로 잠이 드는 이유는

건망증이 심해서도 무서움을 잘 타서도 아니다

적적해서이다.

 

그래도 숨쉬고 살아갈날들이 더 많을거라 믿고 오늘도 사는 저는 평범한 청소년입니다.

반말로 썼다고 기분나빠하실 많은 님들 죄송합니다.

그저 혼자 하소연 하듯 쓴글이라서요. 제 꿈은 연극배우입니다.

이악물고 버텨온 지금까지의 짧은인생이 헛되지않도록 열심히 공부해서

연극영화과를 가는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할께요 아버지에게도 , 그리고.. 엄마에게도.